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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가족의 탄생

코미디 영화 <굿바이싱글>



※ 기사에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를 보실 분들은 유의하세요. -편집자 주

 

연말 시상식 당일, 배우 고주연(김혜수)은 필러 주사를 맞아 퉁퉁 부은 입술 탓에 자신이 후보로 오른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한 채 TV만 응시하고 있다. ‘여우조연상’ 후보 리스트에 주연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지만 수상의 기쁨은 그녀에게 향하지 않는다. 주연 대신 동료 배우가 수상을 하는 실망스러운 순간에 한 소녀의 임신 테스트 결과가 겹친다.

 

“진짜 내 편”을 찾겠다는 욕망

 

▶ 영화 <굿바이싱글> (김태곤 감독, 김혜수 주연)


영화 <굿바이싱글>(김태곤 감독, 2016)은 결혼하지 않고 싱글로 살아 온 고주연이 임신, 출산, 양육을 욕망하고 실천하면서 겪는 해프닝을 다룬 코미디 영화다.

 

고주연은 부유하지만 철이 없는 당대 톱스타다. 종종 ‘국민진상’, ‘연하킬러’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을 만큼 인지도는 높지만 시상식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아이콘 같은 존재다. 무명의 연하 남자배우를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을 정도로 키운 뒤 배신당하는 것이 주연의 연애 패턴이다. 주연은 젊은 배우 지훈(곽시양)과 만나며 결혼을 꿈꾸지만 예의 패턴대로 이용당할 뿐이다.

 

이별을 계기로 삶을 돌아보던 주연은 ‘협찬 외에 내 편이 없다’는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늙어 죽으면 시체를 묻어줄 “진짜 내 편”을 만들겠다는 강력한 욕망에 봉착한다. 상미(서현진)의 아이들이 엄마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는 모습을 본 후, 주연의 욕망에는 불이 붙는다. 어린 자녀와 부모의 애착감을 “언제나 내 편”으로 해석하는 생각의 흐름이 백퍼센트 납득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항상 “마이웨이”인 엉뚱한 주연 캐릭터를 영화 내에서 잘 쌓아올린 탓에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나이 먹고 병이 들어서 외로운 노년을 보내다가 고독사한다는 회의적인 전망은 비혼, 1인 가구에게 향하는 전형적인 ‘오지랖’이기도 하지만, 허약한 사회보장 체계 내에서 작동하는 실질적인 불안이다. 그러나 이 불안은 삶을 주저앉게 만드는 불안이 아니다. 다양한 연결망을 지향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주연의 불안이 이끈 첫 번째 장소는 입양기관이다. 충분한 소득에도 불구하고 입양을 거절당한 주연은, 직접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며 산부인과를 찾아간다. 하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다.

 

톱스타와 10대 비혼모의 대안가족 스케치

 

산부인과 엘리베이터 안에 후드를 덮어 쓰고 선글라스를 낀 두 명의 여자가 나란히 서 있다. 한 명은 고주연, 또 다른 한 명은 김단지(김현수)다. 10대 임신부인 단지에게 차별이 깃든 시선과 말이 향하자 주연이 대신 화를 낸다. 낙태수술밖에 선택지가 없던 단지는 아이를 낳으면 자신이 키우겠다는 주연의 제안에 응하게 되고, 이 영화가 그리는 대안가족 스케치가 시작된다.

 

▶ 영화 <굿바이싱글> 중에서 김단지(김현수)와 고주연(김혜수)

 

단지는 언니에게 얹혀살며 구박받던 집에서 나와 주연의 집으로 들어간다. 단지의 무기는 ‘태교’다. 주연은 정들면 안 된다는 이유로 호칭 정리까지 하며 사무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같이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육아책을 보는 생활 속에서 두 사람은 차츰 경계를 늦춰간다. 스트레스를 받은 날에는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들고 같이 퍼 먹기도 하고,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면서 공통분모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들의 관계는 배신한 남자들에게 앙갚음을 돌려주는 복수의 공동체로 진화한다.

 

주연이 우발적으로 임신 사실을 발표한 뒤 회사는 발칵 뒤집어지지만, 의외로 이미지에 득이 되어 일이 잘 풀린다. 쏟아져 들어오는 광고와 드라마 출연으로 주연은 일이 바빠지고, 단지는 집에 혼자 남는다. 함께 병원에 가기로 한 약속도 잊고 일과 새로운 연애로 정신이 없는 주연을 보며 단지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의 ‘계약’에 예상치 못했던 균열이 생기고 갈등을 겪게 된다.

 

‘펼쳐진 가족’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따뜻한 결말

 

이 영화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걸고 희생하지 않는다면 가족이 만들어질 수 없음을 보여준다. 주연은 영화 초반부에 누구도 “진짜 내 편”이 아니라고 툴툴거리며 “내 자식 갖기”에 몰입했지만, 스타일리스트 평구(마동석) 등 주변의 지인들이 오랜 세월 동안 헌신적으로 자신의 빈자리를 메워주었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는다. 만삭의 모습으로 미술대회에 참석한 단지는 10대 비혼모에 대한 강한 차별과 낙인을 다시금 마주한다. 주연은 중요한 기자 회견을 뒤로 하고 단지의 곁에 서 그의 편이 된다.

 

▶ 영화 <굿바이싱글> 중에서.  

 

영화는 시간이 흐른 뒤 주연과 단지, 아기, 기획사 사람들과 단지 친구까지 한 집에 모여 밥을 먹는 모습을 비추며 ‘펼쳐진 가족’의 가능성을 던진다. 훈훈한 결말은 어디선가 이미 본 적이 있는 듯도 하다. <굿바이싱글>은 <다섯은 너무 많아>(안슬기, 2005)나 <가족의 탄생>(김태용, 2006) 등 2000년대 중반에 등장했던 대안가족 소재의 영화들과 비교해 새로운 상상력을 담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두 여성 배우의 앙상블에 힘입어 익숙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를 빚어낸다. ▣ 케이  여성주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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