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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그래피 말고 섹슈얼 판타지!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독일에서 몸해방 프로젝트⑨


※ 독일에 거주하는 하리타님이 심리치료 과정을 거치며 문화적, 사회적, 제도적 차이 속에서 새로운 관계 맺기와 삶의 변화를 통해 탐색한 섹슈얼리티 이야기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몸해방 프로젝트” 편.  Feminist Journal ILDA 

 

또 하나의 자위 테마 ‘여성 사정’

 

몇 달 전 여자들끼리 모여 ‘여성 사정’(female ejaculation) 워크숍을 열었다. 맞다. 극치의 쾌감 상태에서 성기를 통해 액체를 분출하는, 그 사정(射精)이다. 이는 여성들의 주체적인 자위에서 또 하나의 짜릿한 탐구 주제가 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흔히 접해온 주류 성교육이나 성의학은 철저하게 여성의 자궁, 즉 아이를 낳는 재생산 기능 중심으로 짜여있었다. 지금도 순수하게 쾌락을 위한 섹스에 대한 담론에는 여전히 인색하다.

 

따라서 우리의 워크숍은 상세한 일러스트와 함께 여성 생식기를 다시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자궁을 중심으로 양쪽에 난소와 나팔관이 퍼져있고 아래로 질이 이어지는, 늘 보던 그 그림이 아니다. 대신 질을 중앙에 놓고 아래에서 위로 혹은 측면에서 바라본다. 비로소 대음순과 바깥까지 넓은 신경과 조직을 뻗친 클리토리스와 질 깊은 곳 조직들이 존재를 드러낸다. 바로 ‘여성 사정’의 열쇠를 쥔 기관들.

 

▶ 아래서 올려다 본 관점의 여성 생식기. 빨간색 부분이 클리토리스. 보라색 부분은 항문, 질, 요도. ⓒ출처: IPSA

 

사정 매커니즘을 보려면 여성의 전립선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전립선은 발기되는 조직이며 요도 주변에 위치해있다. 무수한 분비선과 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정 시 액체가 바로 이 분비선들에서 나와 요도로 배출된다.

 

질 안에서 전립선이 가까이 있는 천정부 조직(흔히 G-spot이라 부르는 그 부위)을 계속 문지르다 보면 곧 오줌 쌀 것 같은 느낌이 오는데, 학습된 수치심 따위 던져버리고 ‘더 이상 못 참겠는’ 그 한계를 에라 모르겠다, 하고 넘어가면 쏴-하고 나온다. 뿜어져 나오는 액체는 요도에서 나오지만 오줌과 다르다. 반투명하고 살짝 노란빛을 띄며 점성은 없다. 체액이 다 그렇듯 냄새나 맛은 몸 상태에 따라 늘 조금씩 바뀌지만, 주 성분은 기분을 안정시켜는 신경물질인 세로토닌과 글루코스(포도당)라고 알려져 있다. 사정은 오르가슴과는 별개로 일어날 수 있다.

 

얼굴을 마주보고 있진 않지만, 어쩐지 말하는 나도 듣는 독자들도 좀 어색한 것만 같다. ‘여성’과 ‘전립선’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부터가 낯설다. ‘뭘 이런 것까지 해봐야 되나’ 싶은 사람들도 분명 많으리라. 예전에 호기심에 “여자도 사정이 가능”을 검색어로 웹서핑을 한 적 있다. 그 때 문답 사이트나 블로그에 회자되던 것은 대부분 여자친구를 사정할 때까지 사정없이 사로잡았다는 남자들의 무용담이었지, 여성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은 못 봤다.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다 그랬듯, 여성 사정도 가부장제 사회에서 등한시되거나 아예 은폐되어왔다. 모든 지식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성적 쾌락을 밝혀선 안 되고, 다만 건강한 아이를 낳아야 하는 여성의 몸에서 사정은 권장되지 않았고, 잊혀졌다. 예외적으로 성애에 관한 고대 인도의 문헌인 카마수트라나 아프리카 우간다에서는 여성의 사정도 남성과 동등하게 중요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다.

