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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권이 다른 친구들의 섹슈얼리티 경험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독일에서 심리치료하기④
※ 독일에 거주하는 20대 후반 여성 하리타님이 심리치료 과정을 거치며 탐색한 섹슈얼리티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자신의 상처를 짊어지고 국경을 넘어 문화적, 사회적, 제도적 차이 속에서 삶의 변화와 사회와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실천해가는 여정이 전개됩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당신은 과연 나를 얼마큼 이해할 수 있나요?
나의 치료사 베아트리체, 그녀의 짙은 녹색 눈을 들여다보며 이야기할 때면 가끔씩 궁금해진다. 이 사람은 내 이야기에 얼마나 공감하고 있을까. 공감은 고사하고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나이 오십 넘으면 돗자리 깐다’는 말도 있는데, 예순이 가까워올 그녀의 세상사 혜안이나 삼십 년 경력의 치료사 내공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너무나도 다른 그녀와 나의 문화적 배경 때문에 생기는 불신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내가 바라보는 베아트리체는 여러 겹의 ‘주류’ 특권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이다. 백인에 중산층에 이성애자 여성이자(white, middle class, heterosexual privilege stereotype) 정상 가족에서 아내와 어머니의 지위를 가진 사람. 또, 그녀는 무상교육을 비롯해 복지 제도가 안정적이며 빈부 격차가 적은 독일에서 태어나 심한 경쟁이나 위기감, 박탈감, 성과주의 압박 없이 자랐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의 삶이 나보다 순탄했다고는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적 특권이라는 것은 반투명한 보호막처럼 거의 영구적으로 한 사람을 감싸고 있으면서, 그 사람이 넘어지면 덜 다치게 해주고, 어떤 것들은 굳이 보지도 느끼지도 않도록 한다는 게 내 믿음이다. 상대적인 안락과 편의랄까.
▶ 독일에 와서 직접 물들인 이불보. ‘불꽃놀이’라고 이름 붙였다.
뭐든 컬러풀한 것이 좋다. 억눌려온 자아를 표출하는 작업이 시작되는 건 아닐까. ⓒ 하리타
우리가 청년기까지 속하게 되는 지배적인 사회는 가족과 학교다. 따라서 심리치료에서도 이 시기에 대한 이야기가 끝없이 나오고 또 나온다.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과 경험이 거의 없는 나의 치료사에게 처음부터 큰 기대는 안했다.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청년의 ‘평범한 이야기’도 여기서 온전히 이해받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휴가(방학)도 없이 3~6년 꼬박 이어지는 입시지옥, 학교에서의 성과에만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던 부모의 관심과 기대, 성공적인 대학입시-취업-결혼-재생산으로 이어지는 ‘효자.효녀의 가치’. 학창시절 야자를 땡땡이치는 게 어려웠듯이 직장에서 칼퇴를 할 때도 학습된 눈치 보기와 죄의식이 적용된다. 휴식과 취미 계발보다는 극기와 인내로 목표에 정주행하는 게 미래에 대한 ‘올바른 투자’라고 배웠다.
그 모든 경쟁과 과로의 풍경들. 물론, 우리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살아있다고 생명이 다 건강한 건 아니다. 억압되고 축적된 고통, 상처, 분노와 같은 독기운을 몸과 마음은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고작 한두 해 떠나왔다고 내가 다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라고 베아트리체에게 말하고 싶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얼마나 비워내고 씻어내야 이 독을 다 풀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가슴을 치며 말하고 싶었다. 그녀가 나의 평범한 하소연에 놀란 토끼눈을 하다가 ‘이제는 거기서 벗어나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잖아요’ 라고 성급한 위로를 건넬 때마다.
한국에서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경험들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사회적 경험과 관념에 있어서도 하나씩 설명하며 나를 이해시켜야 하는 피로감은 마찬가지다.
