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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국민성, 일반화시키는 건 위험해
지구화 시대 ‘이주’의 감수성(10) 백인여성 미국인 영어강사의 경험②

 

 

여행, 출장, 이주노동, 어학연수, 유학, 국제결혼, 이민 등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는 경험을 하고 있으며, 국내에도 많은 이주민들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일다>는 지구화 시대를 평등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이주’의 감수성을 들어봅니다. 이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한국인’과 ‘미국인’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적도 몇 년 있지만 대부분 성인들에게 영어를, 그 중에서도 특히 회화를 가르쳤다. 수천 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수백 명의 한국인들과 그들의 인생과 꿈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는 얘기다. 그러나 내가 그들의 경험에 기대어 ‘보통 한국인들’에 대해 일반화를 하고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내가 만난 사람들은 전체 한국인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그만두게 되었다.

 

물론 그 학생들은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었고 나이와 성별도 다 달랐지만, 거의 대부분 중산층이었고 수년간 인천과 서울 등지에서 거주한 사람들이었으며 외국인과 소통하거나 함께 여행하고자 하는 소망이나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나에게 말한 것들은 나나 반 전체를 대상으로 말하기 편한 내용이나 영어로 뱉어낼 수 있는 내용에 국한되어 있었다.

 

▲  사진을 찍어둘 만큼 이상하다고 여겼던 한국의 물건: 관광버스 디스코 조명, 식당 테이블 위 화장실 휴지  ©라라 
  

일반화하여 말하는 것의 문제와 관련하여, 한 번은 내 친구 둘이 나눈 대화가 심각한 말싸움으로 번진 적도 있다. 술을 몇 잔 마시고 (백인) 미국인 친구가 시인인 성인 학생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 시인의 무언가가 친구에게 감명을 주었는지, 그녀는 그 학생 덕분에 자신의 많은 학생들이 사실은 개인적으로 성취한 바가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고 말했다. 단순히 영어 실력만 가지고 그들의 지적 능력을 재단하지 않도록 영어강사들이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영어가 능숙했던 내 한국인 친구는 우리 영어강사들이 보통 영어 실력이 좋아야 똑똑한 학생으로 여긴다는 사실에 대해 굉장히 기분 나빠했다. 그녀는 수년간 원어민 강사들과 일하고 친구로 지낸 사람이었다. 언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그녀가 “너희들이 했던 말 중에 얼마나 바보 같은 얘기가 많았는지 아느냐”고 했다. 그때는 ‘너희는 얼마나 똑똑하다고 우리를 판단하느냐’는 뜻으로 느껴졌는데, 이제와 다시 생각해보니 ‘너희들이 한 얘기 중에 기분 나쁜 말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느냐’라는 뜻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미국인 친구가 한국인 친구의 말에 수긍하며 그때 사람들을 그렇게 판단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설명했지만, 이미 둘의 관계에는 금이 갔고 그 이후로도 다시는 예전의 관계로 돌아가지 못했다.

 

쉽게 빠지는 일반화의 오류를 경계하며

 

나 역시 영어 실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지적 능력을 판단하는 덫에 빠졌던 적이 두어 번 있었던 것 같지만, 이제는 한국인들을 잘 이해하는 편이다. 늘 일상적인 교류를 나누면서 그런 경향을 거의 고친 것 같다. 또한 내가 즐겨 찾던, 한국과 관련해서 말하는 영문 블로그 수를 줄여나간 것도 한국인을 일반화시키는 것을 그만두는 데 도움이 되었다. 사람들은 화풀이로 그런 블로그를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많이 읽지 않아서 어떤 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몇 년 전까지는 그랬다.

 

한국의 지하철에서 겪는 인종차별주의, 착취를 일삼는 몇몇 영어학원 원장들, 한국인 배우자의 집안 사람들의 무례함 같은 얘기들만 올라오는 블로그를 읽다 보면 한국에 대해 부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그런 블로그들은 가령 첫 칼럼에서 언급했던 ‘러시아인이냐는 질문이 무슨 뜻인지’(성매매 여성이냐는 의미)에 대해 원어민 커뮤니티에 더 쉽게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곤 한다.

 

한국인에 대한 나의 어떤 생각이 한국인에 관한 글을 읽거나 남의 얘기를 듣고 나서 생긴 편견인지, 아니면 진짜 내 경험으로 체득한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몇 년 전 깨달은 이후로 그런 글을 피하려고 한다. 이런 식의 일반화는 정말 위험하다.

 

(솔직히 한국남자를 사귀는 서양여성들이 운영하는 텀블러 블로그들이 처음으로 확 뜨기 시작했을 때 많이 좋아하긴 했고 지금은 좀 그립기까지 하다. 그 전에는 한국을 다룬 영문 블로그들은 거만한 중년남성들의 글이 대부분이었고, 한국남성은 매력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대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의 이런 여성 블로거들은 젊은 K-pop 남자가수들에게 거의 숭배에 가까울 정도로 관심이 몰려 있는 것 같긴 하다. 좋은 것도 무엇이든 영원할 수는 없는가 보다.)

