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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슈얼리티 탐구와 모험은 계속될 것이다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에필로그


※ 독일에 거주하는 20대 후반 여성 하리타님이 심리치료 과정을 거치며 문화적, 사회적, 제도적 차이 속에서 새로운 관계 맺기와 삶의 변화를 통해 탐색한 섹슈얼리티 이야기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최종회. -Feminist Journal ILDA

 

1년의 심리치료, 그리고 그 후…

 

성폭력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모두 포함해 지칭한다. 나는 살면서 겪어온 여러 성폭력 피해경험을 돌아보고, 그 경험들로 인한 현재의 상태보다 한결 자유로운 섹슈얼리티를 실현하고 싶다는 뜻에서 재작년 11월부터 작년 12월까지 1년여 간 이곳 독일에서 심리치료 과정을 거쳤다.

 

여전히 기억에 뚜렷한 어린 시절의 성폭력은 아는 사람들-아파트 경비원과 사촌오빠-에 의한 신체적, 정신적인 가해였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후에도 정신의학 기준에서 나는 여전히 트라우마 상태였다. 성폭력을 겪은 것은 물론 이 뿐만이 아니다. 살면서, 아니 ‘살아남아’오면서 길거리, 학교, 직장, 조직에서 수많은 언어적, 정신적 성폭력이 있었다.

 

최근 깨달은 것은 미디어(영화, 드라마, 순정만화, 컴퓨터게임 등)에서 흔히 연출되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납치, 강간, 추행, 데이트 폭력 장면에 노출된 시청자로서의 경험도 정신적 성폭력 피해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경험들이 나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게 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다. 또한 오랜 시간 남성성기 혐오, 남성 일반에 대한 불신과 적대, 가부장 질서에 대한 분노와 울분과 같은 ‘부정적 심리상태’를 갖게 했다.

 

내가 심리치료에 기대한 것은 그러나, 치료 효과가 나서 그 ‘심리상태’들이 싹 사라져 세상을 아름답게 보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끔찍하지만 내 것인 기억과 경험들이 잊혀지거나 부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심리치료는 내가 아직 해보지 않은 한 가지 접근, 새로운 관점과 실천 중 하나라고 여겼다.


▶ EMDR 요법에서 사용한 양측 진동자극기. ⓒ출처: nightingalecenter.com

 

몇 번의 시도 끝에 만난 치료사 B와 나는 트라우마 치료에 많이 쓰이는 ‘안구운동 민감 소실 및 재처리 요법’(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 EMDR)을 어린 시절의 성폭력 트라우마 두 가지에 적용했다.

 

이전에 ‘심리치료 편’ 이야기를 들어준 독자들은 그래서 결국 EMDR 요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그 결과가 궁금할 것이다. 흑백으로 명료하게 답하긴 어렵다. 내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긴 했다. 기억재처리 과정에서 신기하게도 기존 기억과 다른 상상이 머릿속에 술술 풀려나왔고, 이후 여러 번 관련된 꿈도 꾸었다.

 

부모님에게 뒤늦은 구조 요청을 보냈지만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한 여섯 살의 ‘나’는 기억재처리에서 성인이 된 ‘나’의 도움을 받았다. 거기서 나는 정말 당당하고 민첩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영웅이었다. 성인이 된 나라니. 생각조차 못한 전개였다. 아무리 한국드라마에 시간여행이 단골소재라도 그렇지.

 

사촌오빠가 컴퓨터게임을 ‘대가’로 교묘히 내 성기를 만지작거렸을 때, 핸드폰도 없던 시절 냉랭한 친척집에 고립된 열한 살의 나는 아빠가 와서 구해줬다. 아빠와 외삼촌은 큰 소동도 없이 점잖게 ‘남자끼리’ 담판을 지었다. 나는 우리 집에 돌아와 목욕을 하고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익숙한 이불 속에서 평온히 잠들었다. EMDR 요법 중에 머릿속에서 전개되는 상상은 내가 의도하는 것이 아닌데도,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었다. 내가 아는 우리 아빠는 조용히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할 분이 아니라서 설득력도 떨어지는 데다, 이런 가부장적 결말은 내가 바랐던 것과 가장 거리가 멀었으니까.