족히 6년은 하체를 냉하게 하는 스타킹과 치마교복 차림으로 죽어라 공부만 하고 살다가 스무 살이 넘으면 연애 몇 번은 해봐야 정상인데, 부모에겐 그래도 우리 딸이 아직 남자 경험은 없을 거라고 기대되는 것. 남자라면 다들 포르노를 보게 마련이지만 여자들은 자위 같은 짓은 안 하고 섹스할 때도 너무 주도하지 않는 게 이미지에 좋다는 흔한 생각들. 시집은 제때 가야하고 흡연이 웬 말, 몸보신하다 아이 한 둘은 꼭 낳고 그러다 섹스리스 부부가 되면 예쁜이 수술을 고려해야하는 이 요상한 성관념과 실천들이 상식으로 자리 잡은 사회에서 살다 왔다고 말해주면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흔든다.
▶ 시노하라 치에 <하늘은 붉은 강가>(1990년대 시리즈물) 주인공이 강제 키스당하는 장면. 강제 키스나 성관계는 10-20대 여성이 주 독자인 순정만화에 수시로 등장한다. 여성캐릭터들은 조금 거부하다 순응하거나, 다른 남성에 의해 구출된다.
한번은 베아트리체에게 미디어에 등장하는 섹슈얼리티 코드들이 정말 잘못된 게 많다고, 그 영향을 받으며 자란 것이 한스럽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한국영화 인기 장르인 범죄/스릴러물에서는 남성을 돕던 순수한 여성은 곧잘 납치되며, 줄거리 전개와 무관하게 강간 또는 강간미수 장면이 등장한다. 일본 순정만화에서 여주인공의 첫 성경험은 늘 아파서 눈물이 나고 비명을 지를만한 것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넘어야할 관문이기에 비눗방울과 장미꽃, 완벽한 나체 그림을 배경으로 로맨틱하게 그려진다.
할리우드를 비롯한 북미, 유럽 영상물들도 많이 봐왔지만 여성의 존재와 역할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느냐에 큰 차이는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베아트리체는 나의 일반화에 동조하기 어려웠는지 ‘좋은 작품’들도 많다면서 몇 개를 예로 들었다. 아버지를 대신해 제국을 구하는 중국소녀가 나오는 디즈니의 <뮬란>과 정략결혼을 앞둔 17세 로즈가 크루즈 여행에서 첫눈에 반한 건달 남자와 짜릿하고 행복한 첫섹스를 즐기고 평생 그 사랑을 기리는 <타이타닉>, 1992년 당시에는 꽤 신선했던 페미니즘, 레즈비언 코드의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나는 참 답답했다. 내가 너무 부정적이기만 하다고 지적하려던 것인지, 아니면 그녀는 정말로 이 세상에 긍정적인 여성 섹슈얼리티를 재현한 작품이 많다고 알려주고픈 것인지… 논쟁이 목적이 아닌 심리치료에서 일일이 따지고 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극히 평범하면서 또한 지극히 특별한 것
그렇다. 나는 백인 독일인이자 중산층 이성애자이며 행복한 아내이고 어머니인 나의 치료사에게 이질감을 느낀다. 나는 유색인종 외국인이며 소득과 거처가 불안하고 비혼과 비출산을 고려하는 양성애자로서 더 본질적이고 깊이 있는 이해와 공감을 원한다. 이 긴장 관계를 문화적 차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주류majority 비주류minority의 구도는 여기서 접어두자).
하지만 여기서 문화 차이는 보통 인종-언어-국경-지역을 포괄하는 ‘문화권’에 의해서 금 그어진 것만은 아니다. 내가 여기서 끄집어내고 싶은 것은 우리가 영위하는 일상 생활 전반이 특정한 가치에 기반한 ‘문화의 재현’이라는 관점이다.
