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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와 임신에 대해 아들과 한바탕 토론
<초딩아들, 영어보다 성교육> 22. 임신은 여자들 일?
‘아들 키우는 엄마’가 쓰는 초등학생 성교육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필자 김서화 씨는 초딩아들의 정신세계와 생태를 관찰, 탐구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편집자 주]
임신과 출산… 관심 없다는 아들
“엄마, 애기는 어떻게 생기는 거야?”
아이들 성교육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이 구문을 제일 많이 떠올린다.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하기 위해 책도 읽고 지인들과 대화도 하고 한다. 그리고 준비한 답변을 전해줄 날을 기다린다. 그런데 말이다, 애가 질문을 안 해! 그럼, 어쩌지? ‘애가 안 물어봐. 안 궁금한가 봐’ 하다가 ‘우리 애는 느려. 아직 때가 아닌가 봐’라는 결론으로 향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들이 차일피일 성교육을 미루게 하고 아들 내미는 홀로 훌쩍 커버리게 된다.
사실 우리 아들이 이 질문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최근 우리 두 모자가 분위기 좋던 때 슬쩍 운을 한번 떼어봤다.
“너 임신, 출산 이런 것 좀 알아? 이제 알아야 할 때 아냐? 4학년인데.”
“다 알지. 엄마 동생 배에 이렇게 하고, 낳고 그런 것 다 봤는데.”
나는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둘째를 낳았다. 남매가 터울이 큰 편이다. 나름대로 지각이 좀 있는 나이에 엄마의 임신과 출산을 직접 보아서인지 이런 내용들이 덜 궁금했던 것 같다. 입덧하느라 화장실 앞에서 쪽잠자고, 다리가 부어 하지정맥이 오고, 배불러 숨쉬기 힘들어 책도 못 읽어주고, 동생 낳으러 새벽부터 병원으로 향하던 엄마를 다 보았으니. 녀석은 출산에 관해서 만큼은 말 그대로 산교육을 받은 셈이다.
그렇더라도, “그게 임신과 출산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 궁금할 때 언제든 물어봐”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녀석 말이 가관이다. “나는 안 궁금한데.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해?”
“안 궁금해? 언젠간 알고 싶을 텐데?”라는 내 말에 아들은 다시 한 번 더 단호하게 말을 잇는다. “여자들 일을 내가 뭣 하러. 난 하나도 몰라도 될 것 같은데.”
일순간 나는 충!격!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들을 빤히 보다가, “이게 왜 여자들 일이야? 너 그 생각 잘못된 거야” 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들이 항의하듯이 “엄마, 그건 진짜 100%야. 난 남자라 몰라도 돼” 한다. 황당함과 분노감에 나는 “야, 애가 그냥 생기냐. 둘이 여하간 섹스를 해야 생기는데, 임신 출산이 어디 여자 혼자 일이야” 라고 나도 모르게 성을 냈다.
▶ 임신할 수 있는 신체를 갖지 않은 남자아이들의 경우, 임신과 출산을 여자들 일이라고 취급하기 쉽다.
그런데도 아들은 “아, 엄마가 정말 뭘 모르네. 자 들어봐~”하면서 나름의 연설을 시작하신다. 왜 네가 나에게 이걸 연설하는지는 모르겠다만 한번 들어본다. 요새 학교에서 토론 수업 몇 번 하고 말 잘한다는 칭찬을 받고부터 시도 때도 없이 무작정 ‘엄마, 우리 토론할래’ 하더니 건수 잡은 눈빛이다.
어쨌든 아들의 말씀,
“나는 뭐 거대한 거시기, 섹스? 이런 말은 일단 모르겠고, 여하간 임신은 여자들이 하고 애는 여자만 낳지. 남자가 애 낳을 수 없다고, 이건 과학적으로도 안 된다니까.”
이게, 무슨 논리냐, 똑같은 말만 반복하면서 에잇. 그래서 나는 세 번째 되묻고 있었다.
“너는 그래서 임신 출산 양육이 오로지 여자들 일이라는 거야?”
아들이 갑자기 손사래를 친다. 그러면서 이면지가 필요하단다. 엄마가 이해를 너무 못 해서 쓰면서 말해야겠다고 말이다. 이면지에 임신, 출산, 양육이라고 휘갈기더니 양육에는 크게 엑스표를 치면서 말한다.
