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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제강간 연령 상향하면 해결됩니까?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 구조의 문제를 보자


※ ‘미성년자 의제강간죄’의 연령 기준을 상향하는 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청소년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방식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 기고 글을 싣습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작년 12월 남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이 ‘의제강간 연령 기준’을 만 13세에서 16세로 상향하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의제강간이란, 기준이 되는 연령 이하의 사람과 성관계할 경우 강간으로 간주해 형사 처벌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 발의안에서는 만 16세 미만인 사람과 만 19세 이상인 사람이 성관계할 경우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 연예기획사 대표가 여자중학생을 강간한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사회적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의제강간 연령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았고, 이 주장은 특히 ‘여성’의 요구로 조명되었지요. 저는 청소년운동을 하고 있는 ‘여성’으로서, 이러한 주장에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와 ‘착취’ 사이에서

 

의제강간이란, 특정 연령 미만의 사람은 성적 행동이나 성관계에 동의할 능력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의제강간 연령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말해온 사람들 중 상당수는 ‘청소년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청소년들이 성관계를 하거나 성적 자유를 누리는 것이 싫어서’ 그러한 주장을 해왔습니다.

 

“13∼18세에게 성인영화는 불허하면서 성행위는 허용하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너무 많이 허용하고 있다.” 2010년 이은재 한나라당 의원이 국정감사 때 의제강간 연령 기준을 상향하자고 주장하며 한 말입니다.

 

“가장 심각한 건 중학생 나이의 청소년에게 법률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허용했다는 점이다. (…) 앞으로 ‘법을 지켜가며’ 성적 자유를 누리겠다는 청소년을 방치하지 않으려면 허용 기준 연령을 높여야 한다.” 2010년 10월 20일 서울신문 사설 내용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청소년의 성행동에 대해 혐오하는 보수적인 정서가 있는데, 이러한 정서는 청소년을 성적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감성과 크게 구분되지 않은 채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어떤 집단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질 만한지 아닌지를 국가가 판단하여 규제하는 일은 큰 쟁점이 될 법한 이슈임에도, 의제강간 연령 기준을 상향하는 법안에 대한 반론이나 별다른 사회적 논쟁이 벌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러한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의제강간 연령 기준을 상향하는 법안의 목적은 청소년과 비청소년 간의 위계와 권력 차이가 뚜렷한 상황에서 예상되는 폭력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특히 학생-교사, 노동자-사장, 자식-부모 같은 관계에서라면 더더욱 그 권력 관계가 강하게 작동합니다. 나이 권력을 이용해 청소년의 성을 착취하려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습니다.

 

얼마 전, 저는 어느 빈곤 지역 중학교에 다니는 청소년과 대화한 적이 있습니다. 해당 중학교 주변에는 하교할 시간이 되면 어슬렁거리는 비청소년 남성들이 있다고 합니다. 여자중학생들과의 연애를 하거나 성관계를 할 목적을 갖고 말이죠. 빈곤 청소년, 혹은 탈가정 청소년이 성적 착취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제강간 연령을 상향해서 청소년을 이용하는 비청소년을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만 17세도, 만 18세도 똑같이 겪을 문제입니다. 또한 성적으로 착취당할 가능성이 높은 집단은 청소년만이 아닙니다.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의제강간 기준은 나이뿐 아니라 계층 등의 다양한 요소가 되어야 합니다.

 

폭력에 무력해지는 건, 나이 때문만이 아니다

 

얼마 전, 의제강간 연령 상향이 논의되었던 자리에 참여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여성단체 활동가도 있었고, 아동을 지원하는 단체 활동가도 있었습니다. 어느 분이 ‘한 아이라도 보호할 수 있다면 의제강간 연령을 상향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에 반대하면서 ‘나는 만 16세 미만인 시절에 자발적으로 여러 차례 성관계를 했고, 그것은 폭력이 아니었다’고 발언했습니다.