 

쉽지 않았지만 마음을 열고 재처리된 기억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스스로를 설득시키면서. ‘우리 엄만 지금이라도 똑같이 겁먹고 그냥 지나갔을 거야. 구해줄 캐릭터가 하도 없으니까 미래의 ‘나’라도 나와야 했겠지’, ‘그땐 페미니즘이고 뭐고 몰랐어. 어린 내게 필요했던 건 안전한 집으로 돌아가는 거, 그냥 그거였을 거야.’

 

이후, 치료 중이던 그 때나 지금 이 순간이나 내가 용서하지 못한/않은 가해자 사촌오빠가 몇 번이나 꿈에 나오기도 했다. 첫 번 꿈에선 스무 살이 되어 가족모임에서 그를 다시 만났던 실제 상황이 재현되어, 현실에서 하지 못했던 일종의 반격을 해냈다. 나중 꿈에서는 데면데면 그런대로 얼굴을 마주하며 지내는 사이로 나오기도 하고, 가장 최근에는 내가 먼저 다가가 반갑게 인사하며 눈을 맞추고 웃기까지 했다. 꿈에선 분명 기분이 좋았는데, 깨고 나니 내게 그는 여전히 ‘100m 밖에서도 절대 보고 싶지 않은 사람’, ‘언젠가 대면해서 사과를 받아야할 사람’, ‘너무 잘살면 안 되는 뻔뻔한 가해자’ 따위였다.

 

기억재처리를 거쳐 다른 버전의 기억이 만들어졌어도 원래 기억 역시 공존하는데, 과연 이게 트라우마를 해소해주는 걸까? 뭔가가 해결되고 극복되고 나아지는 꿈처럼,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궁금한 건 아직도 많다. 나는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두 가지 트라우마와 관련된 꿈을 꿀 때마다 꼭 기록해두고, 실제로 마음에 변화가 생기거나 뭔가 행동할 결심이 서면 그것 역시 적어둔다. 앞으로 2-3년? 긴 호흡으로 갈 생각이다.

 

치료사 B와 1년간 어린 시절 성폭력 트라우마에 집중했는데, 사실 그게 지금 일상적으로 느끼는 문제, 특히 ‘남성성기 혐오’와 ‘남성 일반에 대한 불신과 적대’를 개선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심리치료를 계속한다면 새로운 방향을 찾고 치료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 같다. 새로운 치료사를 만날 생각도 하고 있다.

 

치료사 B는 아동심리, 가족 문제에 경험이 많다. 정상가족을 꾸린 우리 엄마 또래의 여성이어서 비혼, 비출산, 퀴어, 폴리아모리를 지향하는 나와는 이질감이 크다. 좀 과장하면 때로는 ‘꽤 쿨하지만 그래도 세대 차이는 어쩔 수 없는 친구 어머니’와 대화하는 듯한 기분마저 들 때가 있다. 다음에는 섹슈얼리티 면에서 대안적 삶에 관심이 많거나 이를 실현하고 있는 치료사를 만나고 싶다. 우리 도시에는 전체인구 대비 심리치료사도, LGBTQ 비율도 높은 편인데, 거기다 여성이라는 조건까지 더해서 ‘레즈비언 심리치료사’ 세 명의 연락처를 우선 알아두었다.

 

성폭력, 너무 평범해서 더 끔찍한 불의

 

성폭력 경험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상세히 글로 쓴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어렵고 괴로운 것인데, 나는 어쩌다 시작했을까. 가끔씩 반문했다.

 

처음에는 심리치료를 하게 되었으니 치료과정에 도움이 되고 개인적인 기록도 될 수 있도록 일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의 피해 경험이 사실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있을 법한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직관 때문에 일이 커졌다. 이런 경험은 너무나 흔해서 더 비극적이고, 더 말해져야만 한다고 느꼈다. 웬만한 여성들은 다 피해자이고, 그렇다면 그들을 공격하는 남성들도 그만큼 많다는, 좀 다른 의미에서의 악의 평범성(한나 아렌트)인 것이다.


▶ 트위터 OOO내 성폭력 고발 해시태그 릴레이가 이어지면서 생겨난 OOO내 성폭력 아카이브 계정들. 

 

내가 글을 연재하는 동안, 다른 작업을 함께 하고 싶다며 연락 온 몇몇 여성들의 ‘저도 어릴 때 하리타님과 비슷한 일을 겪어서…’라는 말들, 내 글을 읽고는 ‘사실은 나도 어릴 때…’라며 묻지 않은 고백을 하던 친구들, ‘OOO내 성폭력’ 해시태그 릴레이에서 우리가 들었던, 끝없이 변주되는 성폭력의 메인 플롯, 서로 닮아있는 가해자들의 캐릭터, 최대한 모른척하는 뻔뻔한 주류 가부장 사회. 직관은 쉽게 현실의 얼굴을 한다.

