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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이야기’가 집 담장을 넘어야 한다

반다의 질병 관통기②

 

 

※ 2015년 <하늘을 나는 교실> 가을 학기에서 10월 14일부터 시작되는 “질병과 함께 춤을! -잘 아프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몇 가지 것들” 수업을 개설한 반다(조한진희)님의 ‘질병 관통기’ 연재입니다. <하늘을 나는 교실> 소개 페이지 http://bit.ly/1OYb8rb

 

질병을 겪는다는 ‘경험’

 

처음 겪는 일은 어려움과 질문을 만든다. 어떤 것을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땐 사소한 것도 어렵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애도 낯설음이 익숙해지기까지 질문이 꼬리를 물게 된다. 질병을 겪는다는 것도, 건강의 위협이나 불안을 제외하고서라도 낯선 경험이라는 맥락에서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한참 투병을 하던 시기, 사람들을 만나면 이야기의 주제는 나의 건강으로 모아지곤 했다. 사람들은 갑상선 암에 대해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가벼운 암이라서 다행이라거나, 많이 진행되지 않아서 운이 좋다는 말들. 그리고 수술만 하면 다 괜찮다는 말로 위로를 건네주었다.

 

나는 갑상선 암보다는 현기증 때문에 무엇에도 집중하기 쉽지 않다거나, 등에 쇠못을 박아 놓은 것 같은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루기 어려운 날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종종 암으로 다시 집중되었다. 내가 일상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뿐 아니라, 불안을 갖는 것도, 그리고 위로를 받고 싶었다면 그것도 현기증과 몸 곳곳의 통증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경험과 사람들이 위로하려는 지점은 종종 불일치했다.

 

일터에 휴직계를 내고 본격 투병에 들어간 지 3년이 되던 해에 빈혈과 근종 진단을 일시적으로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참 좋았다. 치료법을 찾은 것 같아서 좋았고, 사람들과 소통할 언어를 찾은 것 같아서 좋았다. 그제야 나의 경험과 사람들이 건네는 위로의 불일치는 사라졌다. 많은 이들이 증세가 없는 갑상선 암뿐 아니라 빈혈과 근종에 대해 말하고, ‘그래서 그랬구나’ 라며 이해와 공감을 건넸다. 사람들에게 내가 경험하는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다행스러웠다.

 

▲  각종 검사지와 소견서 등 내 의료 정보가 담긴 자료들.  © 반다 
 

하지만 빈혈 수치가 올라가고 근종이 사라졌어도 여전히 증세가 지속되었다. 의사가 다시 내가 겪는 증세의 근본 원인은 빈혈과 근종이 아니었다는 말을 했을 때, 아쉬웠다.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이미 투병 초기에 빈혈과 근종 검사를 했었고, 그때는 모든 게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본 원인은 그게 아닐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의사가 확신에 차서 말했기 때문에 약간의 기대감을 가졌다.

 

내가 절망감이 아니라 아쉬움을 느꼈던 건, 앞선 경험들 덕분이었다. 그 진단을 받기 앞서 갔던 병원에서 ‘원인을 못 찾으면 그냥 아픈 대로 사는 법을 익히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여러 지인의 추천으로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았을 땐, 머리가 희끗한 한의사가 한 시간 가까이 진단을 하더니 나에게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너무 늦게 왔다며,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과 함께. 그 한의원을 나서며 절망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체념이나 절망을 느끼는 순간은 좀 힘들었지만, 그것도 경험인지라 내성을 쌓아준다. 그래서 의사가 다시 근본적인 원인은 잘 모르겠다는 말을 했을 때, 절망의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아쉬운 감정에 머물 수 있었다. 그냥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의사로부터 ‘병명’이 부여된다는 것

 

