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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vs 페미니스트 경쟁구도는 ‘없다’

[잇을의 젠더 프리즘] 젠더이분법에 저항하는 페미니즘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잇을님은 세상에 대해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퀴어-페미니스트들의 네트워크 완전변태에 속해있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2016년 초, 메갈리아 사이트는 사실상 힘을 잃고 일부가 워마드라는 신생 비공개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똥꼬충’과 같은 게이혐오 용어를 둘러싼 논쟁이 메갈리아 커뮤니티를 결정적으로 갈라놓았다. 워마드는 크로스드레서, 트랜스젠더, 게이에 대한 신상털기와 사이버불링을 시도해 논란이 됐다.(가입 조건으로 “크로스드레서 정신병”을 적도록 한 점, 크로스드레서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서 사진을 가져와 무단으로 올리고 비방하는 게시판을 운영한 점, “게이면 무조건 다 아웃팅 시키자”는 내용의 ‘아웃팅 프로젝트’ 게시글은 많이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성소수자를 혐오하지 말라는 비판이 일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여러 반박 의견이 제기됐다. 연대를 거부할 수 있다는 주장도 그 하나다. 한 페미니스트 연구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여성혐오가 만연한 게이 문화를 비판하며 연대를 거부하는 것이 올바르지 못한 페미니즘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이는 “페미니즘 도덕론의 일환”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우리들이 고생하여 ‘성소수자 좋은 일’만 시키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가 2015년 말부터 이미 메갈리아 커뮤니티에서 나왔었다. 그러면서도 이 연대 거부 선언이 가능한 토대는 말해지지 않는다. 사실상 ‘연대를 거부한다’는 선언은 상대에 비해 자기가 우위에 있는 지점에서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성소수자가 페미니스트들의 말문을 막고 있는 것처럼, 페미니스트가 모든 걸 해결하고 감싸 안아야 한다는 ‘과도한 요구’를 받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연구자 사라 아메드는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자신들의 자유로운 발언이 가로막히고 있다고 호소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발언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폭력을 야기하는 발언과 구분시켜 ‘비판적 발언’으로 위치시킨다고 지적한 바 있다.(An Affinity of Hammers, 2016)

 

실제는 비판을 명목으로 폭력이 야기되기도 한다. 예컨대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폭력을 잘 모르거나 사소하게 여기면서 ‘이민에 대한 비판적 질문’을 던지는 것은 이주노동자를 ‘고상하게’ 배제하고 추방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또 “트젠놈들(트랜스젠더)은 여자를 획일적인 존재, 한 가지의 모습으로 보이게 하는 데 일조하는 여혐러들이지 여성의 삶을 살며 여자의 고통을 느끼지 않음. 느낀다면 트젠의 고통이지 그건 여자의 고통이 아님”과 같은 의견은 토론의 성격을 넘어섰다.

 

인종과 장애 유무와 젠더 정체성 등에서 사회의 ‘기본값’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의 ‘비판적 발언’이 ‘기본값’이 아닌 존재들의 삶의 기반을 조롱하고 뒤흔든다면 그것은 정당한가? 누가 누구의 말문을 막고 있는 것일까? 성소수자 혐오를 멈추라는 외침은 ‘논쟁’의 일환이 아니다. 존재를 찬반에 부치는 것은 논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가 만든 논바이너리 플래그 뱃지

 

사실 가장 나쁜 것은 우리가 함께 말할 수 없다는 바로 그 프레임이다. 성소수자 vs 페미니스트 구도는 성소수자와 페미니스트를 단일하고 납작하게 가정한 뒤, 성소수자 정치와 페미니스트 정치의 열린 관계를 대립 구도로 보이게 한다.

 

‘여성혐오를 성찰하라’는 주장이 성소수자의 정당한 발언권을 박탈하지 않듯이, ‘성소수자를 배제하지 말라’는 주장은 페미니스트의 정당한 발언권을 박탈하지 않는다. 우려스러운 것은 마치 서로 더 발언하기 위해 상대의 발언권을 빼앗아야 하는 경쟁 구도가 존재한다는 착각이다.

 

젠더이분법은 모두를 여성이나 남성으로 삼는다. 그것은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의 소개말처럼, ‘내가 젠더이분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이분법이 나를 위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피해)-남(가해)로 드러나는 현실은 ‘생물학적 두 개의 성’에 부착된 필연이 아니다. 여성을 대표할 수 있는 ‘진짜 여성’은 없다. 우리는 여성의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젠더이분법을 수호하지 않는 운동을 고민해가야 한다. 자신의 선택과 분투와 삶의 시간을 통해 정체성을 만들고, 말할 필요가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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