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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왜 아들과 ‘성적 대화’를 하지 않아온 걸까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 서평
※ 필자 김양지영 님은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성교육을 하기에 난감한 어른들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김서화 지음, 미디어일다, 2018) 출간 소식을 듣고, 응당 이 책의 서평은 내가 쓰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난 초등학교 6학년 남자 아이를 가진, 아들 엄마이고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이다. 아들은 엄마가 여성학자라서 집에서 매일 ‘여자~여자~’한다며 친구들에게 내 흉을 보기도 했더랬다. 아들이 내가 ‘여자~여자~’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난 일상적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며, ‘아차’ 했다. 나는 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이야기들 속에 ‘성적 대화’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들의 몽정 때도 난 배우자에게 얘기했다. “아빠가 아들에게 잘 얘기해주라고.” 왠지 아들의 성과 관련한 문제는 같은 남자인 배우자가 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배우자는 아들에게 남자가 되었으며 뒤처리를 잘해야 하고 청결에도 신경을 써야한다는 식의 얘기를 한 걸로 안다. 사실 나도 그 정도 수준으로밖에 조언해줄 게 없었다. 그래도 그 정도 이야기한 건 많이 진화한 결과다. 아이가 어릴 때 배우자에게 같은 남자로서 아이 성교육에 신경 쓰고 좀 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을 때, 배우자는 이 책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성교육이란 걸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어 무엇을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몰랐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배우자의 반응. “할 게 뭐 있어?”
▶ 김서화 지음, 양육자를 위한 초등남아 성교육서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 (미디어일다, 2018)
지금 초등학생 아이를 둔 부모 세대에게 성교육은 생식교육, 정절교육, 보건교육이었다. 그나마 남성들은 포르노 등을 통한 비공식적인 정보들을 알아서들 수집하며 그걸 성(性)이라고 배우고 알았던 세대들이다. 자신 또한 성이 뭔지 잘 모르는, 포르노에서 알려주는 다양한 체위, 여성들의 반응 등이 성의 전부라고 알고 있는 세대들이다. 자신 또한 섹스 파트너와 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못하고, 비공식적인 성적 지식을 성관계 속에서 일방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세대들에게 아들 성교육은 너무나 생소한 게다. 때가 되면 알아서 정보가 있을 테고, 그런 걸 잘 터득하면 되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고 아빠들보다 엄마들이 낫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엄마들은 생식교육과 정절교육 위주로 교육을 받았다. 정작 성관계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한참 후에, 출산 후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도 한참 후에 비공식적인 정보망을 통해 알았다. 여성들에게 성은 모르면 모를수록 좋은 것, 소소익선이었기에 조신한 여성이라면 성에 무관심하고 모른 척해야 했다. 이러한 여성이 나중에 섹스를 할 때 과연 그녀는 성관계에서 자신의 욕구를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성적 욕구를 성관계 속에서 잘 풀어내고 있을까.
그래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성적 호기심을 마주할 용기도 없고, 무엇이 폭력적 행위인지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책임감도 없는 것 같다.”
아들 성교육을 미뤄온 나
‘난 왜 아들과 성적 대화를 하지 않아온 걸까?’ 초6인 아들은 매일 매일이 다르게 부쩍 성장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매일 매일 뿜어져 나오는 성장호르몬과 성호르몬. 그 시기 아이들에게 뿜어져 나오는 성장기의 냄새가 성교육이 필요한 때라는 걸 보여주고 있는데. 나름 나의 변명이라고 한다면, 초6인 아이가 내개 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 저자가 말한 것처럼, 사실 난 아들의 성교육을 미뤄온 것 같다.
내가 아들의 성교육을 미룬 건, 아마도 그 성교육의 내용에 있는 듯하다. 아들에게 필요한 성교육이란,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시기에 바로 적정 때가 되면 어떻게 성적 욕구를 잘 풀어낼 수 있을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나도 아이의 성교육에 대한 고민을 아예 안한 건 아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아이가 성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어린 시기에는 관심을 갖고 아이에게 낯선 사람을 조심시키고 어린이집 성교육과 연속선상에서 일명 ‘안돼요, 난 소중하니까’ 식의 교육을 시켰더랬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 후, 선생님들과 주변지인들에게 성교육을 언제쯤 해야 하는지 묻고 고민도 했다. 그런데 대개의 답변은 아직 아이들이 뭘 모를 때라 교육효과가 낮으니 초등학교 고학년쯤에 하는 게 적절할 거라는 거였다.
문제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나서는 학교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을 너무 믿은 나머지, ‘기본적인 것은 배웠겠지’ 지레짐작하며 아이와 일상에서 성적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은 여자아이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성교육과 성폭력 예방교육이 강조되는 시기에 성교육 공백기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에 실린 삽화 ⓒ일다(일러스트레이터: 두나)
초등학생 남자아이, 성교육 공백기
난 책과 강의에서 남성들이 그들만의 네트워크 안에서 어떻게 성과 관련한 정보를 공유하며 여성을 대상화시키고 그들만의 성적 판타지들을 만들어나가는지 비판했다. 요즘 포르노를 처음 접하는 시기가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난 아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일 성에 대해서 집에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고 공교육에 맡겨두고 있었다. 정말 저자의 말처럼, 공교육을 크게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그 부분에서는 믿고 있었다.
저자는 초등학교 고학년인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성교육이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 “초등학생 때야말로 남아들이 가장 많은 성적 정보를 접하고 배우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이 시기에 스마트폰과 인터넷과 친해지고, 유튜브를 사랑하게 되며, 동네 형아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TV사용법도 완벽하게 숙지한다. 그런데도 양육자들의 의도된 무관심에 의해 이들은 성교육에서 방치된다.”