 

▶ 빨간 동그라미로 표시된 부분이 ‘지스팟의 대략적 위치’란다. 요도(urethra) 바로 아래쪽이다. ⓒ출처: enkivillage.com


다음으로 그럼 ‘거기’를 어떻게 문지를 것인가, 테크닉을 논할 차례. 경험자들의 증언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단 마음의 안정과, 싸도 된다는 자기 확신이 중요하다는 얘기. 클리토리스 오르가슴을 몇 차례 먼저 맞이하고 질 조직이 한창 부풀어 올라왔을 때 하면 부위를 잘 찾을 수 있다는 조언. 오줌이랑 약간 섞여서 나오는 것 같다는 의혹까지….

 

지스팟(G-spot) 말고 다른 이름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호응을 얻었다. G는 처음 그 부위를 ‘발견’해 이론화한 남성과학자의 이름을 딴 것이라 기분 나쁜 연상이 되기도 하고, 사실상 콕 집어 한 점(spot)이 아니고 영역(area)인데, 이름 때문에 마치 정형화된 스위치가 있는 양 오해하기 십상이라는 게 그 이유다. 하여간 페미니스트로 살려면 작명센스까지 갖춰야 한다. 다시 지어야 할 이름이 너무 많아서.

 

사정하는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도 종종 누리고 싶다면, 이제 해야 할 것은 골반운동. 골반 근육이 잘 발달해 있으면 어떤 자위도 내 맘대로 오래 할 수 있다. 특히 조이고 풀어주는 움직임을 자유자재로 하고 싶다면 역시 ‘케겔 운동’(질 주위 근육을 조였다 펴기를 반복하는 골반근육 강화 운동)이 제격이다. 한국에선 신문마다 꼭 하나씩 있는 부부 대상 ‘건전한’ 성상담 칼럼에 단골로 등장하는 바로 그 케겔. 워크숍 참여자들이 다 같이 일어나서 연습해봤다. 너무 웃긴 와중에 한편으로 가슴이 찡해진다. 아, 내가 먼 독일까지 와서 뭇 여성 동지들과 사정 기술까지 연마하다니…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명상법으로서의 자위

 

탐진치(貪嗔恥,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불교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세 가지 번뇌)를 끊겠다고 성욕은커녕, 모든 섹슈얼리티를 부정한 채 매일 명상에 임하는 수행자들이 들으면 어이없어 헛웃을 얘길 꺼내본다. 나는 명상법으로서 자위를 한다.

 

나는 언제 명상이 절실한가? 일상의 온갖 잡다한 일들에 치여 몸과 마음이 지칠 때. 그 피로가 쌓여 우울과 짜증, 허무와 분노가 되려할 때. 인생의 교차로 같은 중대한 의사 결정을 앞두고 숙고와 통찰이 필요할 때. 연이은 카페인 섭취로 몸의 감각에 무뎌져 몸-마음 접촉을 회복하고 싶을 때. 하루하루가 허무하고 지루해 어딘가 다른 차원으로 바람 쐬고 오고 싶을 때. 이럴 때 생각(명; 想)을 잠재우고자(상; 冥)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 오르가슴을 찾는다.

 

▶ 나의 자위 명상에 쓰이는 도구들. 명상 입문 수업을 해주신 말레이시아 스님이 주신 염주 팔찌도 같이 놓았다. 주신 분의 의도는 결코 아니겠지만.  ⓒ하리타

 

조용하고 은은한 방에서 편안히 누워 하는 게 보통이지만, 때로는 창문을 열어 찬바람을 들이거나 촛불과 향을 피우고 음악을 잔잔히 틀어놓기도 한다. 수차례 시원한 해일과 들끓는 용암을 지나고 나면 즉각적인 스트레스 완화 효과가 나타난다. 머릿속이 맑아지고 호흡이 깊어지고 여기저기 결리고 쑤시는 만성 근육통도 잠시나마 가라앉는다. 진공 같은 고요 속에서 혼란이 걷히고 답이 보인다. 열에 아홉, 우리 안에는 답이 있다. 다만 번잡함 속에 가려져 있어 확신하지 못할 뿐.