 

내 이야기에 남 이야기까지, 자나 깨나 그야말로 성폭력 내러티브에 둘러싸여 보낸 작년 한 해, 나는 까먹지 못할 방법들로 성폭력에 관해 배웠다. 새해 다짐 대신 배운 걸 요점 정리해본다.

 

1) 성폭력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다. ‘가벼운’ 직장 내 성추행부터 무거운 집단강간까지 성폭력이라는 이름표를 피해가선 안 된다. 피해 양상의 스펨트럼은 아주 넓고, 모두 유효하며, 피해자의 고통과 상처에 순위를 매길 수 없다.

 

2) 피해자를 특정한 스테레오 타입에 가두거나 유형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피해자는 ‘아무나’ ‘누구나’이다. 우리 자신이고, 단짝친구이고, 사촌이나 동료, 엄마, 사장님 등등이다. ‘나와는 달리 불운과 아픔을 겪은 사람’이 아니고 불특정 대다수인 것이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게 핵심이다.

 

3) 피해자는 복잡한 정체성을 가진 한 사람인데, ‘피해자’로만 부를 경우 다른 다양한 측면이 가려질 수 있다. 피해자라는 피동형 타이틀을 떼어내고 볼 때, 여러 수단과 방법으로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는 강인한 ‘생존자’이기도 하며, 자신의 경험을 치유, 극복, 해결, 자원화하는 과정에서 전적으로 능동적인 존재이다.

 

4) 성폭력은 다른 사회적 경험과 결합한다.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 위험, 불안, 고통은 물론이고 주거, 관계, 소비, 밥벌이, 자아실현, 몸을 둘러싼 고민과 경험들까지 끊임없이 성폭력 경험과 상호작용한다.

 

‘서로치유모임’을 꿈꾼다

 

나는 3번 ‘능동적인 주체로서의 성폭력 피해자’라는 주제에 특히 관심을 두고 있다. 심리치료를 거치면서 그러한 생각은 오히려 더 커졌다. 약물을 복용해야 할 만큼 상태가 위중하고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이 있어 의학적 치료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치료사(전문가)-환자(비전문가, 경험 당사자)라는 인위적인 관계나 딱딱한 형식을 따르는 것이 능사가 아닌 것 같아서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살면서 피해자로 경험을 하지만, (독일의 경우처럼) 폭넓은 공공의료보험으로 심리치료나 상담을 지원받을 수 없고 이에 대한 문화적 장벽도 높다면, 다른 차원의 지원책이 필요하다. 특히 공동체에서의 임파워먼트(empowerment) 전략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치유모임’을 해보면 어떨까, 구상해본다. 이 모임에서는 성폭력 피해경험을 가진 여성들이 우선 어떤 위계나 형식 없이 자유롭게 모이되, 일정 인원이 모이면 그룹을 닫고 다양한 활동을 같이 하면서 일정 기간 신뢰와 연대의 기반을 다진다. 이후 구성원들은 각자의 성폭력 ‘케이스’를 공유하면서 각 케이스 간의 연결고리를 찾고, 공통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책읽기와 글쓰기를 함께한다. 예술치료나 여러 상담기법을 같이 공부해나가면서 적극적인 서로 치유를 모색하는 것이다.

 

참여하는 사람들은 나처럼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있거나 살면서 겪은 성폭력 경험이 있지만 반드시 의학적 도움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며, 자기 문제를 언어화할 수 있고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탐구할 준비도 되어 있다. 앞으로 이 모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켜보고 싶다.

 

▶ ‘서로치유모임’ 여성들이 만들어가는 유대와 시너지를 상상해본다. ⓒ출처: static1.squarespace.com

 

능동형 치유, 몸해방 프로젝트

 

이 글은 쓰는 오늘은 2017년 들어 첫 월경의 나흘째다. 이번에는 종아리 부종과 등허리에 뭉친 근육 때문에 괴로워서 진통제를 하루 1-2번씩은 먹어야 했다. 월경불순에 좋다는 재료들을 배합해 친구들과 만든 허브티를 미리 자주 마시고 족욕을 자주 했지만, 아무래도 운동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몸은 아직 불편해도 월경 첫날부터 어김없이 머릿속은 맑게 개어 그 동안 막혔던 원고 구성을 마침내 할 수 있었다.

