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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나 부모님만 서명할 수 있어요”
<반다의 질병 관통기> 도대체 수술동의서가 뭐길래?
※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반다의 질병 관통기> 연재입니다. -
얼마 전 수술을 하기 위해 입원을 했다. 수술 동의서에 본인 서명을 마치고, 동생이 보호자란에 서명하려고 하자 담당 간호사는 손사래를 친다. 보호자 서명은 남편이나 부모만 가능하단다. 몇 주 전에 수술 전 검사를 하러 왔을 때 들었던 내용이긴 했다. 하지만 전신마취를 한다고는 해도 크게 심각한 수술도 아니고, 예전에 다른 병원에서 암 수술을 할 때도 언니가 서명을 했던 터라 당연히 가능할 줄 알았다. 그런데 담당 간호사는 이 병원 규칙이라며 완고했다. 결국 두 시간 뒤 어머니가 병원에 도착해서 서명한 뒤에야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수술을 마치고 어머니의 근심 어린 눈빛을 마주하는 게 수술 후 통증만큼이나 불편하다. 나름 내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는데, 이럴 때마다 부모님 앞에서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다. 부모님은 완연한 노인이 되었고, 이제는 내가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어 줄 위치다. 그런데 이렇게 보호자 란에 부모님 서명을 쓰고 입원할 때마다, 남편에게 ‘승계’되지 못해서 아직도 부모님 손이 필요한 ‘미숙한’ 존재가 되는 것만 같다. ‘결혼도 안하고 경제력도 변변치 않은데 아프기까지 한 근심덩어리 자식’, 부모님의 옅은 한숨을 만난다.
▶ 수술동의서 보호자 서명 앞에서, 답답함을 느꼈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미지: 조짱
‘보호자 서명’ 앞에서 갈등하고 절망하는 이들
주변에서 나름의 이유들로 수술동의서 보호자 서명 앞에서, 답답함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작년에 자궁근종 수술을 앞둔 지인은 수술동의서 보호자 서명 때문에 1년 만에 동생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가정폭력이 심각한 환경에서 성장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와는 연락을 끊었다. 동생과는 몇 년에 한 번 안부를 묻는 게 전부인 관계다. 하지만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보호자 서명이 필요했고, 어쩔 수 없이 동생에게 연락을 했다. 시골에 사는 동생이 월차를 내고, 네 시간 가까이 운전을 하고 병원에 와서 서명을 하고 갔다. 그는 자신에게 가족은 ‘보호’ 관계인 적이 없는데, 왜 가족에게만 보호자 서명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지 답답하다고 했다.
사실 한국에서 두 가족 중 한 가족은 폭력 경험이 있을 정도라고 하니, 가정폭력과 가족구성원들의 갈등은 특수라기보다는 보편에 가깝다. 많은 이들이 잘 말하지 못할 뿐 배우자에 의해, 부모에 의해, 자식에 의해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폭력을 경험한다. 그게 일회적이든 지속적이든, 경상의 폭력이든 살해의 위협이든 간에 가족 관계에서 폭력이 흔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가정폭력보다 더더욱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아 있는 친족 성폭력의 현실까지 포함한다면, 보호와 돌봄의 공간으로서의 가족은 더 협소해진다.
