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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한 학생은 학생도 아닙니까?

[이가현의 젠더 프리즘] 대학에서 성교육 행사 ‘불허’라니…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이가현님은 불꽃페미액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학부형이 항의해서 성교육 행사를 불허한다고?

 

작년 11월에 불꽃페미액션은 대학교 신입생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교육 사업을 해보기로 했다. 이름은 ‘페미들의 성교육’. 10대 때에는 섹슈얼리티에 대해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왔다가, 갑자기 20대가 되자마자 ‘섹스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섹시한 여성’이 될 것을 요구받는 여성들을 위한 교육이었다.

 

서강대와 가톨릭대에서 성교육을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가톨릭대에서 외부단체와 함께하는 행사에 강의실을 빌려줄 수 없다고 통보한 것이다. 급하게 성공회대로 강의 장소를 변경하고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행사 날이 다가왔다. 그런데 행사 바로 전날, 갑작스럽게 서강대 측에서 연락이 왔다. 강의실 승인을 취소했다며, 지금 빨리 학생지원팀으로 와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서강대 여학생협의회와 함께 학생지원팀으로 들어갔더니, 교직원 한 명이 학생문화처장실로 우리를 심각하게 부른다. 학생지원팀장은 강의실 사용 승인을 취소한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첫째는 연합동아리가 함께한다는 것, 둘째는 참가비를 받는 행사라는 것, 셋째는 ‘성교육의 내용’ 때문에 학부형들의 항의가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보여준 문서에는 ‘낙태 합법화, 자유 성관계, 피임 만능주의를 내건 단체가 생명존중의 이념을 가진 서강대에서 행사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후 확인해 본 결과, 이 문건은 천주교 기반의 한 성교육 강사가 블로그에 게재한 글이었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이트인 ‘굿뉴스’ 자유게시판에도 올라있었다.

 

▶ 서강대의 ‘페미들의 성교육’ 강의실 대관 취소 규탄 기자회견  ⓒ불꽃페미액션

 

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부모에게 있나

 

해당 강사가 올린 게시물은 “2017년에 사랑하는 딸을 이화여대 신입생으로 입학시킨 50대 아빠의 글”을 소개하고 있는데, 딸의 입학식에서 ‘페미들의 성교육’ 리플렛을 봤다며 피임법을 가르치기 이전에 ‘순결의 가치를 먼저 가르치는 참성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모라는 이유로 자녀의 성생활까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충격적이었다. 딸이 자유롭게 섹스에 대해 말하고, 안전하고 마음 편하게 성적 실천을 하는 것이 그렇게 이해하기 힘든 일일까?

 

‘소중한 사람을 위해 순결한 첫 경험을 남겨놓아야 한다’고 했던 우리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그 얘긴 달리 말하자면 ‘처음으로 따먹히는 존재’로서 나 스스로를 잘 가꾸라는 말이었다. 무조건 보호하겠다는 생각은 성에 대한 무지를 낳는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클리토리스와 질이 정확하게 어디있는지도 모른 채 성장한다. 이처럼 제대로 된 성교육과 피임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안 된다’는 말은 성을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어 성에 대한 무지를 더욱 확산시킨다.

 

‘나중에 결혼하고 나서 해’라며, 이른바 ‘혼전순결’을 강조하는 것은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를 무시하고 섹스를 출산과 연결 짓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다. 가부장의 소유로서 정조가 아닌,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장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노력해왔는가. 국가는 국익을 위해 여성의 재생산권을 통제하며 아이를 낳으라고 종용하고, 부모와 교사들조차 순결을 요구하고 있다. 나처럼 결혼하지 않을 여성들은 섹스도 하지 말라는 얘기다.

 

우리에게 학부형들의 항의를 설명하던 교직원은, 외부단체라 해도 사전 승인을 받으면 사용료를 지불하고 강의실을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강의실 사용료를 내고 성교육을 진행하겠다고 했더니, 이미 시간이 많이 늦어서 안 된다고 했다. 이렇게 하루 전에 취소하시는 것이 말이 되냐 물었지만, 학부형들의 항의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답했다. 최근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심지어 서강대는 앞으로도 건학이념상 자유 성관계와 낙태 합법화와 관련한 내용의 행사는 학교에서 열 수 없도록 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 서강대의 ‘페미들의 성교육’ 강의실 대관 취소 규탄 기자회견   ⓒ불꽃페미액션

 

2017년, 대학에서 ‘낙태죄 폐지’ 주장도 못해?

 

지난 1월, 임신중단과 출산 중에서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해 자신의 목숨을 끊기로 선택한 여성이 있었다. 유서에는 ‘남자친구는 출산을 원하지 않고 나는 아이를 지울 용기가 없다’며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향신문 1월 23일자 “남친이 출산을 원치 않아”…임신 여성 스스로 목숨 끊어)

 

임신중단의 책임을 여성이 지게 되는 ‘낙태죄’는 오히려 생명윤리에 반한다. 죄책감에 시달리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여성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정말 임신중단을 하는 여성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생명윤리’가 없어서 그러한 결정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가톨릭 윤리에 여성의 존엄과 인간다운 삶을 위한 윤리는 어디로 갔는가? 이들에게 있어서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는 몸’이라서 소중하다고 인식될 뿐이지, 존재 자체만으로 존엄한 인간의 축에 끼지 않는다.

 

예수회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낙태한 여성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말했다고 한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나의 결정에 타인에 자비가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지만, 가톨릭의 중심인 로마에서도 여성의 현실을 고려한 유연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는 것만큼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정작 예수회에서 설립한 서강대에서는 대학 안에 어떤 성문화가 존재하는지, 내 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무엇이 성폭력인지, 성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 임신과 출산과 임신중단을 둘러싼 논의를 가르치고 토론하는 성교육 행사를 하루 앞두고 장소 사용을 취소했다.

 

이 학교 내 중앙동아리에서는 ‘크리스천 이성교제 세미나’라는 이름을 달고 “거울은 보고 다니니?”, “남자 여자 몰라요 여자 남자 몰라요” 같은 구태의연한 문구가 버젓이 들어간 성교육이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진행되었다.

 

서강대학교 측에 묻고 싶다. 대학생들이 자유로운 성관계를 논하고 낙태죄 폐지를 이야기하는 성교육도 받을 수 없냐고. 낙태한 학생은 학생도 아니냐고.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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