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여성혐오 사회에서 여성이 리더가 된다는 것

<질문교차로 인문학카페36.5º> 정말 ‘그녀’의 잘못인가요?



※ 춘천에서 인문학카페36.5º를 운영하는 홍승은 씨가 기존의 관념과 사소한 것들에 의문을 던지는 ‘질문교차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나 자신을 믿지 못했던 날들

 

“한 사람의 백 걸음보다 백 사람의 한 걸음이 세상을 바꾸는 거야.”

나에게 처음 사회운동을 알려주었던 선배가 했던 말이다.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연대로 사회가 변화된다는 말. 나는 선배의 말을 가슴에 품고 대안지식공동체, 협동조합, 생활공동체와 같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했다.

 

연대와 화합은 참 아름답고 이상적인 말이었지만, 나에게는 달랐다. 공동체 활동을 하며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냐고 누가 물으면 나는 ‘자신을 믿지 못했던 날들’이라고 답한다. 조직을 일구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교차로 역할을 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의심이 물밀 듯 밀려올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불편함의 중심엔 내 ‘여성성’(이라고 규정된 특성)이 있었다.

 

한 번은 가깝다고 생각했던 남자 후배가 뒤에서 내 욕을 한 적이 있다. ‘승은 누나는 너무 감정적이어서 카페 앞날이 걱정된다’며 세 시간 내내 험담을 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그 후배가 평소 존경하던 형이 나와 같은 의견인 걸 알고는 ‘형은 원래 이성적인데 누나랑 어울리면서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말한 것이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나는 후배와 최대한 의견을 맞추려고 노력했었다. 후배는 어떤 날에는 “누나가 이성적으로 일을 잘 처리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고, 어떤 날에는 “누나가 포용력을 가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내게 나약함, 감정적이라는 여성성을 지우되, 여자다운 포용력을 가지라고 요구했다.

 

▶ 내 ‘의견’이 아닌 ‘존재’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시선 속에서 나는 점점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홍승은

 

이러한 잣대는 그 후배만의 유별난 태도가 아니었다. 재작년 겨울, 카페 운영회의를 마치고 뒤풀이를 하던 중, 한 팀원이 갑작스럽게 말했다. “누나는 너무 비민주적이고 논리적이지 못해요.” 그는 회의에 참여했던 일곱 명 모두가 동의한 사안이 자신의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나를 편협하다고 쏘아붙였다.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나와서 황급히 화장실에서 눈물을 훔치고 나왔다. 그러자 그 친구는 “누나가 운다고 봐주진 않을 거예요”라며 나를 더 몰아붙였다. 그때 함께 있던 한 남자 선배가 “뭐가 비민주적이라는 건데?”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우물쭈물하며 대답하지 못했다. 선배의 말 한마디에 상황이 정리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후배는 나를 툭툭 치며 물었다. “에이, 누나 삐쳤어요? 삐친 거 아니죠?”

 

여성스럽지 않게, 그러면서도 여성스럽게?

 

텔레비전에서, 라디오에서, 학교에서, 사회 곳곳에서 들려오는 말. “여자는 논리적이지 못해,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이야, 여자들 우는 거 너무 피곤해, 왜 그래 계집애같이.” 그런 말들이 나에게 향했다. 그들은 진보운동을 하면서, 협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대안공동체를 일구다가도 “누나는 너무 감정적이에요”, “넌 왜 이렇게 예민해?” “삐치지 말고 들어”, “이성적으로 생각해봐”, “네가 잘 몰라서 그래” 라며 나를 부정하는 말을 함부로 뱉었다.

 

내 ‘의견’이 아닌 ‘존재’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시선 속에서 나는 점점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과연 한 조직의 대표로 있어도 될까, 나는 왜 이렇게 약하고 예민할까, 불편한 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혹은 내가 만만한 사람이어서 그런 걸까.

 

방법을 찾아야 했다. “네가 자주 웃고, 리액션을 잘하는 편이라 만만해 보이는 거 같아. 웃는 걸 줄이면 어때?”라고 조언하는 친구도 있었다. 만약 카페 대표가 남자였다면 사람들이 함부로 못했을 거라며, 내 힘을 키워야 한다는 선배도 있었다. 나는 그런 말을 듣고 차가운 표정을 연습해보기도 했다. 겉모습도 세련되게 꾸미고(그러면서도 외모에 신경 쓰는 티 내지 않고), 회의 진행과 업무 분담도 칼같이 하고(그러면서도 사람들을 포용하고), 불쾌한 농담에도 웃으며 능청스럽게 받아치는 연습을 했다. 각종 심리학, 동양철학, 리더십 도서를 읽으며 내면을 강하게 다지려고 노력했다.