앞서 나열한 그녀와 나를 설명하는 단어들은 지위(status)를 나타내고 있고 서로 대립적인데 반해, 좀 더 실제적인 일상 생활에 초점을 맞춘다면 어떨까. 즉, 실제 일상에서 어떤 행위들을 하고 어떤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고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졌는지 등을 비교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차이점만큼이나 유사점과 공통점도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녀와 나 둘 다 여가 시간에 곧잘 영화를 보러가지만 TV는 안 본다.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날씨가 좋으면 산에 간다. 동성애를 인정하고 난민 포용 정책을 지지한다. 그녀가 어울리는 부류의 사람들과 나의 친구들을 보면 세대는 다르지만 고등교육을 받고 토론을 좋아하며 여행에 가치를 둔다. 이렇게 하면 멀찍이 떨어져 보이던 베아트리체를 다시 볼 새 안경을 얻게 된다. 이해는 본래 오고 가야하는 상호적인 것이 아닌가.
또한 문화라는 것은 수많은 갈래로 뻗어나가는 하위문화도 포함한다. 그런 점에서 완전히 같은 문화를 영위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고 볼 수 있다. 세 살 터울에 어린 시절 거의 모든 걸 함께했던 사람, 스물여섯 해를 가깝게 함께 살았던 나의 언니와 나 사이에도 문화 차이가 크다. 언니는 클래식을 곧잘 듣는데 나는 원시 민속음악에 심취한다. 공무원, 아내, 엄마가 되어 지금 삶이 만족스러운 언니에게 나는 겁도 없이 떠도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이러할 진대, 베아트리체와 나는 대양의 두 물방울이 어쩌다 맞부딪친 듯한 거대한 우연으로 이 정도 원만히 소통하고 있는 것 아닌가.
▶ 문화권을 막론하고 공통으로 나타나는 인물 원형을 보여주는 차트. 연인, 현자, 영웅, 창조자, 지배자, 탐험자 등이 있다. 우리들 이야기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출처: dreamlightfugitive.wordpress.com
심리치료사는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는데 온 힘을 쏟는 몇 안 되는 직업이다. 3년도 13년도 아니고 30년 쯤 이 일을 해오면서 별의 별 사람들이 ‘나 죽겠다’며 그녀를 찾아왔을 것이다. 그 별의 별처럼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자기만의 이해법, 분석법이 발달했을 그녀의 머릿속이 궁금해진다. 그 이야기들 중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겠지. 세상에 둘도 없는 한 사람의 삶에 대한 단 한번 지나가는 구술사이니까.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들이 특별하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문화권의 신화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적, 인물적, 상징적 원형(archetype)이 있듯 그녀의 환자들의 이야기도 인간사의 보편성을 가졌을 거다. 나의 이야기도 그러하다. 지극히 평범하면서 또한 지극히 특별한 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저기 한 사람이 앉아있다. 드넓고 푸른 바다의 물방울 둘이 또르륵 서로 만나는 순간이다.
심리치료가 내 생활의 일부가 되면서 일어난 변화 가운데 하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섹슈얼리티에 관한 나의 고민을 좀 더 편하게 풀어놓곤 한다는 것이다. 또 그네들의 아프고 어려운 이야기도 자주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예사롭지 않게 대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예전 같으면 ‘그래, 힘들겠구나’ 하고 지나갈 것도 두고두고 마음이 쓰이고, 친구로서 한층 성숙한 태도로 경청하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새삼 느끼기 때문이리라.
독일에서 만난 친구들, 각자의 고통과 과제
올해 53살이 된 헬레나는 싸이클링, 등산, 스키 같은 스포츠를 하느라 여전히 늘씬한 금발의 미모를 가진 이 지역 토박이 여성이다. 몇 해 전, 20대 초반에 만나 25년간 함께 살아온 남성파트너가 아이가 있는 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린다며 떠난 뒤로 아직 혼자다. 비혼과 비출산은 그 파트너와 함께 고수해온 선택이었는데, 이렇게 되고 나니 이제 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가 참 어렵다. 마침 갱년기도 겹쳐서 3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여성으로서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고.
