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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을 당해 임신을 하자 자살을 결심하고 저수지를 배회하던 한 십대여성이 경찰에 발견되었다. 경찰은 소녀를 쉼터로 인계했다. 성매매업소에서 종사하다 나와서 지금은 쉼터의 상담원이 된 여성 A씨가 소녀를 도왔다. 쉼터에 자리를 마련하고, 변호사와 연락을 취하면서 A씨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소녀야, 괜찮아. 너무 두려워하지 마. 너를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단다. 나도 너처럼 성폭행을 당했어. 그리고 인생막장이라는 생각에 결국 성매매업소까지 가게 되었어. 그러나 너는 내가 도와줄게. 의료서비스를 받고, 법률서비스를 받고, 상담을 받으면서 너는 다시 태어날 수 있어. 열일곱 살이라고 했지? 공부를 하든 취업을 하든, 살아갈 수 있게 우리가 도와줄게.” -<나는 이정표가 될래요> 중에서
 
만약 A씨가 십대시절 성폭행을 당했을 때 지금의 소녀처럼 그녀를 도와줄 손들이 있었다면, 그리고 A씨가 1천5백만 원이라는 돈(선불금)에 성매매집결지로 팔려가는 일을 우리 사회가 용인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자립의 길을 걷는 여성들의 이야기

<축하해>(도서출판 샨티)는 성매매업소를 나와 자립과 자활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탈성매매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책에서 여성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가정폭력과 빈곤, 성폭력 등의 문제를 겪으며 십대시절 성매매에 유입되고 있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사회적일자리 사업으로 멘토(mentor, 조언자)로서 성매매여성들을 지원하고 상담하고 역할모델을 수행하는 탈성매매 여성들을 밀착 인터뷰하여 완성했고, 인터뷰는 MBC라디오 “여성시대” 작가 박금선씨가 맡았다.
 
성매매 문제에 눈감는 많은 이들은 성매매여성을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구체적인 삶을 가진 개인이 아니라, 추상적인 덩어리로만 바라본다. 그렇기에 성매매 시장이 그 속에서 거래되는 여성들의 삶을 어떻게, 얼마나 잔인하게 파괴하는지 바라볼 수 없다.
 
때문에 여성들 삶의 구체적인 그림들을 통해 성매매 문제에 접근하는 시도는, 성매매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넓히는 데 중요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여성들이 십대에 성매매에 유입된 과정을 살펴보면 학대와 빈곤, 성폭력 등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와 성매매를 용인하는 사회적 편견 등 여러 가지 구조적 문제들이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학대를 피해 가출해 당장 머물 곳이 필요한 아이들을 유인해선 강간한 후에 집결지로 팔아 넘기는 어른들이 있는가 하면, 가족에게 보살핌을 받지 못해 정에 굶주린 점을 이용해 ‘가족처럼’ 아껴주어 더 ‘열심히’ 몸을 팔게 만드는 어른들도 있다.
 
여러 가지 계기로 일단 성매매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후에는 빚과 폭력의 고리에 갇혀 빠져 나오는 것이 힘들어진다. 자신은 성매매업소의 손님으로 가면서도 당당하게 성매매여성을 욕하는 남성들과 사회적 편견 속에서, ‘이미 버린 몸’이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은 이곳을 벗어나려는 의지를 더욱 꺾어버리게 만든다.
 
이렇듯 십대들이 쉽게 성매매에 유입될 수 있는 구조가 존재하는 한, 성매매 문제의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성매매여성의 상당수가 십대부터 유입된다는 점에서, 십대여성들에게 성매매의 실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동시에 성구매자의 규모를 줄일 수 있도록 잠재적 구매자, 그리고 이미 구매자가 된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축하해>는 십대여성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읽고 고민해보아야 할 책이다.
[일다] 박희정 일다의 다른 기사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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