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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털은 남기고 머리털은 밀었습니다
[이가현의 젠더 프리즘] 다섯 여자들의 삭발 그 후…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이가현님은 불꽃페미액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 친구들과 함께 삭발을 하다. ⓒ이가현
여자, 삭발을 결심하다
‘십시일반’의 의미를 아는가?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모아 한 사람의 밥이 완성된다는 의미이다. 어렸을 때 읽은 만화에는 ‘십시일반’을 설명하는 에피소드가 나왔다. 가난해서 일터에 밥을 싸가지 못하는 남편이 다른 동료들의 밥 한 숟가락씩을 받아서 밥을 먹자, 이를 두고 볼 수만 없었던 아내가 자신의 남편을 위해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밥을 마련한 구슬픈 이야기였다.
언론을 통해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접할 때도, 투쟁의 방법으로 삭발식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삭발식 중에서도 희생자 아버님들보다 어머님들의 삭발이 클로즈업되고 주목받았다. 그런 장면들을 보며 나는 어딘가 불편해졌다. 삭발의 의미가 여성과 남성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면 투쟁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 학부의 학생회장 선배는 반값등록금 투쟁을 하며 삭발을 했다. 그런데 그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삭발을 해도 예쁘다.” 중대한 이슈에 대해 저항의 의미로 삭발을 하는데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래도 예쁘다’며 외모를 소비당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었다.
최근에 내가 삭발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야, 뭐 걸고 해’ 라고 말했던 그 선배는 아마 나의 삭발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었던 것 같다. 이왕 할 거 투쟁의 의미를 담아서 하라는 말이었겠지만, 나는 ‘삭발을 위한 삭발’을 하고 싶었다.
길을 지나도, 삭발한 여성은 정말 단 한 명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삭발을 한 남성은 세대를 막론하고 목격하기 어렵지 않다. 남자들은 머리를 밀어도 더워서 그런가보다, 스타일인가보다 등 별로 큰일은 아니다. 하지만 여자가 삭발을 하면 시선이 집중되고, 뭔가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거나 몸이 아프거나 절에 들어가거나 큰일이 난 것처럼 여겨진다. 나는 그런 시선에 저항하고 싶었다.
마음 맞는 <불꽃페미액션> 친구들과 함께 삭발을 하기로 했다. 무려 다섯 명이 삭발을 결심했다. 우리의 삭발 여정을 다큐멘터리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그리고 서로의 머리를 정성스레 바리깡으로 밀어주었다.
▶ 삭발 전후 모습. 우리는 삭발 여정을 다큐멘터리로 남기기로 했다. ⓒ불꽃페미액션
지인들, 가족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반응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은 ‘삭발한 게 더 낫다’, ‘잘 어울린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정말 좋은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정말 내게 삭발이 잘 어울리거나.
삭발을 한 다음날, 알바하는 곳에 갔다. 매니저 언니가 ‘가현씨 머리 왜 잘랐어요? (모자 써도) 다 보여요’ 라며 걱정되는 말투로 물어봤다. ‘더워서 잘랐다’는 한 마디를 하고 내가 일하는 자리에 앉았다. 지나가는 다른 동료가 ‘나도 시원하게 자르고 싶다, 긴 머리는 여름에 더워죽겠다’고 말했다.
잠시 뒤 화장실에 들어가려는 나에게 매니저 언니는 조용하게 다시 물어왔다.
‘가현씨,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나는 깔깔 웃으며 ‘마음 맞는 친구들과 잘랐다. 아픈 것 아니다’ 라고 말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머리를 밀었다고 하니 매니저 언니의 얼굴에서는 금방 걱정이 가셨다. 내게 ‘그건 좋은 일탈인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엄마에게도 머리를 자른 사진을 보냈다. 엄마는 ‘어, 마음이 이상해. 머리카락은 언제 보는 거야?’라며 딸의 생경한 모습에 대한 감정을 드러냈다. ‘기분이 어떻냐’고도 물어봤다. 나는 ‘별 것 아니었다’ 라고 답했다.
▶ ‘제2회 천하제일 겨털대회’에서. ⓒ불꽃페미액션
7월 15일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시청 광장에서 <불꽃페미액션>은 ‘제2회 천하제일 겨털대회’를 개최했다. 여기서 나와 같이 삭발을 한 여성들은 겨드랑이 털은 제모하지 않고 머리털은 밀어버린 사람들이었다. 시청광장에 모인 우리 삭발녀들은 광장을 돌아다니던 한 아저씨에게 이런 말을 듣기도 했다.
“남자야 여자야?”
대뜸 반말로 성별을 물어보는 것에 화가 나서 ‘왜 반말이냐’고 따졌더니, ‘어른한테 예의가 없다’며 우산으로 나를 때리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맞을까봐 무서웠지만, 두렵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더 드세게 굴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부스 앞에서 만난 한 여성 스님은 자신도 스님이 되기 전 삭발을 하고 진하게 화장을 하고 다닌 적이 있다며, 사람들이 예뻐서 많이 쳐다봤다고 했다. 스님과 우리는 진한 립스틱을 함께 나눠발랐다.
퀴어문화축제 때 친구들과 같이 찍은 사진을 엄마에게 보내면서 ‘머리빨이 없어지니 진정한 미모가 드러나지 않느냐’는 농담을 했다. 엄마는 “미모가 장난 아니군”이라며 받아주셨다. 가족들은 아직 삭발을 한 내 실물을 본 적이 없다. 남동생은 내가 삭발한 모습을 볼 자신이 없다고 했다. 무슨 의미일까?
며칠 전에는 화장실에서 한 아주머니가 손을 씻고 나가려는 내 앞에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며 “여기 여자화장실인데? 여자화장실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나는 작은 소리로 “저 여잔데요” 하고는 황급히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변한 것, 그리고 변하지 않은 것
▶ 삭발을 하니 원피스는 잘 입지 않게 된다. ⓒ이가현
머리를 민 후, 나는 삭발한 머리통을 두 손으로 쓰다듬는 버릇이 생겼다. 습관처럼 뭔가 생각하려고 할 때, 고민이 들 때 자꾸만 두 손이 내 머리 위로 가 있다. 회의를 할 때마다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자 친구들이 ‘(머리가) 거의 수정구슬 수준’이라면서 농담을 했다.
입는 옷에도 전보다 더 신경 쓰게 되었다. 원피스에는 손이 잘 안 간다. 삭발 후에 원피스를 입어본 적이 없다. 아마 삭발이라는 머리 스타일이 표현하는 젠더와, 원피스가 표현하는 젠더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어울리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머리를 밀어서 좋은 점은 물론 있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질이지 않아서 좋다. 시원하다는 느낌은 딱히 없지만, 덥다는 느낌은 전보다 줄어든 것 같다. 에어컨 바람이 두피를 스칠 때면 으슬으슬 춥기까지 하다.
기대한 것도 있었다. 사실 나는 삭발을 하면 ‘여자’처럼 보이지 않으니까 늦은 밤에 어두운 골목을 지나 집에 들어가는 길이 덜 무서울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밤길은 두렵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누르는 도어락 번호를 누군가 지켜보고 있지 않을지, 몰카가 있지 않을지, 삭발하기 전과 똑같이 살피면서 황급히 집에 들어간다.
앞으로 내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시선을 받는다는 것,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낯설고 피곤한 일인지, 공중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처럼 나를 ‘여자’라고 증명해야 하는 건 또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인지 새삼 깨닫고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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