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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강가에 자리한 꽃의 도시, 깽뻬르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브르타뉴의 성곽 도시들⑥ 
  

‘교육일기’와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 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가 연재됩니다.

 

 

도시를 계획하는 전통

 

브르타뉴에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그 끝에 위치한 피니스테르 지방은 다시 북과 남으로 나뉜다. 북 피니스테르의 중심 도시가 브레스트라면, 남 피니스테르의 중심에 깽뻬르(Quimper)가 있다. 남 피니스테르 중에서도 ‘꼬르누아이유’ 문화권의 중심지인 깽뻬르는 브르타뉴에서 아름답고 특색 있는 도시로 유명하다. 

 

                ▲  오데강 교각은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 정인진  

 

기원전 1세기, 오데(l’Odet)강 왼쪽 발치 아래 건설된 도시가 깽뻬르의 출발이다. 지금은 오른편 구역도 도시화되어, 오데강이 도시 한복판을 관통해 흐른다. 오데강 위에는 양 옆을 잇는 작은 인도교들이 빽빽하게 놓여 있고, 교각 위는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되어 있다.

 

꽃으로 꾸며진 깽뻬르는 프랑스에서 ‘꽃의 도시’ 칭호를 받기도 했다. 그 칭호가 무색하지 않게 오데강 위를 꾸며 놓은 꽃들은 정말 아름답다. 기차역에서 내려 깽뻬르의 중심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오데강을 따라 내려가야 하는데, 교각 위를 장식한 꽃들을 바라보며 정신 없이 걷다 보니 어느 샌가 깽뻬르의 중심가에 도착했다.

 

깽뻬르도 브르타뉴에서 유명한 성곽도시 중 하나다. 1209년에는 공작에 의해 성이 건설되고, 이어 1230년경에는 주교에 의해 도시의 15헥타르(ha)에 달하는 규모가 성벽으로 둘러싸인다. 이 성벽은 열 개의 탑을 갖추고 있는 긴 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성벽의 여러 곳이 다양한 공격과 저항자들의 손에 훼손되었고 많은 부분이 허물어진 상태로 존재하거나, 건물들 안에 포함되어 있다.

 

성곽 안에는 1762년에 발생한 화재에도 불구하고 중세의 꼴롱바주 집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케레옹(Kereon) 거리’는 차가 다닐 수 없게 보행자 전용도로 만들어 놓았다. 그 거리에는 16세기에 지은 가장 오래된 꼴롱바주 건축물을 비롯해, 18세기에 건설된 화려하고 아름다운 꼴롱바주 집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옛날에는 귀족과 상인, 법조인, 종교인 같이, 권력 있고 부유한 사람들이 이 거리에 살았다고 한다. ‘케레옹 거리’의 꼴롱바주 집들은 위층으로 갈수록 조금씩 넓어지는 앙꼬르벨망 식인데, 1층이 석조 건물로 지어진 것이 특색 있다. 

 

               ▲  케레옹 거리의 아름다운 앙코르벨망식 꼴롱바주 건물들.    © 정인진  

 

또 ‘부슈리(Boucheries) 거리’에도 꼴롱바주 집들이 많다. 인상적인 것은, ‘정육점들’이라는 뜻의 거리 이름처럼, 옛날에는 정육점들이 자리해 있었다는 것이다. 이 거리의 한 건물에서 재밌는 표정의 동물들이 조각되어 있는 꼴롱바주 집을 보았는데, 과거 정육점의 장식물이었던 것 같다. 깽뻬르의 주교는 도시의 미관을 위해 정육점을 이 거리 외의 다른 장소에서는 열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금지했다고 한다.

 

과거, 도시의 미관을 위해 정육점 장소를 엄격하게 관리한 것이나 오늘날 꽃 화분으로 도시를 장식한 것들을 보면, 깽뻬르는 과거나 현재나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고 관리하는 도시라는 인상을 준다.

