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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알려줘

<질문교차로 인문학카페36.5º> 다른 감각을 열어봐



※ 춘천에서 인문학카페36.5º를 운영하는 홍승은 씨가 기존의 관념과 사소한 것들에 의문을 던지는 ‘질문교차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나에게 페미니즘은 지식만이 아닌 ‘삶 자체’다

 

“페미니즘이 대체 뭐에요?” 요즘 우리 카페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종종 묻는 말이다. 얼핏 페미니즘을 알고 싶어서 묻는 건가 싶지만, 뒤에 붙는 말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페미니즘이 대체 뭐기에 남녀 간 대립을 조장해요? 나보고 (여성)혐오한다고 할까봐 요즘은 말 한마디도 편하게 못하겠어요. 혐오라는 말은 마치 벌레같이 느낀다는 건데, 저는 정말 여자친구 사랑하거든요. 성희롱이나 성차별도 남자 여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문제잖아요. 약자의 문제, 권력의 문제. 근데 꼭 성별을 부각하는 건 남녀갈등만 조장하는 거 아닌가요? 직장상사 여자에게 성희롱당하는 남자도 있잖아요. 남자도 강간당해요. 그런데 왜 여자만 피해자라고 생각하지요? 여자는 약자가 아니에요.’

 

이쯤되면 어디에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진다. ‘여성혐오’라는 말을 글자 그대로 ‘여자를 싫어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애초에 갈등은 나쁘고 화합의 반대 개념으로 여기는 전제까지. 듣다 보면 상대방이 페미니즘은 물론, 요즘 핫하다는 ‘여성혐오’에 대한 개념도 공부하지 않고서 나에게 모든 문제에 답하길 요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세 가지 정도다. 기초부터 하나하나 알려주거나, 좋은 책을 소개해주거나, 바쁜 척하거나.

 

에너지가 가장 많이 쓰이는 건 물론 첫 번째 방법. 하지만 막상 ‘여성혐오’가 뭐고 어떤 게 문제인지 이야기를 시작하면, 상대방은 으레 “여자도 남자 몸 쳐다보잖아요”, “여자도 남자 혐오하잖아요” 하면서 몇몇 예시를 대며 그 모든 것에 해명하길 요구한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본적인 책을 소개해주겠다고 하면, “페미니스트들이 공부하라면서 가르치려고만 드니까 나 같은 일반인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거예요”라며 역정을 낸다. “바빠서 책 읽을 시간 없어요”라는 대답도 자주 돌아오는 멘트다. 더이상 말이 안 통할 것 같아 대화를 그만두려 하면 ‘이러니까 페미니즘이 반감을 사는 거’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지난 일주일 동안만 무려 네 번, 일방적인 해명(?)을 요구하는 손님들이 찾아왔다.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은 스스로 페미니즘이라는 공적 문제에 관심을 두고 질문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무척 당당하다는 점이다. 페미니즘을 모르는 건 ‘일반인’인 자신에게 당연한 일이고, 알기 위해 찾아온 것만으로도 자신은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배우려는 자세 없이 따지듯 묻는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한정적이다. 그러면서도 내게 요구되는 태도는 한결같다. ‘외면하지 말고, 하나하나 친절하게 일러 달라.’

 

나에게 있어서 페미니즘은 단순히 지식만이 아닌 ‘삶 자체’이기 때문에 쉽게 질문을 던지고, 소비하듯 간편하게 이해하려는 사람들의 태도에 반발심이 생기기도 한다. 설사 내가 친절하게 대답하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몇 마디를 통해서 상대가 페미니즘을 제대로 알게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지식으로 ‘아는 것’ 이상의 다른 감각이 필요한 학문이 바로 페미니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인문학카페36.5º 입간판.  타인의 세계를 상상해보지 않는 자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홍승은


세상에, 남녀가 이렇게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니…


최근 카드 택시를 탈 때 남녀가 느끼는 온도 차에 관한 글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됐다. 택시에서 카드로 요금을 지불할 때 택시기사에게 욕을 듣는 경우가 많아서 카드를 내밀 때마다 눈치 봐야 했다는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그런 불편함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에 남녀 모두가 놀랐다.

