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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무죄’판결에 불복, 모의법정이 밝힌 것

“연예기획사 대표에 의한 청소녀 성폭력 사건” 진실은?



‘연예기획사 대표에 의한 청소녀 성폭력 사건’에 대한 모의법정이 열렸다.

 

이 사건은 40대의 한 연예기획사 대표가 만 15세 여성을 강간하여 임신하게 한 뒤, 집을 나오게 하여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면서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2년형, 2심에서 징역 9년형이 선고된 사건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연인관계였다’고 주장한 가해자의 손을 들어 이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였다. 이후 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현재 검찰의 재상고로 대법원의 판단을 남겨두고 있는 상태다.

 

대법원의 ‘무죄’ 판결이 불러온 파장

 

대법원의 무죄 판결은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340여개 단체는 ‘연예기획사 대표에 의한 청소녀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구성했다. 공대위는 대법원 판결을 강력하게 규탄하면서, 처벌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여 지금까지 1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했다.


▶ 4월 28일 이화여대 법학관에서 열린 <2016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성폭력 판례 뒤집기 모의법정> ⓒ 일다

 

이 사건에 적용되는 법률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다. 아동이나 청소년의 경우 성인과의 권력 관계에서 더욱 취약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다 해도 ‘위계・위력’을 이용했다면 성폭력으로 보고 강도 높게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인해 ‘위계・위력’ 조항이 무력화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이후 하급심에서 유사한 판결들이 속출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4월 28일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관에서 열린 ‘2016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성폭력 판례뒤집기 모의법정’은 공대위와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공동 주최했으며, 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을 재구성했다. 국민참여재판의 형식으로 진행된 모의법정에서, 배심원들은 피고인에 대해 유죄 평결하였다.(유죄 의견 8명, 무죄 의견 1명) 그리고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징역 12년형을 선고했다.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볼 수 없는 증거

 

2014년 11월, 대법원의 무죄 판결의 주된 근거는 ‘피고인과 피해자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판단이었다. 결정적인 증거는 접견 서신과 문자메시지 등이었다.

 

“(피고인이 다른 형사사건으로 구속돼 있을 당시 구치소에서의) 접견민원 서신, 인터넷 서신, (평소에 주고받은) 카카오톡 문자메시지의 내용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는 피고인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사랑의 감정을 느꼈고, 피고인이 구속된 뒤에도 그 감정은 계속 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2014도9288 판결문 중에서)

 

피해자는 이에 대해 자신이 서신을 작성하지 않거나, 서신 용지를 가득 채우지 않거나, 애정표현을 담지 않거나, 문자메시지에 바로 답을 하지 않으면 ‘피고인이 화를 냈기 때문에’ 피고인의 비위를 맞추느라 허위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서신이나 문자메시지의 횟수, 내용, 형식 등에 비추어볼 때 피해자의 진술을 선뜻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 피고 측 변호사(대역)가 피해자 진술 분석 전문가(대역)를 증인 심문하는 모습.  ⓒ 일다

 

이번 모의법정에서는 대법원의 판단을 반박할 수 있는 증거가 다뤄졌다. 구치소 접견실에서 나눈 대화 녹취록이 바로 그것. 이 녹취록은 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 당시 피해자 측이 새롭게 제출한 것이다.

 

녹취록에는 피고인이 접견을 온 피해자에게 접견 시간 내내 “서신 분량이 너무 적다, 서신을 길게 써라, 구체적으로 써라, 0월 0일에는 왜 (서신을) 쓰지 않았느냐, 서신에 애정 표현을 많이 넣어라”라고 피해자에게 윽박지르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한 자신의 신변과 관련된 업무를 피해자에게 일일이 지시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피해자는 출산이 임박해 오면서 매일 접견하는 일, 서신을 쓰는 일이 육체적으로 버겁다고 호소했으나, 피고인은 피해자의 호소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하루도 빠짐없이 접견할 것을 압박했고 심지어 출산 바로 다음날에도 접견을 오도록 종용했다. 접견 시간에는 자신의 지시 사항을 전달하기에 바빴다. 이는 두 사람을 결코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볼 수 없고, 피해자가 피고인의 지배 아래 있었으며, 일방적으로 ‘착취’당하는 관계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모의법정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와 접견하면서 다음 접견 일정을 재촉하고 개인적인 일을 처리해 줄 것을 지시할 뿐, 피해자와의 애정 어린 대화를 나눴다고 보기 어렵다. 피해자는 피고인과 접견하면서 적극적으로 피고인을 사랑한다는 표현을 전혀 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피고인의 재촉과 지시에 단답으로 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정황을 파악했다.