다른 지인은 수술동의서를 계기로 삶의 방향을 우회했다. 그는 이성애자 커플이었고, 상대방과 함께 살고 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둘 다 가부장적 결혼 제도와 관습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입원했을 때, 동거인은 수술동의서에 서명할 수가 없었고, 임대아파트에 당첨됐지만 가족관계가 아니면 함께 살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난감한 현실을 반복적으로 겪었다. 이 커플은 결국 동거 6년 만에 혼인신고를 했다. 그 친구는 개인의 신념을 지키며 살기에 이 사회는 너무나 획일적이라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수술동의서 앞에서 절망을 느끼는 상황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동성커플이다. 몇 해 전 공개 결혼식을 올린 이후 동성결혼 법제화 투쟁을 하고 있는 김조광수 감독이, 한 강연해서 했다는 이야기가 기억난다. 그는 결혼 전 수술을 할 상황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랜 파트너인 김승환씨가 보호자 서명을 할 수 없었고, 결국 직계가족이 병원에 도착한 이후에야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이 일이 결혼을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물론 법적으로 인정된 혼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후에도 김조광수씨가 다시 수술대 위에 눕는 상황이 됐을 때 파트너 김승환씨는 법적 보호자 위치로 서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담당 의사가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명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수술동의서를 둘러싼 미심쩍은 이야기가 여러 틈새에서 쏟아져 나온다. 어떤 이는 오랫동안 간병해온 어머니의 수술동의서에 서명하려고 했더니, 남자형제가 있는데 결혼한 딸이 서명하는 건 안 된다고 제지당했다. 출산을 하기 위해 입원했을 때, 친정부모는 서명 권한이 없고 남편과 시부모만 가능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1인가구인 친구가 갑자기 입원을 해서 수술동의서에 서명하려고 갔더니, 가족이 아니면 입원보증금 몇 백만 원을 내라고 요구받았다(입원보증금은 불법이다)는 얘기 등등.
가부장적 관습이 담긴 수술동의서
도대체 수술동의서가 뭐길래, 우린 이렇게 많은 갈등과 서성임을 겪어야 하는 것일까? 수술동의서에 관한 규정을 찾아봤다. 그런데 나로서는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우선 수술동의서는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고, 병원이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관행’이라는 것이었다.
법적으로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수술 내용, 합병증, 후유증 등을 사전에 설명하도록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에, 병원은 해당 내용을 설명했다는 걸 증빙하기 위해 수술동의서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의료분쟁이 발생하면 수술동의서를 증거 자료로 활용한다고 한다. 문제는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수술동의서가 병원마다 내용이 제각각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서명 권한이 있는 ‘가족’의 범위 규정도 병원마다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서명 가능한 가족 범위도 그야말로 가부장(家父長)적 관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경우가 아직도 있다. 즉 가족 내에서 환자 몸에 대한 결정권을 누가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아직도 일부 병원들이 남성중심 위계를 전제한 규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려는 게 ‘겨우’ 그 정도만은 아니다.
수술동의서의 본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수술 내용을 포함해서 합병증과 후유증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수술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그런 위험이 현실이 됐을 때, 환자의 본래 질환에 더해진 합병증이나 후유증을 함께 돌보고 책임지며 살아갈 존재가 누구일까? 법이 그것을 ‘정상가족’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도 그들에게만 보호자 서명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 혼인 혈연 유무와 상관없이 ‘동반자 관계’로 삶을 꾸려가는 다양한 가족이 있다. ⓒ이미지: 조짱
애정, 돌봄, 책임을 함께하는 ‘실질적 동반자’
가족을 애정, 돌봄, 책임 그리고 어려움을 함께 헤쳐가는 관계라고 정의했을 때, 누군가에겐 결혼, 혈연, 입양으로 맺어진 ‘정상가족’이 위의 정의와 불일치한다. 오히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위계적이고 일방통행 대화만 있는 관계, 일방적으로 끝없는 노동과 보살핌을 요구 받는 관계, 자주 폭력과 위협에 놓이는 관계 등 함께하고 싶지 않은 가족 속에 사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가족 속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숙명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하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가족’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가치와 삶의 방향을 지지해 주는 이와 동반자가 되어 삶을 걸어가는 이들이 있다. 애정과 돌봄을 나누는 좋은 ‘정상가족’이 있지만, 그 가족이 아닌 내가 선택한 다른 이와 보다 친밀한 관계를 나누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러니까 결혼이나 혈연으로 묶이지 않은 채, 그 관계를 맺어가는 이들이 있다.
