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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접대와 ‘권력형 성폭력’은 별개가 아니다

정책토론회 “뫼비우스의 띠로 얽힌 성접대, 성폭력, 성매매”



“성접대와 권력형 성폭력의 문제는 ‘권력’을 이용하여 성적 행위의 제공을 유인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유형의 범죄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장임다혜 연구원은 24일(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주관한 정책토론회 <뫼비우스의 띠로 얽힌 성접대, 성폭력, 성매매-미투 운동 속에서 본 침묵의 카르텔>에 참여해 이렇게 말했다. “뇌물로서의 성(Sexual Acts) 제공과 법제도적 해결 방안”에 대한 발제를 하며, 성접대와 권력형 성폭력의 연관성을 설명한 것이다.


‘故장자연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자는 숨겨진 채 피해자의 이름으로만 호명되는 사건에 대해, 지난 2일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재조사 사전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어 24일 검찰과거사위원회는 김학의 전 법무차관이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에 대해 대검찰청에 재조사를 권고했다. 이번 정책토론회는 ‘성접대/성상납’에 대한 논의가 다시 이루어져야 하는 시점에서 열린 것이었다.


성접대, 성폭력에 대한 대중의 인식 차이


정책토론회의 이름인 <뫼비우스의 띠로 얽힌 성접대, 성폭력, 성매매>에 나오는 성접대, 성폭력, 성매매라는 용어에 대해 대중들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을까?


▶ 다음소프트 권미경 이사가 발표한 성폭행, 성매매 이슈와 그에 따른 대중들의 언급 추이


다음소프트 권미경 이사는 2011년 1월부터 2018년 3월까지 7년 간 트위터에서 약 170억 건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주요 이슈가 발생하는 시기마다 성폭력, 성매매, 성접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언급량이 늘어나는 추이”가 있다는 걸 보여주며, “성폭력, 성매매, 성접대와 관련된 연관어를 살펴보면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성폭력(성폭행)의 경우 성범죄, 피해자, 가해자, 성희롱, 범죄 등이 연관어였고, 성접대/성상납의 경우에는 고위층, 경영자, 간부, 감독, 연예인, 술접대, 스캔들 등이, 성매매의 경우에는 인신매매, 불법, 동남아, 업소, 인권이 주로 언급되었다.


이중 성폭력(성폭행)과 성접대/성상납을 비교해 보면, 성폭력은 확실히 범죄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성접대는 별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접대와 직장 내 성희롱은 다르다?


권미경 이사가 발표한 결과에서 성접대/성상납 관련 연관어로 고위층, 경영자, 간부, 감독, 연예인, 술접대, 스캔들 등이 나온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문화예술계, 특히 연예계는 성접대와 관련해 오랫동안 의혹과 문제 제기가 있어온 곳이다. 그런데 토론회에서는 연예계가 특별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분석도 제기되었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주우 사무국장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여성연기자 실태조사(2009년)에 따르면 여성연기자 50% 이상이 술 시중 요구 및 방송관계자 등에 대한 성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발표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크게 이슈화되거나 알려지지 않는 것은 이러한 일들이 여성연기자들의 생계(일)를 담보로 하고 있으며, 명목 상 ‘이득’을 얻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현재 미투 운동으로 발화된 많은 직장 내 성희롱/성폭행 피해자들이 지금까지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성폭력 가해자가 직장 상사이거나 자신의 생계(일)에 영향을 미치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 피해자들은 인사고과나 업무에 불이익을 받게되거나 직장에서 오히려 본인이 왕따를 당하는 등의 괴롭힘을 당할까봐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참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연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여성연예인 인권침해 실태조사’ 자료 중


주우 사무국장은 “연기자들은 ‘선택되어야 하는 입장’에 있고 언제라도 배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위계에 의한 성폭력과 접대가 일상화되어 왔다”며, “특히 일부 연출자들은 접대와 성접대를 요구하며 그것이 실행되지 않았을 때엔 ‘이유 없는 반복 촬영, 배역 축소 등’의 각종 괴롭힘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걸 얻어내기 위해 압박한다”고 말했다.


