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월경컵의 확산과 페미니즘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독일에서 몸해방 프로젝트⑥
※ 독일에 거주하는 20대 후반 여성 하리타님이 심리치료 과정을 거치며 문화적, 사회적, 제도적 차이 속에서 새로운 관계 맺기와 삶의 변화를 통해 탐색한 섹슈얼리티 이야기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몸해방 프로젝트” 편이 이어집니다. Feminist Journal ILDA
월경사 4기: 다른 월경을 위한 상상과 실천들
이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는 월경에 관한 총체적인 지식의 생산, 경험의 공유, 지혜의 전수가 없고, 파편화된 지식과 상업적이고 기술적인 접근만이 만연해 있다는 깨달음이 확연해졌다. 그래서 여성들은 변방에서부터 서서히 지혜의 그물을 짜고 있다. 나도 여기 동참하며 내 월경사 4기를 새롭게, 다르게 써나가고 싶다. 이는 흥미로운 지적, 영적 탐험이 될 것이다.
지난 10여 년 간 영미권 중심으로 여성들이 쓴 월경에 대한 책들이 꽤 많이 나왔다. 수백 년간 축적되어온 생리학, 성의학, 해부학 지식이 철저히 남성중심적으로 구성되어온 것에 반해, 이제는 여성들이 나서서 여성의 몸에 대해 사람들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지식, 아직 알려지지 않는 지식, 더 알려져야 할 지식을 묻고 답한다.
▶ 월경에 대한 대안적인 지식과 지혜, 재치를 얻고자 찜해놓은 책들. 이 중 한글 번역본이 나온 책은 아직 없다.
자궁과 월경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과학대중서, 질을 중심으로 여성의 성기관과 관련된 역사를 역추적하는 과학기술사회학서, 피임약 논란을 깊이 파헤친 책, 월경을 잘 다스리기 위한 영양관리법을 소개하는 책 등이 그 예다. 이중 가장 실용적인 영양관리법에 솔깃할 독자들을 위해 여러 책들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본다.
배란기에 식욕이 왕성해지는 건, 몸이 임신에 대비해 영양을 보충해 두려는 것이니 폭식은 피하되 조금씩 자주 음식을 먹어주는 것이 좋다. 출혈로 기력이 빠지는 월경 중에는 가공식품이나 카페인은 당연히 피해야한다. 그리고 치즈와 염분, 붉은 고기 대신 콩이나 견과류 같은 식물성과 해산물, 통곡류에서 단백질을 얻는 게 좋다. 호르몬 때문에 몸이 붓거나 살이 잘 찌는 사람의 경우, 월경 직전 탄수화물을 적게 필요로 하고 지방을 더 많이 쓰는 신체 메커니즘에 따라 건강한 지방을 섭취해주는 게 좋다 등이다.
어찌 보면 상식에 기반한 쉬운 설명들인데도 새롭게 들리는 건, 우리가 월경 때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대해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가정교과서에도, 넘쳐나는 ‘먹방’과 요리 정보에도 월경 식단은 없다. 지난 기사에 어떤 독자분이 달아준 댓글에 “다이어트 정보만 만연해있다”는 언급이 있었듯이, 내가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정보도 ‘생리주기 미용법’이었다.
아무튼, 월경에 대한 책들이 풍년이니 좋은 책을 잘 골라 읽으려고 저자의 이력을 꼼꼼히 살펴본다. 이들 중에는 책을 쓰다 관심과 경험이 확장되어 아예 그 쪽으로 전업해 식품업이나 컨설팅, 위생용품 사업을 차린 여성들도 있다. 선배여성들의 체험과 발견에 자기만의 스타일을 더해 퓨전 요가를 보급하거나, 스마트폰 앱을 출시하기도 한다.
