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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 세계관에 도전하는 ‘마더피스 타로’

<마더피스 타로 한글판> 펴낸 백윤영미, 장이정규 씨


“여성주의 타로는 신마저도 남성인 세상에서 가부장제가 만든 남성 중심적 세계관과 역사적 부당함을 바로잡으려 한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마더피스 타로 한글판> ‘옮긴이의 글’ 중에서

 

페미니즘 타로로 알려진 ‘마더피스 타로’

 

▶ <힐링 드라마 연구소 NOW>의 소장 백윤영미씨가 ‘마더피스 타로’를 펼치고 있다.  ⓒ 일다


주변에 타로 리딩(reading)을 하는 친구들이 몇 명 있다 보니, 친구들과 모이면 종종 타로 점을 보곤 한다. ‘여성주의자가 무슨 점을 보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타로의 이미지와 언어를 통해 나의 상태와 에너지 흐름을 명료하게 인식하게 될 땐 감탄이 절로 나오곤 했다.

 

타로는 여러 종류가 있다. 특히 한 친구가 동그란 주머니에서 ‘마더피스 타로’(motherpeace tarot)를 꺼낼 때마다 설레었다. ‘마더피스 타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페미니즘 타로다. 일단 그림이 참 예쁘다. 다채로운 색깔이 입혀진 섬세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들은 낯설어서 묘한 즐거움을 주는데다가,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충만해지곤 했다.

 

마음 같아서야 곁에 두고 수시로 뽑아보고 싶었지만, 타로 마스터도 아닌 내가 무슨 수로 해석을 하겠나 싶었다. 한글로 된 가이드북도 없는데 말이다. 어디 가서 정식으로 배우지 않는 한, ‘마더피스 타로’는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5월 <마더피스 타로 한글판>(카드+가이드북 세트. 카렌 보겔 & 비키 노블 지음, 백윤영미 & 장이정규 번역)이 발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한국에서 페미니스트 타로 마스터들이 ‘마더피스 타로’를 사용하고 교육해온 건 오래 전부터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정식 출간된 한글판이 없었다.

 

반가운 마음에 공동 번역자인 백윤영미, 장이정규 씨를 찾아갔다. 두 사람은 “이걸 발간하느라 연금보험도 깨고 전 재산을 털었다”고 말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타로를 펼치니 폭력피해 여성들이 마음을 열었어요”

 

여성주의 상담가 백윤영미 씨는 폭력피해 여성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전문기관인 <힐링드라마연구소 NOW>의 소장이다. 작년부터는 서울시가 만든 서울혁신파크 미래청 공간에 입주해 ‘가치성장과 치유센터’를 운영하며 좀 더 대중적인 치유와 교육 프로그램으로 여성들을 만나고 있다.

 

백윤영미 씨는 2004년 마더피스 타로를 처음 접했다. 타로를 통해 자기 삶에서 중요한 질문과 답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상담 현장에서 타로 카드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쉼터에 가서 가정폭력이나 친족성폭력 피해여성들과 치유 작업을 자주 해요. 친족성폭력 피해자들 중엔 십대들이 많은데 좌절감, 수치심, 상처가 너무 커서인지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아요. 그럴 때 타로를 펼치면 저랑 그렇게 거리를 두던 애들이 한 명, 두 명 무릎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저는 그들이 뽑은 타로 이미지를 해석해주는 것뿐이고 그 해석을 자기 상황과 연결시키는 건 본인 몫인데, 그 작업을 너무나 잘 해내면서 인생의 답을 찾아가는 걸 봤어요. 일반인들이 타로를 치유와 소통의 도구로 삼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 ‘마더피스 타로’ 한글판을 출간한 백윤영미(좌), 장이정규(우) 씨 ⓒ 일다

 

여성의 자기탐구와 돌봄의 도구, 마더피스

 

‘마더피스 타로’는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아 1981년에 만들어졌다. 백윤영미 씨는 “중세시대에 전통적인 타로 78장의 체계가 만들어졌는데, 당시의 기독교 문화나 남성만이 글을 읽고 쓰던 문화 속에 만들어진 상징이기 때문에 가부장적 요소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타로를 만들었던 권위 있는 제사장, 마법사들이 자신들이 갖고 있던 가부장적 질서를 타로 안에 섞었을 거라고 예측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여신의 영성을 복원하려는 분들이 이 상징의 언어를 바꿔야겠다고 마음먹고 ‘마더피스 타로’를 만들었다고 해요.”

 

전통적인 타로 카드와 마더피스 타로 카드의 차이를 묻자, 백윤영미 씨는 유니버셜 웨이트 카드(미니)와 마더피스 타로를 직접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타로에서 ‘정의’ 카드를 보면, 칼과 저울을 든 이미지가 굉장히 차갑고 판단을 내리는 느낌이에요. 마더피스 타로에서 ‘정의’ 카드는 동물과 식물, 북유럽 여신들이 연결돼있는 이미지에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다 평화로운 상태가 ‘정의롭다’고 보는 거죠.”

 

“또, 타로에는 ‘황제’ 카드가 있는데 마더피스 타로에선 이걸 ‘남황제’라고 이름 붙였어요. ‘여황제’ 카드에는 여(女)가 붙어있는데 ‘황제’는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하잖아요? 그리고 보통 ‘황제’ 카드는 권위적인 아버지의 질서로 설명되곤 하는데요, 마더피스 타로에서 ‘남황제’는 알렉산더 대왕의 초상이에요. 굳은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죠.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다른 생명에 대한 존중 없이 살아가는 남성이 어떤 어른이 됐는지 보라는 거죠. 열린 가슴으로 세상과 소통하지 않으면 고립될 거라고 경고하는 카드에요.”

