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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된 거장이 들려주는 작은동화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벼랑 위의 포뇨 그의 작품에는 강인하고 지혜로운 여성들이 등장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후 4년 만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이 우리 곁을 찾아왔다. 일흔을 바라보는 노감독이 내놓은 작품은 사람이 되고 싶은 물고기 ‘포뇨’와 다섯 살 소년 ‘소스케’의 이야기 <벼랑 위의 포뇨>다.
표면적으로는 ‘인어공주’식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줄거리 설명은 크게 의미가 없을 듯하다. 한쪽에서 스토리가 빈약하고 완결성이 떨어진다는 원성을 사고 있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그런 설정과 이야기의 디테일을 일부러 팽개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상상과 환상, 그리고 꿈의 세계
<벼랑 위의 포뇨>에서 포뇨는 ‘사람의 얼굴’을 가진 물고기다. 극 중에서 포뇨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둘로 나뉜다. 포뇨를 ‘물고기’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인면어’라며 징그럽게 여기거나 재앙을 가져온다고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포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꿈과 환상의 세계에 동참할 자격을 얻게 된다.
감독은 장황한 설교 대신, 아이들이 눈을 떼지 못할 상상의 세계를 통해 편견 없이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눈과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러 모로 <이웃의 토토로>를 떠올리게 하는데 <토토로>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환상의 놀이터가 하늘과 숲이라는 공간이었다면, <포뇨>에서는 그 역할을 바다가 대신한다. ‘바다가 또 다른 주인공’이라는 감독의 말처럼 바다는 갖가지 모습으로 환상을 제공한다.
바다 속에 잠긴 마을 위로 눈처럼 빛나는 해파리 떼들과 멸종된 고생물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파도는 살아서 움직인다. 거대한 물고기들로 표현된 해일 위를 질주하는 포뇨의 모습에서는 여전히 죽지 않는 감독의 상상력을 느끼게 한다.
씩씩한 아이들과 강인한 여성들
소스케의 엄마 ‘리사’는 <이웃의 토토로>의 사츠키가 자라면 이렇게 되었을 것 같다 싶은 인물이다. (극 중에서 리사는 <토토로> 주제가의 한 구절을 흥얼거리기도 한다.) 성큼성큼 걷는 걸음걸이가 매력적인 리사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해일이라도 뚫을’ 기개를 가졌다.
리사뿐 아니라 포뇨의 어머니 ‘그란만마레’, 소스케를 사랑해주는 양로원의 할머니들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혜와 용기의 소유자들로 그려진다.
코난과 <토토로>의 메이가 합쳐진듯한 물고기 소녀 포뇨는 시종일관 에너지로 흘러넘친다. 포뇨의 아버지는 사람이 되려는 포뇨를 억지로 힘으로 누르려다 실패한다. 포뇨와 소스케, 이 어린 주인공들은 “아이들은 혼자 내버려두어도 뭐든 해낸다”는 미야자키의 철학이 배어 나오는 인물들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른 작품 ☞] 마녀는 열세살에 독립하는 거예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른 작품 ☞] 소녀의 도전에서 할머니의 용기로!
석양을 바라보는 거장의 뒷모습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중 가장 어린아이들이 주인공을 맡았다
‘마스터피스’라고 칭해질 만한 <원령공주>이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여러 번 은퇴 의사를 밝혀왔다. 차세대를 이어갈 인재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총체적 위기 속에서 명운을 걸고 진행한 <게드전기>의 작품적 실패로 지브리 스튜디오는 참담한 상황을 맞았다. 지브리의 찬란한 역사를 만들어왔던 미야자키의 고심이 어떠했을까.
또 다시 ‘미야자키 하야오 차기작’의 준비소식이 들리면서, 그가 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벼랑 위의 포뇨>를 보고 난 이후,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역시 ‘그다운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보고 있을 것이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끝. 그 끝에서 그는 조용히 새 세대를 이끌어갈 어린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읊조리고 있다.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그로 인해 파생된 고통에 가슴 아파하고, 파괴되어 가는 세상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한 예술가다운 ‘나이듦’이다. [일다] 박희정 ☞ 일다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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