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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700일’ 날짜를 세고 주기를 챙기는 이유

<세월호와 함께 사는 사람들> 유가족 전인숙 씨



어느새 세월호 참사 700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지난 주 매서운 꽃샘추위 속에서 7일 동수 학생의 아버지와 예은 학생의 아버지는 대통령이 말한 세월호 특검 약속을 지키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며 삭발을 했습니다. 곧이어 국회 앞에서 80시간 단식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유가족들의 농성을 지지하기 위해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이하 416연대)는 9일 저녁 시민 필리버스터를 열었습니다. 참여한 시민들은 19대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개정과 특검을 처리해 줄 것을 요구하며 다양한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국회 앞은 강바람에 매우 추웠지만 주권을 가진 국민으로서 의견을 표현하는 민주주의의 장이 되었고, 마이크와 피켓을 든 시민들의 마음이 뜨겁게 전달되었습니다.

 

하지만 방송과 언론은 거의 외면했고, 국회도 무시했습니다. 80시간 단식농성을 마친 유가족들이 뚜렷한 성과를 낼 수 없는 싸움에 지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 3월 14일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피켓팅을 하고 계신 경빈학생의 어머니 전인숙씨.   ⓒ화사

 

고립되고 있는 유가족들의 호소

 

올해 6월이면 임기가 끝나는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를 의식해서인지 선체 인양은 계속 미뤄져서 7월 이후에나 한다고 합니다. 정부는 작년 8월에야 특조위에 예산을 지급했지만 그마저도 반 토막을 냈습니다. 여당 추천의원과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이 특조위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행동을 하면 주류 언론들이 재빠르게 보도하며 특조위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여전히 바다 안에 있는 미수습자 아홉 명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의 피켓팅이 서울 청운동과 홍대 앞에서 기약 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팽목과 동거차도에는 거센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성치 못한 몸으로 버티고 계시는 유가족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흔적이 남은 ‘기억교실’ 존치 여부에 대한 결정도 나지 않았고, 세월호 이후 교육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진지한 논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은 2주기 후 교실을 철수하는 것으로 합의가 될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갔습니다. 세월호 가족들은 기사 수정과 삭제를 요구했지만, 책임감 없는 언론은 정부가 그리하듯 유가족들의 요구를 무시했습니다. ‘전원 구조’ 오보를 내어 아이들을 고립시켰던 언론들은 이런 식으로 부모들을 고립시켰습니다.

 

공중파 방송에서까지 교실 존치 문제가 ‘해결’(철거)될 것처럼 보도된 상황에서, 진실을 알 수 없는 답답한 마음에 떠오르는 분이 계셔서 직접 만나 여쭙기로 했습니다. 월요일마다 광화문 광장에서 호탕한 웃음소리와 힘 있는 목소리를 들려주시는, 4반 임경빈의 어머니 전인숙씨입니다.

 

“정부에서 모든 걸 다 해주겠다고 대통령이 약속까지 했잖아요. 그런데 진상 규명은커녕 교실마저도 시간끌기로 방치해 놓고, 아무 대책 없이 아이들 물건을 치우라고 하고 있어요. 우리가 교실을 지키려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미수습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돌아올 때까지는 기다리는 게 당연하다는 거죠. 선생님이랑 친구들이 나와야 아이들이 같이 졸업할 수 있잖아요. 또 하나는 제 2의 세월호, 아니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해서 안전한 사회를 꿈꾸면서, 존치 교실이 교육의 일환으로 기능하면 좋겠다는 거예요. 교육도 바뀌어야 하는데 어떤 것도 바꾸려 하지 않잖아요.”

 

전인숙 씨는 유가족들에게는 더 이상 양보할 수 있는 것이 남지 않았다며, 이렇게 호소하였습니다.

 

“처음에 이게 내 일이 맞나? 우리 아이에게 일어난 일이 맞나? 정신도 못 차리고 있을 때 교육청에서 가족에게 대책을 물어왔어요. 그래서 그 와중에 재학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공간을 분리하는 안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 안은 검토도 않고, 큰 비용 들여 거대한 추모관을 만들어 준다더니 부지 매입도 하지 않고, 어떤 진행도 없이, 어디에 명시를 하지도 않고 말로만 계속 해줄 거라면서 교실을 치우라고 하니 이제는 믿을 수가 없는 거죠.”