 

의제강간 연령 기준을 높이는 것에 반대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발언이었지만, 그렇게 말하고 나서 뭔가 찝찝한 것이 있었습니다. 만 16세 미만일 당시, 저는 자발적으로 애인(여성, 남성)과 성관계를 했지만, 그 외 남성들과 가졌던 성관계에 대해선 여전히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고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 성폭력 사건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동의’ 여부와 ‘폭행, 협박’ 여부. 그리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의 경우에는, 미성년자에 대한 위계와 위력 행사 여부입니다. 하지만 내 경험이 성폭력이었는가 아닌가를 고민할 때에, 저는 이러한 성폭력의 성립 기준에서 ‘미끄러지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형법의 기준으로 보면 그 성관계들은 강간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의제강간 기준 연령을 만 16세 미만으로 상향한다면 그것은 ‘의제강간’이 되겠지요. 하지만 제가 만 16세 미만이었다는 것을 이유로 ‘성관계 동의 능력’이 없어서 강간이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저는 말이 안 된다고 느낄 것입니다. 당시에 제가 애인들과 자발적이고 합의된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 없고요.

 

제가 겪었던 관계들이 폭력적이었던 이유는, 제가 어려서 성관계 동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가 놓인 사회적 위치가 열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청소년 시절, 나는 왜 불쾌한 성관계를 했을까

 

만 14-15세였을 당시, 저는 네 명의 남성(애인이 아닌)과 성관계를 했습니다. 첫 번째 남성은 처음 만난 사이였고 삼십대 정도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과의 성관계는 제가 동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강간이라 부르기도 애매했는데, 제가 어버버하다가, 저의 저항도 협조도 없이 성관계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사람은 콘돔을 쓰지 않았고 저는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아 먹었습니다. 강간은 아닌 것 같은데, 매우 수치스럽고 싫었습니다.

 

두 번째 남성은 이십 대였는데, 성관계는 미리 합의한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과 성관계를 함으로써 저는 그 사람 소유의 자가용을 탈 수 있었고, 술집에서 술을 마실 수도 있었습니다.

 

세 번째 남성은 사십 대였고, 성관계는 역시 합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관계 후 무언가 때문에 제가 기분이 상했을 때 그 사람은 ‘아이스크림 사줄까?’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에게 저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아이스크림으로 달랠 수 있는 ‘아이’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는 만나지 않았습니다.

 

네 번째 남성은 저보다 나이 많은 십대였습니다. 첫 번째 남성과 비슷하게, 강간죄로 처벌하긴 어렵지만 제가 동의하지는 않은 성관계가 치러졌습니다. 다만, 이 경우엔 제가 미약하게나마 ‘저항’을 했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강간이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강간을 당했다고 말하자, 그 사람은 주변인들에게 제가 정신병이 있다고 소문을 냈습니다.

 

지금까지도 대체 왜 그런 성관계에 나를 ‘내몰았는지’, 내가 나를 내몬 것인지 내몰린 것인지 자문하고 있습니다. 당시 저는 학교를 자퇴하고, 다른 여성청소년들보다 ‘자유로운’옷차림으로 다녔습니다. 파마를 하고 짧은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고 다녔죠. 휴대폰 번호를 요구하는 비청소년 남성들, 같잖은 성희롱을 하며 지나가는 나이 많은 남성들이 심심찮게 있었습니다. 물론 길거리에서 담배 피운다고 훈계하는 남성들도 있었고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남을 제안하거나 치근덕대는 비청소년 남성들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매력이 있어서 남자들이 꼬이나 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아니란 걸 압니다. 어린 여성청소년이, 딱 봐도 노는 것 같이 보이는 애가, 옷을 야하게 입고 다니니까 성관계하기 ‘쉬워’ 보여서 그랬던 것이란 걸요. ‘어릴수록 좋다’는 남성중심적 판타지도 자극받았겠죠.

 

거래 조건으로 성관계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살이 비치는 스타킹과 뒤꿈치가 까지는 구두, 짧은 청치마를 입고 달콤한 향수를 뿌린 채 밤거리를 돌아다니던 그 시절. 자가용 가진 남자의 옆좌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노라면 겨우 그만큼의 자유로도 섹스 한 번은 해줄 수 있었던. 어디냐, 언제 오냐는 화난 엄마의 전화를 애써 무시하며 휴대폰을 꼭 쥐고, 빨리 취하는 것만이 목적인 음주를 해대다 길거리에서 구토를 하고. 외로움이 극에 달아 치를 떨면서도 아직까지 누군가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스스로 부정하지는 않았다. 늦은 시간 집이 아닌 곳에 있다는 것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던 그 밤들. 그저 들뜨고 연약한, 그래서 이용해먹기 쉬운 소녀, 스스로의 존엄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상상하지 못했고, 어른들의 영악한 세상에서 발을 헛디디던, 열다섯과 열여섯의 그 시절을 잊지 않겠다. 부정하지도 비하하지도 않겠다.”

