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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체제와 북한여성의 삶에 주목하는 페미니즘 시각
여성학과 북한학의 만남 ‘여성과 분단체제의 안과 밖’을 논하다
4월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악수를 나누던 순간은 전 세계에 보도되었고 올해 내에 ‘종전 선언’ 및 ‘한반도 비핵화’를 합의하겠다는 소식은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를 들썩였다. 판문점 선언의 장밋빛 미래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전망이 쏟아지던 날, 이화여자대학교 포스코관에선 ‘여성과 분단체제의 안과 밖’이라는 주제의 학술포럼이 열렸다. 한국여성학회와 이화여자대학교 통일학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자리다.
여성학과 북한학이 만나 함께 ‘여성과 분단체제’를 이야기하는 장이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날 열린 게 우연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이 날 학술포럼에서는 왜 페미니즘이 북한과 분단 그리고 종전 이후의 이슈에 주목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석이 나왔다. 또 북한여성과 북한이탈여성의 현황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 4월 27일 한국여성학회와 이화여자대학교 통일학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여성과 분단체제의 안과 밖’ 학술포럼이 이화여대 포스코관에서 열렸다. (출처: 한국여성학회)
분단체제의 ‘가부장성’, 남과 북의 ‘남성성’
페미니즘이 북한과 분단을 바라보는 관점은 무엇일까. 라운드테이블 사회를 맡은 이화여자대학교 통일학연구원 김석향 원장은 패널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째는 “자신이 생각하는 여성주의적 시각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여성주의 시각이라는 건, 보편을 해체하는 질문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 덕성여자대학교 이수정 교수는 “‘이게 보편이다, 이게 정상이다’라고 이야기 될 때 새로운 답을 구한다기보다 질문 자체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여성주의의 시작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문을 연 이화여자대학교 조영주 교수는 “그 여성이라는 존재는 생물학적 여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고 또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수많은 일들을 했던 존재”이며, “그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결국 비가시화된 문제, 비가시화된 폭력과 차별을 가시화하고, 그런 비가시화의 매커니즘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여성주의 시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이어 김석향 원장은 “여성주의적 시각을 적용하면, 우리의 분단은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연세대학교 김현미 교수는 “우리가 분단체제에서 합리화하고 정당화했던 게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 같다”며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분단체제는 남북 양쪽 체제의 경쟁과 경합 또는 적대 관계를 통하여 초남성주의적 군사문화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면서 그 논리와 체제 안에 많은 다른 가치를 종속시키고 위계화시켜 낸 구조”라는 것이다.
김현미 교수는 “분단체제가 가지고 있는 동질성과 맹목성 그리고 위계 구조가 한국사회에서 다른 가치를 바라보거나 인정하게 하는데 있어서 여유와 실천을 전혀 가지지 못하게 했고, 문화적으로 매우 척박하고 빈곤한 사회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현재 남북의 ‘남성성’에는 차이가 없음을 인지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우리가 분단체제라고 했을 때 국적, 순혈, 민족을 상상하지만 사실은 가부장성도 있다.”고 말한 연세대학교 이지연 박사는 “실제 우리의 삶에는 굉장히 다양한 권력의 축이 있고, 그 중에 하나가 젠더화된 구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지연 박사는 “통일이나 통합이 되는 사회가 도래해도, 우리에게 여전히 분단체제가 지속될 수 있는 잔재들이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런 권력의 축들을 상상해 볼 때 여성주의적 시각이 굉장히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북한과 분단 문제를 이야기할 때 왜 페미니즘이 함께 논의되어야 하는지 상기시켰다.
①시장 출현 이후, 현재 북한 내 여성들의 지위는?
“우리가 쉽게 북한여성이라 부르지만, 북한여성이라는 범주는 사실 굉장히 크다.” ‘시장으로 간 혁명의 수레바퀴: 북한여성의 동원과 주변화’에 대해 발제를 시작한 조영주 교수는 “북한이 북한여성을 어떻게 호명해 왔으며, 현재 북한여성들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물음을 던진다”고 말했다.
