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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에 대한 로망, 총에 대한 공포

<초딩아들, 영어보다 성교육> 초등학교를 강타한 ‘태양의 후예’



‘아들 키우는 엄마’가 쓰는 초등학생 성교육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필자 김서화 씨는 초딩아들의 정신세계와 생태를 관찰, 탐구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편집자 주] 


비비탄 총을 사달라는 아들

 

“손바닥만한, 진짜 작은 건데. 그것도 안 돼? 아, 왜 나만 안 되는데. 칫”

 

아들은 요새 비비탄 총을 사고 싶어 안달이다. 이제 곧 5월, 일 년에 단 두 번 선물 받는 날 중 하루가 있어서 아들은 매일매일 달콤한 고민에 빠져있다. 다만 받고 싶은 선물 목록에 비비탄 총은 후보로도 올릴 수 없어서 뾰로통해 있기도 하다.

 

초딩아들 중에 비비탄 총을 유독 애정하는 아이들이 있다. 지난주, 가벼운 옷차림이 된 아이들이 공원을 향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아이가 제 키보다 조금 작을 법한 장총을 쌍으로 교차해서 메고 있었다. 또 다른 아이는 묵직해 보이는 권총을 들고 뒤따랐다. 진짜 총인 줄 알고 화들짝 놀라 나는 순간 걸음을 멈칫했다. 한국에서 총을 실제로 볼 일도 별로 없는데 그걸 진짜라고 생각하고 놀란 나도 우습다. 하지만 정말 멈칫할 정도의 정교한 모양새였단 말이다.

 

이번 봄에는 총을 가진 아이들이 유독 눈에 자주 띈다. 총이 없는 아들은 같이 어울리기도 힘들고, 기웃거려 봐도 이내 재미없어지니 하릴없이 방황하다 아예 장소를 옮기고는 한다. 그때마다 나를 붙잡고 한 번씩 총 좀 사달라는 부탁, 청탁, 협상, 협박 다 해본다. 작은 것을 사겠다. 비비탄은 넣지 않겠다. 하루 삼십분만 가지고 놀겠다. 가짜 총(?)을 사겠다. 내가 용돈 모아 그냥 사버리겠다 등등.


▶ 얼마 전 종방한 KBS 2TV <태양의 후예>


이번 봄은 좀 요란하네 싶다.

“왜 이리 총 가지고 노는 애들이 많아?” 하자, 아들이 “당연하지. ‘태후’가 얼마나 유행인데” 한다.

아하! <태양의 후예>의 여파가 초등학교까지 강타한 건 몰랐구나. 그럼 너네 다들 송중기나 진구라도 되는 줄 알고 총 들고 폼 잡고 있다는 거냐?

 

“너 전에는 군인이 싫다며. 군대도 싫다더니.”

“군대는 가기 싫은데, 비비탄 총은 가지고 싶어.”

“무슨 비비탄 총이야. 그건 절대 안 돼!” 

단호한 나에게 아들은 “이젠 군인도 좀 멋있지 않아? 엄마 송중기 싫어?” 한다.

 

반사적으로 ‘야, 정신차려!’가 입 밖으로 나올 뻔 했다. 송중기가 군인 역할 한다고 군인이 다 송중기냐, 이놈아! 빈약하고 초라한 내용에 비해 지나치게 고퀄리티인 배우들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그저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허허, 그저 웃어 넘겨야지.

 

“그러니까 송중기처럼 되고 싶다는 거야, 아니면 총이 가지고 싶은 거야?”

“총 든 송중기?” 물론 그렇겠지만,

“여하간 둘 중 진짜 원하는 게 뭔데?” 하고 재차 물었다. 

내 딴에는 송중기가 멋있다고 할 줄 알고는, ‘총 없이도 멋있는 인간이 되자’ 뭐 이런 류의 설교나 해볼까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총! 진짜 멋있지 않아?” 한다. 아니 그럼 송중기가 총 들어서 멋있는 게 아니고, 총 들면 누구든 멋있어 보였던 건가? 아들은 정말 그렇다고 했다. 총 있는 친구들 다 멋있어 보인다고. 자기만 없어서 초라하다고.

 

나는 “아니, 그게 대체 왜 멋있어?” 하고 물었다. 

아들은 그걸 왜 모르냐는 듯이 “힘 세 보이잖아” 한다. 

“힘 있으면 뭐 할 수 있는데?”

그 다음부터는 그저 멍~한 표정이다. ‘그게 끝, 아닌가?’ 하는 얼굴로 말이다.

 

“군대 가기 싫어, 전쟁나면 사람 죽여야 돼”

 

아이들과 이 정도 투닥거리는 대화를 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 사내 녀석은 어쩔 수 없다니까’ 하면서 모든 남아들은 총이나 무기류를 ‘그저’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멋짐’ 혹은 ‘힘’에 반하지 않는 남아는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를 걱정하건 자랑스러워하건 별개이다.