 

월경 출혈이 있는 동안은 ‘성찰하는 단계’(reflexive phase). 글쓰기 좋은 때다. 내일 모래부터는 신체활동이 편하고 긍정에너지가 솟는 ‘역동적인 단계’(dynamic phase)가 될 테니 모처럼 뒷산에 올라야겠다. 그 다음엔 ‘표현하는 단계’(expressive phase)가 오는데, 이때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공감과 소통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다. 모임에 나가고, 그 동안 못 만난 친구들을 만나 사는 얘기도 공유해야겠다. 월경 직전 닷새정도 되는 ‘창조적인 단계’(creative phase)에 새로운 착상이 오고 창작이 잘 될 수 있지만, 나에겐 이때 우울감과 여러 통증이 복병이다.

 

‘몸해방 프로젝트편’에서 월경을 깊이 파고들며 월경주기와 마음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실험했던 것은 내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틈틈이 일지를 쓰며 월경주기와 몸-마음상태를 상호 관찰하고, 거기에 일과 생활의 흐름을 잘 맞춰보려고 한다. 학교에서도, 엄마도, 페미니즘 서클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월경에 대한 지혜는 앞으로도 꾸준히 탐구할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후반부 몸해방 편을 시작하며 ‘나의 치유는 몸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면 한다’고 썼다. 여전히 감추고 움츠리고 망설이는데 익숙하며, 화를 품고 피로를 견뎌온 내 몸에 쌓인 독소를 해독하고 나아가 해방시키고 싶다고. 의욕이 앞서 또 무리했던 걸까. 아직은 해방이 아니라 해독에만 집중해야할 과도기일까. 내 몸은 ‘활기와 야성’을 찾기는커녕 연말-연초에 호되게 아팠다. 갑상선 기능저하증도 온 것 같아 처방을 기다리고 있다.

 

나의 몸해방 프로젝트에는 거창하게 무려 슬로건도 있었는데, 돌아보니 나는 첫 번째 구절 ‘자유롭게’에서 갈팡질팡, 오락가락, 우유부단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해야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올 상반기에 대학원 과정이 끝나면 ‘진로 고민’이라는 도돌이표를 또 마주한다. 확실한 건 두 가지 뿐이다. 책상에 앉아 무한 경쟁하던, 몸도 마음도 아직 못 버리지 못한 이 지긋한 습성을 떼내어버리고 싶다는 것. 치유의 여정, 몸해방 프로젝트를 계속하고 싶다는 것.

 

[몸해방 프로젝트 슬로건]

1) 자유롭게 - 내가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 즐거운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행동한다.

2) 회복력 있게 - 지금까지 받은 상처, 앞으로 받을 상처로부터 배우고 살아남아 더 강해진다.

3) 섹시하게 - 나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찾고 가꾼다. 타고난 몸의 조건을 포용하고 내 몸의 아름다움을 긍정한다.

 

자유로운 섹슈얼리티를 위하여!

 

섹슈얼리티(sexuality). 우리말로는 ‘성애’. 쉽지 않은 개념인데 나는 겁도 없이 자꾸만 들먹이며 이 탐구여행을 시작했다.

 

“성행위(the sex acts)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성적 실천과 정체성, 에로틱한 욕망을 포함하여 성적 감정과 관계, 그리고 우리가 성적(sexual)이라고 규정하는 범주까지도 포함하는 개념. 즉 성애란 성적 욕망을 창조하고 구성하고 표현하며 추구하는 사회적 과정이며 성역할, 성행위, 성적 감수성, 성적 지향, 성적 환상과 정체성을 정의하고 생산하는 모든 영역을 포괄한다. 즉 이 개념은 여성과 남성들의 감정, 사상, 행동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성적인 친밀감과 육체적인 성행동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고 사랑하는 인간관계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삶의 과정을 포함한다.” -여성가족부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 홈페이지

 

이 정의는 여성과 남성, 단 둘로 성(sex)을 규정한다는 시대착오적 단점은 있지만 나름대로 개념의 다양한 측면을 잘 담으려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몇 번이고 읽으며 입으로 저 말을 씹어본다. 내 눈에 굵게 강조 표시되듯 꽂히는 단어들은 ‘창조, 구성, 표현, 추구, 정의, 생산 ~하고/하며’와 같은 주어의 의지와 행위를 뜻하는 동사들이다. 또 ‘사회적 과정’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삶의 과정’이라는 표현들이다.