 

바다로 사라진 도시와 인어 ‘마리-모르간’의 전설

 

옛날, 깽뻬르의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한 사람은 주교였다. 주교의 위용이 얼마나 막강했나를 보여 주기라도 하듯, 깽뻬르의 ‘성-꼬르낭탱’(Saint-Cornentin) 대성당은 엄청 거대하고 화려한 모습이다. 기독교 전통에 충실하게 지어진 다른 성당들과 달리, 이곳 성-꼬르낭탱 대성당 중앙의 가장 높은 곳에는 이 도시의 기원에 관한 전설의 주인공인 ‘그라드롱(Gradlon) 왕’의 조각이 세워져 있다.

 

그라드롱 왕은 아주 오랜 옛날, 브르타뉴에 존재했다가 바다로 사라졌다는 도시 왕국 ‘이스’(Ys)와 연관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도시 왕국의 왕이었던 그라드롱에게는 다위(Dahut)라는 딸이 있었다. 그녀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아주 중요한 도시의 수문 열쇠를 아버지로부터 훔쳐서 악마에게 준다. 악마에 의해 도시를 보호하고 있던 수문이 열리고, 도시 왕국 ‘이스’는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 탈출 과정에서 그라드롱은 딸을 데리고 말에 올라타는데, 너무 무거워 말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왕의 조언자는 딸 다위를 말에서 밀어내고 떠나라고 종용한다. 그라드롱은 조언자의 말에 따라 딸을 말에서 밀어내 밀려오는 바다에 떨어뜨리고 그곳을 탈출한다. 탈출한 그라드롱이 이주해서 세운 도시가 깽뻬르다. 그래서 깽뻬르는 그라드롱 왕의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대성당 첨탑 위는 물론, 광광 안내소 입구, 도시를 광고하는 각종 홍보물에서 그라드롱 왕은 종종 나타난다.

 

한편, 바다에 빠진 다위는 인어가 된다. 인어가 된 다위의 이름이 ‘마리-모르간’이다. 마리-모르간은 인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름으로, 여러 형태의 마리-모르간 전설이 브르타뉴에 존재한다. 그 중 이스섬의 다위와 관련된 마리-모르간의 전설은 위와 같다. 바다에 빠져 인어가 된 마리-모르간은 어부들을 유혹해 바다에 빠뜨리는 식으로 그의 복수심을 여전히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  케레옹 거리에서 바라다 보이는 성-꼬르낭탱 대성당의 그라드롱 왕 조각.    © 정인진  

 

바다로 사라진 이스 도시의 전설은 실재한 사건인지 아닌지 밝혀지지 않았다. 북 피니스테르의 한 항구도시 ‘두아르느네’(Douarnenez)에는 사라진 도시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곳이 아마도 사라진 ‘이스’ 왕국일지 모른다고 추측한다. 특히 다위에 관한 전설과 관련해서, 바닷물이 밀려오는 과정에서 탈출하기 위해 실제로 딸을 버린 잔혹사에 바탕한 전설이 아니었을까 라고 추측하는 한 역사학자의 글을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내게는 그 가설이 끌렸다. 정말 그랬다면, 다위의 운명이 너무 비극적이지 않은가?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한편, 브르타뉴에서 인어는 사악하고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사치스럽고, 남자들을 유혹해 죽음에 빠뜨리는 존재가 인어인 것이다. 그래서 여성들에게 사치와 허영심을 경계하는 의미로 성당 외벽에 인어를 조각하기도 하는데, 브르타뉴의 민간 전설이 기독교와 결합되어 표현된 독특한 문화처럼 보인다. 마치 우리나라 사찰에 ‘산신각’(山神閣: 산신을 모시는 전각)이 있는 것과 참으로 비슷하다.

 

깽뻬르의 상징이 된 ‘HB 도자기’

 

깽뻬르에서 가장 유명한 것을 꼽으라면, 뭐니뭐니해도 도자기 산업일 것이다.