 

자기 의견 대신 ‘한국사람들 생각’을 말하는 학생들

 

일반화는 양측이 모두 하는 실수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 학생들은 항상 나에게 “미국인들은 이런 걸 어떻게 하는지” 혹은 “미국인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어떨 때는 심지어 미국인들이 어떤지 나에게 얘기해주기도 한다. 이런 건 정말 좋지 않다. 미국은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나라고 어떤 일반화도 성립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비정상회담’에 대해 불만인 것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고 미국인 패널인 타일러가 실제로 거의 완벽하게 내 개인적인 의견을 대변해주기 때문에 전반적으로는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지만 말이다.)

 

뿐만 아니라, 가끔 학생들이 일컫는 미국인이 ‘중산층 백인 미국인’에게 국한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만약 그걸 인지하고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라면 괜찮지만 그들이 정말 ‘미국인’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곤란하다. 내가 너무 인종에 대한 미국의 인문학적인 기준을 들이대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어떤 커다란 나라에 대해 일반화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  사진을 찍어둘 만큼 이상하다고 여겼던 한국의 물건(2) 커플 티, ‘귀여운’ 것으로 여겨지는 똥.  ©라라 
  

한편으로는 많은 한국학생들이 ‘한국인’에 대한 편견 또한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한국인들이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찬성하는 것과 반대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학생들로부터 종종 듣는다. 어떤 학생들의 경우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는 것이 ‘한국사람들’의 생각을 대신 얘기하는 것보다 어려워서 그러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한국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은 외국인을 잘 가르쳐줘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리 내가 한국에서 벌써 몇 년째 살고 있는지 알려줘도 소용이 없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학생이 자신 있게 주장했던 한국인에 대한 설명을 다른 학생은 완전히 반대로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이 미국보다는 단일민족인 것은 사실이다. 나나 내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학교에서 자신의 핏줄에 어떤 민족이 섞여있는지를 설명할 기회가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없다는 점이 이상하게 느껴졌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이 정말로 단일민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한국에서 계속 살 거냐고?

 

한국에서 얼마나 더 살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면 이제는 고향과 가까운 곳으로 가고 싶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한, 지금보다 더 나은 직업을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으로 돌아간 나와 비슷한 학력의 친구들 모두 전보다 좋지 않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여기에 더 머물고 싶고 아예 눌러앉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계속 사는 것에 대해서는 상반되는 감정을 느낀다. 가장 안 좋은 점은 미국에 있는 가족들이 그립다는 것이다. 연락이야 자주 하지만 고향에서 맞았던 크리스마스, 생일, 심지어는 장례식까지도 해가 갈수록 점점 더 그리워진다. 만약 내가 아이를 갖게 되면 아이가 우리 가족을 잘 모르게 될까 봐 걱정도 된다. (그리고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한국의 입시지옥에 밀어 넣는 게 맞는 것인지도 의문이 든다. 안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 사는 외국인 친구들은 계속 떠나고 있다. 언어 장벽 때문에 한국친구들과 진정으로 가까워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항상 느낀다. 한국의 여름 날씨도 견디기 힘들다. 눈에 띄는 외국인으로 산다는 게 너무나 피곤한 날도, 내 서투른 한국어 실력 때문에 낭패를 겪는 날도, 한국 정부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북한 정부에 두려움을 느끼는 날도 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은 쉽사리 사라질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직업이 좋다. 경제적으로도 충분히 편하게 산다. 내 (한국인) 남자친구도 좋은데 그가 미국에서 살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 (그의 가족도 나를 인정해주었고, 어차피 남자친구도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으니 더 멀리 간다 해도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한국말을 하는 게 좋다. 미국처럼 총격 사건이나 절도에 대한 걱정 없이 도시에 사는 것도 좋다. 인터넷 속도는 말도 안 되게 빠르고, 적어도 내가 겪은 바로는 공무원들의 일 처리도 미국보다는 도움이 된다.

 

몇몇 음식은 도저히 구할 방법이 없지만 그래도 인터넷 덕분에 그리운 거의 대부분의 음식을 미국에서 구해올 수 있다. 매일 미국 음식을 그리워하지만, 사실 미국에 계속 살았더라면 건강하지 못한 음식들만 탐하는 나를 자제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하나 솔직히 얘기하자면, 내가 원래 좀 이상한 부분을 ‘외국인이라서’ 그러는 걸로 사람들이 ‘오해’하고 넘어가는 것도 좋다.

 

여전히 나의 이주 경험은 진행형이다.  라라 (번역: 권이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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