 

소위 ‘여성성’ 기표로 특정되는 비이성적, 비논리적, 나약함을 지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성스럽지 않으면서도 여성스럽게 굴라는 요구는 아무리 노력해도 달성하기 어려웠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  여성스럽지 않으면서도 여성스럽게 굴라는 요구는 아무리 노력해도 달성하기 어려웠다.  ⓒ홍승은

 

여러 차례 비슷한 갈등 속에서 지쳐가던 작년 가을. 자정이 넘도록 카페에 남아서 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날은 함께 활동하는 여자 후배도 남아있었다. 후배는 “언니, 요즘 많이 힘들지요?”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내가 고맙다고 말하자, 갑자기 그 후배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도 몇 년 전 한 조직의 대표로 있으면서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고 했다. 어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의심받는 상황의 연속이었고, 그 뒤로 사람이 싫어져서 6개월 넘게 방에만 있으면서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언니가 있기 때문에 이 조직에 들어왔고, 지금도 언니를 믿는다고 말해주었다. 예전에 “언니가 만만하게 보이지 않도록 노력했으면 한다”고 말했던 건, 사실 자기 자신에게 했던 말이라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우리는 캄캄한 카페 안에서 몇 시간 동안 펑펑 울며 서로를 다독여줬다. 페미니즘을 눈물로 만난 첫 순간이었다.

 

내 존재를 긍정해준 한 사람의 힘 때문이었을까. 그 뒤로 나는 문제를 오로지 나에게 돌렸던 지난날을 차근차근 되돌아보았다. ‘백 사람의 한 발자국’을 말해주었던 남자 선배가 겪어야 했던 갈등과 여자인 내가 겪어야 했던 갈등은 달랐다. 선배는 종종 나에게 리더십이나 철학서를 추천해줬지만, 선배의 조언은 ‘남성’이라는 기본 값을 전제로 나온 고민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선배는 몰랐다. 함께 걸어야 할 백 사람이 여성혐오 사회 속에 적응된 사람들이라면? 그 속에서 내가 ‘여성’이라면? 더군다나 내가 그 공동체의 구심점이 된다면?

 

리더십 교육이 아니라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이런 물음이 생기자, 페미니즘 도서가 적극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페미니즘의 일갈은, 내 개인의 문제라고 여겨왔던 일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게 해주었다. ‘페미니즘의 핵심 과제는 여성을 신뢰할 만하고 경청할 만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었다’라는 리베카 솔닛의 말은, 처음 보자마자 나를 가르치려 들었던 많은 남자의 태도가 내 탓이 아니었음을 알게 해주었다. ‘공적 영역에 도전하는 여성은 여성에 대한 편견 어린 시선과 싸우는 동시에 여성에게 더 엄격하게 세워진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는 권김현영의 말은 내게 요구됐던 이중 잣대가 얼마나 부당한지, 또 많은 여성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일인지 깨닫게 했다.

 

나를 향하던 의심이 밖을 향하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여성은 리더가 될 수 있을까? 평등한 조직 구성원이 될 수 있을까? 이미 기울어진 땅에서 아무리 성을 쌓아도 금세 무너지거나 흔들리듯이, 나는 사람들의 요구에 맞춰가며 이미 무너진 성을 쌓고 있었다. 그것을 깨닫고 나는 팀원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한 사람의 노력이 아닌, 페미니즘을 통한 모두의 성찰과 소통이었다.

 

카페가 페미니즘 성격을 점차 뚜렷하게 가지게 되면서 많은 ‘여성주의 공동체’가 우리를 찾아왔다. 같은 지향을 가진 공동체를 만나면 서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조직을 운영하며 힘들었던 점이나 좋았던 점이 평행이론처럼 매우 닮아있기 때문이다. 남성 구성원이 많을 때 느꼈던 여성 리더의 고충과 갈등, 어려움 등이 특히 비슷하다. 진작 서로를 알았다면,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이라는 걸 알았을 텐데. 힘들었던 시간을 공감하며 안타까워하면서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웃곤 한다.

 

최근에는 ‘여성주의 감성공동체 난달’ 구성원들이 인터뷰 겸 카페에 견학을 왔다. 인터뷰 중 ‘조직 내에서 페미니즘으로 인한 갈등은 없는지’ 질문을 받았다. 우리 카페는 페미니즘을 통해 더욱 끈끈해질 수 있었다고 대답했다. 여러 철학서를 함께 읽고 서로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때도 온전히 해결되지 않았던 스스로에 대한 불신 혹은 서로에 대한 불신이, 페미니즘을 통해 많은 부분 해결되었다고 말이다. ‘개인’ 때문이 아닌, 내 안에도 존재했던 ‘여성혐오’와 ‘자기혐오’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서로에게서 해결되지 못했던 작은 의심들이 조금씩 풀려가는 것을 느꼈다.

 

이제 나는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웃고 싶을 때 실컷 웃고, 푼수 같은 모습을 보이고, 한없이 친절하게 대해도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사소한 농담이나 일상적 대화에서도 약자 혐오가 배어있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는 문화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수직적 리더십이 아닌 수평적 리더십이 가능하다는 것, 연대와 화합이 이상이 아니라는 것도 알겠다. 백 사람의 한 걸음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무엇보다 나는 이제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건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홍승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