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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선 예술가를 어떻게 지원하나?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어린이 예술교육과 예술가의 월급 
 

[‘교육일기’와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 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가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예술 교육은 불평등에 반대하는 투쟁이다?!

 

브르타뉴의 수도인 렌은 시민들의 문화 예술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도시다. 관련 행사가 일년 내내 쉬지 않고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높은 수준의 문화와 예술적인 분위기가 시 전반에 형성되어 있다. 이런 분위기가 성인들을 위한 행사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렌은 어린이의 예술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무척 노력한다.

 

그곳에 살면서 지방 정부가 어린이 예술 교육에 기울이고 있는 다양하고 체계적인 관심에 놀랐다. 그들은 어린이 예술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을 ‘아이들의 영혼을 열어주는데’ 두고 있다. 그런 만큼 전문 예술인을 키우는 것보다는 예술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판단력과 감각을 키우고, 각자 다양한 취향을 이끌어내는 데에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더불어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고, 다른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열려있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예술 교육을 한다고 한다.

 

이민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가진 인종과 민족들이 어울려 사는 프랑스에서, 개인적인 자긍심과 그들이 속해 있는 커뮤니티에 대한 자부심을 기르고, 다른 문화에 속해 있는 이들과 서로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은 매우 절실한 과제 같아 보인다. 렌 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실마리를 예술 교육에서 찾고 있다. 그래서 렌은 ‘예술 교육은 결국, 아이들의 뿌리(출신)에 대한 불평등에 반대하는 투쟁이며, 어린이 개개인에게는 문화를 풍부하게 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영혼을 열어주고, 협동을 가르치는 교육

 

이런 관점에서 렌 시는 국가 교육과 긴밀하게 연계하면서 어린이들의 예술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렌에서 예술 교육은 항상 시의 문화 정책 영역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들이 어린이 예술 교육의 일환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학교 안에 ‘예술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는 매년 세 학교씩 예술센터가 늘어가고 있다. 이 센터의 책임자는 박물관과 도서관, 축제, 이벤트 공연장들과 긴밀히 연계해서 아이들의 예술 감수성을 기르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구상한다. 그래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단계의 어린이들은 1년에 적어도 열 시간을 전시회나 공연 관람, 실기 활동 같은 예술 관련 이벤트를 진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우리 동네, 끌뢰네 시립도서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방과후 어린이 미술 교육.    © 정인진  

 

또 악기 연주와 노래를 포함한 음악 교육과 무용 교육을 학업 과정 외에도 실시하는 학교를 늘릴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는 초등, 중등학교에서 수업 시간을 추가해 음악과 무용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가 네 곳 존재한다. 또 렌의 블로뉴(Blosne) 지역에는 세 개 학교(Volga, Torigne, Guillevic)에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졌다. 오케스트라 활동은 아이들에게 음악 감수성을 풍부하게 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타인과 긴 시간 동안 협동하는 법을 가르치는 시민 교육까지 담당한다고 한다.

 

한편, 릴리코(Lillico) 극장의 극단은 렌의 북동쪽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친다. 이 극단은 모르파(Maurepas)에 있는 ‘트레갱’ 학교와 연계해 47개의 수업을 진행 중이다. 아이들은 연극 배우들로부터 직접 연극을 배우면서, 더 크고 분명하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까지 갖추게 된다고 한다.

 

생-마르탱(Saint-Martin) 고등학교와 브레끼니(Breauigny) 고등학교에서는 영화-영상(cinema-audiovisuel) 수업이 진행 중이다.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영화의 역사를 공부하고 영상 편집과 촬영 기술을 배운다.