월경 명상과 ‘달 오두막’(Moon lodge) 의식
한편, 영성(Spirituality)이 홀대받는 후기산업화 사회에서 월경에 대한 영적인 접근을 시도한 선구자 격으로는 영국의 미란다 그래이(Miranda Gray)가 있다. 미란다는 과학책에 정교한 삽화를 그려 넣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던 젊은 시절, 내가 이전 기사에서 서술한 ‘월경주기에 따른 마음상태를 능력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 통달한 바를 <Red moon>(1994, Dancing eve)이라는 책으로 풀어내 큰 반향을 얻었다.
월경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나온 지 20년이 지난 이 책이 사실 맨 먼저 내 귀에 들어왔는데, 주변 독일 여성 몇몇이 추천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직도 서점마다 재고가 남아있을 정도로 독일에서도 큰 히트를 했다.
▶ 영적인 차원에서 월경을 탐구하는 책들.
막 읽기 시작한 <Red Moon>은 신화, 전설, 민담과 전래동화 속에 숨은 월경에 대한 지혜를 건져 올린다. 그 속에 상징과 원형을 재해석한 내용이 담긴 챕터 ‘깨어남’(Awakening)이 특히 흥미로울 것 같다. 끝에서는 월경 주기의 각 단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은 무엇인지 제안한다. 월경 주기를 면밀히 알고 그에 따라 살면 신체적, 감정적, 지적,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게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그 방법론을 보다 체계화한 실용서 <The optimized women: If You Want to Get Ahead, Get a Cycle>(2009, Ayni Books)이라는 책도 나왔다. 비지니스 우먼을 연상시키는 ‘최적화된 여성’이라는 제목에 ‘성공과 성취를 위해 월경 주기를 활용하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직장인 여성들을 겨냥한 대중서 같다.
미란다 그래이는 요즘에 ‘자궁 축복’(Womb Blessing)이라는 명상 의식을 인터넷과 오프라인 워크숍으로 활발히 전하고 있다. 나는 카드와 이미지를 활용한 명상, 불교 명상, 요가 명상을 해 왔고, 특정 종교나 교파를 넘어 영성과 명상에 전반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이것도 시도해봤다. 기존의 종교 교리나 예식에 매이지 않고 자기만의 의식을 만들어 전파하는 그 용기와 확신이 일단 대단하다 싶었다.
여성의 몸, 자궁에 집중한 명상법은 별로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주류 종교들이 이런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미미해보이므로 이런 시도 자체가 소중하다. 그런데 사회 제도와 구조적인 모순에 대한 성찰 없이 여신과 자연의 아름다움에만 치중한 언어가 내겐 설득력이 조금 부족했다.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를 토대로 한 것이 아니고 직관에 따른 것이라서, 소위 ‘사이비’로 평가 절하되기 쉽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되도록 편견 없이 이 분야의 이야기도 접하고 싶다. 명상을 한다고 월경통이 나아지겠냐, 여신이라니 너무 비과학적인 거 아니냐는 목소리가 안 들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비난은 보통 명상을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데 그 신비적 외형만 보고 거부감을 일으키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 같다. 꾸준한 피트니스를 통해 몸에 근육이 자리잡듯, 명상은 마음으로 하는 피트니스다. 종류는 무수하지만 많은 것들이 공통적으로 이미지 연상과 신체의 감각에 집중하는 테크닉을 표방하는 건, 몸과 마음이 깊이 호응하며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근본 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에게 맞는 명상법을 꾸준히 실천함으로써 일상에서 체감하는 스트레스가 준다면, 명상에서 되새기는 메시지가 자기긍정과 확신, 내면 성찰 혹은 확고한 비전을 갖는데 도움이 된다면, 명상으로 인해 월경통이나 월경 전 우울감 같은 것이 완화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 Moon lodge (달 오두막)의식을 묘사한 그림. ⓒ출처: wisewomenredtent.com
‘달 오두막’(Moon lodge)이라는 의식도 있다. 여성들이 매달 보름달 아래 모여 월경에 대한 경험과 지혜를 나누고, 월경 중인 여성에겐 더 특별한 축복을 비는 의식이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여성들로부터 내려온 전통인데, 월경중인 여성을 격리하고 감금하고 학대했던 원시 사회 ‘남성들의 풍습’과 반대된다. 북아메리카 말고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여성연대 의식이 있지 않았을까? 호기심이 인다.