물론 양육자로서 변이라면, 의도한 무관심은 아니고 ‘성교육’이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고 어떠해야 하는지 몰라서라는 게 맞을 것 같다. 한국사회에서 아들의 성교육은 성적 욕구를 어떻게 건강하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저 아들의 성교육은 남자로서 커져가는 성적 욕구와 연결되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페미니스트이지만 아들 가진 엄마로서 성교육이나 성폭력 예방교육과 관련해 딸을 둔 엄마보다 관심과 고민이 덜했다는 걸 인정한다. 한국사회에서 성폭력의 주요한 대상은 여성이고, 나 역시 여자로서 그러한 경험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딸을 둔 지인들이 딸 키우는 불안을 토로할 때 공감은 했지만 그걸 내 아들의 문제와 연결시키지 못했다.
바로 저자가 현재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이 갖는 한계라고 지적하는 부분이다. 성교육은 주요한 대상을 여성으로 삼고 어떻게 하면 성폭력 피해자가 되지 않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게다가 성교육은 성별화되어 있다. 남아에게는 성교육이 성적 욕구에 대한 것이지만 여아에게 성교육은 생식교육, 정절교육, 보건교육, 성폭력 예방교육으로 그 어디에도 성적 욕구는 없다.
▶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에 실린 삽화 ⓒ일다(일러스트레이터: 두나)
성교육과 페미니즘의 결합, 권력에 대해 말하기
그래서 저자는 성교육에 페미니즘이 결합되어야 한다고 본다. 성교육의 내용은 무엇이어야 하며 성교육을 통해 우리가 지향하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페미니즘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자연스럽다는 성에 대하여 가장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아울러 성과 관련한 관습과 인식과 행동에 대해 지적인 연습과 일상적 훈련을 하도록 만든다.”
일례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성교육이 왜 성별화되는지, 남성에게는 성이 즐거움으로 경험되지만 여성에게는 성이 불안과 수치스러움으로 경험되는 이유를 페미니즘은 묻게 한다. 우리 사회 남녀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이중적인 성문화. 그 연속선상에서 남녀에게 다르게 경험되는 성. 바로 그것들을 질문하게 한다.
또한 저자는 성교육에 페미니즘을 결합시키는 것, 그것은 바로 권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어떻게 차별이 되는지, 바로 그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힘, 권력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성폭력을 가능하게 만든 문화와 가치관 자체를 의심하지 않는다면 성교육은 그저 아들에게 현재의 관습과 가치관을 따르고 그에 복종하되 다만 좀 더 젠틀해지라고 가르치는 정도에 그칠 게 뻔하다.”
성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와 가치관, 바로 그것을 만들어내는 게 권력이다. 아이들은 성과 관련해 작동하는 권력이 무엇인지, 권력이 있다고 마음대로 해도 되는지, 그 권력이라고 하는 것이 남녀에게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앎의 과정은 젠더 감수성을 키워나가는 과정으로, 성평등한 관점을 갖는 것과 맞닿아 있다.
엄마와 아들도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야 한다
그럼 성교육과 페미니즘을 어떻게 결합시켜낼까? 저자는 어떻게 일상에서 아들과 성과 관련해 대화하며 권력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도 제시한다. 바로 내가 여자로서 겪어온 성적 경험들을 일상에서 아들과 나누기. 저자에게 아들과의 성적 대화는 엄마와 아들이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는 과정이다. “엄마와 아들도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야 한다.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얘기해야 그게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는 길이다. 결국 내가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들에게 사람을 제대로 만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내가 아들과 어떠한 이야기들을 해왔나 돌아보면, 어쩌면 아들이 내게 성과 관련해 이야기하지 않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난 아들에게 내가 여성으로서 살면서 경험한 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물론 책이나 강의에서는 자주 내 경험들을 이야기한다. 아이는 내가 커 온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해 자주 얘기해달라고 조른다. 난 내 성장기 이야기를 하면서 한 번도 내가 각종 성추행에 노출되었던 얘기를 한 적이 없다. 그러한 성적 경험들이 내가 언제든지 성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성적 대상이 되지 않을까를 생각하며 살았던,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말이다. 난 내가 겪었던 성적 경험들이 아이에게 들려주기에 부적절한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이런 이야기를 지금 아이에게 하지 않으면 아들은 누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까?
아이는 성장하고 있고 조금 있으면 나랑 더 이상 긴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할텐데. 내가 그 이야기를 지금하지 않으면 언제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성과 관련한 엄마의 이야기를 지금 듣지 않은 아들은 언제 그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을까. 성별화된 사회 속에서 얼마나 성별에 따라 경험이 다른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남성중심적인, 남자라면 살기 편한 한국 사회에서 아들은 젠더 감수성을 어지간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키우기 어려울 것 같다. 아이가 여성들의 성적 경험을 듣지 않고, 한국 사회에 작동하는 젠더 위계를 모르고 성장하면 그냥 보통의 가부장적인 남자가 되지 않을까? 저자가 제안한 대로 엄마가 여성으로서 살고 있는 경험을 대화의 소재로 삼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 바로 아이의 젠더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난 아이가 아직 초6이라 얼마간의 시간이 있는 것 같다. 저자가 책 속에서 제안하고 있는 추천도서 목록들을 보며 내가 읽을 것과 아들에게 권해줄 것을 체크해뒀다. 저자가 추천한 것처럼 아이 방 책장 한켠에 성교육 책들을 꽂아두고 읽을 수 있게 해보리라. 그리고 그 책들을 나도 같이 보며 아이와 성적 대화를 자연스럽게 풀어가 봐야겠다. 음~ 조금씩, 천천히.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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