“내가 다 봤는데. 여기서 양육? 애들 키우는 거? 이건 빼야 해.”
“그건 왜?”
“엄마, 내 말을 뭘로 들어. 내가 다 봤!다!니!까! 확실히 이건 아빠들이나 엄마들이나 다 하는 거고, 안 하면 아빠가 혼나니까 그건 같이 하는 일인데. 임신은, 엄마! 임신하는 남자들 봤어? 그건 안 된다니까. 진짜야! 날 믿어. 그렇게는 알파고도 못해.”
그러면서 이면지에 적힌 임신 글자에 애먼 동글뱅이만 그어대면서 말을 계속한다. 토론(?)에 심취하셨나.
“임신이 이렇게 배가 이만해지고 그거잖아. 근데 애가 남자 뱃속에서 나오는 게 아니잖아. 그래 엄마 말대로 서로 사랑하게 돼서 옷 벗고 궁시렁 해. 그랬다 치자. 어떻게 돼? 아이를 낳지. 그렇지만 임신은 여자들 몸에서만 하지? 남자는 그냥 꼴랑 거대기 어쩌고나 했을 뿐이지. 출산(이젠 이 글자에 동글뱅이를 친다), 그 애기 낳는 건 도와주는 거지. 옆에서 손도 좀 잡아주고 물도 가져다주고. 그래도 결국 여자가 하는 거야. 엄마, 이거 알잖아? 둘이나 낳았으면서 진짜 몰라?”
아하. 이제야 알겠다. 녀석이 ‘임신은 여자들 일’이라고 말한 의미를. 내가 세상의 오해들로 덧씌워 성급한 걱정을 했다. 여성의 몸은 임신과 출산을 치루는 신체이다. 아들은 이 객관적 사실을 말하려던 것이다.
하지만 이 생각은 단순히 객관적 사실로서만 통용되는 경우가 흔치 않기에 참으로 아슬아슬한 구문이다. 그래서 이 구문으로만 이야기를 끝내버릴 수가 없다. 바로 그 신체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다룰 것인지에 따라, 이 구문은 전혀 다른 일들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이야기를 더 이어가야 한다. 이제 시작인 셈이다. 그래서 녀석의 손에 쥐어져있던 펜을 빼앗아 내가 이면지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아기를 갖기로 선택하는 권한, 누구에게 있을까?
“일단, 눈에 보이는 게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잖아. 그런 차원에서 임신 출산도 다시 생각해봐야 해. 한번 들어볼텨?”
아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부터는 네가 잘 상상해 봐야 해. 예를 들어서 임신을 했다는 이야기는 그 전에 섹스를 했다는 거잖아? 일단 정자 난자가 만나서 임신한다고 가정해야 하니까. 두 남녀 파트너가 섹스를 해. 그런데 말이야, 여자는 섹스는 하고 싶지만 아기는 가지기 싫어. 근데 남자는 아기를 갖고 싶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엄마 말은, 그런 상황에 누가 결정해야 할까?”
“아, 그럴 때는 당연히 여자지. 임신은 여자가 한다니까. 그러니까 당근이지.” 아들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자기가 토론의 주도권을 가지고 싶었는지 한마디 덧붙이면서 펜을 뺏으려 한다. “남자는 임신을 자기가 못하잖아. 물론 정자가 있으니 애를 만들 수는 있지만. 임신은 여자가 하니까 여자 말 들어야지.”
나는 끝까지 펜을 뺏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도 남자가 자기는 무조건 애기 가질 거라고 주장하면서 여자 파트너에게 애기 낳자고 강요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럼 감옥 가야지.”
“시도 때도 없이 감옥이냐.”
“그니까, 그건 왠지 안 되는 것 같은데. 임신은 여자가 한다니까.(그날 이 문장을 백번 들은 것 같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아들은 슬슬 헷갈려하는 표정이다.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내가 방심하고 있던 찰나, 펜을 빼앗았다. “여하간 엄마 내 말 들어봐. 그럴 때는 상의를 해야 돼. 제일 중요한 거는 상의를 하는 거라니까” 하면서 이면지에 상.의.라고 쓴다.