질병 경험자들이 모이는 자리에 딱 한번 나간 적이 있다. 나는 병명을 찾지 못하는 막막함에 대해 말했다. 그때 어떤 분이 자신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의사는 병명이 없다고 하고, 남편은 병원에서 괜찮다는데 왜 아프다고 그러냐며, 맨날 자신을 윽박지르는 시간을 몇 년이나 보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5년 만에 간암 진단을 받던 날, 마음이 시원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몸은 아픈데 원인을 찾지 못했던 긴 시간 동안 느낀 초조함과 혼돈에 대해 말을 쏟았다. 자신은 아픈데 남편과 자식 누구에게도 그 아픔을 충분히 공감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꾀병이거나 심인성(心因性)인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던 경험이 아프게 박혀 있다고. 스스로도 정말 사소한 통증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가라는 자기검열도 수없이 많이 했다는 말도 했다. 그녀에게 간암이라는 병명은 두려움이나 슬픔이기보다는 오랫동안 느껴온 여러 서러움과 혼란을 일순간에 해소하는 ‘답’이었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이해받고 싶어 한다. 이를테면 지하철에서 겪은 불쾌한 일이나 직장에서 겪은 속상한 일에 대해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공감이나 위로를 받고 싶어 하듯. 자신의 삶에 질병이라는 파동이 일렁이는 시기에 그런 욕구는 더 증폭되는 것 같다. 지금은 나도 소소히 경험이 쌓이고 무엇보다 호전된 건강 상태로 인해 그런 욕구로부터 꽤 자유롭지만, 그땐 그랬다.

 

‘병명’이라는 것에 대해 나는 여러 감정이 든다. 병명을 부여받을 때 혼란이 정리되는 것 같은 선명한 느낌이 좋다. 그래서 내가 그런 증세가 있었던 거구나, 라며 자신의 경험을 이해 할 수 있고, 원인을 찾았으니 대안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그리고 때로 만났던, 별 것 아닌 증세에 너무 과민한 게 아니냐는 시선에 대해서도 일갈할 수 있는 인증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또 한편 병명은 내 증세 혹은 질병에 대한 임의적인 명명일 뿐인 것 아닌가, 라는 뾰족한 마음도 있다. 병명이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원인을 진단하며 의사들이 임의적으로 분류하고 이름 붙인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어떤 병명이 몸의 모든 걸 설명해 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병명에 따라 이 증세는 이 병명 때문이고, 저 증세는 이 병명과 전혀 상관없다는 설명 자체가 좀 이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니까 내 사진을 보며 내 얼굴을 사진에 끼워 맞추는 느낌, 혹은 움직이고 변화하는 몸을 박제해서 고정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  <거울 속 나 아닌, 나>    ©일러스트-반다 
 

병명이 붙여지기 전에는 허상일지도 모르는 증세에 불과했는데, 의사로부터 병명이 부여 되자 실재하는 질병이 되면서 비로소 나의 경험(증세)이 존중 받는 느낌은 개운하지 않다. 이건 자신 몸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소외되는 경험인 것 같다.

 

물론 이뿐 아니라 나에게 질병을 경험하는 건, 반복적으로 소외를 경험하는 일이었다. 진료 과정에서 인격체로서 존중 받지 못한다고 느끼던 순간이나, 나의 몸이 어느 순간 낯선 몸으로 바뀌어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리고 낯선 몸을 원래의 내 몸으로 돌리기 위해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을 때 등등 말이다.

 

그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질병 앞에서 지속적으로 질문하게 된다.

왜 아플까?

왜? 뭐가 문제였지?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

반복적으로 삶을 돌아보고 생활 습관을 짚어보게 된다.

 

‘질병은 잘못된 삶의 방식에서 온다’는 관점

 

질병은 잘못된 삶의 방식에서 온다거나 생활 습관을 바꿔야 병이 낫는다는 주장은 양방, 한방을 떠나 많은 의사들이 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이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투병 기간은 생활 습관을 포함해서 내 삶 전반을 성찰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실제로 나는 몸이 아프고 난 뒤 생활 습관을 많이 변화시켰다. 몸에 열이 없는 체질이라 수영은 좋지 않다는 조언에 따라 아침 운동은 산길을 걷는 것으로 바꿨다. 침대가 몸을 반듯하게 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해서 침대를 버리고, 수면은 8시간으로 늘렸다. 물론 담배도 끊었고, 밤새 일하는 습관도 버렸다.

