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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이 ‘빅 앤 뷰티풀’
<거침없는 2030 여성들의 인생 프로젝트> 플러스사이즈 모델 김지양
※ 자신의 젊음과 열정을 바쳐 시작한 프로젝트를 통해 동등한 사회를 향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밀레니얼 여성들을 찾아가 인터뷰하는 시리즈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전체기사
김지양을 구글 검색하면 플러스사이즈 모델로 찍은 다양한 촬영사진, 그녀가 대표로 있는 ‘빅앤뷰티풀’ 플러스사이즈 잡지 66100 기사, 외모와 바디이미지에 관해 강연한 그녀의 인터뷰 영상과 글이 주욱 뜬다.
그녀가 국내에서 플러스사이즈에 관해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 8년 동안 그녀의 스타일 변화, 몸무게 변화뿐만 아니라 작년에 올린 결혼식을 포함한 개인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검색사이트에 보이는 그녀는 이를 전혀 눈치 챌 수 없을 만큼 한결같다.
▶ 플러스사이즈 잡지 66100 김지양 대표 ⓒ김지양
모델, MC, 편집장, 쇼핑몰, 행사…“컨트롤 덕후”
인터뷰를 위해 만난 김지양 대표는 화장기 없이 약간 피곤하여 살짝 창백한 얼굴로 그녀의 쇼핑몰 스튜디오에서 맞아주었다. 25살의 플러스사이즈 모델로 처음 데뷔했을 때와 현재 플러스사이즈 잡지와 플러스사이즈 패션 온라인 쇼핑몰 대표로서 가장 크게 바뀐 점을 굳이 찾자면, 예전보다 평정심이 생겼다고 차분하게 말했다.
“어느 하나(프로젝트)가 조금 잘 돼서 좋아하고 또 조금 안 돼서 슬퍼하고 그러면 너무 힘든데, 지금은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슬픈 일에 대해선 ‘그래, 다음 번에 더 잘되겠지’ 하고 편안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김지양 대표는 가장 최근에 온스타일의 ‘바디 액츄얼리’라는 TV 프로그램의 MC로 “당연한 걸 당당하게!” 슬로건을 외치며 활약하는 중으로, 기대치보다 “5배는 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바디 액츄얼리’는 MC들이 길거리에서 여성의 클리토리스를 그려보는 신개념 성교육부터 질염 검사를 위한 산부인과 방문과 생리컵 착용까지 여성건강 이슈에 관해 과감히 보여주고 이야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자신감에서 나오는 차분한 말투와 태도로 자신을 보여주지만, 그녀가 새로 시작하는 움직임에 대중이나 독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작은 파도가 큰 물결이 되어 돌아오는 것 같은 방향성을 몰고 온다.
▶ 미국의 패션브랜드 아메리칸 어패럴 (American Apparel) 의 플러스사이즈 모델 지원 당시 사진 ⓒ김지양
처음 플러스사이즈 모델로 미국 LA에서 열린 Full Figured Fashion Week에서 데뷔하고 한국에서 모델 겸 플러스사이즈 잡지 66100 편집장으로 나선 그녀의 데뷔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국내에서는 플러스사이즈의 모델이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었기에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빅사이즈에 관한 편견을 조곤 조곤 꼬집어 주면서 일찍이 ‘걸크러쉬’ 옆집 언니 이미지로 다가온 그녀의 “셀프 브랜딩” 스킬도 이른 성공에 한 몫 하였다.
또한 그녀는 독립잡지로는 흔치 않게 3개월마다 인쇄물로 내고 브랜딩 행사 기획까지 쉬지 않고 해온 워커홀릭에(“잡지를 낼 때는 해가 뜨기 전에 잠든 적이 없었어요”) 자칭 “컨트롤 덕후”이다.
잡지의 편집장인 동시에 대부분 이슈의 표지 모델뿐만 아니라 사진영상의 기획과 연출, 기사 취재와 편집 그리고 인쇄까지 총체적 멀티테스킹을 해야 했다. 또한 66100 잡지를 넘어서 플러스사이즈 이슈와 관련된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행사들도 기획하고 진행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필름파티: 일 년에 한 번씩 다다름 네트워크팀과 같이 공동 주관하는 행사로, 의미 있는 영화를 같이 감상하고 즐기는 파티이다.
※ ‘빅앤뷰티풀’ 캘린더: 지난해 빅피겨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작업하는 일러스트레이터들과 같이 달력을 작업하고 전시, 판매를 했다.
※ ‘이노센트 플레저’: 길티 플래저의 반대 뜻으로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자는 미식모임이다.
※ ‘셀프 메이크오버’: 자존감이 낮거나 스타일링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4주짜리 강의 프로그램이다. 스스로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아가는 코스부터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쇼핑도 해보고, 메이크업과 스타일 코칭을 받고 마지막으로 프로파일 사진촬영을 함으로서 스스로의 변화를 남기는 과정이다.
※ 사진포비아를 위한 심포지움: 자기 사진 찍히는 게 너무 어려운 사람을 위한 세미나와 워크샵의 형태로, 인기가 좋아 여러 번 진행했다.
최근에는 여성환경연대에서 주최한 “외모?왜뭐!” 행사에서 의류브랜드의 한정된 사이즈 다양성, 비정상적인 마네킹 몸매를 비꼬는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안티팬”들의 시선
▶ 66100 잡지 속 모델로 포즈를 취한 김지양 대표 ⓒ66100
그렇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66100 매거진을 쿼터제로 2년 동안 출간하고 휴식기를 가진 후, 최근 다음 호를 다시 내기 위해 준비 중이다. 휴식기를 가진 이유는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2015년에 정부에서 받은 사회적 기업 지원금을 2016년에는 받지 못했고, 개인적으로 따로 하는 잡지 화보촬영 정도로는 지속적인 경제성이 보장되지 않아 힘든 결정을 하게 되었다.
