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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약자 중에 약자, 병든 노인

비혼여성의 가족간병 경험을 듣다④ 김수연


※ 고령화와 비혼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비혼여성들이 부모나 조부모, 형제를 간병하고 있지만 그 경험은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개인의 영역에 머물고 있습니다. <일다>는 가족을 간병했거나 간병 중에 있는 비혼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발굴하여 공유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전체 기사

 

98세 아버지, 89세 어머니와 동거한 지 12년째

 

“이러다가 아버지가 막내를 잡겠소.”

 

얼마 전 새벽 3시, 화장실에서 일을 보시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진 아버지를 낑낑대며 침대까지 옮긴 뒤, 귀가 먼 아버지를 향해 내가 뱉어낸 말이다.

 

며칠 째 밤만 되면 주무시지 않고 휘청거리는 몸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는 일은 고역이었다. 마치 밤낮이 바뀐 아이처럼 아버지는 낮에는 자고 밤에는 네다섯 번 화장실에 갔다. 거기다 밤낮으로 달달한 설탕물을 입에 달고 사시니 화장실에 자주 들락거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아버지 설탕물을 드시면 몸에 좋지 않아요. 저녁에는 넘어질 수 있으니 물은 조금만 드세요.” 말씀드려보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아버지는 늙음을 무기 삼아 당신이 드시고 싶은 것은 드시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고 싶어 하신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가릴 게 뭐냐는 것이다.

 

▶ 올해 98세인 아버지는 10년 전 뇌경색으로 뇌의 50%쯤 기능을 상실했다.  ⓒ김수연

 

나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12년째 함께 살고 있는 48세의 비혼의 직장인 여성이다.

 

올해 우리 아버지는 98세가 되셨고, 어머니는 89세가 되셨다. 아버지는 10년 전에 뇌경색으로 뇌의 50%쯤 기능을 상실해서 5년을 넘기지 못하실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프셨다가 다시 소생하기를 반복하면서 10년을 버티고 계신다. 이 10년 동안 아버지는 여덟 자식들을 모아놓고 두 번 유언을 하셨고, 덤으로 치매 진단도 받았다.

 

어머니는 2년 전, 내가 2개월간의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던 날, 첫 치매 증세를 보이며 나를 맞이하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에게 아버지를 떠맡길 수 없다며 당신의 건강을 자발적으로 돌보신다. 아버지 돌보는 일도 본인이 도맡아 하려 하신다. 그나마 내가 숨 쉬고 살 수 있는 이유다.

 

시간적, 공간적 자유를 제약받는다는 것

 

어머니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연로하신 부모와 함께 사는 일은 쉽지가 않다.

 

그중 가장 큰 어려움은 자유를 제약받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 대한 계획을 적어도 하나쯤은 세우고 산다. 이 계획들 속에는 다른 나라에 가서 장기적으로 정착을 하여 어떤 일을 해야 한다거나, 여행을 한다거나, 누군가를 만난다거나 하는 일들도 포함된다. 그러나 연로한 부모와 함께 살게 되면 그런 계획들은 부모의 건강이나 심리상태와 연결되고야 만다.

 

나는 오랫동안 3세계에 관심을 가져왔고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내 일과 관련된 국가에서의 사업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곳에서 오래 머물며 일을 관리하고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도 많아지고 있다. 나도 점점 나이도 들어가니 지금부터 열심히 해도 어느 나이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가끔은 조바심이 나곤 한다.

 

나는 올해 잡혀있던 두 차례의 해외 출장을 모두 취소해야만 했다. 모두 아버지 때문이었다. 종종 ‘늙은 부모를 버리고 간다’며 노여워하시던 아버지는 내가 출장 가방을 싸는 것을 보고는 그날부터 누워버렸다. 다음날부터는 열이 났다. 누워있는 아버지의 대소변을 어머니와 함께 받아내야 했다.

 

▶ 노년의 부모를 돌보는 가장 큰 어려움은 내 삶의 자유를 제약받는 일이다.   ⓒ김수연

 

노년의 부모와 함께 살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내 삶의 제약은 자유의 제한 이외에도 심리적, 경제적, 육체적 어려움이 따른다. 그중 적어도 나에게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체력의 한계다.

 

아무리 100세를 앞둔 늙은 몸이지만 아흔여덟 아버지의 몸은 무겁다. 어머니와 함께지만 아버지의 두 다리를 움직여 기저귀를 가는 일도 만만치 않다. 침대 아래로 미끄러진 노인을 위쪽으로 움직이는 일도, 목욕시키는 일도. 화장실과 침대 사이 몇 걸음도 채 되지 않는 공간에 널부러진 아버지의 몸뚱이를 일으켜 세우는 일은 산을 움직이는 것처럼 힘들다.