 

▶ 전통적인 유니버셜 웨이트 카드(미니)와 마더피스 카드 비교. (11번 정의 카드와 4번 황제 카드)

 

백윤영미씨는 “전통적인 타로 그림 중에는 여성들이 위기에 처한 그림이 많다”고도 지적했다. “좋은 카드에는 남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힘없고 자기 덫에 갇혀 있는 듯한 이미지는 여성이 주인공이어서 사람들이 보면 겁을 내요.” 반면 ‘마더피스 타로’는 대부분 여성들이 주인공이고 따뜻한 이미지가 많으며, 여성들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돌볼지에 대해 꼼꼼하게 조언한다고.

 

또한 전통적인 타로 카드는 직사각형 모양이라 ‘정방향 아니면 역방향’의 이분법적인 해석이 가능한 반면, 마더피스 타로 카드는 원형이다 보니 훨씬 폭넓고 섬세한 리딩(reading)을 할 수 있다. 가이드북도 각 카드가 가진 네 가지 방향의 의미에 대해 모두 설명하고 있다.

 

두 사람이 ‘타로’+‘영어’ 지식을 나누며 꼬박 1년…

 

더 많은 사람들이 문턱 없이 ‘마더피스 타로’에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번역을 결심한 백윤영미 씨. 문제는 그녀가 영.포.자(영어를 포기한 사람)라는 사실이었다.

 

“여성주의 상담에서 ‘권력’이라는 개념은 내가 원하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힘이나 자원을 소유한 상태를 뜻해요. 그동안은 소수의 영어‘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마더피스 타로’를 번역해서 가르치거나, 돈을 주고 번역을 해서 자료집을 만들어왔어요. 제한된 소수에게만 배울 수 있는 상황이다 보니까 그 소수만 전문성과 권력을 갖게 되고, 그로 인해 갈등이 있기도 했어요.”

 

때마침 <힐링드라마연구소 NOW>의 운영위원이자 ‘그룹 투사 꿈작업’ 촉진자인 장이정규 씨가 곁에 있었다. 호주 유학을 통해 물리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생태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장이정규 씨는 고민 끝에 ‘마더피스 타로’ 번역 제안을 수락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제가 혼자 마더피스 타로를 번역하면 훨씬 쉽기는 했겠지만, 재미는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 친구(백윤영미)에게 ‘네가 1차 번역을 하면 내가 영어를 가르쳐주면서 같이 번역을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타로 지식과 영어 지식을 서로 나눈 거죠.”(장이정규)

 

“제가 원문을 한 줄 한 줄 다 베껴 적고 영어사전을 일일이 찾아서 1차 번역을 한 후에, 장이정규 씨가 그걸 검수하고 다시 제가 한국어 번역이 어색하지 않은지 살폈어요. 꼬박 1년이 걸렸어요.”(백윤영미)

 

고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번역을 끝내고 나니 이번엔 제작이 문제였다. 타로는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고 만드는 공정도 복잡해서인지 선뜻 발간하겠다고 나서는 출판사가 없었다. 결국 ‘바람나무’(장이정규 씨의 별칭)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등록한 두 사람은 제작비를 마련하느라 주머니를 탈탈 털었다고.

 

제작에도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영문판보다 좋은 재질로 만들어서 카드를 섞거나 펼칠 때 수월하다. 한국인 손엔 좀 컸던 카드 크기도 0.5cm 줄이고, 케이스도 튼튼하게 만들었다. ‘마더피스 타로’ 한글판은 그렇게 우리에게 오게 됐다.

 

▶여성주의 타로 상담 학교 ⓒ‘가치성장과 치유센터’

 

타로는 결국,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에요

 

백윤영미 씨와 장이정규 씨는 한글판이 출간된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마더피스 타로’에 쉽게 접근해서 타로가 갖고 있는 신비주의가 벗겨지길 기대한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자신의 일상 속에서 ‘마더피스 타로’를 벗 삼을 수 있는 쉬운 방법 하나만 알려달라고.

 

“내가 오늘 어떤 걸 유념하고 살면 좋겠는지, 마음에 무엇을 담고 있어야 되는지 하루에 한 장씩 뽑아볼 수 있겠죠. 질문을 품고 마음을 비우고 타로를 섞어요. 쭉 펼친 상태에서 이거다 싶은 한 장을 뽑아서 보는 거예요. 이미지를 보고 나의 직관대로 메시지를 해석할 수도 있고, 감이 안 오면 가이드북을 참고하는 거죠.”(백윤영미)

 

타로는 평생의 답을 주지는 않는단다. “삶의 주도권을 타로에게 넘겨주면 안 된다”고 두 사람은 당부한다.

 

“인생은 바뀌고 운명도 바뀌고 있는데, 그걸 따라가지 않고 타로의 답만 붙들고 있지 말라는 거죠. 누군가 나에게 주는 충고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타로는 좋은 친구, 좋은 코치가 될 수 있어요.”(백윤영미)

 

“똑같은 (타로) 이미지를 봐도 이걸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다른데, 그게 결국 자기 마음을 반영하는 거죠. 타로 이미지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얘기하는 과정 자체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같아요.”(장이정규)

 

꾸준히 자신을 들여다보고 지친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돌보고 싶은 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마더피스 타로’와 함께하면 좋겠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 ‘마더피스 타로’ 한글판 안내: http://cafe.daum.net/noletzinet/Doxh/6

▶ 여성주의 타로상담학교: http://cafe.daum.net/noletzinet/DY8M/145

▶ ‘가치성장과 치유센터’ 페이스북 페이지: http://facebook.com/HealingnGrow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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