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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모, “양육비는 아이들의 삶이에요”
달라진 양육비지원법, 전영순 한국한부모연합 대표에게 듣다 

 

 

올해 3월 25일 ‘양육비 이행관리원’이 출범했다. 작년에 제정된 ‘양육비 이행 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된 것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한부모가 비(非)양육부모로부터 양육비를 지급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이다.

 

80% 넘는 한부모가 전 배우자에게 양육비 못 받아

 

2010년 기준으로 국내 한부모 가구는 전체의 9%로 171만 가구를 넘는 것으로 추산되었으며 점차 증가 추세이다. 한부모 가정에 있어서 양육비는 아동의 양육에 필수적인 것이지만, 2013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한부모가족 실태조사> 결과 한부모의 83%는 전 배우자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했다. 정기적으로 지급 받는 경우는 5.6%에 불과했다.

 

전 배우자에게 자녀양육비 청구소송을 해도 실제로 지급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청구소송을 하는 비율이 4.6%에 그쳤고, 그나마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은 전 배우자의 77.4%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경제적인 양육비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엄마가 빈곤해지니 키우기 힘들고, 양육비는커녕 남편 빚까지 안는 경우도 많았어요. 남편이 경제적 형편이 돼도 양육비를 안 주려고 하고 빼돌리는 경우도 많았거든요. 양육비 액수도 몇 십만 원에 불과한 경우가 많은데, 양육비를 주지 않으니 엄마들이 아이들 양육에 대한 몫을 다 해야 했죠. 관련 법이 몇 년째 거듭 폐기됐는데 2013년 법이 네 개 발의돼 그 법을 모아 하나의 법이 작년에 통과된 거죠. 이제 시작이에요.” (전영순 한국한부모연합 공동대표)

 

올해 3월부터 시행된 법에 따라 ‘양육비 이행관리원’은 양육비 채무자의 소득 재산을 조사하고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자에게 제재 조치를 하며, 한시적으로 긴급 양육비를 지원하게 된다.

 

이같은 변화는 무엇보다 한부모 당사자들과 지원단체들의 끊임없는 요청과 정책 제안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생계를 위해 일하고 주말과 밤에 다른 한부모들을 만나 연대하며 꾸준한 목소리로 발언을 해온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 있는 한국한부모연합(cafe.daum.net/hanbumonet) 사무실에서 전영순 공동대표를 만나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대한 기대와 우려, 그리고 실효성 있는 양육비 확보 방안에 대해 들어보았다. 전영순 씨는 “우리 사회가 한부모 당사자의 경험과 주장에 대해 더 귀를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당부한다.

 

‘양육비 이행관리원’에 대한 기대와 우려

  

▲  전영순 한국한부모연합 공동대표    © 안미선 
 

“법이 통과되긴 했는데 보완할 게 많아요. 힘들게 통과됐으니 조금씩 발전시켜나가야 해요. 그동안 양육비를 받지 못해도 상대 주소지를 모르고,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아도 상대가 안 주면 못 받는 상황이었거든요. 양육비 이행관리원은 채무 불이행자에게 제재 조치를 하고 위기 한부모 가족에게 한시적 양육비를 지급하기로 했죠. 그런데 사업 예산이 적고 인력도 적게 책정된 곳이라, 전국에서 필요로 하는 요구를 충족시키기는 부족한 여건이지요.”

 

양육비 이행관리원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날마다 수백 통의 문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만큼 양육비 문제가 방치되어 있었고 시급한 문제였던 것이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범법 행위’였지만 그에 대처할 제도적 방안이 부족했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영순 공동대표는 법이 힘들게 통과되는 것을 지켜보았으므로 응원하는 마음이 크지만,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고 한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을 시,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제재 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미미해요. 안 주면 안 되게 해야 하는데 지금은 세금 환급금액을 압류하고, 신용정보회사에 체납자료를 공개하는 정도에요. 우리의 요구는 양육비 지급 불이행 시, 운전면허증이나 여권 발급이 안 되게, 신용 문제가 생기도록 더 강력한 제재를 해야 한다는 거죠. 국가의 의지가 필요해요. 여성가족부에서도 필요성은 알지만 다른 부처와 협의해야 하니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요.”

