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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보다 신비로운 사랑고백, 아주 로맨틱한 환상의 프로포즈 커플이벤트”
“커플을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 빼빼로 게임, 커플댄스 경연대회, 프로포즈대회”
“드라마 촬영지를 배경으로 찍은 베스트커플 사진 공모”
“크리스마스 이벤트, 예쁜 선물상자 + 사랑의 서약서 + 리본 + 사랑의 캔디”
“커플짱 페스티벌 개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각종 커플 이벤트들이 앞다투어 윤곽을 드러낸다. 서로의 사랑과 소속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커플을 타겟으로 한 커플상품들도 소개된다. 커플링, 커플룩, 커플장갑, 커플속옷, 커플석 심지어 커플증까지.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하면 ‘연인들의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렇듯 ‘커플’을 중심에 둔 광고 이미지와 무관치 않다.

커플아이템, 커플시장, 각종 데이(day)들

우리 사회에서 ‘커플’은 그만큼 장사가 되는 아이템이다. 한 광고기획자는 “커플 시장은 이미 형성돼 있다.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빼빼로 데이, 크리스마스 등의 시즌에 이러한 커플들을 중심으로 한 상품들을 기획하면 수익성은 확실하다”며 “커플들이 시장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덧붙였다. ‘커플’이 확실한 시장성을 약속하기 때문에 각종 서비스 회사에선 다양한 상품기획에 매진하고 있다. 일체감을 확인하고 과시하고 싶어하는 커플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것이다.

유독 일체감과 소속감을 강조하는 한국 특유의 커플중심 문화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다. 그러나 한국을 처음 방문한 한 외국인은 거리에서 커플룩을 입은 남녀들을 보고 “굉장히 의아했다. 특수한 집단이거나 상점직원들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한다.

남에게 ‘보이고, 인정 받고, 서로를 확인하는’ 과정이 사랑하는 관계라면 응당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욕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커플상품들과 생산되는 이미지들이 낳는 소외감 역시 만만치 않다. ‘신경 안 쓰면 그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이미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중학교에 재학중인 한 남학생은 “각종 ‘데이(day)’ 한번 챙겨보고 싶어서 (애인을) 사귀었는데 사실 사귀고 보니 별로 할 일도 없다”고 말한다. 대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김선영 학생은 “나이 더 먹기 전에 연애해서 ‘발렌타인 데이’ 같은 날 초콜릿이라도 하나 받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커플’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는 ‘연애 이미지에 대한 욕구’인 경우도 많다. 게다가 이렇듯 커플상품 전략과 이미지 대부분이 ‘젊은 이성애자’들을 모델로 하기 때문에 ‘나이든’ 커플, 혹은 ‘동성애자’ 커플 역시 소외되기 십상이다.

‘커플’중심의 문화가 자리잡다 보니 그 소외감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솔로부대’ 붐이 일기도 했다. ‘12월 25일은 원래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TV를 보라고 주어진 날이다’, ‘우리 솔로부대는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뜻 깊게 보낸다. 우리는 정이 넘치는 솔로부대다’ 등의 구호를 외치는 ‘솔로부대’가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호응을 받기도 했다.

강제소개팅?! '커플 만들기' 전략 속 집단주의

커플중심 문화를 반영하고, 이를 부추기는 것은 각종 커플 이벤트나 상품전략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커플’ 만들기 전략은 일상 곳곳에서 자연스레 이뤄진다.

회사에 들어갔는데 내가 솔로라고 하니까 뜬금없이 솔로인 남자사원 하나랑 이어주려고 하는 거에요.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정말 끔찍했죠.3년차 회사원인 박모씨(29세)는 신입사원시절부터 계속되는 집단적인 ‘짝짓기’ 분위기에 학을 뗐다. 남자에 관심도 없고, 연애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남자친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과장서부터 동료직원까지 “쟤 어떠냐, 이어줄까”, “얼른 남자친구 사귀어야지” 등의 ‘쓸데없는 참견’을 멈추지 않았다.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이모씨(28세) 역시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니 여기저기서 소개팅 시켜주겠다고 하는데 그게 더 스트레스였다”고 고백한다. 아예 깜짝 소개팅을 강제로 당하는 경우도 많다. 너무 화가 나 항의를 했지만 “커플이 있어야 행복하다. ‘선의’의 강제 소개팅이었다”는 능청스런 답변만 돌아왔다. 당사자가 뭘 원하는지에 상관없이 ‘애인이 있어야 행복하다’는 근거 없는 ‘커플 지상주의’가 개인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중학교 교사인 김모씨(28세)는 “중학생들 사이에서도 연애를 해야 뭔가 있어 보인다는 의식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사귀고 헤어지고 반복하는 일이 많다. 뚜렷이 원해서라기 보다 안 하면 모자라 보이니까 일단 ‘깔’(애인)은 만들고 보자 식”이라면서 ‘커플’이 되고 싶어하는 중학생들의 심리를 설명했다.

아이디가 ‘단청’인 한 여성은 <일다> 몸과 성 ‘나에게 연애는’ 코너에 “내가 연애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친구들이 다 연애를 하기 때문이다. 애인들을 동반해서 만나는 자리는 나에게 불편했다. 그래서 나도 애인을 만들었다. 애인이 알면 좀 섭섭하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이다”라고 의견을 남겼다. ‘남들이 다하기 때문에’, ‘남들이 좋다고 하기 때문에’ 커플이 되기도 하는 실상을 보여준다.

사실 ‘커플’중심의 문화는 ‘혼자’를 인정 못하는 한국사회의 집단문화와 무관치 않다. 혼자 밥 먹는 것, 혼자 영화 보는 것, 혼자 술 마시는 것 등이 한국에서는 모두 ‘좀 이상한 일’로 간주된다. 개인의 다양한 욕망과 삶의 형태를 인정하기보다 천편일률적인 집단문화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에 이상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늘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커플’이 되기를 유도하는 형형색색 이미지의 상품전략, 끊임없이 남녀를 이어주려는 이성애적 커플문화, 개인보다는 소속감과 일체감을 중시하는 집단문화가 싱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원해서, 내가 원하는 시기에, 내가 원하는 사람과 연애하고 싶다”는 개인의 당연한 욕구 또한 실현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일다] 문이정민 일다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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