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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학생의 학습권 보장하는 미국 대학들
서정원의 미국대학 탐방(2) 하버드, MIT, 시카고대학 

 

서울대 부모학생조합 <맘인스누> 대표 서정원씨(33세)가 양육과 학업을 병행하는 학생들을 위한 정책을 살펴보기 위해 미국 대학들을 탐방하고 온 이야기를 5회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대학원생 처지에 아이를 낳다니…

 

나는 공부를 하면서도 항상 어떤 종류의 ‘일’을 해왔다. 물려받은 유산이 없어 스스로 돈을 벌어야 생존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항상 내 몫의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해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경제 활동에 참여하고부터는 이전에 공장을 전전할 때보다 세금을 더 많이 냈다. 지금은 학업과 육아를 양립하느라 경제 활동을 못하고 있지만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는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남편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박사 과정 중에는 월급을 50만원씩 받던 남편이 박사가 되고 난 후에는 외부특강 두 시간을 하고 50만원을 번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현재 경제 활동 못하는 대학원생 처지에 아이를 낳아 국가의 복지를 좀 먹는 한심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실제로 내가 국가로부터 받는 지원은 별로 없는데도 말이다.

 

아이를 둘 낳고 대학원에 다니다 보니, 제 앞가림 못하면서 생각 없이 아이만 줄줄이 낳은 여자가 되어버렸다. 만일 내가 결혼을 하지 않고 공부만 했다면, 공부 밖에 몰라 시집도 못간 ‘건어물녀’라고 손가락질을 당했을 것이다. 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지 않고 커리어만 좇았다면 자신의 영달과 출세를 위해 아이를 낳지 않은 ‘어른이 아닌 어른’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아기엄마는 공부할 자격이 없는 것인가?

 

나도 학생이다. 그래서 학교에 온다. 다만, 일정 기간 동안 내가 건사해야 하는 몸이 두 개였다. 나의 몸과 나에게 의존한 아이의 몸. 이 두 개의 몸을 가진 나를 대부분의 공간은 환영하지 않았다. 환영은 고사하고, 들어갈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제한적이었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가면 어린 아기 고생시키는 생각 없는 엄마라고 욕을 먹기 일쑤였다.

  

          ▲  미국 시카고대학에는 <부모학생 지원센터>가 있다.   © 사진: 이진화 
 

내가 공부하는 서울대학교도 다르지 않다. 두 몸을 가진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강의실, 연구실, 휴게실은 없다. 화장실 변기 뚜껑에 앉아 젖을 주느니 학교에 가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교에 가고 싶었다. 왜?

 

대학원은 학문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대학원 과정은 직업으로서의 학문적 능력을 연마해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공부는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해야지, 중단을 하면 맥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래서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학업을 지속하려 하였다. 많이 힘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학문을 하겠다고 결심한 이상, 해나가는 것은 내 몫이다.

 

용기를 내어 학교에 간 나에게, 누군가가 말했다. 도서관에 들어올 수 없다고. “왜요? 새로 지은 도서관이 이렇게 큰데 제가 들어갈 곳이 없나요?” 학교 측은 대답했다. “이곳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이라서요.”

 

나는 물었다. “저도 여기 학생인데요?” 대답이 없다. 도서관에 갈 수 없다. 책을 빌릴 수 없다. 공부할 공간도 없다. 아이가 클 때까지 학업과 연구의 공간에서 배제된 나는, ‘서울대에 걸맞지 않는, 근성 없는 여자’, ‘연구자가 되기에는 뭔가 부족한 대학원생’, ‘학생들 공부하는 공간에 유모차 밀고 나타난 무개념녀’일 뿐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공부를 직업으로 하지 않았더라면, 여자가 아니었더라면…!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이런 사고의 흐름에 휩싸여봐야 좌절감만 경험할 뿐이다.

 

교정 곳곳에 아늑한 유축실 구비된 하버드대학

 

미국 대학 출장은 <맘인스누> 부대표인 이진화씨와 동행했다. 진화씨는 미대 공간디자인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그래서 나와는 보는 관점이 다르다. 내가 어떤 사안을 여성과 복지의 관점에서 본다면, 진화씨는 공간과 예술의 관점에서 사고했다. 그래서 우리의 동행은 의미가 있었다. 내가 정책과 사람을 보는 동안 진화씨는 공간을 보기로 한 것이다.

 

          ▲   하버드대학 곳곳에 있는 편리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유축실.  © 사진: 이진화 
 

게다가 이진화씨의 선후배 중에는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하버드대학이 그 시작이었다. 하버드 디자인 스쿨. 거기서 나는 진화씨의 후배가 졸업 작품을 만들며 들려주는 학업-가정 양립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바로 옆 하버드 국제대학원 건물에 있는 유축실을 방문했다.

 

하버드대학에는 캠퍼스 곳곳에 유축실이 있다. 유축실이 없는 건물도 있지만 대부분은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고 했다. 매 학기 초에는 유축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동선에서 가장 가까운 유축실의 위치와 비밀번호가 공지된다고 했다.