커플이지만 결혼 제도가 가부장적이라고 여겨져 결혼 신고를 하지 않는 이들, 동성커플이라는 이유로 결혼 신고를 거부당하는 이들, 성애적 관계가 아니지만 삶의 동반자가 되어 둘이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게다가 요즘은 다양한 주거·생활공동체가 늘어나고 있고, 그 안에서 서로를 소중한 가족으로 부르며 함께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최근 가장 많은 가구 수를 기록한 1인가구는 애정과 돌봄과 책임을 나누는 관계가 ‘정상가족’이 아닐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상가족’과 물리적 거리 때문에, 혹은 ‘정상가족’에게 그런 관계를 기대할 수 없어서, 가까이 있는 다른 관계의 이들과 돌봄과 책임을 나눌 수도 있다.
그들은 질병에 걸렸을 때 ‘정상가족’이 아닌, 바로 ‘그 관계’ 안에서 아픈 몸을 위로 받고 돌봄 받으며 산다. 그들은 수술동의서 서명을 법이 정한 ‘정상가족’이 아닌, 실제 자신 삶의 동반자가 하길 원한다. ‘그 관계’들이 인정받고 수술동의서에 서명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활동반자 관계가 법적으로 인정된다면…
몇 해 전부터 한국에서도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 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법률은 개인 간에 자유로운 합의로 맺어지는 계약관계를 상정한다. 즉,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생활동반자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데, 친족 간 결합으로 인한 인척 관계는 형성되지 않는다. 관계 당사자들은 서로 부양하고 협조하는 의무가 있으며, 가사 대리권을 갖는다. 관계형성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가정법원에 쌍방이 연서한 서면을 제출하는 형태다.
▶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제도는 아픈 이들의 삶에도 절실하다. ⓒ이미지: 조짱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 의료와 관련해서 어떤 변화가 생길까? 우선 비혈연, 비결혼 관계지만 실질적으로 삶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수술동의서에 서명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길 것이다. 환자가 의식을 상실했을 때, 그 환자가 가진 삶의 가치와 지향을 가장 잘 아는 동반자가 의료적 결정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동반자의 간병을 위해 연차가 아닌 가족간병 휴가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동반자를 국민의료보험에 피부양자로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법률이 제정된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의 한숨과 고통이 줄어 들 수 있을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하지만 이러한 법이 제정되는 건 가족제도의 붕괴라며 혀를 차는 이들이 있다. 또 동성결혼 법제화의 길목이라며 반대하는 동성애 혐오세력에 부딪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며, 평등권을 보장함으로서 민주주의에 한발 더 가까워지는 길이다. 법적 ‘보호자’를 아직도 혈연, 결혼으로 구성된 가족으로만 묶어두는 건, 변화하는 개인의 삶과 가치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한 현실이다. 특히나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행복추구권, 자기결정권,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 아픈 이들을 보호하고 안녕을 보장해야 할 제도가 그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생활동반자관계법이 유의미하지만,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언제가 적합한 시기인걸까? 호주제가 폐지되던 때가 떠오른다. 당시도 시기상조라는 논쟁이 많았다. 하지만 호주제 폐지 운동이 열정적으로 진행되면서, 그리고 마침내 폐지된 이후, 바로 그 시기를 즈음하여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쳤던 여아 성감별 낙태가 꾸준히 줄어들었다. 가족 내 여성의 지위와 관련한 직간접 변화가 일어났다. 사회가 변화해서 제도가 변화하기도 하지만, 제도가 변화함으로써 사회 변화를 추동하기도 한다.
아플 때는 다양한 돌봄과 지원이 필요하다. 변화된 삶을 담아내지 못하는 법 때문에 아픈 와중에 또 하나의 고민과 절망을 경험하게 하는 제도, 이제 변화가 시급하다.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지 않고, 변화를 요구하고 추동해 내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걸 잊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정상가족’이 아닌 다양한 삶의 동반자와 함께 치료 계획과 돌봄을 나누는 이들의 더 많은 연대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반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참고자료] 이승준 “수술동의서에 대한 형사법적 제 문제”, 『법학연구』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연구소, 2009
한국계 미국 이민자 '성'의 트라우마, 가족, 중독 그리고 몸에 관한 기록 『남은 인생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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