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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마음이 온통 스페인 프리오랏에 가 있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6. 7. 5. 08:30

마음이 온통 스페인 프리오랏에 가 있다

<여라의 와이너리 시즌2> 프리오랏 와인이 걸어온 길



길 다니다 보면 유난히 눈에 들어와 마음에 남는 나무들이 있다. 산책 다닐 때 매번 살펴보는 나무도 있고, 차타고 자주 다니는 길에 있는 나무도 있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난 나무를 보러 다시 찾아가기도 한다. 남들도 그러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다가가서 말을 걸거나 만져보는 나무들이 몇 있다.

 

여러해 전 가을, 스페인 북동쪽 아주 작은 와인 지역 프리오랏(Priorat)에서 본 올리브나무도 그 중 하나다.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가 아무렇게 늘어서 있고 농가나 인적도 없는 한적한 시골길을 운전하며 지나고 있었다. 길가에 무심하게 서 있는 올리브나무들 여럿 중에 이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 스페인 동북부 프리오랏(Priorat)에서 마주친 아무런 올리브나무.  ⓒ 여라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려 나무를 바라보았다. 쓸쓸한 것 같기도 하고, 피곤한 것 같기도 했다. 그를 바라보는 내 심정이었을까. 그때 나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지역을 혼자서 여러 날 돌아다니고 있었다. 쓸쓸하기도 하고 날마다 고단했지만, 만족스럽고 즐거운 날들이었는데 말이다. 기억하려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리고 그 뒤로 프리오랏 지역을 생각할 때에 늘 떠오르는 나무가 되었다.

 

곧 이 나무를 -만일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면-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스페인 올리브 고목 군락지에 가기로 했다. 그 김에 프리오랏에도 갈 예정이다. 와인 지역으로 여행을 준비하면서 와인이 주 목적이 아닌 일은 얼마만인지. 지금 그리고 있는 이 밑그림이 여행을 떠나기까지 앞으로 두 달 동안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모르겠지만, 이런 저런 공상으로 여름 내내 설렐 수 있게 만들어놓다니 내 스스로 대견하다.

 

드라마 같은 프라오랏 와인 지역의 역사

 

프리오랏은 이 지역을 신성하게 여겨 12세기에 수도원(priorat은 카탈로니아어로 ‘수도원’이라는 뜻이다)이 지어지면서 성만찬을 위한 와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첩첩산중인데다 여름은 뜨거워서 포도나 올리브 이외에 뭔가 수확을 하기 위해 경작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일교차가 큰 기후와 길고 건조한 여름, 온통 붉고 까만 편암(슬레이트) 토양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고다.

 

그러나 유럽을 휩쓴 필록세라(포도에 자생하는 진딧물의 일종으로, 뿌리를 공격해 나무를 죽이고 결국 포도밭을 황폐화시킨다)가 1800년대 말 이 지역에도 여지없이 밀려와, 와인산업이 무너졌다. 광산업까지 사양길로 들어서자 이 지역은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다.

 

1950년대 즈음부터 다시 와인 산업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결정적으로 1980년대 몇몇 개척자들이 이 지역에 버려진 옛 와이너리들, 가르나차와 까리녜라(프랑스어 이름으로는 그르나슈와 까리냥) 재래포도종 고목에 주목했다. 포도밭은 대개 해발 900미터에 경사가 가파라 농기계를 사용하지 못하고 오로지 사람의 손과 동물을 이용했다. 이 와인 지역에서 실제로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10년 사이에 당나귀 가격이 100배가 올랐다고 한다.

 

▶ 스페인의 프리오랏 (Priorat) 포도밭.  ⓒ 여라

 

와인을 구세계 신세계로 구별할 때, 그 두 세계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와인 지역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스페인이라고 이전 칼럼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기사 보기: 내가 스페인 와인에 빠진 이유) 그 대표적인 예가 스페인에서도 과거와 현재가 얽혀있는 프리오랏이다.

 

아주 작은 지역이지만 외국에서 스페인 와인으로 가장 잘 알려진 리오하(Rioja)와 함께 스페인에서 딱 두 곳뿐인 최고 와인 지역(DOC/DOQ)으로 지정되어있다. (리베라 델 두에로 Ribera del Duero 지역도 같은 급의 와인으로 사실상 인정받고 있지만, 여러 이유로 그냥 DO급으로 남겠다고 했단다.) 지금도 ‘어쩔 수 없이’ 포도밭에서 기계를 사용하는 건 아주 제한적이라, 가격은 높지만 같은 이유로 품질이 좋다.

 

프리오랏 와인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까

 

처음 수도원이 지어진 이야기부터, 완전히 버려진 와인 지역이 되었다가 1980년대 말에 이르러 급작스레 부흥기를 맞이했으며 곧 스페인 최고 와인 지역으로 인정받기까지(2006년) 프라오랏 와인 지역의 역사는 드라마 같다.

 

어쩌면 세계 미식가들을 사로잡은 분자요리 레스토랑 ‘엘 불리’(El Bulli)에 몰려들었던 관심이 인근 프리오랏 와인 지역의 명성을 높이는 데에 영향을 끼쳤을 지도 모르겠다. (추측 ㅎ) 어쨌든 앞으로 프리오랏 와인이 어떤 길을 걸어가는지 지켜보는 일까지도 흥미로울 것 같다.

 

예전에 미국에서 스페인어를 배울 때 선생님 중 한 분은 바르셀로나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내가 와인 공부를 한다며 스페인 와인을 좋아해서 스페인어가 크게 도움이 된다 하니, 대뜸 프리오랏 와인을 언급했다. 예전에 바르셀로나에서 공부할 때 프리오랏 와인이 싸고 좋아서 많이 마셨는데, 이제는 광풍이 불어 눈 튀어나오는 가격이 되어버려 슬프다고 했다.

 

물론 보르도 와인과 마찬가지로 프리오랏 와인이라고 무조건 비싸기만 하진 않다. 그렇지만, 차이가 있다면 보르도는 넓고 생산량이 엄청난 와인 지역이라 소비자에게 수많은 옵션을 제공하지만, 프리오랏은 그에 비하면 코딱지만한 지역이라는 점!  ▣ 여라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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