 

스물 무렵 쓴 일기의 일부입니다. 저는 그 당시 저를 이해하기 위해, 그 경험을 “자가용 가진 남자의 옆좌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노라면 겨우 그만큼의 자유로도 섹스 한 번은 해줄 수 있었던” 상황으로 해석했습니다. 제가 원했던 것은 자유였고 구원이었는데, 그 대가로 제가 지불할 수 있었던 것은 성관계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유나 구원을 얻었는가,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바랐던 자유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늦은 시간 길거리든 어디든 내가 원하는 때와 장소에 있을 수 있는 자유, 술 마시고 담배 피울 자유, 내가 원하는 옷차림을 할 자유, 내 결정과 행동을 일일이 (어른에게)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제가 바랐던 구원의 내용은 ‘나의 본질 그대로 이해받을 수 있는 관계’와 사회적 인정이었습니다.


▶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에서 배포하고 있는 스티커 


저에겐 은밀한 욕망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이’가 아니라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었습니다. 때론 ‘아이’로 취급받는 것보다는 ‘성적 대상’ 즉 ‘여자’로 취급받는 게 더 인간 취급에 가깝다고 느꼈기 때문에, 즐겁지 않은 성관계들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탈학교 청소년으로써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던 것도 한 몫 했을 것입니다.

 

저는 자유와 구원을 얻기 위해, 인간 취급을 받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아동이나 청소년이, 혹은 여성이 성관계를 하게 되지 않는 세상을 바랍니다. 여성청소년으로써 제가 겪었던 그 관계들은 법적 의미에서 성폭력 사건이 아닐지라도, 제가 놓였던 전반적인 상황 자체는 폭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동, 청소년과 여성을 성폭력으로 내몰지 않는 사회가 되려면, 약자들이 성관계를 하던지 하지 않던지 간에 자유와 존중을 누릴 수 있는 사회여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청소년의 성폭력 피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은 청소년운동이 이야기해온 ‘청소년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며, 나이 위계와 권력을 철폐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제강간 제도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

 

성인여성 중에도 성적자기결정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 저는 올해 만 20세가 넘었지만 제가 성적자기결정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며 사는지 의문입니다. 여성운동은 성적자기결정권과 관련한 사회 구조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이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사회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왜 청소년의 경우도 같은 논리로 이야기될 수 없는지 묻고 싶습니다. 청소년이 성폭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의제강간 연령을 상향하는 것은 문제를 거꾸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의제강간 연령 상향을 지지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청소년에 대한 성폭력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폭행이나 협박이 없는 성폭력 사건들을 강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현행법과 법원의 문제입니다. 특히 어린 피해자가 동의로 여겨질 수 있는 언행을 했더라도, 전체적인 상황을 볼 때 자발적 동의가 아니었던 상황을 세밀하게 접근하는 제도와 사법기관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단순히 의제강간 연령 기준을 상향해서 무조건 강간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쉬운 길처럼 보일지 모르나 미봉책일 뿐이며 위험한 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이 성폭력을 겪고도 신고를 망설이는 이유는 부모에게 알려질까 봐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성폭력을 겪을 당시 정황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거나 기타 어른들의 눈에 ‘청소년답지’ 않은 행동을 했다면 더더욱 비난받을까 두려워합니다. 청소년의 신체와 행동에 덧씌워지는 낙인을 제거해야만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피해를 호소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이 겪는 성폭력의 해결책으로 의제강간 연령 상향을 내놓는 것은, 청소년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마련하는 대신 청소년의 성적자기결정 능력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처사가 되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됩니다.

 

나이 권력과 지위를 이용한 비청소년의 청소년에 대한 성폭력은 나이라는 일괄적 기준으로 의제강간을 적용해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청소년의 인권을 신장하고 나이 권력을 철폐하려는 노력을 통해 접근해야 할 문제입니다. 또한 사법부는 나이와 성에 따른 위계와 권력, 폭력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더 깊이 이해해야 하며 민감해져야만 합니다. 

 

※ 참고자료: “청소년 대상 성폭력의 해결책은 의제강간 연령 기준 상향이 아니다”,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및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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