 

허리 디스크를 앓고 있는 나, 팔과 어깨가 항상 아픈 엄마. 우리는 아버지와 실랑이를 한 다음에 둘 다 초주검이 되고야 만다. 그러나 아버지는 마치 아기처럼 자기 욕구가 해결되면 그만이다. 그래서 가끔은, 오래도록 생명을 붙잡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에게 미안해하면서도, 아버지가 이제는 그만 돌아가셔도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사람의 죽음은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고 믿는 고루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내가 아버지를 돌보는 이유

 

최근 어머니는 몸이 아프다고 말하는 큰 오빠 부부에게,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 결심을 한 ‘막내딸에게 잘하라’고 하셨다. 결국 혼자 사는 막내조카가 큰 오빠 부부를 모셔야 하고, 오빠 부부가 아프면 직장을 그만 두고라도 그 아이가 돌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잘하라는 조언이었다.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일단은 좀 짜증이 몰려왔다. 오빠 부부가 돌아간 다음 어머니에게 ‘왜 벌써부터 조카의 발목을 잡으려 하느냐’고 말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자기 삶이 없고, 결혼한 사람만 자기 삶이 있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가끔 우리 어머니는 열 자식 한 부모 못 모신다는 옛 말이 맞다고 말씀하신다. 주변 노인들의 자식 이야기를 통해서 노인들의 슬픔에 공감하시기도 하고, 나를 포함해 당신 자식들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시는 듯하다. 그러나 노인 부모와 사는 내 안에도 그에 대한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늙은 어머니에게 굳이 반론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 나는 노인들도 자기가 살았던 익숙한 환경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존재라고 믿는다.  ⓒ김수연


어떤 사람은 불편하고 제약된 내 삶을 보며 “부모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은 어떤가?”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으니까. 일부 가족들도 나에게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아버지를 어떤 시설에 보낼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나의 결정은 당신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일 뿐, 내가 특별히 노년을 요양원이나 관련 시설에서 보내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효심이 출중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나는 아버지가 노인으로서, 세상의 약자 중에 약자라고 보고 있다. 아버지는 나의 부모인 동시에, 약자가 된 세상의 한 구성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애정과 돌봄을 받으며 자라나듯이, 노인들도 자기가 살았던 익숙한 환경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존재라고 믿는다. 그리고 약한 자를 보살피는 것이 나 자신의 인간성을 지키는 길이라고도 믿고 있다.

 

몇 년 전, 큰어머님이 돌아가시는 일이 있었다. 누구보다도 건강해서 사람들은 모두 장수하실 거라고 했지만 큰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되었다. 큰어머니는 슬하에 육남매를 두고 계셨다. 자식들은 모두 자수성가해서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큰어머니가 병을 오래 앓게 되자 선뜻 모시겠다고 하는 이는 없었다. 자식들은 저마다 어머니를 모시지 못할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급기야는 부모를 모시는 일로 자기들끼리 언쟁을 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큰어머니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고 스스로 삶을 끝내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생산할 수 없는 삶은 무의미한 것인가?

 

나는 98세의 아버지를 곁에서 돌보며, 죽음 앞에 홀로서야 하는 한 인간에게 연민을 느낀다. 사실 이 연민은 나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다.

 

최근 <호모사피엔스>라는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유사 이래 가장 근원적 공포와 불안을 가져온 죽음까지도 정복하려 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미래에 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그것이 신의 축복일지 저주일지 나는 모르겠다. 어쨌든 모든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큰 화두다. 그리고 그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인 노년이라는 이름은 우리의 인생주기에서 항상 불안과 공포로 다가온다.

 

성자로 불렸던 톨스토이 선생마저도 노년에 대하여 “성자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지의 죽음을 홀로 마주보아야 하는 두려움과 외로움, 자기가 인생을 걸고 쌓아올린 모든 것과 분리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아마도 노년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알 수 없는 것일 게다.

 

최근 아버지의 잦은 병치레를 간병하며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 “나는 아프면 요양원으로 갈란다” 라고 몇 날을 반복하여 말씀하셨다. 그 말을 반복하는 어머니에게서 나는 불안과 공포를 보았다. 내가 절대 시설에 보내지 않겠다고 몇 번을 다짐한 후에야 어머니는 안심한 듯 그 말씀을 멈추었다.

 

우리들의 세계는 급격하게 노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생산의 가치를 최고의 것으로 생각하는 근대인류 앞에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어 무가치하게 보이는 노인들의 생이 쌓여가고 있다. 생산의 가치로만 그들의 노년을 바라보는 것은 젊은 우리의 삶도 역시 생산의 가치로만 바라본다는 뜻일 것이다. 생산할 수 없다면 인간의 삶은 무의미한 것인가?

 

그들의 고독한 시간은 머지않아 바로 우리의 시간이 된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전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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