 

하지만 멋짐과 힘에 목숨 거는 건 그 또래 여아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남아들이 총을 보고 느끼는 감정에 ‘좋은 것’만 있지도 않다. 아이들 개성에 따라서 다르기도 하고, 아이가 그 물건을 대할 때의 맥락에 따라 매번 다른 감정을 가진다. 총을 보고 멋지다고 여길 때도 있지만 어떤 날은 총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는 말이다.

 

실제 아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총/군인/군대라는 단어만 들어도 ‘엄마, 그만 말해.’ 할 정도로 무서워하고 거부감까지 보였던 적이 있다.

 

지난 겨울 파주에 있는 평화도서관 <평화를 품은 집>에 갔다가 우연히 만화책 한 권을 읽은 여파였다. 광주항쟁에 관한 만화였는데 아들 입장에서는 너무 충격이었는지 결국 끝까지 읽지도 못했다. 그날 밤에는 악몽을 꾸고 밤새 끙끙 앓으며 소리를 질러서 나까지 잠을 설쳤던 기억이 있다. 그 겨울에 아들은 군대 가기 싫다고, 정말 한국에 태어난 이상 남자는 다 군대 가야 하느냐면서 지겹도록 물었다. ‘군대 가기 싫어? 왜?’ 라고 물었을 때 아들의 대답은 의미심장했다. “내가 죽기 싫다고 남을 죽여야 할지도 모르잖아. 그게 너무 무서워.”

 

그런 생각을 녀석의 입을 통해 듣자니 한없이 무거웠다. 할 말을 잃고 빤히 보는 날 향해 아들은 그 만화책이 자꾸 떠오른다고 했한다. “엄마, 높은 군인이 어떤 다른 군인한테 앞에 있는 사람을 빨리 죽이라고, 막 그랬어. 네가 그러고도 군인이냐! 이러면서. 그래도 그 군인이 총을 안 쏘고 있으니까 머리에 이렇게 총 대면서 안 그러면 너를 죽인다고, 그래서 그 군인이 살려고 죽였어.” 나는 조용히 ‘살려고 죽였어’라는 문장을 되 읊어보았다. 아들 말로는 그 장면 이후로는 책을 더 읽지도 못했단다. “엄마, 전쟁 나면 군인들은 싫어도 사람 죽여야 돼. 그래서 나 군대 가기 싫어.”

 

아들이 만화에서 본 장면이 어떤 상황을 그린 것인지 짐작이 갔다. 잠시 애들 만화책을 너무 자극적으로 그려놓은 것 아닌가 성질도 냈었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아들이 그 만화책에서 본 사례는 너무나 현실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철학적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피해서는 안 되는 장면이었다. 그때 아들이 느낀 무서움이라는 감정은 ‘군인’이나 그와 유사한 단어들, 그것들을 끈끈하게 해줄 ‘남성성’이란 단어까지 흔들, 묵직한 질문들의 보고와도 같았다.

 

군 인권 문제들이 뉴스에서 연일 나오던 몇 해 전, 그때도 아들은 ‘군대 싫어, 군인 안 해.’ 버전이었다. “나 꼭 군대 가야돼? 애들이 그러는데 군대 가면 엄청 맞는대. 진짜 그래?” 하고 물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서 방구석에 앉아 레고를 조립하던 날이다. ‘한국남자는 무조건 군대 가야 한다. 군대 가면 맞는다. 죽기도 한단다.’ 이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쪼꼬맹이들이 그게 겁난다고 하면서도 군대란 당연히 그런 곳이려니 여긴다는 사실 자체가 막막했다. 그래서 ‘군대는 사람 때리고 맞는 게 당연한 곳이 아냐. 그 어떤 곳에서도 그래서는 안 되듯이 군대서도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너네가 어떤 위치에 있든 사람 때리면 안 되고, 물론 맞아서도 안 돼’ 라고 해명해주기 바쁜 날들이 있었다.

 

그래도 애들은 ‘군대는 높은 사람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거래요’ 라며 응수를 쳤다. 어떤 녀석은 ‘군대서는 대들면 총 맞아요’ 라고 말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더불어 ‘아줌마는 군대 안 갔다 왔잖아요, 여자라.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요…’ 라는 말도 들었다. 나는 초딩 저학년 애들에게마저 나의 생물학적 존재로 인해 진의를 의심받는 일을 또 당하고야 말았다. 아우, 지겨워.

 

여하간 당시 아들은 잔뜩 겁을 먹었고, 몇 살에 군대 가는지, 왜 군대에 가야 하는지, 안 갈수는 없는 건지, 왜 군대가 있는지 궁금증이 폭발했다. 아들을 이해시키려 군과 전쟁에 대해, 상명하복이라는 룰에 대해서 여러 말을 했었다. 하지만 아들의 감정을 뒤흔든 ‘무서운 군대 이야기’들을 잠재울 수 있는 수준은 못 되었던 것 같다.

