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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 색출하는 군대
<잇을의 젠더 프리즘> 군형법의 ‘추행죄’를 기소하라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잇을님은 언니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예상 못할 일은 아니나 그 예상을 넘어섰다. 국민일보의 게이 데이트 어플 잠입기사(2016년 7월 9일 국민일보는 게이 사이트와 동성애자 전용 앱에서 ‘집단 성관계를 맺고 싶다’는 글을 입수했다며, “충격! 남성 동성애자들의 집단 난교현상 사실이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는 이미 맞닥뜨린 바 있지만, 이번에는 육군이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육군 중앙수사단 사이버수사팀은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 40∼50명의 신원을 확보하고 그중 다수를 수사선상에 올렸다. 친분이 있는 다른 동성애자를 ‘자백’하도록 종용하고,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불리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협박하며, 성적으로 모멸감을 주는 질문에 답하도록 압박하였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위의 내용 중 어느 하나라도 사실이라면, 육군은 그 경위를 낱낱이 밝혀야 할 것이다. 이를 직간접적으로 지시·지휘한 책임자들을 찾고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동성애자 식별, 사생활과 성관계 질문, 동성애자 입증 취지의 자료 제출 요구 등은 심각한 인권침해다. 그리고 군대 내 부대관리훈령 위반이기도 하다.
▶ 4월 14일 오후 1시 국방부 앞.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 차별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가 <육군의 동성애자 군인 색출수사와 인권침해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육군은 육군참모총장이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 처벌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부정했지만, 수사 중이라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다. 육군은 자기들의 행동 배후를 군형법상 ‘추행죄’라고 자백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 현역 군인이 동성 군인과 성관계하는 동영상을 게재한 것을 인지했고, 이를 ‘추행죄’로 기소하기 위해 수사를 했다는 것이다.
문제의 조항은 몇 차례나 헌법소원이 제기되었던 군형법 제92조의6(구 제92조의5) 조항으로 ‘계간(항문성교를 뜻하는 비속어)이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항문성교 및 그 밖의 추행’을 문제 삼고 있는데, 동성 간 성적 행동이라면 어떤 것이든 포괄할 수 있는 모호하고 비열한 법 조항이 아닐 수 없다. ‘성폭력’이 아닌 동성 간 ‘성관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이 조항은 성폭력 관련법에 적시된 ‘추행’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는 글자 그대로 동성 간 성관계 등을 추한 것으로 바라보는 인식을 반영하는 한편, 타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성적 행동과 쌍방이 합의한 성적 행동을 구분하지 않는/않으려는 인식을 보여준다.
군대는 성소수자를 작정하고 처벌해왔다. 성소수자는 자기 존재 자체를 범죄화하는 공간에 징집되고 있다. 군대는 군 기강을 내세워 동성애자 군인에 대한 처벌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강제성과 공연성이 없는 성관계가 군 기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증명할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군 기강이 군인의 기본권보다 중요하다고(그리고 둘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백 번 양보한다면, 이성 군인 간의 성관계는 처벌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이성 군인들이 ‘영내에서’ 성관계 했을 경우엔 징계로 규율하고, 형사 처벌하지는 않는다.) 이 법 조항은 군대가 섹슈얼리티에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등급을 매기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군형법상 ‘추행죄’ 조항은 위헌 시비가 계속되어 왔다. 4월 초, 인천지법 형사8단독(이연진 판사)은 이 법 조항의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재판부는 “성 정체성을 군 면제 사유로 인정하지 않고 군 복무를 강제하면서도, 군인 간의 합의된 성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라고 의견을 밝히고 있다. 또한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는 올해 초까지 1만2천207명의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 청원 서명을 모아 국회에 제출했고, 올해 폐지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 육군 성소수자 군인 구속영장청구 기각 탄원서 모집 페이지. ⓒ군인권센터 무지개방패 project
지금과 같은 악법이 존재하는 한,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수사·기소하려는 시도는 반복될 수 있다. 다시는 이같은 인권침해가 공권력에 의해 발생하지 않도록 반드시 군형법상 ‘추행죄’를 폐지해야 한다. 그리고 징집제인 한국에서 트랜스젠더 퀴어들이 겪고 있는 부당한 상황들에도 주목해야 한다.
군대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한 어떠한 규정과 안전망도 마련하고 있지 않으며, 사실상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병무청의 자의적 병역 판단기준 앞에서 젠더퀴어, 트랜스젠더 여성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있고, 성기를 적출하거나 제거하는 조치를 하도록 요구 받기도 한다. 수년 전 병역면제 처분을 받은 트랜스젠더 여성을 추적 조사해 병역기피 혐의를 씌우고, 병역면제 처분을 취소하는 행정소송을 건 사례도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이 병역기피 혐의를 벗지 못하면 병역법에 의해 신상공개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군대는 이처럼 성소수자를 모욕하고 낙인찍으며 징집 건수를 올리고, 그 뒤에는 성소수자 표적수사를 해서 기소 실적을 올리는 식이다. 민주 사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 되는가? 가장 시급한 성소수자 인권 현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은 제각기 다를 수 있다. 나는 군형법상 ‘추행죄’를 폐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군대의 특수성’이라는 형체 없는 말로 성소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휘젓고 찢어대는 일이 정당화 되는 한, 성소수자는 아직 이 사회에 인간답게 살고 있지 않다. (잇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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