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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통과해 온 퀴어문화축제 

[머리 짧은 여자, 조재] 2014년 신촌에서 2017년 동성로까지



2014년 6월 서울 신촌

 

커뮤니티를 통해 퀴어문화축제라는 게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벌써 15회째라는데 왜 진작 찾아볼 생각을 못했을까. 그때 내 주변에는 아는 성소수자가 없었다. 내게 커밍아웃한 친구는 딱 한 명뿐이었다.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씩 들어가던 온라인 커뮤니티는 정보를 나누기보다는 주로 연인을 구하는 글이나 사담이 많았다. 나는 ‘다들 지지고 볶고 나름대로 잘살고 있구나’ 하며 구경만 하는 눈팅족이었다.

 

그러던 중에 6월 어느 날,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글을 발견한 것이다. 글쓴이는 축제에 혼자 가는 게 민망한지 함께 갈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바로 내일인데?’ 축제가 어떨지 너무 궁금했지만 당장 내일, 그것도 모르는 사람과 만나 축제에 갈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지방에 살면서 서울 왕래가 거의 없는 나로선 무리일 것 같았다. 그럼에도 너무 가고 싶었다. 축제에 가서 내 답답함을 풀어놓을 순 없겠지만 다양한 성지향성,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축제에 가는 것만으로도 막연한 외로움이 덜어질 것 같았다.

 

다음 날, 고민 끝에 열심히 달려 도착한 서울 신촌. 다양한 부스들이 신촌 거리를 쭉 메우고 있었다. 공연을 보는 사람들, 부스를 구경하는 사람들, 무지개 페이스 페인팅을 한 사람들, 손을 잡고 걷는 연인들로 거리가 가득 찼다. 그들 너머로 확성기를 들고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무리도 보였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축제였는데, 나는 어딘가 위축됐다. 마치 신촌 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축제를 발견한 행인인양 축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퀴어 퍼레이드 시작 후에도 멀찍이서, 신나게 춤추는 사람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 2017년 6월,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 함께 한 사람들  ⓒ머리 짧은 여자, 조재


2016년 6월 서울시청 광장

 

SNS에서 퀴어문화축제 자원활동가 모집 글을 보게 됐다. 전 해에 축제에 가지 못했던 게 내내 아쉬웠던 찰나, 좀 더 적극적으로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부터 덜 깬 몸을 이끌고 서울시청 광장으로 향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광장 한가운데서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맡은 일에 열심이었다. 내가 맡은 일은 성소수자 혐오세력이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의 사진을 촬영하는지 감시하는 일이었다. 선글라스 안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을 노려보기 바빴다.

 

퀴어퍼레이드 중에는 퍼레이드 차량에 붙어 차량과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게 됐다. 수많은 사람이 차량 뒤를 따랐다. 이내 차량의 커다란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구호를 외치며 저마다 리듬을 타며 몸을 흔들었다. 같은 차량을 보호하던 자원활동가 Y도 춤을 추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Y가 중간 중간 건네는 눈빛이 어쩐지 안도감을 줬다. 함께 어색하게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거리며 거리를 걸었다. 처음 느껴보는 해방감이었다.

  

2017년 6월 대구 동성로

 

대구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오전부터 분주했다. 함께 가는 사람들이 무지개 색 가운데 하나씩을 골라 드레스코드로 정했다. 나는 노란 롱스커트를 입었다. 노란 매니큐어를 칠하고, 페이스 페인팅을 했다.

 

동성로 초입부터 선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동성애 반대’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한껏 꾸민 우리는 피켓 든 사람들을 향해 ‘회개하세요! 아멘!’을 외쳤다. 우리는 퀴어퍼레이드 차량을 따라 사람들과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더운 날 나와서 피켓 들고 ‘동성애 반대’하느라 고생인 혐오 세력들이 가엾게 느껴졌다.

▶ 2017년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 함께 한 사람들. ⓒ머리 짧은 여자, 조재


2017년, 다가오는 7월 15일

 

내가 활동하는 성소수자 동아리의 단체 대화방에 공지를 올렸다.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할 인원을 조사하는 공지였다. 얼마 후 한 회원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축제에 가고 싶지만, 자꾸 위축되고 걱정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짧게 2014년의 내 모습에 대해 말하며 어떤 기분인지 이해한다고 했다. 함께하면 너무 좋겠지만 부담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직 기간이 남았으니 천천히 고민해보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언젠가 책에서 ‘페미니스트 선언 이후’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페미니스트 선언 자체도 중요한 일이지만, 선언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덧붙여 커밍아웃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커밍아웃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커밍아웃 이후 내 삶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퀴어문화축제는 최근 몇 년간 서서히 바뀌는 내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장이자 계기였다. 누군가는 내가 지나온 길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는 다른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커밍아웃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혹은 커밍아웃 전이라도), 퀴어문화축제에 함께 하는 일도 좋은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일 년에 단 하루뿐이지만, 그 하루가 계기가 되어 다른 사건을 가져다줄지도 모를 일이다.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 슬로건을 걸고 퀴어퍼레이드가 개최될 7월 15일,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함께였으면 좋겠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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