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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색있는 전통의상, 더욱 독특한 머리장식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46) 민속의상은 어떻게 계승되고 있나 
 

‘교육일기’와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 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가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 렌(Rennes)의 전통적인 의상과 머리장식. 2013년 페스트 노츠. © 정인진 
 

켈트문화 축제나 ‘페스트 노츠’(Fest Noz. 밤 축제) 같은 민속 축제에서 전통적인 브르타뉴 의상을 차려 입은 사람들을 만나는 건 매우 즐거운 일이다. 우리의 한복과 같은 옷차림이 그들에게는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듯, 시민들은 무덤덤한 표정이다. 오히려 탄성을 연발하며 흥분해 있는 나 같은 관광객이 더 구경거리 같은지, 브르타뉴 사람들은 환호하는 나를 바라보는 걸 더 즐거워했다.

 

브르타뉴 사람들도 우리처럼 더는 전통 의상을 입고 생활하지 않는다. 그러나 브르타뉴의 특색을 말할 때, 전통 의상과 머리 장식을 빼놓을 수 없다. 요즘은 민속박물관이나 축제 때 무용수들을 통해서나 볼 수 있지만, 브르타뉴 사람들이 전통 의상을 벗은 건 20세기에 들어서였다.

 

화려한 자수와 장식으로 꾸민 브르타뉴의 의상

 

현재 전통 의상이라고 분류되는 옷차림은 브르타뉴의 농업 발달과 깊은 연관이 있다. 18세기가 지나면서 삶이 좀더 윤택해진 서민들은 의복에 있어서도 엄청난 다양함을 이끌어냈다. 민중들은 충분히 주름을 잡은 옷을 입었고, 이 의복들은 지역과 교구 사이를 특징짓는 역할을 했다.

 

브르타뉴는 꼬르누와이유, 레옹, 생말로 등의 9개 에베쉐(eveche. 주교가 상주하는 지역 단위)로 지역이 나뉘어 있었다. 에베쉐는 각각 특색 있는 방언과 억양을 만들었고, 강이나 숲, 작은 산과 같은 지형에 의해 나뉘어졌다. 언어뿐 아니라 옷차림과 음악, 춤 등으로도 구분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옷차림의 차이가 가장 컸다.

 

프랑스 혁명기까지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적인 의상들 중에서 일상복은 특별히 지역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대로 옷을 입었다. 그러나 축제나 행사 때 입는 특별한 의상이 존재했다. 이 의상은 일상복과는 차이가 있었고, 화려한 자수와 장식으로 꾸며졌다. 자수에는 기하학적인 그림과 꽃, 나뭇잎들이 자주 쓰였다. 재료도 은실이나 염색된 비단실, 진주, 리본 같은 것들이 사용되었다. 

 

▲  꼬르누아이유 축제. 2013년 깽뻬르(Quimper) 지역.  
 

특히, 자수는 해를 거듭하면서 각 고장의 빛깔과 개성을 더해가며 장식과 특별한 모티브들을 발전시켜 나갔다. 자수는 전통적인 방법을 철저하게 따랐으며, 장인들은 매우 숙련되어 있었다.

 

자수 장인들은 한 여성이 축제 의상을 주문하러 오면, 그녀의 재산까지 잘 알고 있어야 했다. 여성들은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옷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자수를 한 줄이라도 더 늘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딱 하루를 입는다 해도, 심지어 그날 바로 죽게 되는 일이 생긴다 해도,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가 자신의 옷에 놓이길 원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의복의 장식은 사람들의 경제 수준을 반영했으며, 꼭 그 고장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의복의 재료는 서로 비슷한 것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면직물이나 마직물, 벨벳, 비단, 얇은 망사, 펠트 같은 것들이 의복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재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또 사용된 장신구와 머리 장식에 쓰인 도구에 따라, 의상에서 그들의 창의성이 발현되었다.

 

몇몇 자수 장인들은 노동자를 거느린 작업장을 열기도 했는데, 1890년 뽕라베(Pont-L’Abbe)의 ‘피샤방 집’(la maison Pichavant)이라고 불리는 아뜰리에에는 소속되어 일하는 노동자가 60명이 넘었다고 한다.