 

또, 2010년부터는 시의 어린이집에서도 예술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고 유아들에게 위험하지 않으며 사용이 간편한 재료들을 이용해, 일찍부터 감각을 깨우는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가 렌 시에서 실시하는 예술 교육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놀란 것은 조형예술, 서커스, 무용, 음악, 사진, 비디오, 연극, 쓰기 등의 활동을 과외로 가르치는 아틀리에들 중 37.6%가 수업이 없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후 5~6시, 또는 12시~2시 사이인 점심 시간, 빈 교실을 이용해 예술 교육을 실시한다. 예술 교육을 위해, 시의 빈 교육 공간을 광범위하게 활용한다는 건 매우 창의적인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나라도 이런 식으로 비는 공간들이 많은데, 어린이와 시민의 교육 공간으로 활용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마을마다 있는 취미 센터나 시립도서관에서는, 방과후와 수업이 없는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그리기와 만들기와 같은 미술 교육과 바이올린 교습 같은 음악 교육이 일주일 내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예술가에게 월급을 보장하는 사회

 

렌에서 집중하고 있는 예술 교육이 아이들을 꼭 예술가로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게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직업 예술가가 되길 원할 때에도, 프랑스는 우리 나라보다는 훨씬 더 쉽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예술 교육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직업 예술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 꿈을 이룰 수 있고, 또 경제적으로도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연극이나 무용, 음악 등에 종사하면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꾸리기는 정말이지 힘든 게 사실이다. 유명 스타가 아닌 이상, 가난한 예술가가 되든지, 다른 직업을 겸업해야만 살 수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의 예술가를 위한 정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랑스에서 전문 무용수로 활동하는 한 한국인 친구를 통해, 그녀가 프랑스에서 어떻게 사는지 자세하게 들어보았다. 그녀는 몸담고 있는 무용 공연과 관련해, 공연 예술가들을 예로 들어 프랑스의 예술가 지원 정책을 설명해주었다. 영화, 연극, 음악, 무용 분야의 배우나 무용수, 음악가는 물론 조명, 음향, 카메라맨과 같은 무대, 촬영 기술자들까지. 즉 부정기적인 공연 활동(intermitant spectacle)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된다.
 

▲  프랑스의 예술가 지원정책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준 무용수 친구 강미라 씨의 공연 모습.  

 

이들에 대한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은 아쎄딕(ASSEDIC)이라는 곳이다. 아쎄딕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부정기적인 직업이나 시간제 노동을 하는 모든 이들의 처우를 관장한다.

 

아쎄딕에서 혜택을 받으려면, 10개월 반 동안 507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 무용의 경우 1회 공연은 12시간으로, 1회 연습은 8시간으로 계산해 준다. 그리고 매달 수입을 정부에 신고하는데, 신고한 수입을 토대로 국가에서 그 사람의 노동 가치를 일당으로 평가해준다. 아쎄딕에서 평가한 일당을 30일로 계산해서 최종 월급이 정해진다.

 

무용수가 한달 동안 공연해서 받은 수입이 아쎄딕에서 정한 이 액수에 미치지 못할 경우, 나머지 금액을 채워서 다달이 국가에서 월급을 준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공연 수입이 평소보다 많을 경우, 딱 그 액수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월급보다 좀더 많은 돈을 준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 달에 100만원으로 월급이 정해진 사람이 평소 50~60만원 정도 공연 수입을 벌다가 이번 달에는 90만원을 벌었다고 한다면, 꼭 100만원을 채워 주는 것이 아니라 110~120만원, 어떨 때는 150만원까지 채워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보충 수입은 일에 좀더 의욕을 가지고 노력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단다.

 

또 해마다 신고된 한 해 수입을 토대로 그 사람의 일당은 다시 평가되어, 다음 해 월급이 새롭게 정해진다. 더욱이 능력을 더 신장하기 위해 재교육이 필요하거나 연수를 받게 되어 직업 활동을 중단하게 되는 경우조차, 재교육에 소용되는 비용과 월급을 모두 지급한다고 한다.

 

결국, 어린 시절부터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예술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그 속에서 자기의 재능을 발견하고 예술가의 꿈을 꾸는 사람이 수입을 신경 쓰지 않으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예술 작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예술가가 배곯지 않고 즐겁게 일하면서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를 보면서, 문화 선진국이란 이런 곳이겠구나 생각했다. ▣ 정인진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영문 번역기사 사이트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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