알아보니 우리 집 바로 근처 요가센터에서 정기적으로 ‘달 오두막’ 행사를 여는 것을 확인했는데 참가비가 너무 비싸다. 그런 격식화된 행사 말고 그냥 동네 여자들끼리 근처 산, 들, 강을 나다니며 춤추고 노래하고 수다 떠는 모임을 직접 만들어볼까, 또 즐거운 상상에 젖어본다.
월경컵 사용기: 피를 제대로 보다
“월경컵 쓰니까 피를 제대로 보게 되잖아. 그거 좋지 않아?”
“응, 내 말이. 월경컵 끼고 뺄 때 손에 피 묻고, 질 입구를 만지게 되는 것도 처음에만 어색했지 지금은 좋아. 그냥 이게 진짜 자연스러운 거구나 싶어.”
“우리는 항상 자전거 타고 다니니까 컵이 진짜 편해. 안 그래도 자전거 탈 때 거기 땀 차는데 패드하고 탄다고 생각하면 아휴…”
“난 컵도 탐폰 쓸 때처럼 며칠 연속 쓰면 질 내벽이 건조해지는 게 느껴져서 첫날 마지막 날에는 면생리대 써.”
매달 피를 받아내야 하는 월경. 더 건강하게 잘 하려면 ‘물리적 대책’도 중요하다. 여기서 월경컵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냄새나 피부발진, 화학물질에 대한 걱정이 없고, 재사용할 있으니 쓰레기도 안 나오며, 자주 갈아줄 필요도 없다 등등. 월경컵의 장점이야 많지만 나는 마침내 월경혈의 형태와 성질을 제대로 보게 되어 무척 반갑다.
그 전에도 물론 패드와 탐폰에 묻어나온 피를 수도 없이 봤지만, 거기 있던 피는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 있어 쳐다보기 싫었다. 시간 차를 두고 흡수되어 일부는 검붉게 응고되고 또 일부는 여전히 촉촉하거나 덩어리져 있는 모양새, 또 기분을 한없이 찜찜하게 하는 뜨끈뜨끈 축축한 패드와 퀘퀘한 냄새 때문에 쓰레기통이나 변기로 직행. 반면 월경컵에 모아진 피는 변질(?)되지 않고 담겨있어 색과 질감과 냄새를 비교적 있는 그대로 접할 수 있다. 그러자 내가 매달 겪어내야 했던 애증의 월경, 그 실체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고 불결하다는 느낌도 전혀 안 든다. ‘내 피같은 돈’라는 표현도 있지 않은가? 아무리 돈이 중해도 피보단 아니란 얘기. 나는 내 몸에서 만들어낸 꽤 많은 양의 피를 볼 때마다 경이감이 느껴지고 하고 아깝기까지 해 망설이다 흘려보내곤 한다.
▶ 월경컵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이미지. 이것 참 의미심장하다. ⓒ 출처: serpentlillith.files.wordpress.com
내가 처음 월경컵의 존재를 알게 된 건 2012년 여름이었다.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가 미국 유학생이었는데, 거기서 어울리던 페미니스트들은 컵을 쓴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하지만 여자친구도 직접 보지는 못했는지 묘사가 영 부실해서 잘 감은 안 왔다. 이후 패드나 탐폰에 불만이 있을 때마다 “무슨 컵같은 게 있다고 했는데…”라면서 호기심을 키워갔다.
독일에 오자마자 환경사회학을 함께 공부하게 된 페미니스트 동료들과 ‘더 건강한 월경’을 위해 자연스레 의기투합하게 됐다. 우리는 독일은 물론 인접한 프랑스, 체코, 영국에서까지 다양한 월경컵을 배송 받았다. 1인당 열개씩이나 사서 주변에 ‘월경컵에 관심은 있지만 직접 찾아보고 인터넷 주문까지 할 열정까진 없는’ 여성들에게 팔기도 했다. 학교 사람들이 수없이 드나드는 카페 중앙에 큰 테이블을 차지하고는 ‘팬티’, ‘피’, ‘보지’ 같은 단어들도 거리낌 없이 뱉으며 ‘월경컵 수다’로 즐거워했다.
