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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을 소외시킨 사회, 월경과 반목하는 여성들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독일에서 몸해방 프로젝트⑤
※ 독일에 거주하는 20대 후반 여성 하리타님이 심리치료 과정을 거치며 문화적, 사회적, 제도적 차이 속에서 새로운 관계 맺기와 삶의 변화를 통해 탐색한 섹슈얼리티 이야기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몸해방 프로젝트” 편이 이어집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월경사 3기: 월경전증후군과 이념전쟁(27세~현재)
한국에서 풀타임 노동자의 생활을 중단하고, 독일로 이주해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더 하게 되었다. 유학은 좋은 구실이었고, 실은 라이프 스타일을 크게 바꾸고 싶었다. 돈벌이라곤 파트타임으로 하는 일들뿐이니 물질적으로는 쪼들리게 됐지만, 대신 시간과 마음 씀에 있어 훨씬 여유가 생겼다. 늘 하고 싶었던 창조적인 활동들을 일과 병행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월경에 대한 태도도 바뀌었다.
▶ 다양한 브랜드에서 나온 월경컵들. 월경컵을 사용해 보니 장점이 참 많았다. ⓒ출처: labyrinth.net.au
가임기 여성에게는 월경이 심신 건강의 척도이고 건강 그 자체라는 건 자명한 이치. 월경통은 원인이 불분명하고 건강한 사람에게도 생길 수 있다지만,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매번 진통제로 대충 넘기기보다는 이것저것 다른 시도를 해보고, 월경주기에 내 몸과 마음의 변화를 좀 더 세심하게 느껴보려 했다. 이른 바 월경에 관심을 더 주고 화해를 청하기.
월경 1-2일차에는 가급적 게으르게 쉬면서 온찜질, 마사지, 스트레칭, 따뜻한 음식을 챙기고, 한의학 수련 중인 애인에게 침과 한약도 처방받았다. 마그네슘과 비타민, 기타 약초성분이 들어있는, 월경전증후군에 좋다는 영양제도 먹었다. 또 벼르던 대로 일회용 생리대 사용을 완전히 끊고 면생리대와 월경컵으로 바꿨다. 이들 중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월경통에는 차도가 있어서 어떤 때는 진통제를 전혀 안 먹고 넘기기도 했다.
문제는 배란기와 월경 전후의 신체적, 정서적 증상들이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월경전증후군(Pre-menstrual syndrome; PMS)인데, 나의 경우 우울감, 불안감, 부종, 유방통, 소화장애, 요통, 두통, 피로가 주된 증상이었다. 이 중에서도 우울하고 불안해지는 것이 제일 불청객이었다.
사실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음성화되어 있어 그렇지, 월경주기 호르몬 변화로 인해 주기적으로 심한 우울을 겪는 여성들은 정말 많다! 안 겪는 사람은 실감 못한다. ‘나 정말 우울증인가?’ 싶을 정도로 밑도 끝도 없는 우울감이 찾아오면, 모든 게 잘못되어가고 있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아무것도 아닐 실패자’라는 느낌이 든다. 평소 좀 불쾌하고 석연치 않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긴 일들, 인간관계에서의 의혹과 갈등도 이때 강렬하게 존재를 드러내 마음을 괴롭히기 일쑤.
매사 의욕과 집중력이 떨어지니 일을 잘 해내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나는 왜 이렇게 멘탈이 약할까’ 라는 자괴감이 심해진다. 어쩔 수 없는 호르몬의 영향인데도, 원치 않는 감정과 에너지 기복을 스스로가 약한 탓으로 돌리게 되는 것이다. 월경은 월경대로 불편과 고통이 있고, 월경 후 이제 좀 살만하다 싶은 열흘쯤이 지나가면 또 다시 배란통과 월경전증후군이 시작되는 무한반복의 사이클. 정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다 피임약이 월경통도, 월경증후군도 현저하게 개선시키는 효과가 있어 ‘치료제’로 처방된다는 얘기에 솔깃했다. 나는 이제껏 피임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인위적으로 호르몬을 조절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부작용 걱정도 있고, 성기결합 섹스를 잘 안했기 때문에 필요성이 덜했던 것이기도 하다.