이는 피해자가 성을 담보로 생계(일)와 직결된 압박을 받는 상황임에도, 성접대 혹은 성상납이라는 개념은 마치 성을 제공한 이(피해자)가 ‘주체성’을 가지고 행위에 참여한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낳고 있는 게 아닌지, 즉 성폭력을 교묘히 숨기기 위한 말이 아닌지 의문을 던지는 지적이었다.


성접대, 성폭력, 성매매…법은 제대로 다루고 있나


그렇다면 성접대를 법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장임다혜 연구원의 설명에 따르면, 현행 법률 중에서 적용하여 처벌할 수 있는 항목은 형법상 뇌물죄,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그리고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다. 하지만 각각의 법률은 성접대의 성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


장임다혜 연구원은 해당 성접대가 ‘재산상 이익’으로 인정되어야만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다며, 법의 허점을 지적했다. “성매매 비용이나 유흥비용이 있는 경우엔 형법 및 특별법상 뇌물 및 부정청탁의 금품으로 인정하여 성적 행위를 ‘제공한 자’와 ‘받은 자’를 처벌할 수 있지만, 성적 행위를 제공 받은 자가 그 성행위로 이익을 얻은 경우가 아닌 경우에는 뇌물죄 처벌이 어렵다.”


이어 “이런 성접대 구도는 성적 행위의 상대방이 된 여성들을 ‘이득’을 얻는 자들로 설정하고, 강압이 행사되는 경우에만 ‘피해자’로 인정하는 성매매 처벌 구도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최근 드러나고 있는 권력형 성폭력의 경우에도 법에서는 “폭행 및 협박, 강력한 지배 관계가 입증되어야만 성폭력 피해를 인정”하기 때문에 ‘권력형 성폭력’의 실태를 법이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임다혜 연구원은 이처럼 성접대와 권력형 성폭력을 입증하는 과정의 어려움에 유사성이 있다고도 밝혔다.


나아가 “성접대는 성적 행위를 제공 받은, 권력을 가진 자의 부정부패나 단순한 분노로 바라봐야 할 것이 아니라 ‘성’을 수단화하는 문제, 타인의 신체와 성을 이용하는 행위를 폭력으로 정의하는 논의로 끌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 4월 24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주관한 2018년 제1차 성매매방지 정책토론회 ‘뫼비우스의 띠로 얽힌 성접대, 성폭력, 

성매매-미투 운동 속에서 본 침묵의 카르텔’  ⓒ일다(박주연)



권력이 ‘분산’돼도 성접대 요구는 계속되고 있다


이번 정책토론회에서는 성접대와 성매매, 성폭력은 권력을 가진 특정한 인물(괴물)이 저지르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 인물에게만 분노를 쏟아내면 안 되며 구조와 문화를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주우 사무국장은 “외주제작 방송프로그램 편성에 관한 법률(방송법 제72조, 방송법 시행령 제58조)이 제정되기 전에는 연출자에게 모든 권한, 즉 작가 및 스텝 선정과 주/조연 선정 결정 권한이 있어서 문제였는데, 이후에는 그 권한이 연출자, 작가, 제작자, 캐스팅 디렉터 등으로 분산되어 (성접대가) 오히려 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권력이 집중되어 있어서 (성)접대가 일어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권력이 분산된 후에도 권력을 나눠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성)접대를 요구한다는 것.


헤럴드경제 서병기 선임기자도 “권력이 한 사람에게 쏠려 있지 않고 분배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견제와 균형이 되지 않고 서로 침묵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병기 선입기자는 ‘연예계의 갑질 구도와 권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며, “권력을 공유하며 침묵하는 이 사회의 문제는 어떤 개인의 인식 변화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번 정책토론회는 정말 뫼비우스의 띠처럼 엮여 있는 성접대, 성폭력, 성매매를 한 선상에 놓고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타인의 신체와 성을 자신의 만족이나 권력의 표식으로 이용하고 요구하는 이들에 대한 처벌도 물론 필요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를 짚어주는 자리였다.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이제 힘이 빠졌다고 하는 미투 운동’은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누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권력이 쓰이고 있는지, 그로 인해 ‘무엇’이 침묵되고 있는지, 지금 보이지 않거나 교묘히 다른 말로 포장되고 있는 성범죄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과 논의가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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