월경컵은 단순히 여성위생용품만이 아니다
한 2년쯤 됐을까? 월경컵이 한국에서도 마침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실속 있게 소비하는 한국여성들답게 확산 속도가 무서울 정도다. ‘월경컵’으로 키워드 검색하면 고급 정보가 쏟아진다. 내가 독일에 와서 월경컵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한국에선 팔지도 않았고 정보도 거의 없어서, 직접 써보고 나면 월경컵 전도사가 되리라 의욕을 불태우기도 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더욱 재밌는 건 월경컵에 시작된 이야기가 처녀막 바로알기, 손가락으로 자궁경부 찾기와 같은 성담론과 실습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블로그 링크를 따라가다 보면 “월경컵 쓰면 처녀막이 손상되거나 질이 늘어나지 않나요?”라는 질문에 ‘본인 성기 작은 건 생각 안하고 여자 탓하는 남자들에게 휘둘리지 말라’는 메갈리안들의 사이다 답변(물론 많이 순화해서 썼다)을 만나게 된다. 이러니 월경컵은 단순히 ‘또 하나의 여성위생용품’이 아니다. ‘자기 질에 손 넣는 여자들’을 양산하는 체제 전복적 요물이다.
월경컵 쇼핑은 사실 좀 까다롭다. 세계적으로 브랜드가 워낙 많은데다 내 몸에 맞는 ‘골든컵’을 한 번에 만나긴 어렵기 때문이다. 컵 사이즈, 용량, 모양, 소재를 잘 따져봐야 하고 세척과 삽입에 적응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잘 챙겨야 한다. 나는 그간 컵 네 개를 샀는데, ‘뭘 네 개나?’ 싶은 구매 내력엔 나름의 사연이 있다.
▶ 그간 거쳐온 나의 월경컵들. 잠깐 쓰고 ‘더러워져’ 버리는 것이 아닌, 추억이 깃든 물건들이다. ⓒ하리타
처음 컵을 샀을 땐 사용법을 제대로 익히기도 전에 성질만 급해서 손잡이를 싹둑 잘라버렸고, 사이즈도 너무 작았다. 내 질 내부는 사실 꽤나 널찍했던 모양이다(!)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에게 추천하는 사이즈가 내겐 턱없이 작았다. 오, 의외의 발견.
두 번째로 산 월경컵은 한국에 가져갔을 때 자매들에게 보여주려고 꺼내놨는데, 잘 씻은 컵에 남은 미세한 피 냄새를 감지한 우리 집 개(평소 속옷 페티시가 있는 놈)가 훔쳐가 손잡이를 질겅질겅 씹다 끊어버렸다. 이후 똑같은 제품을 다시 샀는데, 이번엔 끓는 물에 소독하다 건망증상이 나타다 한참 뒤 물은 다 끓어 없어지고 한쪽이 그을린 실리콘 컵만 덩그러니 발견했다.
두 달 전, 앙증맞은 고리가 달린 오렌지색 L사이즈 메**컵에 정착했다. 이 모든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그 간의 월경컵 탐험은 즐거웠다. 냄새, 피부발진, 쓰레기가 없어 월경이 훨씬 자유롭게 긍정적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이 좋은 월경컵이 왜 이렇게 보급이 안 되어 있을까?
월경컵의 신나는 확산
중세 시대 그 망할 ‘정조대’ 중엔 아랫부분에 컵을 끼울 수 있는 디자인이 있었을 정도로 월경컵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도구들은 이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실리콘 재질의 현대적인 삽입형 월경컵은 1980년대에 첫 선보인 이래 더디게 성장해왔다. 왜? 이름만 들으면 아는 다국적 위생용품 기업들이 생리대와 탐폰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일회용품과 간편용품으로 반복적인 소비를 유도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아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견물생심, 생산(제조, 유통, 마케팅)이 소비를 유발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바쁜 일상에서 당장 떨어지는 월경혈을 받아내야 하는 여성소비자들은 각종 화학물질 덩어리인 생리대와 탐폰을 높은 가격으로라도 사 쓸 수밖에 없다. 또 그게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마저도 사지 못하는 국내 저소득층 여성들의 현실은 충격적이다.)