 

이런 유축실이 있다면 한국에서처럼 화장실에 들어가 유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또 유축할 수 있는 공간까지 오가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단축된다. 유축한 모유를 유축실의 냉장고에 넣어 보관했다가 자녀에게 먹일 수도 있다.

 

이진화씨는 이 공간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이런 유축실은 작은 틈새 공간을 활용해 캠퍼스 곳곳에 설치해, 이용자 편의를 높일 수 있게 설계되어있다고. 하버드의 유축실이 작지만 공간적으로 매우 쓸모 있는 방식으로 구성되었고, 이용자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로 연출되었다고 말이다.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기에도 정말 그랬다. 그 작은 공간은 ‘모유 수유실’ 혹은 ‘모성 휴게실’이라는 팻말만 붙여놓고 실제로는 여직원 탈의실이나 휴게실로 쓰고 있는 우리나라 공공 기관의 수유실과는 달리, 아담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MIT 중앙 건물 1층에 당당히 자리잡은 ‘어린이집’

 

MIT공과대학에서는 홍보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학교의 학업-가정 양립 정책에 대해 듣고 학내 시설을 탐방할 수 있었다. MIT 홍보팀장은 보스턴의 명물이라는 게살 스프를 맛보도록 우리를 식당으로 인도했다. 식당까지 가는 길, MIT의 곳곳에서 영유아 탁아시설을 볼 수 있었다. 캠퍼스 곳곳, 그것도 건물 1층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는 탁아시설.

  

▲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라는, MIT 캠퍼스 중앙 건물 1층이 어린이집이다. ©사진: 이진화 
 

식당까지 가는 동안 이진화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누구누구 있는데, 저 건물이 바로 그이들 중 한 명이 설계한 건물이라면서 셔터를 눌렀다. 건물의 1층에는 학내 어린이집이 있었다. 캠퍼스 중심에 어린이집과 놀이터가 있어서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부모가 강의실이나 연구실로 가기 용이한 동선이었다.

 

MIT는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배움터이자 일터인 학교에 아이를 데려오는 것이 불편하지 않도록 곳곳에 배려되어 있었다. 아이를 업고 학교에 가서 젖을 줄 곳이 없어 화장실로 가야 하는 나의 처지, 공동 연구를 진행하며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연구실이 없어 학내 찻집에서 주변 눈치를 살피며 프로젝트 회의를 하는 우리의 현실이 오버랩 되었다.

 

더구나 저명한 건축가가 지은 캠퍼스 중앙의 건물 1층을 MIT학생도 아닌 어린 아이들에게 배정한 것이 뭔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시카고대학은 고색창연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나로서는, 이 분야에서 명문으로 손꼽히는 시카고대학에 방문한 것이 성지순례라도 온 듯한 느낌이었다. 특히 출장을 위해 섭외 요청 메일을 보냈을 때 가장 먼저 환영의 답신을 보내준 곳이어서 마음이 더 푸근했다.

 

지난해 새로 단장했다는 부모학생 지원센터는 학내 부모학생들을 위해 개방된 공간이다.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부모를 위한 휴게 공간, 그리고 양육자가 공부를 할 수 있는 논문방도 구비되어 있었다. 자유롭게 스낵과 음료를 이용할 수 있었고, 스텝 몇 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  시카고대학 부모학생 지원센터.  안에는 양육자를 위한 논문방도 마련되어 있다.  ©사진: 이진화 
  

아이를 안고 있는 학생도, 학생이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해온 것은 ‘아이를 키우려면 엄마의 성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전제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 제도와 문화였다. <맘인스누> 활동을 통해 이것이 공부하는 엄마(그리고 아빠)학생들의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대학 사회가 구성원들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제도의 문제이다.

 

제도, 너무 멀고 크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화장실 한 칸 크기의 깨끗한 유축 공간과, 남성들의 눈치 안 보고 편안히 수유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도 괜찮은 대학원생 연구실이다. 나는 바라서는 안 될 것을 바라는 것인가? 이 대학에는 연말보너스로 쓸 26억 원은 있고, 2천5백여 명의 대학원생들이 이용할 유축실, 수유실, 자녀동반 연구실을 조성할 재원은 없는 것일까?

 

내가 ‘이모’라고 부르는 멘토는 미국에서 상담학을 공부한 분이다. 이모와 나 사이에 갈등이 있다면, 그것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내가 가진 반감과 비판 의식 때문이었다. 이모는 나 같은 젊은 세대가 미국 사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반감을 가진다고 우려하셨다. 그런데 이곳 대학 몇 곳을 방문했을 뿐인데, 나는 이모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미국 대학은 적어도 ‘아이를 가진 학생’들에겐 낙원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이민을 선택하나 보다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민을 생각할 정도로 한국에 정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조금만 더 ‘엄마학생운동’에 앞장서 보련다. 지금 우리는 대학 캠퍼스를 아이를 안고 있는 학생에게도 우호적인 공간이 되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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