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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과 고양이 똥의 경계

<여라의 와이너리 시즌2> 무기질과 유기질 사이



가을이 깊다고 해야 할지 겨울이 왔다고 해야 할지. 화려하던 낙엽이 땅에 떨어져 수북이 쌓이고 이어진 늦가을 비에 푹 젖었다. 이제 흙으로 다시 돌아갈 채비를 한다. 늦가을엔 이렇게 또 한 해가 저무는가 하여 뭔가 뭉클하고 눈물겹기까지 하다. 올해는 추위가 늦어 더 그런 것 같다. (남반구에 살면 연말이 가까울 때에 여름휴가를 준비하니까 이런 종말론적 느낌은 안들 텐데.)

 

삼 년 전 나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길고양이 새끼 세 마리를 떠안았다. 어미는 간 데 없고 날마다 삐약거리는 것들이 안쓰러워 밥을 주기 시작한 것이 잘못이면 잘못이랄까.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고양이 평균 수명이 15년이란다. 그 긴 세월 밥 줄 생각에 아찔하여 어미를 여러 날 더 기다려봤다. 허사였다.

 

그리하여 마당에 서식하게 된 그것들은 다행히도 사료와 물만 떨어지지 않게 챙겨 내놓으면 특별히 더 해줘야 할 일은 없었다. 배변을 가르칠 필요도 없고 처리도 알아서 한다. 세수도, 몸단장도 매일 깔끔하게 한다. 다만 겨울엔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스티로폼 박스 집을 마련해 준 것이 전부다. 날이 아무리 추워도 해가 드는 동안엔 마당 어딘가 아늑한 곳을 기막히게 찾아내어 오수를 즐긴다. 어디서 주워오는 지 알 수 없는 대팻밥이나 고무패킹처럼 별 것 아닌 것을 장난감 삼아 몇 날 며칠을 재미있게 논다.

 

끼니를 챙겨줘야 할 이 작은 것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고정게스트 길고양이 몇 마리는 우리 가족에게 이야기 거리를 주었다. 웃기기도 하고, 때로 안쓰럽기도 하고, 갓난 아기고양이에서 이제 어른 고양이가 되어 보여주는 자연의 신비가 새삼 놀랍기도 하다. 야생인 것 같다가도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면 달려 나와 반기고, 마당에서 뭔가 할라치면 쓱 다가와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다. 사람 손을 타서 길들여진 것 같다가도 어디론가 집을 나갔다 며칠 만에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너무 좋아해줄라치면 차갑고 쏘쿨하게 선을 긋곤 한다. 흥!

 

저것들이 밥만 축내나 했더니 해가 지나니 공헌도 한다. 올해도 마당 감나무에 감이 셀 수도 없이 많이 달렸다. 감을 먹을 때마다 난 고양이 똥이 감이 되었다고 얘기한다. 마당 고양이들이 즐겨 찾는 화장실이 감나무 주변이기 때문이다. 삼십 년 다 되도록 해거리 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 감나무에서 이렇게 많은 감을 추수한 가을이 없다. 왜인지 맛도 예전보다 더 좋은 것 같다. 다 고양이 똥 덕분이다.

 

와인 포도나무에 주는 비료


▲ 비오는 계절 끝 무렵 날이 개인 어느날 버클리 틸덴 공원. 젖은 낙엽과 나뭇가지가 물과 흙의 혼돈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 여라


와인을 만드는 포도밭에서는 포도나무에 어떤 비료를 줄까. 사실 와인 만드는 포도나무에는 포도를 먹기 위해 재배하는 포도나무보다 비료를 훨씬 덜 준다. 와인 포도나무도 다른 과실수와 마찬가지로 ‘비료의 3대 요소’인 질소, 인산, 칼륨을 포함하여 칼슘, 마그네슘, 유황, 철분, 붕소, 이런저런 무기질(미네랄)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일반 과실수에 비해 훨씬 적은 양이다. 좋은 와인을 위해서는 영양분을 듬뿍 주는 것보다는 모자란 것이 낫다고 한다. 그렇다고 척박한 땅일수록 무조건 더 좋은 와인이 만들어진다는 식은 아니지만.

 

포도나무에 질소가 부족하면 잎이 누렇게 뜨고 잘 자라지 않는다. 인이 부족하면 잘 자라지 못하고 비실거리고 잎이 쳐져서 끝이 둥글게 말리거나 울긋불긋 얼룩무늬가 생긴다. 칼륨이 모자라면 잎 끝이 불타듯 붉게 물든다. 잎뿐 아니라 가지, 뿌리, 꽃, 포도알과 포도송이가 멀쩡하게 자라기 위해서 비료 속 무기질은 유기질인 포도나무를 위해 필수조건이다. 유기질이 유기질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목숨이 없는 무기질이 꼭 필요한 요소라니. 생명이 없는 것이 생명에 이렇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다니.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무기질만 제공한다면 식물이 바로 바로 직접 혜택을 입는 한편 그것이 뿌리 두고 있는 땅에 이롭지 못하고 결국은 포도나무에도 해롭게 된다. 화학비료가 나쁘다고 하는 이유는 비료가 식물성장에 필요한 무기질로만 이루어진 인공비료이기 때문 아닌가. 미생물, 곰팡이, 지렁이, 곤충과 온갖 벌레, 다른 식물들에게도 다 함께 먹이가 되는 유기비료가 효과대비 비용이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이상적이고 자연스런 모습이다.

 

유기농 혹은 그보다 몇 단계 더 나아간 비오디나미(생체역학적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농법에서 이용하는 비료는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러니까 비효율적이고 느리다고 하는 거다. 줄지어 선 포도나무 사이사이 영양분 경쟁을 하지 않는 다른 풀들을 일부러 키우고, 소나 양 같은 동물을 방목하여 여러 가지 일(?)을 시킨다. 포도밭에서 동물들은 제초도 하고 비료(똥)도 만들고 여기저기 거닐며 땅을 솎는다.

 

또 다른 비료로는, 와인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로 퇴비를 만들거나 찌꺼기째 밭에 뿌리기도 한다. 자연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자연에선 유기질이 쓰레기가 되는 경우는 없다. 돌고 돈다. 오히려 순환하지 않고 막혀있는 것이 문제일 테다.

 

한없이 순환하는 생명을 보며

 

유기질과 무기질의 경계는 어디에서 생기는 건가. 유기질에서 무기질로, 다시 유기질로, 생명에서 무생명에서 다시 생명으로 도는 거라면 그냥 형태만 달라지는 건가?

 

젖은 낙엽이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보면 그런 것 같다. 생명을 지닌 나무에서 떨어져나오며 생명에서 무생명이 되고, 거듭된 분해를 통해서 다시 동식물의 피와 살이 되고, 그렇게 한없이 순환하지 않나. 사람도 죽어서 땅에 묻힘으로 다시 자연에 돌아간다. 그렇다면 죽음은 이별인가, 다른 존재로 이어짐인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연은 신기함 투성이다. 숨이 없는 것이라고 해서 죽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감과 고양이 똥의 경계는 어디에 있나? 있기는 한 걸까?

 

마당 포도나무에 그나마 떨어지지 않고 남아있던 나뭇잎들이 추위에 얼더니 이내 다 말랐다. 포도나무가 겨울잠을 자는 동안 가지치기를 해서 내년을 준비해야겠다. 그리고, 아낀다고 모셔둔 와인, 너무 아끼다 똥 된다. 지금 마시자!  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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