 

이는 오르가슴이 주는 희열감에 오롯이 나를 맡긴다는 점에서 명상의 종류 중 집중 명상(concentrative medit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자위에서 오는 감각을 두고 가타부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마음 챙김(mindfulness meditation) 명상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이에 대해 과학적 설명도 가능하다. 오르가슴 때 시상하부-뇌하수체에서 행복감과 관련된 호르몬과 화학물질이 나와 온몸에 퍼지니 그 효과가 가히 좋게 마련이다.

 

문득 오랜 궁금증 하나가 풀린 듯하다. 불교에서 성욕(性欲)을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꾸만 더 갖고 싶어지는 ‘욕구’이기 때문이지, ‘성性’ 자체를 문제시 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저 한자를 들어다보라. ‘인간’과 ‘생명’ 두 요소가 들어있을 뿐이다. 성감은 근본적으로 생명에너지다. 그렇지 않다면 성기관을 통해 재생산 뿐 아니라 쾌락도 얻을 수 있도록 신체가 디자인된 이치를 어찌 설명할 것인가. 성은 자연스러운 것이나, 다만 성감의 실현에 있어 온갖 잡다한 것들을 다 끌어들여 ‘욕’으로 치닫는 것을 경계하라는 의미 같다. 일개 중생인 나의 소박한 해석이다.

 

여성들의 성적 판타지

 

자위하면 포르노그래피가 거의 자동으로 연상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포르노 콘텐츠 생산과 소비에 반대한다. 대부분의 포르노그래피가 남성제작자에 의해 남성소비자를 만족시키고자 남성적 시선과 남성들의 판타지를 구현하는데, 포르노를 보며 나도 모르게 이를 내면화하고 싶지 않다. 이 사회에서 여성은 이미 남성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도록 길들여졌다. 여성이 자기 몸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는 가르치지 않지만 어떻게 ‘보여져야’ 하는지는 속속들이 지적하는 촘촘한 억압 사회에 포르노도 한 몫을 한다고 본다.

 

LGBTQ+를 겨냥한 콘텐츠나 페미니스트들의 패러디물도 조금씩 나오고는 있지만, 여전히 극소수. 포르노그래피는 어떻게 해도 인스턴트 음식처럼 맛없고 작위적인 것 같다. 그 자극적인 콘텐츠의 잔상이 머리에 남아 상상력이 빈곤해진다면… 얼마든지 창조적 자위가 가능한데 타성에 젖어 빤한 레퍼토리만 반복하게 될까봐 끔찍하다. 내 입장이 이러하다보니 어쩌다 배너광고로 지나가는 포르노에도 흥분되거나 호기심이 일기는커녕 화만 난다. 또, 포르노 산업으로 흘러가는 천문학적인 검은 돈, 콘텐츠 생산 과정에서 배우 등의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도 포르노 반대의 이유가 된다.

 

▶ 1973년 처음 출간된 낸시 프라이데이의 책 <My Secret Garden> 중에서 Fred Aris 작품 <고양이와 여자>(Girl with Cat)를 표지로 넣은 판본. ⓒ출처: s73.photobucket.com


대신 섹슈얼 판타지(성적 환상)와 함께하는 자위는 어떨까? 1973년에 이미 낸시 프라이데이(Nancy Friday)는 섹스판타지를 적은 여성들의 편지를 공개모집해, 그 다채로운 이야기를 수집해 책 <My Secret Garden: Women’s Sexual Fantasies>(한국어 번역본 없음)을 펴냈다. 저자는 자신의 해석이나 토론은 별로 넣지 않고 수집한 이야기들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치밀한 구성을 통해 엮은이 역할을 잘 해낸 것 같다.

 

예를 들어 책의 2장 “왜 판타지인가?”(Why Fantasies?)에서는 여성들이 성적 판타지를 갖는 것이 현실 성생활에서의 불만족, 좌절, 공상, 그리고 자위 등의 이유 때문임을 보여준다. 판타지의 공통적인 원천이 무엇인지도 밝힌다. 수집한 판타지들을 다양한 테마별로 묶었다. 익명성, 관중과 훔쳐보기, 고통과 마조히즘, 지배, 공포나 금지로 인한 스릴, 변태(transformation), 어머니 지구, 페티시즘, 근친상간, 강간, 동물과의 교접, 흑인남자들, 어린 소년들, 레즈비언 섹스, 성매매…. 별의 별게 다 있다.

