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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
성폭력 피해라는 트라우마(외상, 영구적인 정신장애를 남기는 충격)에서 살아남아 ‘생존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는 철학을 전공한 여교수 수잔 브라이슨이 자신의 성폭력 경험과 치유 과정을 기반으로 자아와 외상,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저자는 트라우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 “트라우마는 예를 들어 ‘2,4,6, √-2…’ 또는 ‘2,4,6,!…’과 같은 수열에서 ‘√-2’나 ‘!’ 때문에 도저히 그 수열의 규칙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삶의 연속 속에 ‘√-2’나 ‘!’와 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을 불러들이면서 우리가 가졌던 삶에 대한 계획들을 산산조각 낸다.”
저자는 조깅을 하다가 갑자기 강간을 당해 거의 죽을 뻔했던 자신의 경험으로 책의 첫 장을 시작한다. 강간 경험 이후 유령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던 생활, 우울증 치료약과 성폭력 피해자 지원 모임 참여 등 치유를 위한 개인적인 노력에서 여성폭력 방지법 제정에 대한 촉구, 대학 당국에 여성의 자기 방어와 강간예방 강좌의 개설 요구 등 대사회적인 행위까지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기술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트라우마 치유에 필요한 자아관과 세계관을 녹여낸다.
기존 철학은 아무 도움 안돼
철학을 전공한 저자는 기존 철학(주로 영미분석철학 전통)이 트라우마를 잘 설명하지 못하며, 하나의 철학적 주체로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차분하게 비판한다. 물론 이 책 자체가 난해한 이론 서적이 아닌 까닭에, 전통적인 철학의 고전들을 세세히 분석하지는 않는다. 대신 저자는 데카르트를 위시한 근대 철학에서 자아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명제들을 토대로, 그 명제들이 트라우마의 특수성을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를 간결하게 정리한다.
근대 철학은 각 개인이 논리적인 추론 과정을 거쳐 보편적인 결론을 내리는 정신 구조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또한 개인의 자아가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일관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에 대해 그녀는 철학자들이 자신의 관심을 “현실 세상과 비교해서 더 간결하고 더욱 통제하기 쉽고 더욱 이해하기 쉬운 순수 사유의 영역에 두어야 한다고 훈련 받아 왔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성폭력을 당한 후 “아마 내가 실제로 여기 있는 건 아닐 거야. 그래, 나는 그 골짜기에서 죽었잖아”라고 중얼거렸던, 삶과 죽음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인식했던 저자의 경험에 대해, 기존 철학의 자아관은 아무런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
기억을 견디면서 살아낼 힘을 얻는 것
근대 철학의 한계를 지적한 후, 트라우마와 자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심리학적 설명을 끌어들인다. 그녀는 자아를 몸으로서의 자아, 이야기로 구성된 자아, 자율적 자아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본다. 몸으로서의 자아라는 관점에서, 몸과 자아는 데카르트적 이원론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밀접한 연결성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트라우마의 기억은 피해자의 몸에 들러붙어 있어서, 사소한 단서만 주어져도 몸을 통해 다시 감각된다.
그녀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느의 맛을 통해 프루스트가 회상하는 기억과 트라우마의 기억을 비교한다. 둘 다 환기된 몸의 감각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같지만, 프루스트의 기억이 과거의 여러 기억들이 모여서 떠오른 지연된, 긍정적인 성질의 것이라면 트라우마의 기억은 개인이 통제 불가능하며 생생하고도 불쾌한 감각을 수반한다.
이야기로 구성된 자아의 측면에서 보자면, 인간은 모두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는 서사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트라우마로 산산조각 난 세계를 다시 맞추기 위해서는, 개인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반복해서 말하고, 자신의 두려움과 고통, 분노와 대면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자율적 자아의 측면에서 볼 때, 트라우마로 인한 자율성 훼손의 경험은 엄청나다. 저자는 “자율성이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자신이 사회와 독립된 자율적이고 일관된 존재라는 신화를 깨는 것이 치유에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저자가 말하는 치유란 트라우마를 잊는 것이 아니다. “트라우마에서 회복된다는 것은 일관된 자아란 처음부터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는 사실과 직면하는 일이다. 나는 내 자신을 다시 예전의 나와 합치려 하는 일은 할 것 같지는 않다. 대신 새롭게 생겨나는 나에게 나 자신을 일치시켜야 할 것이다.” 트라우마는 결코 사라지지 않지만, 개인은 그 기억을 견디면서 새로운 자아로 살아갈 수 있다. 치유는 짐을 진 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획득하는 것이다.
성폭력의 기억은 선명한 기록사진과 같아
트라우마의 기억의 특징은, 몸으로 환기되는 감각의 특성상 생생하고 믿을 만하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트라우마가 일반적인 기억이 저장되는 절차를 밟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선명한 기록 사진처럼 강렬하게 남는다고 설명한다. 트라우마의 기억은 인식론적인 차원에서 사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특권을 가지며, 이에 대한 증언은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보존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트라우마 생존자에게 있어 병적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다는 것은 개인의 고통이 계속된다는 문제를 의미한다.
저자는 하나의 딜레마를 지적 한다. 미술평론가의 평론이 회화를 대변할 수 없듯, 트라우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생존자의 이야기는 분명 과거를 선명하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 평론이 필요하듯, 증언이 아닌 생존자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하는데, 이야기를 함으로써 개인은 자신을 주체로 세우고 기억을 통제하는 연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정치학은 여성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하며, 때문에 피해자들의 증언, 생존자의 이야기 모두 중요시 한다. 그러나 경험이 언제나 올바른 효과를 유도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개인의 경험이 이론화될 때 생겨나는 위험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다. 즉 성폭력 경험을 통해 모든 여성을 대변하려는 시도는 위험할 수 있으며, 때문에 과도한 일반화를 피해야 한다. 또한 트라우마의 생생함과 강렬함 때문에 피해자의 증언은 100%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 그 기억 역시 문화적인 상징체계들에 의해 변형되어 재구성되기도 하므로 지나치게 의지할 수는 없다.
그리고 트라우마의 기억만을 신뢰할 경우, 그것은 트라우마가 가져오는 고통과 섞여 문제에 대한 감상적인 접근으로 빠질 수 있다(그녀는 이런 경우 가해자들의 인권 침해론을 비롯한 역-피해 주장을 반박하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여성들 스스로 피해자들의 주장을 평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자신의 경험을 충분히 풀어내면서도 절제된 해석을 덧붙이는 저자의 균형적인 시선은 성폭력의 경험을 해석하고, 페미니즘 정치학을 재구성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일다] 김윤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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