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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당한 통증, 월경통

<반다의 질병 관통기> 통증을 설명하는 언어


※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반다의 질병 관통기> 연재입니다.   Feminist Journal ILDA


“매달 지옥에 다녀와요. 월경통이 사회적으로 인정돼야 해요, 질병으로요!”

 

▶ 많은 여성들이 원인불명의 월경통을 앓고 있다. ⓒ이미지: 조짱


그의 목소리가 약간 떨린다. 간절함이 느껴진다. 사실 월경은 대부분의 여성 몸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이니, 질병은 아니다. 하지만 그로 인한 통증은 질병일까, 아닐까? 통증 자체가 질병으로 명명될 수 있는 것일까?

 

그는 월경기간 내내 배가 날카로운 송곳에 찔리는 것 같다고 한다. 허리나 골반 통증은 말할 것도 없고, 머리에는 딱따구리가 집을 짓고 있는 느낌이란다. 진통제를 안 먹으면, 출근은 엄두도 못 내고 통증 때문에 방을 굴러다니게 된다. 초경 이후 월경통은 항상 찾아 왔고, 여러 차례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했지만 모든 게 ‘정상’이라는 진단을 들었다. 병원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한의원도 가봤지만, 한약을 지어먹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건 진통제뿐이다.

 

그는 월경이 시작되기 전날부터 진통제를 예방 차원에서 먹기 시작해서, 마지막 날까지 빠짐없이 먹는다. 약효가 지속되는 네 시간 단위로. 잠들기 전에는 알람을 맞춘다. 밤 10시에 약을 먹었는데 11시에 잠자리에 든다면, 새벽 2시와 6시에 알람을 맞춘다. 자다가 일어나 약을 먹고 다시 잔다. 진통제 없는 월경은 상상할 수 없다. 진통제를 한 달에 20알 넘게 먹는데, 내성이 생겨 이마저도 언젠가 안 듣게 될까봐 두렵다. 그가 내성만큼 두려워하는 건, 고립감이다. 자신의 고통을 설명할 언어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의 월경통이 ‘다들 하는 월경’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자궁근종이나 자궁선근증 같은 질병으로 인한 것이라면 어땠을까. 아마 그 자신도, 다른 사람들도 그 끔찍한 통증을 납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월경통에는 원인이 없다. 산부인과 검사에서는 언제나 모든 게 정상이라고 나온다. 그는 정상이라는 말에 안심이 되는 게 아니라 더욱 속이 상한다. 자신이 생각하기엔 이 끔직한 고통에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원인을 못 찾는 것 같아 답답하고, 타인이 보기엔 원인이 없으니 그의 통증을 의심하기도 한다.

 

예민하다, 기도해라…이해받지 못하는 통증

 

그는 의심 담긴 시선이 제일 싫다고 말한다. 중고등학교 때 월경통 때문에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양호실에 가겠다고 하면 교사들은 꾀병 아니냐는 눈길을 보냈고, 친하지 않은 친구들은 혼자 편히 쉰다고 쑤군거렸다. 직장인이 돼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성 상사들은 직장여성에게 연약함은 미덕이 아니라며 참을성을 길러 보라고 충고한다. 여성 동료 한명은 때마다 특별대우를 받으려 한다며 비난의 시선을 보낸다. 월경통의 생물학적 통증 외에도 매달 일상이 무너진다는 게 힘들지만, 이렇게 자신의 통증이 이해받지 못한다는 고립감도 큰 괴로움이다. 고통의 세계에 혼자 감금당한 것 같다.

 

그는 특히 의사들의 태도를 설명할 때 분노를 표했다. 의사들은 검사 결과가 정상인 걸 확인할 때마다 ‘평소에 예민한 성격이냐’, ‘가족이나 친구관계는 원만하냐’고 묻거나, ‘월경통은 누구나 겪는 일이니 마음 편히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치민다. 누구나 겪는 월경통을 과도히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 혹은 마음 편히 가지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건데 유난 떠는 사람 취급 받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그의 극심한 월경통에 대해 기질적 원인을 찾을 수 없으니, 심인성(心因性)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 편히 가지라는 얘기 밖에 할 수 없었을 텐데, 그의 귀에는 자신의 성격이 문제라서 아픈 거라는 식으로 들리니까 화가 날 수밖에 없다.