 

문체도, 화자도, 분위기도 제각각인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때로는 그 괴기함과 변태성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고, 가감 없는 날것의 묘사와 발랄한 재치에 쑥 빨려들기도 한다. 얼마 전 친구들과 이 책으로 낭독회를 했을 때, 돌아가면서 책 구절을 읽는 것 외엔 우리 모두 눈에 띄게 말수가 적었다. 모종의 미소만 수시로 오고갔다. 다들 머릿속으로 활자를 시각화하기 바빴으리라. 그렇게 읽고 듣는 것만으로도 성욕이 충족되는 경험을 했다. 1970년대 초반에 이 책이 미국사회에서 일으켰을 파격과 돌풍, 상상만 해도 즐겁다. 최근에 개정판이 나왔는데 몇몇 테마는 식상해졌을 테고, 또 새로 추가된 테마도 있지 않을까.

 

몸의 원초적 에너지를 끌어올리며

 

테마가 저리 다양하건만, 내가 제일 아끼는 섹슈얼 판타지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명명하자면 이건 ‘대자연과 교감하는 여자’ 컨셉이라 할 수 있다. 남자나 여자, 안드로진이나 바이젠더, 혹은 특정 권력자나 배우, 사촌, 이웃남자, 동네 아이, 노인, 낯선 여자 하다못해 말이나 돼지까지…. 대부분의 섹슈얼 판타지는 어떤 대상과의 성적인 상황과 행위를 그려낸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섹스도 등장하지 않는 이 판타지가 내겐 제일 섹시하다.

 

나는 우레와 같은 소리로 떨어지는 거대한 폭포 아래 서 있다. 휘영청 눈부신 보름달을 향해 새하얀 부엉이와 칠흑 같은 숲속을 나신으로 질주한다. 거대한 독수리의 황금빛 깃털을 손에 쥐고 까마득한 절벽을 하강한다. 뜨거운 여름 태양이 덥혀놓은 수천 겹 초록빛으로 가득한 연못물 속에서 매미와 개구리들의 합창을 듣는다. 천둥번개 치는 광활한 벌판, 홀로 선 수백 살 고목이 푸른빛으로 타닥이는 전기를 모조리 제게 빨아들일 때, 내 몸은 솜털 하나까지 다 곤두선다. 환상 속에서 나는 온 몸을 내던져도 티끌 하나 상하지 않고, 먹고 자고 마시지 않아도 영원히 싱싱하며, 언어 없이도 외롭지 않고, 추위도 모른 채 언제나 모조리 벌거벗었다.

 

▶ 내 방에 걸린 Keli Clark의 작품 <달 끌어오기>(Drawing Down the Moon)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의 켈틱아트샵에서 찾아냈다. 내 판타지의 원천이 되어준다.  ⓒ 하리타

 

압도적인 대자연 속에서 거칠 것 없이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상상, 자연물과 온전히 하나가 되어 신적인 힘을 누리는 환상. 자연과 인간의 이분법이 마침내 무너지는, 나의 이 경이로운 초현실세계. 오르가슴으로 가는 특급열차다.

 

이제와 같이 앞으로도, ‘자위하는 여자’가 당연해지기까지는 백 번의 월담과 천 번의 자기 긍정과 만 번의 오르가슴이 있어야 할 테다. 그 날이 와도 어떤 여자는 자위를 하고, 어떤 여자는 안할 것이다. 굽이치는 삶의 강을 떠내려가며 우리는 때로 자위에 미쳤다가 또 가끔은 시들해지겠지. 해도 좋고 안하면 또 어때. 자기 몸의 원초적 에너지를 존중하는 선택이라면 다 좋다.

 

다만 할 땐 진짜로 하자. 하늘이 듣고 땅이 울리도록 크게 신음하고 깊이 탄식하고 자꾸만 전율하자. 그렇게 우리, 진짜로, 자주, 한없이 자유롭자.  (하리타)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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