▶ 임신 출산 교육은 해부학적인 것에 그쳐선 안 된다. 섹스와 피임, 관계를 둘러싼 선택과 소통의 문제이기도 하다.
“네 말대로 임신 출산이 여자의 몸으로 치러지기에, 그런 일에 있어서 여성은 자기 몸이 치를 일에 대한 결정권한을 가져야 해. 이거 엄청 중요하지 않을까?”
내 말에 아들은 기어코 기계적 균형을 맞추고 싶었는가 보다.
“그러네. 근데 여자한테만 권한이 있다, 이렇게는 말하지 마. 권한이 큰 건 확실한데, 남자도 애를 가지고 싶다며. 그럼 어떻게 해? 자기는 못 낳는데. 그러니까 남자도 권한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제가 말하고도 뭔가 미심쩍은지 말을 흐린다.
“그런데 넌 처음부터 여자 몸으로 하니까 임신 출산은 죄다 여자 일이라며. 그래서 넌 알 것도 없다며. 왜 이제야 남자가 끼어들게 되었을까? 아이는 낳을 수 없는데 아이는 갖고 싶고, 아이 낳는 권한을 모두 아이 낳을 수 있는 여자에게만 주려니 뭔가 아쉽냐?”
아들이 너무 솔직하게 “어, 좀 그런 것 같어” 해서 잠시 박장대소했다. 더불어 어른인데도 이런 심리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유아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오고 보니 오늘 피임에 대해 말해주기 좋겠다 싶었다.
섹스할 때는 항상 피임을 해야 해
“그래서 사실 피임이라는 게 있어. 정자가 난자를 만나지 못하게 차단하는 방법이랄까. 너 말대로 파트너와 상의를 해서 둘 모두 아이를 갖고 싶을 때가 아니라면 섹스할 때는 항상 피임을 해야 해. 그래야 원치 않는 데도 임신이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지.”
아들이 피임이 뭐냐고 되묻는다. 그게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서, 제일 간편한 콘돔 사용법을 간략히 설명했다. 남성 성기에 콘돔이라고 불리는 피임기구를 씌워서, 섹스를 하더라도 정자가 여자 몸에 들어가지 않게 막을 수 있는 간편한 방법이라고 말이다. 뒤집어씌운 U자 모양을 그리고 그 위에 하나 더 그리면서, 이렇게 네 성기에 위생 비닐장갑을 씌운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하니 쉽게 이해한다. 초딩이라 섹스는 아직 제 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지만 설명하기 어렵진 않았다. 펜과 이면지까지 있던지라 간단한 그림 하나 곁들이니 아들 입에서 ‘오호~’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 간단한 그림으로 콘돔 사용법을 설명해도, 초딩아들은 잘 알아들었다.
“피임은 귀찮고, 임신은 자기 몸으로 치를 일이 없고, 그래서 많은 남성들이 여성들의 고민을 가볍게 생각하고 그냥 섹스를 하려고 해. 이기적인 생각이지. 만약 네가 여자라면, 피임하지 않는 남자친구와 섹스하고 싶을 것 같아?”
“아니. 피임 안 하고 억지로 하면 그것도 감옥 가야 되는 것 아냐?”
모든 성적인 문제를 자꾸 감옥 가는 일로 생각하는 것이 요새 험한 뉴스를 많이 봐서 인듯하다.
“단순히 피임 안 했다고 감옥 가지는 않지. 그러나 파트너가 피임 없이 섹스하기 싫다고 하는데도 억지로 섹스했다면, 엄마 생각에는 그것도 일종의 강간이라고 생각해. 사실 강간이라는 건 말 그대로 과정이야. 언제나 상대에게 눈과 귀와 몸과 마음을 열어두고 배려하지 않는다면 강간이라고 해석할 가능성이 있는 행동들은 엄청 많아. 동의 없이 섹스하는 일이 어떤 괴물들이 하는 예외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중요해. 너도 저지르기 쉬운 일이니까 늘 상대를 배려하고 피임하는 게 중요하지.”
아들은 조금 긴 내 이야기에 음… 하고 수긍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것인지, 지쳐하는 것인지 모르게 그저 고개를 숙이고 이면지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좀 전과 유사하지만 약간 변형된 일례를 던져봤다. “자, 그럼 다시 이런 상상해봐.” 이 말에 아들이 고개를 든다. 사례는 좀 쉽고 재미있으니까.