 

또한 “피해자가 출산을 앞두고 있음에도 주변에 피해자를 보호하거나 도와줄 사람이 전무하여 피해자로서는 뱃속의 아이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피고인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점이 접견 녹취록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피해자가 처한 상황의 특수성과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해 가지는 지배력 등에 대한 고려 없이, 접견 서신을 기계적으로 파악한 대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왜 아무에게도 피해사실을 알리지 않았나?!

 

대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추행, 강간했을 때 피해자가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피고인의 집에 따라가서 그 집에서 수개월을 지냈으며, 얼마든지 피고인의 집을 떠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했다.

 

그러나 모의법정에서 피해자(대역)는 이렇게 증언했다.

 

“처음에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때 제가 당한 피해를 아픈 엄마가 알게 될까봐 언제나 조마조마했고 순순히 그 사람 말을 들어야 했어요. 제가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전 우리 엄마밖에 생각이 안 났어요. 엄마가 알지 못하게 그냥 죽어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했어요. 이걸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집에서 저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어요. 저를 언제나 물건처럼 대했어요. 그 사람이 감옥에 가면 좀 편해질 줄 알았지만, 매일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 사람이 절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는데, 그 사람은 계속해서 금방 나올 거라고 했거든요. 저는 죽어도 괜찮은데 우리 엄마랑 언니랑 동생은 무슨 죄에요? 저 때문에 모두 불행해 질 거라고 생각하면 너무 절망적이었어요.”

 

피고인은 27살이라는 나이 차와 자신이 연예기획사 대표라는 점을 이용해 “연예인을 시켜주겠다”, “내가 병원비를 대 주겠다”며 교통사고로 입원 중인 피해자에게 접근했고, 알게 된 지 단 며칠만에 골절로 움직이기 어려운 피해자를 차에 태워 강간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는 가족이나 학교, 친구들에게 성폭력 피해 사실이 알려질 경우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또한 자신이 어디에 사는지, 어느 학교, 학원에 다니는지 피고인이 다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네에 소문이 날까 두려워서 첫 피해 직후 신고를 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임신한 후에는 아픈 엄마가 쓰러질까봐 걱정된 나머지 “병원에 가서 아이를 지울 수 있게 해 주겠다”는 피고인의 말만 믿고 집을 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피고인은 낙태 수술을 받게 해주지 않았으며,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가하고 동영상 촬영까지 했다는 것이다.

 

평소 피해자에게도 난폭한 언행을 자주 했으며, 전 부인의 차를 벽돌로 부수는 피고인의 모습을 보았던 피해자는 공포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이렇게 난폭한 성격의 피고인이 자신의 가족들에게 더 큰 해를 입힐 것이 두려워, 피고인에게서 달아나거나 피해 사실을 알리기 힘들었다고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청소년 피해자의 특수성 감안해 ‘위력’ 인정해야

 

모의법정 재판부는 이러한 정황을 종합적으로 따져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특히 부모의 병세 등 가진 자원이 별로 없는 채 고립돼 있던 청소년 피해자가 가진 취약성, 특수성을 감안해 가해자의 행위를 ‘위력’에 의한 성폭력으로 보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 모의법정에서 유죄 평결하는 배심원의 모습.   ⓒ 일다

 

재판부는 “부모에게 제대로 보호받기 어려웠던 15세의 여중생이 42세 중년 남성의 성폭력으로 임신까지 한 상태에서, 자신의 개인정보의 대부분을 알고 있는 그가 자신과 주변에 해를 끼칠까 두려워 그의 지시에 따라 가출을 했던 상황, 같이 살면서 지속적인 성적 가해 행위를 당했고 이후에도 수치심과 두려움에 그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모의법정에서는 이밖에도 피고인이 피해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하면서도 동거 당시 다른 여성들에게 성적으로 접근했던 정황을 담은 문자메시지 증거, 피해자가 자신의 돈을 빼돌리려 했다고 주장한 피고인의 진술이 허위임을 입증하는 증거 등이 다뤄졌다.

 

이번 모의법정은 “늦었지만 법원은 이제라도 피해자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는 시민들과 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들의 강력한 경고였다. 또한 피해자의 관점에서 성폭력 사건을 바라볼 수 있어야만 왜곡 없는 정당한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피해자(대역)는 최후 진술에서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는 평범한 중 3이었던 제가 지금은 죄지은 사람처럼 숨어 지내고 있어요. 그 사람은 저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사랑이라는 말만 나와도 토할 것 같아요. 제 얘길 믿어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이제 우리 사회가 피해자의 고통어린 호소에 답할 차례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연예기획사 대표 사건의 처벌을 촉구하는 서명운동: http://goo.gl/forms/gtBOv5B0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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