 

미국과 호주 등에선 양육비를 연체하면 여권 발급 제한, 출국금지 명령, 연금 차감 등의 제재를 한다. 우리나라는 양육비 불이행 현상이 더욱 큰 사회 문제임에도 제재 수단이 약하다. 또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채무자의 소득과 재산 정보를 확인하려면 당사자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채무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확인할 방도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이혼할 때 서류상에서부터, 국가가 정보에 대한 권한을 강화하면 좋겠어요. 양육비 관련 정보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당사자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다는 조항을 같이 넣어서, 양육비는 이후 개인정보 동의를 별도로 더 하지 않아도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시했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법제도가 유명무실해지지 않게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법률구조공단이나 가정법률상담소에서 양육비를 받는 걸 도와주는 일을 했지만, 갖춰야 할 서류를 한부모 본인이 준비하고 애써야 하는데, 결과가 큰 의미가 없다 보니 양육비를 받으려 노력하다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공무원과 기관을 상대하면서 받는 상처도 있었고요. 새로 제정된 법은 좀더 발전된 법이라 생각했는데 지난 지원 제도와 다를 바가 없으면 안 되잖아요.”

 

2009년에 민법과 가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양육비 이행확보제도가 시행되었지만, 그 활용은 극히 적었다. 절차가 번거롭고 자료 입증이 한부모의 몫인데다 관련 소송도 복잡하고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양육비이행관리원이 만들어진 셈인데, “양육비 지급을 원스톱으로 도와주겠다”는 취지를 살려 실효성 있는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전영순 대표는 강조한다.

 

“양육에 대한 책임은 양육자와 비양육자, 사회가 함께 해야 한다는 인식이 더 있어야 합니다. 인식 개선 캠페인을 나가면 시민들은 상황을 잘 몰라요. ‘대부분 양육비를 못 받고 있다구요?’ 하면서 놀란다고요. 법이 생긴 것이 다가 아니라 실제로 양육비를 받고자 하는 분에게 더 도움이 되어야 해요.”

 

양육비 ‘긴급 지원’을 넘어 선지급 정책 도입되길

 

▲ 양육비 지원법의 효과적 운용을 위한 간담회.  © 한국한부모연합 
 

양육비이행관리원은 위기 한부모 가족에게 ‘한시적 양육비’를 긴급 지원하는데, 최장 9개월 동안 한 자녀에게 20만원을 지급한다. 그에 대해서도 전영순 씨는 아쉽다고 말한다.

 

“우리가 실제로 원하는 건 선지급법이에요. 국가가 먼저 한부모에게 양육비를 지급하고, 추후 국가가 채무자에게서 그 돈을 받는 거지요. 지금의 ‘한시적 양육비’는 책정된 액수가 지나치게 적고, 다른 지원과 중복이 안 되니 문제지요.”

 

양육비를 국가가 선지급하는 사례로 독일,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이 있다. 정부가 한부모에게 양육비를 지급한 후, 구상권을 행사해 나중에 양육비를 이행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양육비를 대신 받는 제도다.

 

“독일은 국가가 양육비를 선지급하는데, 추후 회수율은 25%로 낮아요. 그럼에도 이런 제도를 시행하는 건, 복지에 대한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국가가 돈을 양육비 채무자에게서 돌려받을 수 있느냐에 초점을 두는 게 아니라, 국가가 아동 양육을 책임진다는 차원인 거예요.”

 

‘평등한 양육’은 아동의 보편적 권리여야

 

또한 전영순 씨는 아동의 양육비를 지원하는 것과 기초생활수급은 서로 다른 독립적인 영역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기초생활수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제도예요. 우리나라는 양육비와 생계비를 같은 차원에서 봐요. 하지만 기초생계비와 양육비는 다르게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제한된 생계비에 맞춰 지원 받으면 그 삶은 양육비가 있건 없건 똑같아요. 아이의 삶이 나아지려면 양육비는 생계비와 별도인 것으로 해야 해요. 실제로 수급자이다가 양육비를 상대에게 30만 원 받았다고 수급자 자격에서 탈락되는 경우가 있어요. 한시적 양육비 20만 원도 수입으로 환산되지요.

 

부양의무제(수급 대상자의 가족에게 재산이 있거나 일할 능력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에서 제외된다)도 문제가 있고요. 전 배우자가 경제적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실제로 한부모가 양육비를 받지 못했는데 수급자 자격이 탈락되는 경우도 있어요. 자료 입증 책임은 한부모에게 쏠려 있고요. 모든 양육비는 수입으로 판단됩니다. 수급자 저소득층 한부모는 양육비 20-30만 원을 받으면 수급자 지원이 끊기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저소득층 한부모는 아예 이 제도를 활용하기 힘들게 될 수도 있죠.”