 

▶ 월경통을 호소할 때 듣게 되는 이야기   ⓒ이미지: 조짱

 

나는 월경 전 증후군이나 월경통을 거의 겪지 않지만, 그의 심정을 이해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막내 동생이 극심한 월경통으로 고생하는 걸 오랫동안 지켜봤기 때문이다. 동생은 초경 이후, 월경 때마다 구토를 하고 극심한 복통을 겪었다. 여러 병원에 가봤지만,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와 심인성일 수 있다며 마음 편히 가지라는 말만 들었다. 그러다가 20대 중반 어떤 한의원에서 6개월 가까이 치료를 받은 후, 지금까지 10년 넘게 편안히 월경을 맞이한다. 만약 산부인과 의사 말대로 동생의 월경통이 심인성이었다면, 한약이 마음을 치료했던 것일까. 아니면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환자의 긍정적 믿음으로 인해 병이 치료되는 효과)였던 것일까.

 

나는 그에게 막내 동생이 월경통을 고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속상했던 게 그뿐이 아니었다며 열을 올린다. 나는 그가 동생이 갔던 한의원이 어딘지 물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신체적 통증만큼 사회적 시선에 의한 통증이 깊었음이 느껴졌다. 그는 자신의 월경통이 저주로 여겨진 적도 있었다며 10대 시절 다닌 교회 얘기를 했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당시는 꽤 심각하게 고민했다면서.

 

당시 그를 비롯해 몇몇 여성 신도가 월경통으로 인해 한번 씩 교회에 빠지는 것을 알게 된 목사님은, 여성의 월경통은 ‘원죄에 의한 것’이라는 설교를 했다고 한다. 여성이 임신하기 위해 고통을 겪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니, 그럴 때마다 진통제에 의존하거나 쉬지 말고, 교회에 나와 기도로 이겨내야 한다고 했다. 유일한 진통제이자 치료제는 기도라고 하면서.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고, 당혹스럽다. 그게 진정 하나님의 뜻인지, 그 목사님의 독자적 해석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실제 의학사에서에도 비슷한 일화가 있었던 게 기억난다. 19세기 에테르에 의한 마취제가 개발됨으로써 드디어 무통분만이 가능한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일부 의사들이 반대했다고 한다.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창세기 3장 16절)이라는 성경 구절을 근거로, 무통분만은 신의 뜻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신이 여성에게 내린 원죄에 대한 처벌을 의학이 감면시켜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궁금하다. 무통분만에 반대했던 19세기 그 의사들, 원죄의 처벌로 남성에게 부여된 ‘죽는 날까지 수고해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창세기 3장 17절)이라는 구절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고된 노동으로 통증이나 질병이 발생한 환자가 남성일 경우, 의료적 치료가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을까. 신이 남성에게 내린 원죄에 대한 처벌을 의학이 감면시켜줘서는 안되므로. ‘남성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경운기, 트랙터의 상용화도 반대했을까. 신의 뜻에 위배되는 것이니까?

 

월경통은 과연 주요하게 연구되었을까?

 