 

세월호에서 가장 가까운 섬, 동거차도에 가면…

 

▶ 2015년 12월 동거차도 산등성이에서 지게를 지고 가고 있는 경빈 어머니(전인숙 씨)와 승묵 어머니.    


전인숙씨는 희생학생들의 아버지들이 지키고 계시는 동거차도에 두 번이나 다녀오셨다고 합니다. 동거차도는 아직 바다 아래 있는 세월호에서 가장 가까운 섬으로, 정부에서 인양 과정 공개를 거절한 탓에 희생자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망원경으로 현장을 지켜보는 곳입니다. 팽목에서 배 타고 2시간 이상 가야 섬에 도착하고, 가파른 언덕을 20분가량 올라야 참사 현장이 잘 보이는 곳이 나옵니다. 작년 8월부터 그곳에서 아버지들이 일주일씩 돌아가며 인양 과정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전인숙씨는 작년 11월에 순범 학생의 어머니와 웅기 학생의 어머니와 함께 8일 간, 그리고 12월에는 수현 학생의 어머니와 승묵 학생의 어머니와 함께 10일 간 동거차도에 계셨습니다. 풍랑과 폭설 때문에 예정보다 더 긴 시간을 섬에 갇혀계셨던 것입니다.

 

동거차도 산등성이에서 인양 과정을 지켜보는 상황은 매우 열악합니다. 화장실이 따로 없어서 파라솔로 가리고 볼일을 보다가 거센 바람에 파라솔이 날아가기도 하고, 물도 없어 세수도 제대로 못하고, 햇반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곳입니다. 그래도 어머니들이 들어가시면서 땅을 판 후 갈대로 가린 화장실이 생겼습니다. 며칠 전에는 숙소도 바람이 세게 불면 넘어갔던 비닐천막에서 성미산학교 학생들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움막으로 바뀌었습니다.

 

“동거차도에서 세월호까지는 1.6km 예요. 특조위가 왔을 때 참사 현장 근처에서 고깃배 두 척이 교신을 했는데 그 소리까지 들릴 만큼 가까운 거예요. 정말 천불이 나는 거죠. 아이들이 수영을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냥 뛰어내리기만 했어도 그 아이들은 충분히 살 수 있었던 거예요. 그걸 부모들은 몰랐잖아요. 팽목항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망망대해라고 해서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잖아요. 방송도 그렇게 나왔고요. 그래서 우리는 근처에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갔더니 섬이 정말 많은 거예요. 근처에 미역양식장도 있으니 거기까지만 가도 됐는데, 너무 억울하잖아요. 뛰어내리기만 했어도 분명 다 살았을 텐데…”

 

전인숙씨가 그곳에 갔을 때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낮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가 밤이 되면 동거차도를 향해 강한 조명을 켜서 시야를 가리고는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날씨가 좋은 날 낮에는 바닷물에 반사되는 햇빛 때문에 바다가 잘 안 보이고 말이지요.

 

“그래도 거기를 가는 이유는요, 인양 작업도 제대로 안 하고 도대체 뭘 하는지 보여주지도 않다 보니까, 그래도 우리가 감으로 인해서 인양을 빨리 해주겠지.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지켜보다보면 우리 아이들이랑 선생님들 더 빨리 오겠지, 돌아올 수 있겠지. 그런 바람으로 가서 지켜보는 거예요”

 

세월호 가족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성실히 해내고 계십니다. 그런 유가족들을 향해 언론에서 자꾸 ‘자식 팔아 돈 더 받으려는’ 사람들로 매도하고, 또 그런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이 저는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동거차도를 들어가려면 배를 타야 되잖아요? 사실은 배를 타는 게 굉장히 힘들어요. 우리 같은 경우는 승묵이 엄마, 수현이 엄마랑 셋이 손을 꽉 잡고 끝까지 갔어요. 세월호가 들어가 있는 바다를 보는데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져요. 정말 힘들거든요. 근데 그게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밖에서 폭설이 내리고 풍랑이 치고 우박이 떨어지고, 섬 날씨는 정말 너무 기가 막힌 거예요. 앞엔 해가 떠있고,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선 비가 오고, 싸래기 눈이 떨어지고, 바람 불고… 한꺼번에 다 해요. 근데 그게 위안이 되는 거예요. 우리 아이들이 엄마들이 왔다고 해서 이렇게 좋아하는 거다,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러면서 위안을 삼다가도 밤만 되면 또 울고. 화가 나는 거야. 고래고래 소리도 질러보고.