▶ SF작가 코니 윌리스(Connie Willis)의 단편 <여왕마저도>가 실린 소설집(아작, 2016)
더구나 나는 월경전증후군이 ‘만들어진 질병’이라는 입장에 동조하는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수입원이 필요한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와 의학계의 합작 발명품. 원래부터 있던 현상에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병리화하고, 마치 여성 권익을 위한 프로젝트인 양 각종 마케팅과 연구보고를 쏟아내는 것이다. ‘하지만…약을 먹으면 어쨌든 나아진다잖아? 안 아픈 게 제일이지.’ 일상의 불편과 고통 속에서 정치적 판단과 입장을 오롯이 지키긴 어려웠다.
어찌 보면 이건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이념전쟁이기도 했다. 자기 일, 사회적 성취가 중요한 현대여성으로서 매일 경쟁과 압박에 시달리는데, 기술의 진보 덕분에 월경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당당히 누리자는 모너니스트(modernist)들의 목소리. 한편으론 여성의 신체와 정체성을 통제하는 가부장적 의학 기술은 거부하고, 여성성의 근원과 자연적인 리듬을 지키자는 사이클리스트(cyclist)들이 내 머릿속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 사이클리스트는 미국의 여성 SF작가 코니 윌리스(Connie Willis)의 단편 <여왕마저도> (Even the queen, 1993)에 나오는 표현이다. 이 소설에서는 근 미래, 여성들이 단결하여 ‘해방’을 이뤘다. 체내 삽입하는 ‘회피장치’와 자궁 내벽을 흡수하는 약물 ‘암메네롤’이 일반화되어 여성들이 월경을 안 하는 사회가 된 것. 줄거리는 20대 초반의 딸이 호기심에 월경하는 여성들의 운동단체인 사이클리스트에 가입하자 월경 해본 윗세대 여자들-할머니, 어머니, 시어머니가 다 나서서 옥신각신 설전을 벌이는 내용이다.
안녕, 피임약
세 달여의 이념전쟁 끝에 결국, 병원에 갔다. 새로운 의사를 찾았다. 독일에서만 두 번째 의사. 나는 본래 의사에게 최소한의 인격 수양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기대하는데다, 산부인과에 대한 기준은 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두 다리 쫙 벌리고 올라가 차가운 쇠기구에 보지, 질, 자궁을 내줘야하는 ‘굴욕의 진료대’가 있는 곳이니까. 하지만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아직 기다리는 그 분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의사의 전문지식과 권위 앞에선 또 한없이 고분고분해진다.
내가 열심히 나의 월경 문제를 하소연할 때, 그녀는 모니터를 보며 건성으로 추임새를 넣다가 짜잔, 결국 프로게스테론만 있는 피임약 3개월 치를 처방해줬다. 이 약을 먹으면 자궁내막 발달 및 임신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의 영향으로 몸은 임신 중이라고 착각하게 되고, 그러면 세 달간 출혈 없이 쉬다가, 그 다음에 에스트로겐도 같이 들어간 복합제를 6개월 정도 투여하는 게 계획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나도 작은 알갱이와 화살표가 잔뜩 그려진 판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
최근 그 프로게스테론 피임약 3개월 치가 끝났다. 월경이 없으면 얼마나 편할까, 내심 기대했는데 사실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 곤란을 겪었다. 우선 세 번의 부정기 출혈이 있었다. 체내 에스트로겐 수치가 갑자기 인위적으로 낮아지면서 오는 소퇴성 출혈(breakthrough bleeding)로 의심이 됐다. 그런데 월경통과 똑같진 않았지만 질 입구가 타오르는 느낌, 두통, 피로 증상과 함께 일주일씩이나 소량의 피가 계속 나왔다.