잡지를 위해 같이 일하던 동료들도 현재 각자의 일을 하고 있고, 김 대표는 동묘 사무실로 옮겨 온라인 쇼핑몰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 플러스사이즈 의류가 대부분 온라인에만 한정되어있는 탓에 직접 입어보고 전신 사이즈 측정, 스타일링, 자세교정 서비스도 해주는 방문착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혹시 경제적 요인을 배제하고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어봤다.
“모델 일만 했으면 행복할까, 편집장 일만 하면 행복할까? 그렇지는 않아요. 이 일들이 미묘하게 다 연결되어있어요. 예를 들어 모델 일을 하면서 메시지를 빼놓고 일을 할 수 없고, 편집장이면서 패션 아이템에 대해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고, 대표이면서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 거에요.”
천상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관리해야 하는 “컨트롤덕후”가 맞는 것 같다.
쇼핑몰 운영 역시 혼자 멀티테스킹 해야 하는 일로 쉽지 않다. 우선 매일 아침 주문이 들어온 물건을 매입하러 동대문에 간다. 배송과 고객 문의, 직접 방문착장하는 고객 응대 그리고 신상품 라인이 들어오면 사진촬영과 모델까지 한다.
그러나 여러 역할을 담당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점은 “안티팬”들의 시선이었다.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모델이나 이벤트성 잡지를 낸 거 아니냐’ 라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였다. 또한 그녀 스스로도 내가 좋아하는 일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업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방문착장하러 오는 손님들을 직접 만나는 일은 그녀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사람들이 옷을 사러 와서 그렇게 울어요. 억울하고 서러운 일이 많은 거죠.”
내 돈 내고 옷을 사러 온 손님인데도 불구하고 모욕적인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언니한테 맞는 거 없어요.”
“언니가 입으려구요?”
(입어볼 수 있냐고 물어보면) “늘어나서 안돼요.”
언어폭력은 모르는 사람에게 받는 것보다 나를 아는 가족, 친구, 지인들로부터 받는 것이 더 심하고 상처가 되기도 한다.
“‘언제 살 빼냐’, ‘니가 그러니까 애인이 없지…’ 이런 말을 매일 들으니, 그 사람의 외모가 사회적 기준의 평균에 맞지 않으면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인식이 팽배한데, 그게 잘못됐다고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오는 안도감이 있는 거죠.”
그녀는 ‘내가 옷을 파는 거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구나’를 느끼면서 자신도 힐링이 됨을 느꼈다.
▶ 최근 패션잡지 보그(Vogue)에 실린 화보촬영 사진 ⓒ보그코리아(Vogue Korea)
언어폭력뿐 아니라 시선폭력도 심각해
작년 6월 3일 여성환경연대에서 주최한 에코컨퍼런스 #외모?왜뭐! 초청 강연에서, 시선폭력에 대해 김지양 대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사람들은 이런 시선으로 말을 합니다.
‘세상에, 몇 킬로나 나갈까?’
‘나는 아직 괜찮아, 쟤보다 덜 나가니까.’
이런 시선의 폭력은 이의를 제기하기 쉽지 않고, 언어폭력으로 다가올 때서야 우리는 이의를 제기할 권리를 갖게 되는데요. 이런 시선폭력에 더 예민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뚱뚱한 사람에 대해 만연한 또 다른 편견중의 하나는 자기관리를 안 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편견과 폭력의 목소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뚱뚱한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내면화되어 있다.
김지양 대표 역시 살이 쪘을 때 스스로 거울을 보며 ‘내가 정말 게으른가’,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지금의 내 모습으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러스사이즈 롤모델이 많이 나와야 해요
66100 잡지의 다음 이슈는 “기분이 조크든요”라는 컨셉으로 준비 중이다. 예전에는 자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해 줄 인터뷰 대상을 찾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이번 5월에 열린 페미니즘 페스티벌 페밋에 참여했을 때 자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공유하고 싶어 사람들이 줄을 섰었다.
“그전에는 나한테 문제가 있어서 내가 살을 빼야한다고 여기고 자존감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지금은 ‘내가 자존감이 아직 높지는 않지만 나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러나 여전히 “와, 저 플러스사이즈 모델 멋져. 그렇지만 내가 아는 사람이 뚱뚱한 건 싫어”라는 이중적 잣대 의견도 듣는다.
플러스사이즈에 관한 오픈마인드 인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려면 긍정적 사건이나 롤모델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예를 들어, 굉장히 성공한 플러스사이즈 모델이나 엔터테이너(“이국주씨가 대표적이죠”) 등 그런 롤모델들이 많아지면 인식의 변화가 생길 텐데 또 한편으로 누군가 하겠지 하고 기다린다고 바뀌는 일은 아니다. 그 때문에 김지양 대표는 쉬지 못하고 지금도 “한결같이” 계속 일을 벌이는 중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기부여는 같지만 그 때는 내가 하면 누군가 알아 줄 거야 라는 마음으로 했던 거 같아요. 도움이 될 거야 할 때 그 누군가가 누군지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이제는 보이는 것 같아요.”
[필자 소개] 강예원 님은 서울에서 외신기자로 활동하였고, 현재 PLATOON이라는 언더그라운드 예술문화를 다루는 잡지와 에이전시에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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