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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를 찾아야겠다 
<20대 여성 ‘일’을 논하다> IT회사에서 일하며 

 

※ 20대 여성들이 직접 쓰는 노동 이야기! 연재 마지막 기사입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편집자 주]

 

 

언니들과 지내며 쌓은 ‘감수성’

 

나는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어렵다. 원체 부지런을 떠는 성격에 오지랖까지 넓다. 글에는 티가 나지 않아 다행스럽지만, 목소리는 또 어찌나 큰지. 대학에 다니는 동안 하루 약속을 예닐곱은 잡아 사람을 만난 탓에 목이 자주 쉬었다. 도서관에 뻔질나게 출입해서 책을 베고 잠들지언정 책 읽는 (척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키우는 화분.    © 두둥쿠 
 

그 덕분이었는지 언제부터인가 주변에 ‘여성’, ‘문화’ 따위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곁에 많이 두게 되었다. 이 사람들 중에는 ‘언니’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오빠가 없었는지라, 그 말이 어색해서 남자 선배를 ‘선배’라고 불렀다. 그러자 몇몇이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지 않으면 친해질 수 없다고 했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언니들은 ‘오빠라고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오빠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던 여자 신입생은 몇 없었다. 나는 애교도 없고, 심지어 화장도 하지 않는 유별난 여자 후배였다.

 

하지만 언니들과 있을 때 나는 유별난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좋았다. 언니들과 같이 지내는 것만으로도, 나는 어떤 감수성을 쌓아갔다. 어렴풋이 나는 그 감수성에 반하지 않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불안함도 언제나 함께했다. ‘카더라’ 통신을 통해 듣는 졸업한 언니들의 회사 생활은 해외토픽 그 자체였다. 말하자면 그것은 딴 나라 이야기에다가, 나는 그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뿐 더러 몇몇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내 감수성으로 상상했던 회사 생활은 감당해낼 수 없는 무시무시한 폭력처럼 여겨졌다.

 

그렇담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 될 수 없는 걸까, 그렇다면 지금의 먹고사니즘을 유지할 수 없게 될까, 하는 걱정이 나를 괴롭히곤 했다.

 

‘부정적 커뮤니케이션’ 평가표를 들고 쫓겨나다

 

졸업 이후 어쩌다 시작하게 된, ‘정규직 전환’을 전제로 한 인턴 생활은 고맙게도 그 불안함을 거두어주었다. 생각보다 쉽게 취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제야 알았던 사실은 이 취직이라는 게 회사에서 보기에 내가 ‘결격 사유가 없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언제나처럼 언니들을 대했던 방식으로, 나는 회사에서 느낀 행정적인 처우에 대한 불편을 담당 사수에게 편하게 말했다. 인턴 동료 중에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외국인이 있었는데, 그 동료의 회사 생활을 위해 또 다른 인턴이 모든 통역을 도맡아야 했다. 회사가 그러한 상황에 대한 준비가 없었다는 점과, 자연스레 다른 인턴에게 통역을 떠넘긴 것이 불만이었다.

 

하지만 사수는 내가 과민하게 반응한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 때문인지 나는 ‘부정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가졌다는 평가표를 들고, 다시 취직 시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무수한 이력서를 쓰면서 결심했다. 다시 결격 사유가 적발되어 회사에서 내쫓기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말이다. 회사, 달리 말해 조직 생활에 젖어 들어볼 생각이었다. 그에 걸림돌이 되는 건 언제라도 미뤄두고 제쳐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병상에서 3주를 보내고 난 후

 

얼마 뒤에 나는 IT 회사에 입사했다. 기뻤다기보다는 안도했다. 온라인 쇼핑몰을 새로이 시작하는 회사였다. 사무실에서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구호가 들리기도 했고, 상사가 큰 소리로 부하직원을 나무라며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 야근이 밥 먹듯이 이어졌다. 친구들, 언니들을 만날 시간이 점차 줄어들었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평범해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1년차 겨울 즈음해서 나는 간염을 앓았다. 으레 많은 병이 그렇듯 의사는 과로나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말했다. 병상에서 3주를 보냈다. 과로나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말은 어쩐지 의사가 할 말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당신의 사정 내 알 수 없으니 요인을 알아서 찾아 해결하라’는 말로 들렸다.

 

▲ 간염으로 앓을 때, 침대에 누워 매일 하루 한 장씩 천정 사진을 찍었다.     © 두둥쿠 

스스로 왜 아픈지에 대해서 곱씹어보다가, 결론에 도착했다. 이대로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언니’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얼마 간은 계속하고 싶다. 힘들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동료도 몇은 발견했고, 아직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주워 먹을 곡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2년여 회사 생활을 통해서 맷집은 키운 모양이다. 그래도 ‘개의치 않는 마음’으로 나를 내던지는 식으로 일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더더욱 같이 헤쳐나갈 사람이 필요하고, 이야기를 들어줄 그리고 들려줄 언니가 필요하다.

 

회사 안팎에서 언니를 찾아 헤매며

 

언니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텃밭 모임에 나가보기도 하고 책모임에도 기웃거려 보았다. 회사 밖에서 언니를 만나기 위해서는 노력을 많이 해야 했다. 그리고 이내는 지쳐서 나가떨어지기 마련이었다. 다시 생활 반경으로 돌아와 회사에서 언니를 찾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해, 싱겁게도 내가 찾는 바로 그 언니를 아직은 발견하지 못했다. 우선은 결혼, 출산으로 인해 회사를 떠나는 탓에, 말 그대로 회사에 남아 있는 숫자가 적다. 자신의 앞가림하기에 바빠 누군가의 언니이고 싶어하는 사람도 적다.

 

회사는 돈벌이인지라 어떠한 감정적인 투자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른바 ‘갈구는’ 방식의 조직 문화에 익숙해져 언어 폭력을 조직 관리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회사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실상 이야기하기 어렵기 때문에 회사가 유지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이 여럿 모여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곧 골칫거리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언니를 찾는 동안, 오히려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여성이 한국의 회사에서 일하게 되면서 거치는 과정에 대해 막연한 피로감으로 대하기보다는 선명하게 생각하게 된다. 단단해지고 있다고 위안을 삼는다. 

 

               ▲  작년 겨울의 나.    © 두둥쿠  

 

일기장을 들춰보니 언니를 찾아야겠다 결심한지 3개월 남짓 되어간다. 잃어버린 (친)언니를 찾는 마음으로 헤매고 있긴 하지만, 찾지 못한다 한들. 어쩌면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언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김칫국을 마실 배짱도 생겼다.

 

회사에서 일하는 건 쉽지 않다. 뻔하지만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일상적으로 회사에서 느끼는 난감함과 씁쓸함에 대해 어찌 갈피를 잡아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사람을 열심히 만나는 것뿐이라,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 언니를 찾아 다녀볼 생각이다. 그리고 혹여 회사를 오래 다니게 된다면, 누군가에게 좋은 언니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 두둥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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