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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승진 안 된다, 알고 시작해라”
[청년 여성의 일 이야기] 대기업 정규직 신입사원 도영 

  

 

열정 페이, 무급 인턴, 삼포세대… ‘청년’에게 붙이는 이런저런 말들이 늘어나고 ‘청년’을 걱정하는 기사도 연일 쏟아진다. 그런데 온 대한민국이 ‘청년’에 대해 떠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청년이자 여성으로서 일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올해 민우회 여성노동팀 활동가들은 20-30대 여성 스무 명을 만나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해왔는지, 먹고 살기는 괜찮은지,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그려나가고 있는지 인터뷰했다. 지금까지 줄기차게 일하고 있지만 ‘성장’은커녕 ‘경력’도 쌓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는 “할 말 진짜 많다”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은 활동가가 전한다. [기자의 말]

 

아등바등 버티는 또 한 명의 ‘안영이’를 만나다

 

여성주의 이슈와 관련한 어느 포럼에서 도영(25세)을 처음 만났다. 단체 활동가나 여성학 연구자 같아 보이지는 않고, 기자도 아닌 낯선 얼굴. 혹시 저 분이 현재 직장에 다니는 20~30대라면 인터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다가갔다. 20~3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일 경험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며 인터뷰에 응해줄 수 있는지 조심스레 묻자, 도영은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 받는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할 말 진짜 많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물음이 드는 순간, 도영이 건네준 명함에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대기업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다들 취업하기 힘들다고 난리인 마당에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직한 도영. 그런데 도대체 회사에서 어떻게 일하고 있기에, 일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바로 찌푸린 표정을 지은 걸까.
 

▲ 도영을 처음 만난 포럼. 대기업에 다니는 도영은 <미생>의 '안영이'를 떠올리게 했다. ©민우회 
 

지금 일하는 회사가 도영에게는 첫 직장이라고 한다. 그 전에는 말이 좋아 ‘인턴’이지 교육이나 경험을 쌓기는커녕 온갖 잡무만 담당하는 인턴 생활을 두 번 거쳤다. 그 후 되는 대로 몽땅 지원한 15개의 회사 중에서 딱 하나 합격한 곳이다. 그런데 5주간의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부서에 배치된 첫날부터 줄곧 도영은 ‘여자는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있다.

 

“제가 입사를 딱 하고 연수를 끝내고 이 부서에 처음 들어왔는데 차장이, 우리 차장은 아니고 옆 팀 차장인데 하는 말이 ‘우리 회사는 여자가 승진이 안 된다. 알고 시작해라.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게 낫지 않겠느냐.’ 이런 말부터 했어요. 그거부터 저는 좀 충격이었죠.”

 

“그 다음 회식을 갔는데 하는 말이, ‘원래 내가 널 안 받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어서 네가 왔다. 원래 남직원을 원했는데 네가 어쩔 수 없이 왔다.’ 그 얘기를 부장이 하더라고요. ‘왜 굳이 우리 회사에 여자가 들어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여자가 들어오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다’고 대놓고 말을 했어요. (제가) 우리 회사는 너무 성차별적이고 부당한 게 많다고 그랬더니, ‘그건 맞는 이야기인데 앞으로도 안 바뀔 거다’ 그러는 거예요.”

 

‘살림이나 하지 넌 왜 회사생활 하냐?’

 

도영은 입사 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보여주기도 전에 ‘여자’라는 이유로 부정적인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했다. 그런데 ‘여자’라는 사실은 도영이 바꿀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사들이 던진 성차별 발언은 회사와 일에 대한 기대를 꺾었다. 첫 직장에서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조건으로 인해 부정적인 대우를 받으면, 다른 직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기대를 하게 되기보다는 직장과 일 자체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게 된다.

 

상사들은 도영에게 ‘여자는 집에서 살림이나 하면 된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 도영의 존재를 회사에 잘 적응하고 성장하도록 도와야 할 신입사원이자 동료로 대하지 않고, 머지않아 결혼하고 그만 둘 ‘여자’로 바라보고 있다.