어쨌거나 그가 극심한 월경통은 하나의 질병이라며, 사회적 인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의 월경통은 의료의 ‘공식 인정’이 있어야만 세상과 소통할 언어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의료화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통증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 양 취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말대로 월경통을 질병으로 인정하려면 발생 원인을 설명하는 게 필요할 텐데, 별도의 원인이 없는 월경통은 월경 자체가 발생기전이 된다. 그렇다면 여성 몸의 자연스런 현상인 월경을 병리화하게 된다. 월경을 병리화하는 건 위험하다. 여성 몸을 ‘비정상'으로 규정하게 되고, 의료가 통제할 영역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느끼는 답답함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그는 자신이 겪는 고통이 예민함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인내심을 갖고 참으면 되는 게 아니라, 일상을 찢는 생생한 고통임을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자신이 겪는 고통이 질병으로 인정되면 치료법이 개발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을 게다. 수많은 여성들이 겪는 원인불명 월경통을 간단히 심인성으로 분류하게 되면, 개인이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로 귀결될 뿐 의료적 대안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성 몸에 한정된 증세나 질병에 관한 의료적 태도에 대해, 항상 의심의 눈초리를 갖는다. 여성의 월경통에 대해서도 그렇다. 의료계에서는 여성환자들이 남성환자들에 비해 더 많은 통증을 호소하고, 건강에 대해 더 많은 염려를 한다는 인식이 많다고 한다. 실제 여성환자들이 통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거나, 더 많은 통증 질환을 호소를 한다는 자료들이 있으니 그런 인식이 터무니없는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여성환자는 으레 그런식이라는 시선으로 진찰이 이뤄진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환자가 통증을 호소할 때 성별에 따라 치료가 달라진다고 한다. ‘남성이 통증을 호소하면 진통제, 수술, 완벽한 검사 혜택 등을 누릴 가능성이 크지만, 여성이 통증을 호소하면 우울증과 불안을 치료하는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받는다. 같은 진단 결과가 나온 환자에 대해 여성은 항우울제를 처방받을 확률이 남성보다 82% 높았으며, 항불안제를 처방받을 확률은 37% 높았다.’(멜러니 선스트럼 <통증연대기> 198쪽) 여성의 통증 호소는 심인성으로 더 쉽게 치부되고, 그로 인해 적절한 치료를 못 받기도 한다는 의미다.

 

월경통은 여성만 겪는 통증이니, 심인성으로 취급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산부인과 의사들이 월경통에 대해 심인성이라고 말할 때는, 검사에서 이상 증세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의구심을 갖는 지점은, 여성들은 원래 통증에 민감하다거나 여성의 통증 호소는 대체로 심인성이라는 인식이 월경통 연구에 미친 영향이다. (나는 과학이 절대적 객관성을 담보하길 바라지만, 이미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열심히 설명해 줬듯 과학은 가치중립적 영역이 아니다.)

 

즉 여성환자에 대한 그런 인식이 전제 되어 있기 때문에, 의료가 월경통이라는 증세를 상대적으로 가볍게 수용해 버린 건 아닐까. 그러니까 의학은 환자들의 경험을 반영한 여러 가설 속에서 발전하기 마련일 텐데, 여성의 월경통 경험이 진지하게 경청되고 적극적으로 반영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월경통이 보다 깊이 있게 연구되고, 치료제가 개발될 기회가 더 적었던 건 아닐까라는 의혹이 든다는 의미다.

 

▶ 월경통을 포함한 여성의 경험은 여전히, 더 많은 말하기가 필요하다. ⓒ이미지: 조짱

 

월경통, 더 많은 말하기가 필요하다

 

의료에서 여성의 통증 호소가 보다 쉽게 심인성으로 취급되는 것은, 여성을 대하는 사회적 태도의 반영일 것이다. 여성의 경험과 말은 사소하고 이성적이지 않다는 규정. 여성은 보다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존재라는 견고한 규정. 여성이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그야말로 ‘히스테리’(자궁을 뜻하는 그리스어 히스테리아hystera에서 유래)라고 비하해온 그 뿌리 깊은 규정이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여성에 대한 그런 ‘규정’으로 인한 의료적 현실을 어떻게 뚫고 나갈 수 있을까. 월경을 하는 동안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이가 있다면, 그 통증은 당사자가 호소하는 만큼의 강도와 크기로 ‘실재’하는 것이다. 그게 심인성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 통증은 사회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대부분의 여성이 하는 월경’이라고 해서, 누군가의 극심한 월경통이 통증으로 덜 존중받을 하등의 이유는 없다. 수많은 여성들이 월경을 하지만, 그 경험은 모두 다르다. 개인마다 발생하는 통증의 양상과 정도가 다르고, 동일한 통증도 다르게 느낄 수 있다. 통증을 인지하고 조절하는 신체 조건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월경통을 포함한 여성의 경험은 여전히, 더 많은 말하기가 필요하다. 우리의 경험과 언어를 모으고 연대함으로서, 여성의 경험을 일방적으로 규정한 그 권력을 재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반다)  Feminist Journal ILDA

 

[참고문헌]  메리앤 J.리가토 <이브의 몸>,  멜러니 선스트럼 <통증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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