 

나도 항상 택시를 타고 카드를 내밀 때면 “죄송하지만 제가 카드밖에 없어서요…”라며 죄송해했다. “아, 가뜩이나 손님도 없는데 카드야. 아휴. 현금 없어요?”라고 따지던 기사들을 많이 만나왔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고개를 조아렸던 거다. 어쩌다가 “아니, 그게 왜 죄송한 일이에요. 당연히 카드도 되죠” 라고 말하는 기사를 만나면 오늘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자들은 ‘당연히 카드 결제가 가능한 세계’에 살고 있었다니?

 

여기에서 의심 없이 ‘우리’라고 믿어왔던 집단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 이 사안에 대해 남자들은 가끔 짜증 내는 기사를 만날 때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눈치를 보는 게 신기하다고, 택시비를 카드로 지불하는 건 손님의 ‘권리’가 아니냐고 말했다. 누군가는 ‘권리’로 당연히 누려왔던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았다는 걸, 그 전까지 서로 몰랐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남성들이 그 사건을 평범한 일상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여성혐오냐, 아니냐’를 두고 그리도 치열하게 토론해야 했다. 어릴 때부터 “밤늦게 돌아다니면 큰일 나”라는 협박 어린 조언을 일상적으로 듣고, 집에 들어갈 때마다 “조심히 들어가고 메시지 남겨”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듣고, 밤거리에서 누군가가 쫓아오는 것 같아서 전화 받는 척 하며 발걸음을 재촉한 경험이 있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그 사건은 ‘내 일’이었다.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공중화장실, 거리에서 언제든 나와 지인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공포감이었다.

 

밤거리에서도 공중화장실에서도 안전할 권리. 그런 권리가 어떤 존재에게는 당연히 주어지지 않는다. 사건이 일어난 계기도 그 당연한 권리의 부재에서 비롯되었지만, 사건 이후의 반응도 그 권리의 부재를 온몸으로 느낀 사람과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 사이에 극명한 인식 차이를 보였다. 이 사건은 생각보다 큰 서로의 간극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나 역시 또 다른 틈새를 느낄 때가 많다. 몇 년 전 한 모임에서, 서로를 소개하는 질문지에 “좋아하는 이성 스타일은?”이라는 질문을 넣었다가, 한 참가자로부터 “저는 동성애자인데요. 왜 굳이 좋아하는 이성이라는 말을 쓴 거죠?”라는 항의를 들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가 얼마나 모르는 게 많은지, 나에게는 일상적이고 (당시에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차별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걸 느끼고 깊이 후회하고 반성했다.

 

대문자 F가 아닌 소문자 f의 페미니즘(들)

 

이렇게 택시에서, 거리에서, 화장실에서, 일상 속에서 서로 다른 세계가 공존하건만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지레짐작하며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진단한다. 쉽게 ‘나’를 중심으로 ‘우리’라는 범주를 짓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규정한 ‘우리’에 타인의 삶이 정말 녹아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할 것은 나 자신이다. 내가 마땅히 누려왔던 권리, 평범한 인식을 돌아봐야 한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건, 지식을 쌓으며 ‘확신하는’ 과정이 아니라 기존의 관념을 ‘의심하는’ 과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페미니즘이 이슈가 되면서 우리 카페에 페미니즘 스터디를 하는 청년들이 종종 찾아온다. 그중엔 하나하나 사례를 들면서 ‘진정한 페미니즘’을 운운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입시 위주 교육 과정을 거치면서 정답이 있는 공부법이 몸에 배었기 때문일까? 페미니즘에 진정한 하나의 답은 없다. 나에게 페미니즘은 하나의 논리이기 전에, 살면서 겪어왔던 공포, 상처, 내 삶 전체와 밀접하게 닿아 있다. 많은 여성들, 사회적 소수자들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하나의 페미니즘을 지칭하는 대문자 에프가 아닌, 개개인의 페미니즘을 의미하는 소문자 에프로 페미니즘을 지칭한다.

 

이렇게 삶의 문제인 페미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듣는 이의 적극적인 자율성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은 여성주의적 학습과 소통에 ‘상상력, 자율성, 반성적 성향’을 강조했다. 한 번도 타인의 삶을 상상해보지 않은 사람은 페미니즘에 가닿을 수 없다. “페미니즘이 뭐야?”라고 손쉽게 질문하고, 상대가 친절하게 대답하길 바라는 태도로는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가치에 조금도 닿을 수 없다.

 

“우리가 가담해왔던 폭력을 반성하자. 타자의 삶과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자. 자율적인 태도로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실천을 하자.”

 

지금 나에게 페미니즘을 묻는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다. (홍승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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