 

“맨날 회식 시간에 그, 실장이 있어요. 실장. 부장님. 그 사람이 와가지고 ‘너는 아빠가 돈도 잘 벌고 그러는데 왜 굳이 회사생활 하냐, 살림이나 하면 됐지. 그리고 결혼은 언제 하니, 남자친구랑은 어떻게 지내?’ 맨날 그렇게 꼬치꼬치 사생활 캐묻고.”

 

한두 명도 아니고, 회사에서 접하는 많은 상사들이 일상적으로 도영에게 부정적인 말과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초반 3개월은 매일 울며 회사에 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회사 분위기에 적응한 자신이 오히려 무섭게 느껴진다.

 

“여기 좀 이상한 데고 진짜 미쳤어요. 제가 3개월 동안에, 초반 3개월 동안에 맨날 울고. 맨날 회사 가기 전에 울다가 가고…. 지금은 사람이 또 신기하게 적응을 해서 다니는데, 제가 무서워요. 제가.”

 

‘여자가 가 봤자…’ 출장도 안 보내주는 상사들

 

‘여자는 안 된다’는 말은 상사들이 그저 개인적인 편견에 기초해서 하는 ‘말’로 그치지 않았다. 도영이 다니는 회사는 ‘여직원’이 제대로 자리 잡기 어려운 형태로 굴러가고 있었다.

 

도영이 속한 파트는 해외영업팀이다. 해외 거래처와 소통하면서 수출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을 처리하는 것이 주 업무다. 영어를 잘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도영에게 잘 맞는 업무로 보인다. 일은 만족스러운지 묻자, 도영은 ‘사원인데 할 수 있는 역량이 많고 너무 싫거나 무의미한 일은 아닌 것 같아서 할 만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더 많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는 얻지 못하고 있다. 영업의 핵심은 사람들을 만나 설득하고 중간에서 일이 잘 돌아가게 만드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도영에겐 자신이 속한 파트에서 성장하기 위해 습득해야 할 능력을 배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있었다.

 

출장을 통해 거래처들과 직접 대면하며 소통하고, 공장에 직접 가서 자신이 영업하는 물건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며 자신이 중간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도영의 업무에서 경험을 쌓는데 핵심적인 일이다.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상사들은 좀처럼 도영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출장에는 여자를 안 데려갈 거래요. 그냥 자기는 여자가 출장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하고. (…) 이대리는 제가 공장에 가서 사람도 좀 만나고 일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왜 네가 굳이 가냐. 여자가 가봤자 무슨 임팩트가 있냐’ 해가지고, 막아서 못 갔어요.”

 

‘5급 사원’에 묶여있는 다른 여직원들을 보며

 

도영이 속한 회사에는 여직원들만 따로 분리하여 운영하는 직급 구조도 존재한다. 고졸, 전문대졸 여직원은 ‘5급 사원’으로 따로 구분되고, 20년을 일해도 승진이 안 되며, 연봉도 크게 오르지 않는다. ‘5급 사원’으로 일하는 사람은 전원 여성이다.

 

“이게 진짜 어이없는 게, 한때 여상이나 고졸, 초대졸(전문대졸) 여자들이 들어왔던 (…) 사람들을 이제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준 거예요. 20년 동안 사무만 해요. 승진도 안 되고. 무조건 5급. 이게 문제가 진짜 많아요. 부당한 승진 제한과, 월급도 저보다 현저하게 낮고, 하는 일도 항상 사무로 정해져만 있고, 대우도 안 좋고. 그런 직급이 있다는 게 참 웃기죠.”

 

여자는 결혼하면 퇴직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 ‘여성 결혼퇴직제’가 적용되었고, 은행권에선 ‘행원’과 ‘여행원’을 따로 뽑아 여행원에게는 별도의 임금과 승진 체계를 적용하는 ‘여행원제’가 시행되었던 1980년대로부터 30여년이 흐른 지금도, 남녀고용평등법이 무색하게 여전히 많은 기업에서는 여직원에게만 적용되는 직급이 따로 존재한다.

 

회사에서 ‘보조’ 업무만을 담당하는 자리에 여직원을 배치하고 승진과 임금에 제한을 둔다는 이야기는 도영 이외에도 인터뷰한 다른 여성들에게서 여러 번 들을 수 있었다.