 

아이들 이름 노래를 틀어놓고 있기도 하고, 어떤 나무는 아이들의 나무라고 그래 가지고 아이들 이름 다 써서 그 나무에 묶어놓고요. 그래서 나름 아이들하고 생활을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지내다 오니까 오히려 거기를 가면 좋다는 느낌도 있는 것 같아요. 힘든 반면에 좋다는 느낌도 있으니까 두 번이나 가게 된 것 같아요. 다음에도 ‘너희들을 만나러 간다’는 그런 의미로 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 2015년 12월 아이들을 만나러 간 동거차도에서.  힘든 와중에도 장난을 치며 서로 챙기는 세 사람.

 

전인숙씨는 동거차도에 찍은 사진들을 하나하나 보여주었습니다. 사진 속에는 외딴 섬에서 고된 시간을 보내며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함께 장난치며 웃고 있는 어머니들 모습이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역할을 해내고 있으면서도 늘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걱정이 되었는데, 전인숙씨는 긴 싸움을 통해 큰 힘을 가지게 된 것 같았습니다.

 

‘참사 700일’ 날짜를 세고 주기를 챙기는 이유


416연대는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700일을 맞아 사진전을 열고 있습니다. 700일이 지나도록 전국 곳곳, 그리고 세계 전역에서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희생자들을 기억하려는 움직임들을 작은 사진에라도 담아 나누며 더 힘을 내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100일, 200일, 300일, 1주기, 2주기… 이런 행사를 진행하고 있어요. ‘자식이 죽었는데 굳이 저런 걸 하고 싶을까’ 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근데 오죽하면 저희가 그걸 하겠냐구요. 어떻게든 세월호 참사를 알리고, 사회를 바꿔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목소리를 내야 될 것 같고, 알려야 될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날짜를 세고 주기를 챙기는 게 참 힘들기는 했어요. 시민분들이 먼저 시작을 해주셨잖아요, 이렇게 날짜 세는 것도 해야 되는 게 맞다고. 그런데 하다보니까 가족들도 ‘이게 맞다’는 걸 느낀 거예요. 어떻게든 계속 알려내야 되고, 정말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뭐든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행동을 계속 하고 있거든요.”

 

전인숙씨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역할에 대해 강조하면서 이렇게 부탁하였습니다.

 

“우리 같은 경우는 아이들을 통해서 이 세상을 이제서 제대로 보는 것이고, 너무 늦게 알았던 것이죠. ‘이 정권을 바꿀 수 있는 엄마들이 움직여야겠다’라고 느끼는 거예요. 엄마들이 하늘 노래질 때까지, 정말 노래져야지만 아이를 낳잖아요. 그렇게 낳고 길렀는데, 애지중지 키워놨던 아이들을 너무 허무하게 보냈잖아요. 그래서 포기할 수가 없어요.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선물해주는 게 어른들의 역할인 것 같구요.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뭐든 행동해주시면 좋겠어요. 노란리본이라도 꼭 달아주시면 좋겠어요. 그걸 보면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구나’, ‘이 나라가 바뀔 수도 있겠구나’ 희망이 생겨요.”


▶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마련된 전시장에서 한 시민이 700일 기념전시를 보고 있다.   ⓒ 화사

 

아직도 세월호 가족들을 힘없는 ‘희생자’의 모습으로만 가두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그러나 제가 곁에서 뵐 수 있던 유가족들의 모습은 진실을 규명하고 사회를 바꾸려는 운동가의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이러한 부모님의 모습을 아이들은 고마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직장을 다니거나 시간이 정말 없는 분들 계시잖아요. 그러면 미안해하며 외면하지 마시고, 3월 28~29일에 있을 2차 청문회를 생방송할 수 있도록 방송국에 전화걸기를 한다거나 해서 힘을 합해줬으면 좋겠어요. 자꾸 두드리다보면 문이 열리지 않을까요? 그런 거라도 함께 동참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얘기해드리고 싶어요.”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제2의 참사를 막기 위해, 많은 역할을 해내고 계시는 전인숙씨의 건강이 염려되어 여쭤보았지만 ‘지금은 아플 때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우리 일이니 우리가 직접 뛰는 게 맞다’는 말씀을 들으며, 저도 마음을 다잡고 미안한 마음보다는 신뢰와 감사의 마음으로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해봅니다.  ▣ 화사.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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