 

‘잘못된 생활 습관 때문에 아프다’는 관점은 앞으로 생활 습관을 변화시키면 질병을 호전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질병에 대해 내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질병으로 몸의 통제력을 잃고 당황하는 현실에서, 이 관점은 실효성을 떠나서 잡고 싶은 끈이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이 생활 습관을 바꿔 몸을 건강하게 만들겠다는 건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됐다. 서울의 나쁜 공기, 농약이 누적된 농산물이나 방사능에 오염됐을지 모를 해산물이 유통되는 것. 심지어 발암물질 논란이 지속되는 시멘트로 지은 집 등 그 모든 환경에서 개인이 벗어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생활 습관을 개선하여 질병을 고친다는 관점은 질병을 너무 개인화하는 것 같았다. 이 관점은 개인의 생활 습관에 문제가 있어서 질병에 걸리게 되었음을 전제로 한다. 질병을 경험하는 건 본인에게 힘든 일일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마음 아픔과 부담을 선물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일련의 것들이 다 그 개인이 잘못 살아온 결과라면, 환자가 죄인이 되는 것이고 죄책감도 온전히 개인이 져야할 몫이 된다.

 

질병이 개인화되지 않고 사회로 나오도록

 

질병의 개인화에 대해 처음 생각하게 된 건, 늘어나는 병원 영수증과 통장 잔액을 보며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특진료와 비급여 항목들은 통장 잔액을 더 빠르게 비워냈다. 당장 다음 달 생계비도 불안한 터라 병원비의 압박은 무척 컸다. 언제까지 아플지 모르고 어쩌면 평생 병원을 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의료 민영화’ 얘기가 들릴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질병의 개인화 논리가 공공의료 자원을 취약하게 만들고 의료 민영화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이용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 

 

▲ <의료민영화 영리화의 진실> 영상 캡처  ©의료민영화.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제작 
 

개인이 잘못해서 병에 걸렸으니 그 치료비용도 개인의 책임이 된다. 질병의 개인화 논리는 건강권을 인권의 기초로 보고 국가나 사회가 함께 보장해야 한다는 공공의료 논리를 공격할 근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료 민영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일부 잘못 살아온 이들 때문에 질병 치료비용을 사회가 함께 감당하게 되었고 주장할 수도 있다. 결국 필요한 이들이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자본주의 시장으로 의료를 내맡겨야 한다는 근거로 이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혼란스러웠다.

 

나는 여전히 질병 치료에서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만 강조할 때 보이지 않게 되는 것들, 그리고 그 논리를 더욱 강화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누구이며 그 효과가 무엇인지 질문해보는 게 필요했다. 당장 나의 질병 치료가 급하지만, 내가 그 질문을 놓쳤을 때 첫 번째 가장 큰 피해자는 내가 될 것이라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이 아프게 되면 어떻게 그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길을 찾고, 치료에만 집중하고 싶어진다. 정말 간절히 그러고 싶다. 하지만 사실 그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질병을 진단 받는 순간부터 여러 질문과 감정 그리고 돈을 포함한 현실적 문제에 부딪친다. 그리고 그것들을 풀지 않는 한 온전히 치료에만 집중하는 게 쉽지 않다.

 

내가 느끼기에 질병을 둘러싼 그런 여러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여전히 개인 혹은 집안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오늘도 거듭 말하지만, 그 이야기가 개인에게 갇히지 않고 집 담장을 넘는 게 필요하다. 그 이야기가 집 밖을 넘어 사회로 나오지 않는다면 고통은 반복되고 개인화 된다. 결국 우리들의 질병 회복도 더디게 될 것이다.  반다

 

※ <의료민영화 영리화의 진실> 유튜브 영상 http://youtu.be/V6VIxvtgMZ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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