발제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 사회의 큰 변화로 논의되는 건 시장의 출현”이며, 여성이 주요 행위자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허가한 공식 시장의 수가 총 404개, 시장에 종사하는 인구는 총 1백9만9천52명으로 대부분이 여성이라고 추정하고 있다.(2016년 통일연구원, 북한 전국 시장 정보)”
“여성들의 시장 참여는 시장을 통한 정보의 유통과 주변인들과의 네트워크 구축 등을 통한 ‘의식의 변화’를 야기”하기도 했으며 “이런 변화는 여성들의 능력과 권리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야기하였다.”
조영주 교수는 “북한 사회에서 남성들이 가지던 ‘노동자’의 위치와 여성들이 가지던 ‘가족의 책임자’ 위치가, 여성들이 가족의 생계 부양을 위해 시장으로 진출함으로써 가족을 넘어 국가의 생계를 부양하는 것으로 역할이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 사회의 젠더 위계와 질서에 상당한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 공식화의 이면으로 비공식화된 시장과 공식화된 시장 사이의 위계가 발생”했고, “시장을 관리하는 이들은 주로 남성이며 출신성분이나 집안 배경이 좋은 이들”이라는 점을 짚으며 “기존 북한 사회의 젠더 질서를 균열시키는데 제약을 주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실질적으로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측면이 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경제활동과 노동력이 국가적 동원에 그치는 것은 문제적”이라고 지적하며, “전체 경제구조 속에서 여전히 성별 분업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시작했을 때, 과연 여성들의 위치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고 시사했다.
또한 “북한이 최근 ‘정상국가’로써의 행보를 보이기 위해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에 가입하고 보고서를 제출하고 북한이 국제적 규범에 맞게 여성인권을 보장하고 있음을 주장”하며, “2010년 ‘조선인민주의인민공화국 녀성권리보장법’을 제정하고 발표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지만, 이는 “실질적인 북한여성의 모습을 비가시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한편 조영주 교수는 “최근 북한이 북한여성(김여정, 현송월, 리설주)를 보여주는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남북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려는 현재 시점에서 이들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 방식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며, 그런 여성 재현방식 또한 남북한 관계 설정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②조선족 자치구의 북한여성들, ‘대안가족’의 가능성
북한대학원대학교 김성경 교수는 자신이 조중접경지역에서 만난 북한여성들과 조선족 여성들 간의 ‘연대’의 성격과 ‘대안가족’으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을 이야기했다.
남한에 살고 있는 ‘보통’의 남한여성들에게 북한여성이라는 존재는 ‘여성’이라는 점 외에 공통점을 찾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조중접경지역에서 ‘이동하는 여성의 자매애와 대안가족’에 대한 김성경 교수의 연구는 흥미로운 논의였다.
“글로벌 경제체제와 이주 네트워크는 남한 내 돌봄노동이나 서비스 영역으로 ‘조선족 여성’이 대거 이주할 수 있게 하였고, 그 빈자리(조선족 사회 내부의 돌봄 영역)를 전통적으로 조선족과 협력 관계에 있었던 북한여성이 채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성경 교수에 따르면, 북한에서 여성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는 현상은 “조선족 여성에게도 일어나고 있으며, (여성들은) 무너진 가족을 위해 노동착취의 구조로 뛰어드는 상황”이다. 그러나 “착취로 시작되긴 하지만 그런 경험이 때때로 임파워링으로 연결되기도 해서, 남한에 와서 일하다가 (불평등한 관계를 깨닫고) 남편과 이혼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도 전했다.
“돌봄노동이 그나마의 삶을 계속할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이기도 하지만 착취의 현장이기도 한 이런 상황은 이중적이며, 그 안에서 여성들의 행위 또한 수동적 피해자와 능동적 행위자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층적으로 구축된다. 그런 환경 속에서 여성들은 여성들만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거나, 피난처를 제공하는 간병대상자 혹은 그들의 가족과 또 다른 가족을 구성하기도 한다.”