독일은 이혼과 재혼이 아주 흔한 사회라 적어도 남들의 시선 때문에 괴롭지는 않지만 상처는 여전하다. 어느 날 갑자기 타의로 인해 홀로 선다는 것이 아팠고, 누군가와 다시 함께 한다면 살아온 시간과 습관의 관성을 바꿔야 한다는 두려움이 크다. 올해도 혼자만의 휴가계획을 짠다.
나디아는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의 자연 속에서 자랐다기에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줄만 알았는데, 어느 날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관계에서, 특히 연애관계에서 자기 의사 표현이 힘들고 상대방에게 끌려 다니는 패턴이 반복된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남자들이 얕잡아봐서인지 사랑을 빙자하여 나디아와 자면서 원래 애인에겐 비밀로 할 것을 요구한다거나, ‘널 좋아는 하지만 사귀는 건 부담스럽다’고 하는 경우가 몇 차례나 있었다.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는 관계는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는 것, 더 나은 관계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막상 실현이 잘 안 된다. 남성에 대한 원형심리가 문제인가 싶어서 심리치료를 시작하면서, 두 명의 오빠와 아빠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자주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요즘도 나디아가 섹스를 했던 남자-지금도 일방적으로 연애감정을 품은 남자-가 나디아의 룸메이트와 섹스를 하는 사이가 되면서 상처를 많이 받는다.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두 사람을 잃을 수 없어서 ‘우정’으로 어울린다.
이슬람권인 방글라데시에서 온 란드는 작은 체구에 카리스마가 넘치는 연구자인데, 알고 보니 말 그대로 남편의 손아귀에서 탈출해왔다. 폭행을 일삼는 남편은 그 나라에서 꽤 알려진 학자라 권력과 지위를 악용해 란드를 입막음했다. 7살 미만의 아이는 아빠가 무조건 양육권을 갖도록 되어있는 가부장적인 법 때문에 이혼 소송도 승산이 없었다. 결국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공항까지 쫒아온 전남편 일행을 따돌리고 간신히 아들과 도망쳐 나왔다. 최근까지도 남편의 협박전화가 걸려와 가족들을 방문할 때도 아이는 못 데려가고 혼자만 몰래 다녀왔을 정도다.
아직 독일어도 서툰 싱글맘으로 학교에 다니라, 생활비 벌랴 스트레스가 심한지 만성 허리통증이 심각하다. 사람들이나 앞에서 늘 밝고 자신감 있는 모습인데, 사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밤마다 울 때가 많다는 게 가면성 우울증 같다. 란드를 헌신적으로 살펴주는 독일인 남자친구가 생겼지만 혹시라도 양육권에 불이익이 생길까봐 노심초사, 애인이라고 소개하지도 못한다.
보수적인 미국 남부 텍사스에서 나고 자라 그 지역의 기독교 대학까지 나온 루시는 수영선수로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다녀서 여대생의 시간을 누리기보다는 늘 훈련이 우선이었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샤워하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헐레벌떡 수업에 들어가기 바빴다. 더구나 그 기독교 대학은 아직까지도 여대생에게 순결서약을 강요하고 낙태와 동성애를 공공연히 반대한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언제가 루시가 ‘연애는 결혼할 사람과’, ‘내 보지는 내 미래 남편의 것’이라는 떨쳐내기 어려운 자기 ‘신념’을 전했을 때, 나는 정말 충격을 넘어 경악스러웠다. 이게 정말 21세기 미국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인지. 세계일주는 기본, 누구와도 수줍음이나 망설임 없이 어울리는 이 거침없는 여성이 남자와 데이트할 때는 그 낡은 보수적 기독교 가치관에 매여 사소한 스킨십에도 긴장하고 어떠한 성적 쾌감과 놀이도 즐기지 못한다니.
