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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를 호소하는 일’에 머물지 않는 여성들

<남순아의 젠더 프리즘>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남순아님은 페미니스트 영화인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변한 것과 변치 않은 것

 

지난 8월 1일 새벽, 왁싱샵 살인 사건 기사를 접한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집 안의 문이 잘 잠겼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누웠지만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두려웠다. 이 모든 것이 사회 구조의 문제라면 개인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왁싱샵 살인 사건이 뒤늦게 이슈가 된 지 열흘 뒤 새벽, 남성 유튜버들이 한 여성 게이머를 ‘죽이겠다’며 신상을 털고 그 게이머의 집으로 이동하는 영상을 실시간 중계했다. 같은 날 낮에는 강남역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스릴러 영화 <토일렛>(감독 이상훈)의 포스터와 보도 자료가 공개되었다. “모든 것은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분노 때문이었다”라는 영화 홍보 문구는 살인범의 입장을 따라가는 시각을 반영하고 있었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했다. 많은 여성들이 그 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며 변화한 반면, 남성들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페미니즘 흐름을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싸움이 정말로 전쟁처럼 느껴졌고 지난하고 무기력한 상태의 연속인 것 같았다.

 

▶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서프러제트)을 이끈 에멀린 팽크허스트 자서전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나는 어떨 때는 공포를 느꼈고 어떨 때는 느끼지 않았다. 매 순간을 조심하고 두려움에 떠는 것은 정말 피곤한 일이다. 짧은 치마를 입었을 때 누군가 나를 쳐다보지 않나 경계하고, 공중화장실에서 몰카가 있는지 찾고, 마주치는 수많은 남성들을 조심하는 것은 일상생활을 어렵게 한다. 언젠가부터 공포를 느끼지 않을 때도 ‘아차!’ 하면서 꾸준히 경계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수많은 여성들이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전이었다면 지나쳤을 기사와 통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온라인에서 다른 여성들이 겪은 차별과 폭력 피해 경험에 귀 기울였고, 그들이 겪은 경험이 여성이라서 겪은 것이기에 나에게도 곧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느꼈다. 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 누군가 침입하려 했다는 이야기, 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따라왔다는 이야기… 이러한 사례들은 여성의 경험을 설명하고 불평등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어 주었다.

 

내가 사는 곳의 위치를 바깥에 알리지 않기 위해 집에 들어간 뒤에도 한참 있다가 불을 켜는 것, 혹시 현관 주변에 몰카가 설치되어 있을지도 모르니 도어락 비밀번호를 손으로 꼭 가리고 입력하는 것, 신발장에 남자 신발을 두는 것 등은 혼자 사는 여성의 생존 팁(tip)처럼 공유됐다. 어떤 것들은 내가 생각도 못한 방법이어서 나는 그 팁들을 내 삶에 추가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그 팁들은 내 삶을 안전하다고 믿게 만듦과 동시에 내 생활을 통제했다. 그 팁들을 이행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위협에 노출될 것 같은 기분에 시달렸다. 언젠가 엄마가 ‘그렇게 살면 너무 힘들지 않냐’고 물은 적이 있다. 당연히 힘들지만, 조심하기만 할 수도 조심하지 않을 수도 없어서 자주 번민에 빠졌다. 조심한다고 해서 피해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지만, 혹시라도 내가 조심하면 피해자가 될 가능성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 또 그런 조심성이 나를 옭아매는 것 같아 괴로웠다.

 

각자의 자리에서, 페미니스트들의 액션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까지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하는지 억울했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특히 남성들과 대화할 때면 “이런 사건이 있었대” 혹은 “여성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힘들게 살아” 라고 말하며 자꾸만 여성들의 공포와 피해를 전시하게 됐다.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으면 더 자극적인 사례를 예시로 들었다. 상대방은 느끼지 못하는 두려움을 말하기 위해 공포와 피해를 전시하다 보면, 나와 다른 여성들이 가엾게 느껴졌다. 그렇게 이야기할 때마다 울고 싶었다. 사실 내가 원하는 삶은 피해자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발언권이 거의 없는 우리들은 반복된 경험을 통해 ‘피해자의 위치에 서야만 말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피해가 클수록, 피해자가 불쌍하고 무력할수록 사회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주기 때문에 고통을 자원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피해 사실만 강조하는 방식은 자칫 피해자로 하여금 피해를 호소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한 피해 호소는 하나의 익숙한 서사로 소비되고, 또 다른 잠재적 피해자들에게는 공포를 재생산하며 끝날 가능성도 크다.

 

▶ 세계여성의날 기념 범페미네트워크가 주최한 <페미답게 쭉쭉간다> 문화제 참여 부스 중에서,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가 판매한 “페미니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포스터 

 

‘피해를 발화하는 것 외에 다른 방식은 없는가’ 고민하고 있을 때, 살해 위협을 받았던 여성 게이머(이자 유튜버)가 올린 영상을 봤다.

 

그는 자신의 방송에서, 자신을 위협한 남성 유튜버들이 그들의 방송에서 욕하고 소리 지르며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오랫동안 큰 소리로 비웃었다. 그들이 조금도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것처럼. 또 다른 여성들은 SNS에서 내가 바로 그 여성 유튜버라며, ‘#내가_갓건배(여성 유튜버의 닉네임)다’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전개했다. 공포와 무기력에 젖어있던 나는,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싸우는 여성들을 보며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고 있는 여성들이 있는데, 나 자신과 다른 여성들을 피해자로만 간주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많은 여성들이 불의에 문제 제기하고 성차별에 맞서 목소리를 높여 싸우고 있다. 내 눈에 보이지 않거나 모른다고 해서 그 싸움을 없는 것처럼 취급해서는 안 될 일이다.

 

공포에 잡아먹힐 것 같을 때면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고 있는 여성들을 떠올린다. 온라인에서 댓글을 달고, 해시태그 운동을 하고, 민원을 넣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여성혐오 발언에 문제 제기하고, 시위에 나가는 여성들을. 우리는 여태까지 해오던 것처럼 계속해서 싸워 나갈 것이다. 때로는 조심하고 때로는 조심하지 않으면서, 피해를 발화하는 것으로 우리의 경험과 차별을 설명해내면서, 우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듯 구는 이들을 비웃을 것이다.

 

내가 약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세상이 변하는 것 같지 않아 좌절감이 들더라도, 페미니스트들은 결국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피해자나 불쌍한 사람이 아닌 문제 제기자, 싸우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말이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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