김성경 교수는 이들을 “안과 밖, 경계를 횡단하는 여성들”이라고 칭하며, 자신의 연구 대상자 사례를 공유했다. 북한에서 이탈한 후 중국과의 접경 지역인 조선족 자치구에서 지내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주로 어느 가정에 들어가서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삶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에서는 불법이지만 중국에서 쓸 수 있는 의료시술을 배워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사례. 한국은 답답하고 제한이 많아서 불편하다며 불법적인 신분이더라도 중국에서의 삶을 선택한 사례도 전했다.
경계를 횡단하는 북한이탈여성과 조선족 여성들 사이에는 “그런 과정에서 서로 돕고 의지하는 여성들의 연대가 눈에 띄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성경 교수는 “글로벌 자본주의로 해체된 조선족 가정이 북한여성의 돌봄노동과 결합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가족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리고 “필요하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방식이 근대사회의 ‘가족’ 이데올로기를 흔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③남한여성보다 ‘경제활동 의지’ 강한 북한이탈여성
남한에서 살고 있는 북한이탈여성의 삶에 대해 발표한 남북하나재단의 장인숙 선임연구원은 “언론에서 주로 보여주는 북한이탈여성에 대한 선정적 보도와 달리, 쉽게 일반화할 수 없는 다양한 북한이탈여성의 삶이 있다”고 언급했다. “평균적인 북한이탈여성의 모습을 전하고 싶다”고 말하며, ‘통계로 보는 북한이탈여성의 삶’에 대한 분석을 시작했다.
“최근 3년간 북한이탈주민 중 약 80%가 여성”이며, “40대가 34.1%, 30대가 26.1%, 20대가 15.9%”로, “경제활동이 왕성한 시기인 핵심 노동인구인 20~40대가 76.1%”이다. “이들의 고용률은 52.6%로, 일반여성(한국에 거주하는 전체여성을 의미)의 51.3%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 북한이탈여성의 경제활동 관련 자료 중에서 (출처: ‘북한이탈주민 인포그래픽스 제13호’, 남북하나재단)
“여성이 직업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답한 비율이 93.2%로 일반여성 90.2%보다 높았으며, 가정과 관계없이 계속 취업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도 67.9%로 일반여성 58.9% 보다 높았다.” 또한 “가정과 직장 우선도에서 ‘직장 우선’이라고 답한 비율이 45.2%(일반여성 33.7%), 둘 다 비슷하다가 35.5%(일반여성 48.4%), ‘가정 우선’ 16.2%(일반여성 17.9%)의 결과”를 보였다. “전반적으로 일과 경제활동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고용 환경은 제한적이다. “단순노무 종사자가 26.4%로 가장 높았고, 서비스 종사자가 23.3%로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북한이탈남성의 26.7%가 장치/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 25.7%가 기능원 및 관련기능 종사자”라는 점과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장인숙 선임연구원은 “이렇듯 직업군이 다르기 때문에 성별 임금격차는 상당한 수준”인데, “직업군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도, 아이가 있는 북한이탈여성의 경우에는 무언가를 배울 시간이 없이 급히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일용직을 전전”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탈여성이 경제활동에 의지를 보이고 있음에도, 이들 또한 가사노동과 육아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취업 장애요인 중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인 건 ‘육아부담’이 40%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 및 차별적 관행’ 16.3%, ‘불평등한 근로여건’ 11.3%보다 높았다.”
분단체제를 살아가는 남과 북 여성들과 페미니즘
한국 사회를 늘 불안케 하고 군사주의 시스템을 구축하게 했던 전쟁과 분단의 상황이 곧 사라질지 모른다는 희망찬 이야기가 들려오는 시점이다. ‘만약에 종전이 된다면’이라는 가정에서 만약은 이제 버리고, ‘종전이 된다면 우리는~’으로 시작하는 수많은 이야기를 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페미니스트에게 과연 종전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이번 학술포럼은 그 고민의 시작으로 현재 분단체제를 살아가고 있는 북한여성과 북한이탈여성, 그들이 놓인 위치와 환경을 살펴보는 뜻깊은 자리였다.
포럼 참여자들은 페미니스트들이 분단체제와 북한 문제, 그리고 종전 논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새로운 질문과 이슈를 발굴해주길 바란다는 메시지도 전했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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