남자들의 숨겨진 아픔
남자들의 숨겨진 아픔도 있다. 십대 중반 아르바이트했던 주유소의 사장이 갈 때마다 바지를 내리게 해 자신을 상대로 오럴과 애널섹스를 했었다는 마이클은 그 때 가난한 집안 형편에 벌이가 좋은 알바를 관두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단다. 그 주유소에서 알바를 하던 모든 소년들이 수년간 수백 번씩 같은 일을 당했지만 사장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사건은 묻혔다고. 하지만 그때 성적 학대가 뭔지 절실히 느낀 탓에 여성들이 겪는 성폭력에 유달리 공감하는 남성 페미니스트가 됐다.
얀은 약혼녀의 집착 때문에 괴롭다. 그의 약혼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매사 그를 통제하려들고 얀의 다른 친구 관계에 질투도 심하다. 얀은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개’처럼 엎드리는 게 제일 나은 방법이라고 체념했다. 결혼을 앞둔 그에게 나는 가까운 친구의 도리를 하자 싶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러 번 권했다. 결혼을 다시 생각하라고. 이 관계를 본질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면 결혼생활이 불행할 거라고.
약혼녀를 왜 사랑하냐고 물으면 ‘내가 그 애를 도울 수 있어서’라고 답하는 연민의 오류에 빠진 그를 전혀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얀은 전반적으로 자존감이 낮고 그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늘 침묵하고 양보하고 기꺼이 짐을 떠맡는다. 얀에게 약혼녀는 역설적으로 자존감을 높여주는 존재인 것이다. 아무리 통제하려 들어도 그게 결국엔 자기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한 것이고, 자기만 잘 맞춰주면 그만큼 행복하게도 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약혼녀의 사랑이 집착이라는 위험한 형태이고, 그건 그녀의 해결하지 못한 심리적 숙제들 때문이니 네가 다 떠맡고 같이 불행해선 안 된다고 설득해 봐도 소용없다.
이들의 이야기들은 내 것과는 참 다른 문화의 조각들에서 왔다. 그만큼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낯설기만 한가? 문화의 겉껍질을 한 꺼풀씩 벗겨내고 보면 기이하고 안타깝긴 해도 다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본 이야기들이다. 누군가에게는 그들 자신, 그들의 가족과 친구를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남 이야기가 아니다. 늘 뺨을 맞대 인사하며 헤어질 때 오래 포옹하는 나의 가까운 벗들. 그들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귀 기울이다 보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
나의 심리치료, 출발점에 다시 서다
우리의 이야기가 어느 쪽에 기울어있든 거슬러 가보면 오늘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온 모든 것의 총합이다. 타고난 부모와 불가피하게 주어진 가족과 학교라는 사회, 힘없는 어린 아이일 때 보고 들었던 것, 아직 자립하지 못한 청소년일 때 우리 마음을 할퀴었던 일들. 우리가 믿었던 사람들, 사랑했던 사람들, 도망쳐 달아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얽혀있는 온갖 기억과 감정들. 그 모든 것들이 오늘의 우리 존재를 관통한다.
나는 내가 지금 붙들고 있는 이 문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깨달음은 벗들이 자기네 꽁꽁 싸맨 상처를 내게 열어 보여주었기에 찾아왔다. 그래서 참으로 맵고 쓰다.
열 번이 넘는 그 간의 면담 동안 실은 자주, 나의 심리치료사 베아트리트의 방식이 못마땅했다. 심리치료 과정이 생활의 온갖 것들을 다 묻고 답하는 잡담 시간 같아서 실망도 했다. ‘주제와 관련 없는’ 것들만 자꾸 물으며 겉도는 것 같아 혹시 베아트리체도 혼란스러워서 시간을 벌려는 건가, 의심도 했었다.
이제야 알겠다. 이렇게 멀리 돌아가야 잘 가는 것이구나. 나는 이제 죽음의 문턱에서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생의 파노라마’ 영상을 눈을 감고 떠올려본다.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EMDR(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걸어 들어간다. ※ 기사에 등장하는 친구들의 이름은 모두 실제 이름과 비슷한 가명입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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