 

이에 따르면 섹슈얼리티는 주어지는 것이라기보다 한 인간이 자신의 삶 속에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나의 궁극적인 희망이고 주장인 것 같다. 우리는 우리 삶에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우리의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수많은 모험과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만하면 사는 게 재미지다’와 ‘이번 생은 망했어’를 빠르게 오가는, 유달리 조석간만의 차가 큰 마음을 가진 나에게 지금 확고부동하게 희망적인 사실이다.

 

※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우리가 함께 통과한 시간

 

2016년, ‘심리치료 편’과 ‘몸해방 프로젝트 편’을 거치며 한 해 동안 이어온 글쓰기를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미처 못 다한 이야기, ‘그 때 그 후’ 이야기는 독자 분들의 지혜와 격려를 받고 오늘도 내 안에서 숙성중입니다. 삶이 계속되듯 나, 당신, 우리의 섹슈얼리티 탐구도 계속될 것입니다.

 

▶ 잊지 못할 강남역 포스트잇 홍수. ⓒ출처: 강남역 10번 출구 페이스북 페이지

 

저의 말 걸기가 시작된 것은 1월, 그런데 5월에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한국사회에 거대한 태풍이 시작되었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태풍. 회색하늘에 폭풍우치고 성난 파도에 바다가 한바탕 뒤집어지고 해변의 자갈들이 하도 달그닥 대어 마치 천둥치는 듯한 낮과 밤들. 그런데 나도 당신도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오히려 자꾸만 바닷가로 나가고 싶었죠. 바람에 머리가 다 헝클어지고 옷깃을 여며도 어쩐지 덜덜 떨면서도, 물방울이 얼굴에 다 튈만큼 바짝 다가가 바다를 노려보며 나는 말합니다. “더 커져버려. 금방 가라앉으면 안 돼.”

 

그리고 당신은 매일 내게 전해줬어요.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불어나 있던 그물에 걸린 말들. 페미니즘의 무한 확장 해시태그를 달고 저마다 팔딱대던 우리 여자들의 한숨, 고함, 환호. 그토록 아프지만 통쾌하고, 그만큼 빠르고 멀리 말들이 퍼져나는 시간을 우리가 함께 통과했다니. 바라만 본 게 아니에요. 우린 태풍 속으로 돌진했고, 저마다 힘껏 광적인 춤을 췄어요. 물, 땀, 눈물에 흠뻑 젖은 짭짤한 춤. 언젠가 둘러앉아 말하게 될 거예요. “맞아, 2016년에 진짜 대단했어.”

 

그리고 이렇게 끝이 아닌 걸 우리는 알지요. 큰 해일이 방파제의 높이를 올리듯, 사회의 표준은 두 번 다시 이전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언행이 더는 용인되지 않고, 성폭력과 차별이 일상화된 장소는 거센 모욕과 고발, 거부와 저항의 대상이 됩니다. 노브라와 월경컵, 페미니즘 미디어와 셀프디펜스 훈련이 매순간 그 영역을 확장해요. 우린 우리가 원하는 걸 보다 선명하게 알고 주장하고 표현하게 됐습니다.

 

저는 그 동안 글을 쓰며 괴롭고 외롭고 초조한 한편, 황홀하고 짜릿하고 뿌듯했습니다. 그 동안 나의 비빌 언덕이 되어준 당신들에게 참 고맙습니다. 아무리 낮은 언덕에라도 막상 올라보면 숨통이 한결 트이는데, 내 곁의 언덕은 게다가 거대했습니다. 우리 앞으로도 서로에게 언덕이 되어주는 것 어때요. 번갈아 무등을 태워주는 것도 좋겠지요. 그러면 답답한 오늘에만 갇히지 않고 현실 너머를 볼 수 있잖아요. 그 너머에서 나는 아주 큰 별을 봤다고, 당신은 되게 반짝이는 걸 봤다고 밤새 수다를 떠는 거예요. 그러다 정오쯤 일어나 아점도 거르고 까먹기 전에 얼른 종이 위에 그 별들을 그려요. 세상에 널리 알릴 수 있도록요.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만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그 때까지 손 닿아 있고 싶어요.

 

-하리타 드림. harita-moonrider@posteo.net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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