 

웃긴 건 그러면서도 하루 종일 하는 놀이라고는 손가락 총을 만들어 두두두두하면서 총싸움하기, 장난감 칼을 휘두르면서 전쟁놀이하기, 블록 쌓아놓고 파괴하기 이런 것들이었다. 최근에는 <레전드 삼국전>을 흉내 내면서 ‘군신일체’만 하루 백번 되뇌는 아들이다. 변신 구호가 군신일체가 뭐니, 군신일체가! 21세기에.

 

아이들 삶에 초 치는 말 ‘계집애처럼…’

 

총이나 무기류를 너무도 사랑하며 가지고 놀면서도 누구보다 그런 무기의 사용이나 군대, 전쟁과 같은 상황을 무서워하기도 하는 남자아이들. 하지만 주변 어른들에게 아이들의 이런 반응은 여러 면에서 문제적인 것으로 비쳐지는 듯하다. 심지어 아이들의 다양한 반응과 감정을 애써 이리저리 분류하고, 정리하고, 처리하려는 강박들을 느끼기도 한다.

 

군대/군인/전쟁/총/무기… 이런 단어들의 연상 속에서 아이들이 두려움이나 무서움을 느낀다고 말할 때, 그 아이가 남아라면 ‘사내자식이 이렇게 나약해서 뭐가 되겠냐’는 식으로 쳐다본다. 그저 애가 무서워서 군대 가기 싫다고 했을 뿐인데, 1만 끼 정도는 더 먹어야 입영통지서가 나올까 말까한 애들을 병역기피자 쳐다보듯 한다. 맞는 게 두렵다고 말하는 애들에게 ‘사내는 맞느니 때리는 게 낫다’고 하고, 그러기 위해 어릴 적부터 태권도나 합기도, 복싱이라도 미리미리 배워두라고 한다. 반대로 총을 사달라고 하면 사내라면 응당 그런 요구를 해올 때가 되었다고 여긴다.

 

가장 문제는 어른들의 예상에서 미끄러지는 아이들의 감정들을 분류할 때 꼭 ‘계집애처럼’이라는 말을 이음매로 삼아 그 애매함을 입막음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 이런 일들은 아이들의 삶을 초 치는 보기 좋은 사례들 같다. 그 아이가 남아건 여아건 상관없다.

 

총을 사달라는 아들에게 ‘사내 녀석이 역시!’ 이러지 않아도 된다. 군대가 무섭다는 아들에게 ‘계집애같이 겁 많아서’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 게으르게 그런 추임새에 기대어 애들의 감정을 우리 식대로 초 치지 말고 단 십여 분만 더 투자해서 대화를 이어가면 된다.

 

우리 집에서 아들을 <태후>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은 내가 아니라 아빠였기에, 아빠는 나름의 책임을 느끼고 대화를 이끌었다. 친구들 ‘다’ 총이 있다는 아들의 강조에, 아빠는 정확히 누가 있고 없는지 물었다. 누가 있고, 누군 없고, 아들은 손가락을 접었다 펴며 쭉 이름을 댄다. 막상 리스트를 만들어보니 없는 아이, 있는 아이 수도 비슷했다. 이미 그 상황에서 ‘총’이 가진 멋짐이 살짝 바랬다.

 

“그럼 너한테 총은 액세서리 같은 건가?”하고 아빠가 묻자 아들은 “그치, 짱 멋진 거.” 했다. 아빠가 “액세서리로 치기에는 너, 총의 무서움도 알지 않아?” 하면서 지난 겨울을 상기시켰다. 아들은 본인의 강렬한 경험이 있었던지라 더 긴말 없어도 고민에 빠졌다. 잠깐 진짜 총과 장난감은 다르다며 저항하려다 이내 스스로의 욕망을 관리했다. “에이, 총은 좀 아니다.” 하면서.

 

다만 남편은 대화를 너무 길게 하다 실언을 던지고야 말았다. 아들의 속내를 엿보기 위해 이것저것 말을 던지다가 “너 비비탄 총이 더 갖고 싶어, 스마트폰이 더 갖고 싶어?” 하고 물었던 것이다. 0.2초도 걸리지 않아 아들이 의자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스맛폰! 스맛폰! 나 사줄 수 있어? 진짜?” 한다. 당연히 안 되지. 아들은 스마트폰이라는 ‘더 멋진’ 액세서리의 존재를 확인하며 비비탄 총의 멋짐을 일단 저 먼 곳으로 날려버리긴 했다. 송중기도 이겼던 총인데. 매일 외우는 변신 구호는 군신일체일지라도 일단 21세기엔 스마트폰이 총을 이기는 걸로.  김서화 글/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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