 

우리 나라에서 아동에 대한 관심은 출산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태어난 아동을 양육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하다. ‘엄마가 알아서 키우는 것’이라고 여기는, 우리 사회의 강고한 성차별 탓도 크다. 양육을 개인의 몫으로 떠넘기고, 함께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생존해내라는 것이다.

 

“한부모가 많아지니 편견이 자연스레 없어질 거라고 생각들 하는데, 편견은 저절로 없어지지 않아요. 우리 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한 데 비해 상대적으로 가족 가치가 보수적이고 뒤처져 있어요. 복지 제도도 더디고, 한부모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낮아요. 양육비를 이야기하면 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개인의 문제’로만 보는 거죠. ‘니네들이 낳은 아이인데, 이혼은 너희 결정인데 왜 국가에 책임지라고 해?’ 그러지요. 양육은 사회에서 개인만의 책임인가요? 아이를 낳고 키우고 살아가는 문제는 사회가 함께 간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해요. ‘너 혼자 책임지지 국가와 사회가 왜 책임져?’ 하는 건 보편적 복지, 기본 생존권에 대한 인식이 없는 거지요.”

 

전영순 공동대표는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은 사회적 차원의 문제”이며, 평등한 양육은 아동의 보편적인 권리라고 생각한다.

 

“저도 한부모고, 이혼할 때 아이 양육이 가장 중요했어요. 양육비는 아이들의 삶이에요. 양육비를 받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아이들의 권리예요. 아이에게 양육될 수 있는 권리를 찾아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이자 사회의 의무이기도 해요. 국가와 사회, 양육자의 마인드가 중요해요.”

 

양육비는 조건적인 대가가 아니라 그 자체로 지켜져야 하는 권리라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 자격 제한 속에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고 낙인을 찍는 복지 제도가 아니라, 한부모의 경제적 심리적 자립을 지원하여 이들이 고립되지 않으며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가자는 제안이다.

 

한부모가 위축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  한부모 리더십 교육.   © 한국한부모연합 
 

‘양육비가 지급되지 않는다’ 라는 건조한 문장 속에는 비양육자와 사회가 한부모에게 가하는 커다란 모멸감의 상처가 숨어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강해서 인식 개선이 많이 필요해요. 일상 속에서 한부모 가족에 대한 배려가 없어요. 학교와 군대, 국가 기관, 사회에서 현실과 다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너무 강해요. 그러는 중에 상처가 많이 생겨요. 모든 아이들이 부모 양쪽과 같이 산다는 걸 당연한 전제로 여기지요. 이제 그런 가족이 줄고 다양한 가족이 느는데 앞으로 더 늘어날 건데, 이런 이데올로기는 현실과 맞지 않아요. 일상 속의 편견이 여전히 남아 있어요. 한부모는 ‘문제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로 대하고 예외적인 경우로 보지요. 개인의 선택으로 모두 일어난 일이라면서. 그런 태도가 다음 세대에게도 학습돼요.”

 

전영순 공동대표는 한부모에 대한 인식 개선 교육을 할 때,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을 만날 때,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는 여성들을 만날 때, 최선을 다해 살면서도 개인 탓이라는 타박을 듣고 편견으로 인해 점점 더 움츠러드는 한부모들을 볼 때, 더 당당할 수 있는 삶을 꿈꾼다. 생존과 양육의 책임이 개인 여성의 몫으로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사회라면 사회 구성원의 권리가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제 삶의 중심 가치관, 정체성은 한부모예요. 제가 15년 동안 활동한 건, 한부모로 살아가는 명제가 가장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다른 한부모들을 만나면서 앞으로 뭘 해야 할까, 함께 바꾸어갈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는 게 중요했어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활동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고 그 사람 속에서 뭔가 만들어져 나가고 조금 더 정책이 달라지고 이런 것이 중요했어요.

 

개인의 잘못으로 여기고 편견을 가지면 한부모가 위축된 이미지로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해요. 삶 자체를 좀더 당당하게 보여주는 것도 운동이에요. 한부모가족지원법이 있지만 그 법 안에서 지원받는 한부모는 전체의 20%예요. 한부모 전체의 목소리는 아직 사회적으로 당사자 입장에서 가시화되지 않았어요.”

 

양육비이행관리원의 시작에 대해 전영순 공동대표는 더 실효성 있는 기구로 확립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한부모들의 적극적인 목소리와 가시적인 동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각자도생의 협소한 틀에 갇힌 우리 사회가 ‘정상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에 대해 상상력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양육비 지급은 아동의 권리와 삶을 지키는 것을 뜻하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모든 아이에게 평등한 양육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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