“네가 나중에 좀 더 커서 네 애인과 사랑하고 싶어. 기분이 좋아졌고, 섹스를 하게 될 것 같아. 그때 여자는 아직은 임신하기 싫고, 섹스하면 임신하게 될까 봐 너무 걱정돼서 두려워. 그래서 너한테 피임하자고 말해. 근데 네가 콘돔이 준비가 안 돼 있는 거야. 그럼 너 어떻게 할 거야?”
아들은 잠시 감정이입해서 생각해보더니 “일단 상의를 해야 돼. ‘지금 그거 없는데 어쩌지?’하고 물어보면 안 돼?”
“중요하지, 상의. 근데 뭘 더 물어봐? 이미 애인이 의견을 냈잖아, 피임하지 않으면 안 하겠다고. 넌 왜 상대가 이미 의견 냈는데 그걸 안 들어? 그런데도 반복해서 물어보는 건, 상의가 아니지 않아? 네가 조르는 건 아닐까?”
“아, 그거 없으면 진짜 사랑하기 싫대? 당장 헤어진다고? 영원히야 아니면 지금만 헤어지는 거야?”
푸핫, 뭐 헤어지는 상상까지 하다니. “아니, 일단은 지금! 섹스하지 말자고 말하는 거라고”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럼… 하지 말아야겠지” 라고 말하지만 얼굴은 이미 실연당한 표정이다. “그나저나 아까는 여자 입장에서 물어보니 무조건 여자가 싫다고 하면 섹스하면 안 된다더니, 네 입장에서 물어보니 금세 뉘앙스가 다르다 너?” 내 말에 아들은 “뭐가 달라” 라며 애써 부인한다. 하지만 표정은 이미 들켰다.
“너 말대로 임신을 할 수 있는 신체를 가진 건 여자들이야. 그렇지만 모든 여성이 아무 때나 임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신체라고 해서 임신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야. 하물며 남자들이 자기 몸으로 임신 출산을 할 일이 없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피임도 안 하고, 피임하자는 여자들 말 무시하고, 무턱대고 섹스하려는 경우가 엄청 많지. 임신 출산을 하게 될 몸에 대한 결정권을 여성이 온전히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야.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실제 그래. 그런 상황에서 단순히 ‘임신은 여자들 일이야, 난 남자니까 몰라도 돼.’ 이렇게 말할 수 있겠어? 앞에 말은 일부분 사실이지만, 뒤에 오는 말 때문에 임신이 단순히 여자들 일이라고만 해선 안 돼. 네 말대로 ‘상의’하려면 남자도 임신, 출산, 피임, 섹스 다 알아야 해.”
성교육은 책대로 진행되는 법이 없다
초딩이랑 말하기 너무 거칠다. 내 생각까지 덩달아 거칠어지고, 난감하다. 성교육 책에 나온 대로, 순서대로 애들이 ‘애기는 어떻게 생겨요?’ 이렇게 묻고, 엄마가 책의 정보대로 이렇게 저렇게 말할 순간은 거의 없다. 나와 아이의 일례도 우리만의 일례일 뿐이다.
아이의 진의, 생각의 결을 우선 파악하고 긍정하면서도 단지 거기서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왕이면 생각해볼 거리, 현재 사회의 시선이나 실태에 대한 힌트를 주면서, 여러 입장을 미리 상상해보게 하는 것이 좋다.
다행히 엄마랑 뭐가 되었든 ‘대화’를 한다는 사실을 아직은 재미있어 할 나이니까 가능하다. 당장 내년, 다음 달만 되어도 아들이 어떻게 입을 닫을지 모르므로.
아들이, 나와 제가 휘갈겨 써 내린 이면지를 가져가면서 ‘이런 주제도 나름 재미있는데’ 한다. 그러면서 ‘아, 근데 머리 아프다. 게임 한 판만 하면 딱 좋겠네’ 하면서 나를 떠본다. “그럼 모마(모두의 마블) 한 판 해.” 내 인심썼다. 아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실실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면서 조용히 “두 판” 한다. 에구구. 내가 졌지. ▣ 김서화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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