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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전쟁은 해도 된다‘는 생각을 경계하라

안보법제 위헌소송-여성모임 아사쿠라 야스코 씨



“지면 비참하니까 전쟁을 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이기는 편이 된다고 해도 전쟁은 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편에 큰 고통을 주는 것을 물론이거니와, 전사자도 생기고, 살아 돌아간들 사람을 죽이거나 동료가 살해당하거나, 자신이 살해당할지도 모르는 경험 때문에 정신적으로 병을 앓고,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자살하거나 비참한 인생을 보내게 됩니다. 지금, 미국에 장단 맞춰주면 우리는 험한 일을 당하지 않을 테니 전쟁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저로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습니다.”

 

일본은 2015년,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고 자위대의 해외활동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신안보법 제도가 도입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아사쿠라 야스코 씨는 ‘안보법제 위헌소송-여성모임’의 일원으로, 안보 관련 법제가 헌법이 보장하는 평화적 생존권 등을 침해하고 있다고 국가를 상대로 작년 8월 15일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원고 중 한 명.

 

아사쿠라 씨는 안보법제 논의 속에서 ‘이기는 전쟁’을 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를 느꼈다고 했다. 그녀는 전쟁의 피해와 패전의 경험에서 온 반전의식과 함께, 전쟁의 가해자이기도 한 우리들을 되돌아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전쟁의 참혹함을 알고 있는 세대

 

▶ 안보법제 위헌소송을 낸 원고 중 한 명인 아사쿠라 야스코 씨.  ⓒ사진 제공: 오치아이 유리코


아사쿠라 야스코 씨는 패전 2년 후인 1947년, 도쿄도 다치가와시에서 태어났다. 지팡이를 짚고 아코디언을 치는 상이군인과, 살기 위해 미군을 상대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부모님의 본가는 모두 도쿄 와세다에 있었는데, 공습으로 전소되었다. 어머니의 사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특공대원이었다거나, 전후 식량난 같은 이야기를 일상 속에서 들은 탓에 전쟁은 두 번 다시 싫다고 생각했다.

 

1966년, 도립고등학교에서 대학에 진학했다. 당시는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에 저항하고 미-일 안보조약 개정에 반대하는 신좌익 학생운동이 갈수록 격렬해져, 교내에는 입간판이 빼곡했다. 아사쿠라 씨는 운동조직의 정파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연일 벌어지는 논의에는 참여했다.

 

“동맹휴업을 할지 말지, 학생 전원이 속해있는 자치회에서 총회를 열어 논의하고, 과반수 찬성을 받아 비로소 휴업을 하는 굉장히 민주적인 분위기였어요.”

 

학내 문제뿐 아니라 식민지 지배의 문제, 부락(봉건제 하의 천민집단 지역) 차별, 미국의 베트남 전쟁 반대, 오키나와 반환 등 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행동하던 나날들. 그러던 중 파트너와 만나 학생 부부가 되었다.

 

남편이 한 살 때던 1945년, 남편의 어머니는 미군의 요코하마 공습으로 불에 타 죽었다. 당시 중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는 학생들을 이끌고 피난했는데, 공습 때 물통 릴레이로 불을 끄기 위해 ‘큰 며느리’인 어머니가 남아 있다가 화를 당한 것이다. 어머니의 사체는 검게 탔고, 가슴 아래에 있던 아이의 옷의 조각으로 간신히 신원이 밝혀졌다. 어머니의 죽음은 남편 인생의 원점이자 아사쿠라 씨의 인생 방향과도 겹쳐졌다.

 

반전(反戰) 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 분리 정책)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아사쿠라 씨는 공립중학교 사회 교사가 되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전후 일본 사회가 헌법의 평화주의에 기반하고 있는 점을 주요하게 가르쳤다. 또,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지키기 위해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헌법을 지켜야 한다고 설파했다.

 

아사쿠라 씨가 보았을 때 성평등도 헌법의 큰 기둥을 이루고 있다. 그녀는 베아테 시로타 고든(Beate Sirota Gordon)의 반생을 그린 만화 <겨울 봉우리>(기무라 미노리 작)를 교재로 삼아, 전쟁 전 일본 사회의 남녀차별의 실태에 대해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어머니가 이혼하면서 성이 바뀌는 걸 봤기 때문에, 여성이 결혼이나 이혼으로 성이 달라지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 있어요. 결혼해서 나와는 상관없는 성을 쓰면, 내가 아니게 될 것만 같았어요.”

 

아사쿠라 야스코 씨는 파트너와 46년 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혼한 어머니의 고통도 뼈저리게 느꼈다. “어머니는 뜨개질 등을 해서 생계를 꾸렸고, 간신히 호텔 펜트리(식재료 창고) 일을 구해 이제 안정 좀 되겠다 했더니, 여성의 정년은 40대였죠. 호텔 일을 그만둔 후에는 관련 회사를 전전하며 저임금 파트타임 노동자로 일하셨어요. 이혼한 여성이 얼마나 살기 힘든 사회인지 알았죠.”

 

33년간의 교사 생활을 마치고, 그녀는 현재 도쿄도 퇴직여성교직원회에 소속되어 있다. 그리고 학교 성폭력 방지 비영리단체에서 활동 중이다.

 

“대학에서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응은 발전되어 왔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아직도 부족해요. 아이들이 선생님으로부터 당한 성희롱 피해를 호소하면, 오히려 2차 피해를 당하게 되는 게 현실입니다. 학생들을 성폭력으로부터 지키고 싶어요.”

 

여성들이 겪는 삶의 어려움은 전쟁에서는 더욱 가혹한 피해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아사쿠라 씨는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중국 산서성을 몇 번인가 찾아가서, 일본군 병사들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로부터 감금과 고문, 강간의 생생한 체험담을 들었다.

 

“그들은 전쟁이 끝나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성폭력은 물론, 여성의 삶의 방식은 고정화되어 버립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 사회에 동조하지 않는 여성은 더욱 숨 쉬기 어렵게 되죠.”

 

아베 정권 하에서 교육기본법 개악, 비밀보호법 성립, 안보관련법 강행 체결… 그리고 명문 개헌(전쟁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평화헌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헌법 해석을 달리하는 해석개헌이 이루어졌는데, 아예 조항을 바꾸어 명문화하려는 것)을 목표로 한 국민투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 포기하면 안 됩니다. 포기하지 않는 한 싸움은 계속됩니다. 나는 살아있는 한 포기하지 않습니다. 전쟁은 일단 시작하면 멈추기가 너무도 어렵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시작하면 안 됩니다.”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주의 언론 <페민>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오카다 마키 님이 작성하고,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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