 

깽뻬르 도자기 역사는 169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장-밥티스트 부스께’(Jean-Baptiste Busquet)가  ‘록마리아’(Locmaria) 구역에 도자기 가게를 차린 것에서 출발해, 브르타뉴는 물론 프랑스 전역에서도 유명한 ‘HB(Henriot) 도자기 회사’로 발전한다. 이 도자기 회사는 오데강가에 있었는데, 오데강을 통해 ‘툴방’(Toulven)에서 점토를 운반하기에 매우 편리한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HB가 번성했을 때는 오데강에 늘 점토가 섞인 흙탕물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옛날 HB는 현재는 도자기 박물관으로 바뀌어, 깽뻬르에서 얼마나 도자기 산업이 발달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두 차례나 갔었지만 불행하게도 두 번 다 정기 휴일로 문이 굳게 닫혀 구경하지 못했다. 어떤 곳을 두 차례나 방문할 목적으로 간 것도 흔한 일이 아닌데, 둘 다 구경할 기회를 놓친 경우는 ‘HB 도자기 박물관’이 유일해 잊을 수가 없다.

 

그 덕분에 나는 도자기 박물관 바로 근처에 있는 큰 규모의 기념품 가게에만 두 번이나 들어가, 깽뻬르와 브르타뉴를 상징하는 기념품들을 잔뜩 사가지고 왔다.  

 

               ▲   한 기념품 가게의 외벽에 장식되어 있는 HB 채색 도자기들.   © 정인진  

 

HB는 1791년부터 19세기 중반까지는 사암에 유약을 발라 접시와 오목한 그릇을 주로 만들었다. 또 신앙심이 강한 브르타뉴 사람들을 위해 종교적인 조각품들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세기 말에 들어서는 꽃과 풀, 브르타뉴의 민속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그려진 화려한 채색 도자기가 이름을 떨치게 된다. 이 도자기는 아직도 깽뻬르를 대표하는 것으로,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기념품으로 많이 장만하는 도자기 그릇에는 바로 이런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1850년부터 19세기 초, HB의 전성기에는 80여명의 화가와 조각가들이 이 도자기 공장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HB 회사 덕분에 도자기 산업은 깽뻬르를 대표하는 중요한 공예로 발전하게 된다.

 

프뤼지 언덕을 걸으며 본 깽뻬르의 전경

 

깽뻬르의 골목길들 사이사이에 있는 각양각색의 예쁜 꼴롱바주 집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고, 성곽을 따라 걷는 것도, 오데 강가의 풍취에 젖어보는 것도 모두 깽뻬르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나에게는 ‘프뤼지 언덕’(Mont Frugy) 위의 산책로에서 본 깽뻬르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웠다.

 

프뤼지 언덕은 오데강 왼 쪽에 위치한 71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구릉이다. 깽뻬르의 관광안내소 바로 곁에, 프뤼지 언덕 산책로 입구가 있다.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걸으면 깽뻬르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내가 프뤼지 언덕을 걸었던 때는 보슬비가 내리는 여름 끝 무렵이었다. 우산을 받쳐들고 걸었던 그 날 그 기억이, 일주일 넘게 머물렀던 깽뻬르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   프뤼지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깽뻬르의 전경.   © 정인진  

 

깽뻬르에는 과거 브르타뉴의 특색있는 문화재를 모아 놓은 ‘브르타뉴 도립 박물관’이 있고, 꼬르누아이유 지방의 작은 도시들로 향하는 도로망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또 해마다 대규모 민속축제인 ‘꼬르누아이유 축제’가 열린다. 브르타뉴의 전통적이고 특색 있는 문화를 들여다보기 쉬운 장소로 깽뻬르보다 더한 곳은 없을 것이다.

 

다시 깽뻬르에 갈 기회가 있다면 오데강 교각 위의 꽃들이 눈부시게 피어 있는, 꼬르누아이유 축제가 열리는 한여름에 가고 싶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큰 나무 그늘이 짙게 드리운 오데강가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그냥 한참을 앉아 있어도 좋을 것 같다. 그때는 HB도자기 박물관을 구경할 수 있으려나….  ▣ 정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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