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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노동자1의 이야기

[머리 짧은 여자, 조재] 여기도 사람이 있다


커피머신과 그라인더 등 커피를 만들기 위한 기계들, 음료 냉장고, 과일을 소분해서 보관할 냉동고, 수납장 등이 사방에 배치되어 있다. 두 사람이 겨우 앞뒤로 이동할 수 있을 정도의 아주 작은 공간. 지하철역 근처 테이크아웃 전문 커피매장답게 공간과 인력을 최소화시켜 최대한의 수익을 내기 위해 분주한 장소다. 나는 이곳에서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10시간씩 일하고 있다.

 

주변에 회사도 많고 학원도 많은 이 지역의 커피매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몸을 계속 움직이지만 일이 끊이지 않는다. 주문받은 음료를 만들고, 손님이 없을 땐 부족한 재료들을 채우고 과일을 다듬어 소분한다. 손님이 언제 다시 몰릴지 모르기 때문에 계산대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앉아서 쉴 시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 나의 10시간.              ⓒ머리 짧은 여자, 조재

 

10시간의 노동시간 중에는 어떻게든 빨리 내 앞에 놓인 것들을 해치워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퇴근해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앉아서 가야해.’ 한 시간 넘게 이동해서 집에 가야하지 않는가. 무조건 앉아서 가야한다는 생각만 가득해, 주변을 둘러볼 짬이나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여유가 없다. 사람들을 제치고 어찌어찌 겨우 버스에 앉는다.

 

그때부터 다른 생각들이 피어오른다. 내가 이 카페를 돌아가게 만드는 부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타인을 배려하기보단 스스로를 먼저 챙기는 이유가 이런 상황 때문인가 보다 하고 공감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숙련도라든지, 카페를 운영하는 시스템을 배운다든지…. 근데 그런 게 나한테 중요한가? 글쎄, 뭐라도 배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라도 없으면 이 상황을 버티기 힘들 것 같으니 일단 중요한 것 같다고 여긴다.

 

너무 피곤해서 주말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고 싶지만, 어쩐지 내 인생이 억울해 최대한 약속을 많이 잡아 놓는다. 강박적으로 책을 읽고, 강박적으로 사람들을 만난다. 어쩌면 나는 기계부품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확인 받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은 내가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서 마음이 힘든 거라고, 금방 적응하게 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생활에 적응하며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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