또 눈에 띄게 성욕이 줄었다. 결코 바라던 일이 아니었다. 배란기 때 한창 달아오르고 월경이 끝나갈 무렵 또 몸이 근질거리던 그 감각이 그리웠다. 부작용을 전혀 예상 못한 건 아니다. 병원에서 준 쪽지에도, 피임약 설명서에도 긴 부작용 목록이 있었고 나는 주의 깊게 읽어두었다. 병원에는 안 갔다. “처음엔 다 조금씩 부작용이 있어요. 그 정도 부작용은 흔해요. 괜찮아요.” 같은 소리만 들을 것 같아서였다.
▶ 2015년 말,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한 피임약 재분류(의사 처방 여부) 관련 수다회 포스터. 어떤 얘기들이 나왔을까? 궁금하다.
전반적으로 피임약 복용으로 인한 작용과 이를 둘러싼 일련의 경험들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약을 안 먹을 때는 괴롭긴 해도 내 몸의 월경주기와 호르몬 작용에 대해 직관적인 이해와 통감을 할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날 따라 유난히 머리가 무겁고 허리가 뻐근하고 침울하면 ‘아 곧 오겠구나’ 했고, 출혈은 계속되고 있어도 월경일자가 지남에 따라 컨디션이 비 그친 하늘처럼 차츰 호전되는 것을 몸 구석구석에서 느꼈다. 마음도 밝아지고 삶의 의욕과 흥이 되살아났다.
반면 외부적인 요인, 합성화학호르몬에 의한 작용은 몸은 느껴도 머리로 해석해내기 어렵고, 머리로 아는 바로는 이래야 하는데 몸에선 다른 반응이 와 혼란스러웠다. 몸과 마음의 연결이 끊어진 듯했다. 나는 6개월 더 해보기로 한 피임얌 복용을 그냥 여기서 중단하기로 마음먹었다. 피임약, 만나자마자 안녕.
월경주기와 내 마음의 능력을 관찰하다
스물다섯 살 때였나, 퇴근 시간, 붐비는 지하철 플랫폼에서 벤치에 놓인 신문을 읽으며 전동차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눈물이 북받쳤다. 사회면에 난 기사들을 읽는데 너무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사회면은 대체로 불행한 사건, 사고, 문제들, 억울하고 가엾은 사람들의 이야기투성이라 얼마든지 슬퍼질 수 있다. 그런데 그 땐 뭔가 달랐다. 기사에서 서술한 내용이 영화처럼 머릿속에서 입체적으로 펼쳐졌다.
불탄 집 앞에서 망연자실 통곡하는 사람들, 빨간 띠를 두르고 임금인상 집회를 여는 노조원들, 보조금이 부족해 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노인들, 열악한 사회복지관 놀이터에서 외롭게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들…. 건조한 기사체 행간에서 사람들의 얼굴과 말소리가 들리는 듯 했고, 거기 적혀있지 않은 문제의 다른 측면도 훤히 꿰뚫을 듯 했다. 러시아워의 지하철에 탄 뒤에도 퀴퀴한 땀 냄새나 너무 가깝게 붙어선 사람들이 잘 느껴지지 않고 오래 그 강렬한 머릿속 이미지와 감각을 붙들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월경전 우울감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울한 게 다가 아니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월경이 마음의 능력에도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자각을 했다.
이 후 월경주기에 따른 내 마음 상태를 주의 깊게 관찰하다 일관된 특징을 발견했다. 배란일을 전후하고는 마음이 들뜨고 기분이 좋으면서 성욕이 많아진다. 창조성이 높아지는지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아 노트에 기획안을 술술 받아 적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중장기적인 인생 설계를 하며 온갖 상상에 즐거워했다.
월경일을 일주일쯤 앞둔 때부터 월경 1-2일차에는 몸이 아프고 마음은 우울하고 처진다. 비관적이 되고 자신감이 확연히 떨어진다. 대신 감성이 대단히 우세해져 우수에 젖은 글을 잘 쓸 수 있고, 공감능력이 좋아져 마치 접신하듯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심미안이 발휘된다. 좋은 영화나 음악에 더 잘 몰입할 수도 있다.