 

정규직 성별은 60: 1, 말도 안되게 적은 여직원 수
 

▲ 도영의 회사에 정규직 여직원은 3천명 중 50명 꼴이다.  ©일다 
 

도영이 다니는 회사의 여직원 수는 남직원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다. 도영이 20대의 젊은 신입 여직원으로 일하면서 겪는 고충을 공감하며 들어줄 사람이 회사 내에는 거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든 팀에 한 명은 여자가 있는데, 그게 다 5급 아니면 계약직. 그거 외에는 거의 정규직 여자가 진짜 없어요. (…) 비율이 3천명 중 50명이에요. 참 말도 안 되게 작죠.”

 

도영이 매일 울면서 회사에 다닐 지경이라면, 도영이 “군대”라고 단언하는 남성중심적인 회사의 분위기와 남자 상사들의 막말에 불편했을 여직원이 분명히 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직원들은 절대적으로 수가 적기 때문에 서로 눈치를 보느라 단합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일단 너무너무 절대적으로 소수고, 여자들끼리 단합이 안 돼요. 그러니까, 다들 단합이 안 되고, 그 안에서 서로 싫어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는 게 더 많지, 서로 소수자끼리 연대해서 그런, 힘을 내는 그런 게 너무 없어서, 저는 그게 되게 힘들어요.”

 

그래도 도영은 “가뭄에 콩 나듯” 여자직원들끼리 뭔가 연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때 행복하다고 한다.

 

“같은 여자직원들끼리 좀 뭔가 연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때. 한시적으로. 근데 자주 안 일어나요. 서로 눈치 보고 난리라 가지고. 그런 일이 일어날 때 행복하고, 뭔가 다닐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진짜 뭐, 가뭄에 콩 나듯.”

 

도영에게 마초 같은 상사 욕을 같이 할 수 있는 여자동기, 팀 내에서 긍정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멋진 여자상사가 있다면 좀더 행복하게 회사에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시대가 어느 땐데 ‘여자는 집에서 살림이나 하면 된다’고 말하는 부장에게, 여직원들이 함께 한번 호되게 항의를 해서 찍소리 못하게 하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회사에 다니니 여성학을 하고 싶어질 수밖에요

 

사실 도영은 대학원에 진학해서 인문학을 공부해 학자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취업 준비에 나서자 ‘너무 범생이처럼 공부만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부랴부랴 준비해 인턴을 하게 된 것이었다. 도영은 지금 다시 학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3년차까지 버티면서 돈도 모으고 공부도 해서 대학원에 가는 게 목표다.

 

“3년까지 채우고 나갈 거예요. 그 다음에 대학원을 갈 거예요. 지금 공부하고 있어요. 진짜 대학원에 안 가더라도 이 회사는 안 다닐 거예요. 제가 다른 회사로 이직해가지고, 거기서 어떻게 차라리 더 해보지. 지금은 이제, 이 회사의 영향인 것 같은데 여성학을 하고 싶어요. 할 게 많을 것 같아요. 여성학을 하면은 관련된 조직도 많고. 조금 더, 내가 의미 있게 느끼는 것도 있고. (…)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정말.”

 

도영은 남성중심적인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젠 대학원에서 여성학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도영에게 지금의 상황을 버티게 해주는 책과 희망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도영이 “세계적인 수준의” 여성학 저서를 내서 내 입을 딱 벌어지게 해준다면 참 좋겠다. 그런 날이 온다면 도영이 여성학으로 위로를 받았듯이, 도영의 책을 읽으며 하루하루 버틸 힘을 얻는 여성들도 있을 테니까. 몇 년 뒤, 어느 토론회 자리에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도영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이 연재는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womenlink1987.tistory.com)와 오마이뉴스(ohmynews.com)에 공동 게재됩니다. 이 기사의 필자는 한국여성민우회 류형림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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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토론회: 청년 노동, 말하는 대로 : 10/29 (목) 오후2시 한국성폭력상담소 B1 이안젤라홀 

20~30대 여성 스무 명의 일 경험 사례를 기반으로 청년 노동의 진짜 대안을 함께 찾아봐요!
 

11월 둘째주, 민우회가 만난 20-30대 여성 스무 명의 인터뷰를 담은 소책자 발간. 

기사보다 더 많은 내용이 담길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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