월경에 대한 오해와 편견, 금기를 더 견고하게 하는데 일등 공신인 생리대 광고를 참고 봐줘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월경의 불편함을 표현하지 않고 방실방실 웃으며 침대를 뛰어다니는 소녀들이 나오는 생리대 광고. 출혈의 붉은색 대신 희게 표백한 ‘순결’만 세뇌시키는 광고들. 이러한 총체적 난국에서 여성에게도 지구 환경에도 지속가능한 ‘착한’ 월경컵은 여러모로 들어설 자리가 좁았을 것이다.
▶ 월경컵을 사용하려면 우선 잘 접어야한다. 네 가지 접는 방법을 소개한 사진. 나에겐 첫번째 펀치다운이 잘 맞는다. ⓒ출처: blueberrysegments.com
일회용 생리용품과 비교하면 한참 열세지만, 그래도 월경컵은 계속 뜨고 있다. 오늘날엔 20개 이상의 제조국과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브랜드가 시장에 나와 있다. 월경컵 회사들의 마케팅과 경영철학에서 자주 눈에 띄는 부분은, 환경호르몬에 노출된 요즘 여성들의 건강에 대한 문제 제기와 아직도 월경을 부끄럽고 불결한 것으로 치부하는 사회분위기를 개선하자는 메시지다. 그리고 생리대가 없어 월경 때마다 학교를 가지 못한다는 저개발국 시골 여성들을 위한 후원 정책도 빼놓을 수 없다. 이쯤 되면 단순히 상품을 사고파는 게 아니라 일종의 여성주의 캠페인이라고 봐도 되겠다.
앞으로는 사회제도적 지원이 부지런히 따라와야 월경컵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다. 직접 확인은 못했지만 북유럽 여자화장실엔 변기가 있는 칸 안에 작은 세면대가 딸려있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공공 화장실에서 월경컵을 비우고 다시 넣기 전, 물로 헹굴 수 있도록 한 배려다. (그렇지 않으면 병에 물을 담아 들어가야 한다.) 반면 한국에선 월경컵이 식약청 검사대상에도 못 올랐다고 한다. 생리대는 의약품인데 컵은 아직도 공산품으로 분류해서다. 인터넷에서 입소문이 나고 정보가 많아진 건 좋지만, 보다 공식적인 채널에서 월경컵이 많이 소개되고 논해졌으면 한다.
독일의 경우 생활용품 대형체인 생리용품 코너에서 일부 제품을 찾아볼 수 있고 자체 브랜드들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마이너리티다. 내가 참여하는 동네 페미니즘 모임에서 다음 주 월요일에 ‘나의 월경과 나’(Meine Menstruation und ich)라는 제목으로 워크숍을 진행한다. 우리는 모 월경컵 회사에서 제품 샘플과 교육용 키트를 신청해 받았고, 월경에 좋은 허브티와 스트레칭도 시범 보이기로 했다. 우리끼리 먼저 해보고 나서 지역 사회복지센터에 공간을 잡아 10대 중반~20대 초반 여성들을 불러 모으는 자리도 마련하기로 했다. 설렌다. (하리타) Feminist Journal ILDA
'경험으로 말하다 >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르노그래피 말고 섹슈얼 판타지! (1) | 2016.12.23 |
---|---|
클리토리스, 정말 대단한 그녀 (0) | 2016.12.07 |
여성의 ‘월경’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들 (0) | 2016.11.19 |
어떻게 하면 월경과 화해할 수 있을까? (0) | 2016.10.23 |
나의 월경 이야기 (0) | 2016.10.06 |
“No Bra No Problem” 브라를 벗다 (1) | 2016.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