월경 3일차 이후로는 몸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면서 머릿속이 눈에 띄게 맑아진다. 논리력과 집중력이 좋아져서 갑자기 배로 똑똑해진 느낌. 주장하는 글쓰기나 토론, 사회 현상에 대한 분석이 잘된다. 낡은 피를 버리고 온 몸이 재생한 것일까. 몸도 가뿐하고 마음은 명쾌해진다.
얼마 전엔 어렴풋이 이런 생각을 했다. 결국 내가 직업적으로 하는 것은 정신노동이고 특정 업무/활동에 따라 창의력, 분석력, 정확성, 추론력, 표현력, 소통능력 등 다양한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때 그때 필요한 능력과 월경주기에 따른 마음상태를 잘 호응시킬 수 있다면 매사가 훨씬 쉬우리라는. 피할 수 없는 월경과 여성으로서 타고난 역동적인 호르몬 변화를 잘 파악해서 능력으로 활용할 순 없을까. 탁월한 통찰인 것 같긴 한데, 직관적인 것이라 아직은 체계적으로 정리가 안 되었고 구체적인 방법은 잘 모르겠다.
▶ 월경주기에 따른 기분 변화를 표현한 차트. 훨씬 복잡미묘한 현상을 이렇게 단순 해석해서, 게다가 희화화한 정보로 유통시키는 풍토가 월경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지속시키는 건 아닐지. ©출처: 2016 CBC/Radio-Canada(cbc.ca)
어떻게 하면 월경과 화해할 수 있을까?
이렇듯 월경은 한 달에 며칠 피 흘리는 게 다가 아니다. 한 달 여의 주기가 달이 기울고 차오르듯이 계속 반복된다고 해서 ‘달거리’이다. 따라서 출혈이라는 눈에 띄는 현상 말고도 몸과 마음에서 많은 미묘한 작용이 일어난다. 부정적인 증상뿐 아니라, 잘 활용하면 능력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여성들은 그 작용에 무관심, 무감각하도록, 아니 처음부터 알지 못하도록 사회화된다.
어림잡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라 하면, 그 중 십대 초중반의 여성이라면 대부분 수십 년간 매달 피를 흘린다. 규모로만 봐도 이는 거대한 사회현상이다. 절대 개인적인 문제,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사회는 월경의 의미와 현상을 평가 절하해왔다. 재생산 매커니즘과 생식기 기능 위주의 생략된 지식을 전달하는 부실한 교육은 물론, 공공보건 차원의 지원도, 관련 연구나 담론도 영 부족하다. 그 틈에 여성들은 자기 몸에서 소외되어 월경과 반목하고 불화해왔다. 남자들에게 월경이 있었으면? 이 세상은 모든 면에서 완전히 다른 곳이었겠지.
요즘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하루 한 잔 이상의 커피 혹은 콜라, 초콜릿, 차와 같은 카페인 없이 생활이 힘든 ‘약물중독’ 상태라는 것은, 우리 몸이 외부요소에 의해 항상 흥분하고 각성상태라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의 생활리듬은 산업화된 사회의 규칙, 특히 학교와 직장의 시간표에 철저히 따르게 된다. 중요한 시험이나 프레젠테이션, 마감과 출장이며, 월경은 그냥 방해 요소다. 겨우 얻은 금쪽같은 휴가도 월경 없이 보내고 싶어 피임약을 먹는다.
호르몬 주기로 인해 기분이 변화하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바쁘거나, 각종 읽을거리 볼거리로 빈틈을 모조리 채우는 미디어 중독 상태이기에 느끼지 못한다. 이 사회만 월경을 천시한 게 아니라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여성들 스스로도 월경을 골칫덩이로 취급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월경과 화해하고 공존할 수 있을까? 월경하는 나의 몸과 바쁜 삶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월경사 4기를 여는 나의 고민이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하리타 여성주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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