 

한편,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부르주아들은 검은색을 특히 좋아했다. 그들은 화려한 색깔로 인해 자신들이 눈에 띄는 걸 싫어했다고 하는데, 그 영향으로 19세기 말이 되면 브르타뉴 전역에서 검정 벨벳이 유행하게 된다. 이 검정 벨벳은 부와 사회적 성공을 상징했다. 20세기 초까지도 프랑스의 시골에서는 세대를 이어가면서 그들의 전통 의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브르타뉴는 특히 더했다.

 

여성들은 두건과 리본을, 남성들은 모자를

 

옷의 자수가 지역 장인들의 작품이었다면, 머리 장식은 서민들 스스로 만든 작품이었다. 브르타뉴 여성들의 머리 장식 형태와 규모는 매우 체계화되어 있었다. 머리 장식은 의상보다 훨씬 더 다양했고, 교구와 공동체를 구분 지었다. 그러나 머리 장식이 오랫동안 유지된 습관은 아니었다. 머리 장식의 다양성은 19세기 초에 시작되어 1914년까지 발전했을 뿐이다.

 

브르타뉴 여성들이 두건과 리본으로 머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면, 남자들은 모자를 썼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남자들은 모자를 쓰지 않고서 성당이나 묘지, 또는 특별한 장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남자들은 모두 모자를 썼다. 들판이나 공장, 항구에서 일할 때도 모자를 쓰고 일했다.

 

남자들의 모자 역시 지역을 구분해주었다. 모자는 또 햇빛과 추위, 악천우를 막는 역할도 했다. 그래서 브르타뉴 남성들은 모자가 모든 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준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   로리앙(Lorient)과 뽕띠뷔(Potivy)의 전통적인 남성 복장.  (Rennes)   © 정인진  

 

한편, 장이 열리거나 파르동 축제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일 때는 머리카락 상인들이 와서 젊은 여성들의 머리카락을 가져갔다. 머리카락은 돈을 받고 판매되지는 않았고, 색색의 손수건이나 꽃이 그려진 앞치마, 헝겊, 장신구 등이 대가로 주어졌다.

 

여성들의 짧게 잘린 머리카락은 수건 속에 감추어졌다. 머리쓰개는 그녀들의 머리카락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했다. 이런 식으로 상인들이 머리카락을 수거해 가는 것은 1차 세계대전 때까지 이어졌다. 모두 가난한 시절, 가난한 브르타뉴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브르타뉴에서 거둬들인 여성들의 머리카락은 연간 10톤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것은 중개인들에 의해 다시 정리되어, 부르주아들을 치장하는 가발로 만들어져 파리나 대도시로 팔려나갔다.

 

저항을 상징한 비구덴 여성들의 높은 머리장식

 

브르타뉴 지역 중에서도 남부 피니스테르 지역인 깽빼르를 중심으로 한 꼬르누아이유 지방은 그 차림새가 가장 다양했다. 당시의 유행과도 거리가 먼 독특한 형태였다. 꼬르누아이유 지방 안에서도 ‘비구덴’(Bigouden)이라는 작은 고장은 머리 장식과 옷차림이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이 고장의 독특한 머리 장식과 의상이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19세기말 철도가 개통되며 관광객들이 모여들기 사직하면서부터다.

 

축제 같이 특별한 날에는 남녀 모두 오렌지색과 노란색의 비단실로 화려하게 가슴 부분을 수놓은 조끼를 입었다. 여기에는 공작의 깃털, 생선 가시, 태양과 같은 모티브가 쓰였다. 그건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비구덴 지역의 특별한 자수였다.

 

또 비구덴 여성들은 머리에 레이스로 만든 높은 원통형 장식을 썼다. 이 머리 장식은 17세기, 세금 징수에 불만을 품은 꼬르누아이유 시민들의 저항운동 과정과 연관이 있다. 

 

                ▲  비구덴 여성의 종탑 모양 머리 장식 (Quimper)    © 정인진  

 

당시 정부군에 의해 ‘랑부르(Lambre) 성당’의 종탑이 파괴되었다. 종탑은 이후 재건축되었지만, 여성들은 파괴된 성당의 종탑을 각자 머리에 이고 다닌다는 의미로, 20세기에 들어 높은 탑처럼 생긴 머리 장식을 했다. 이 장식은 저항의 한 상징이 되었다. 비구덴 여성들의 머리 장식은 점점 높이를 더해, 두 번의 세계대전 사이에는 39cm까지 높아지기도 했다.

 

특히 비구덴에서는 꾸미는 데 시간이 엄청 걸리는 머리 장식을 일상 생활 중에도 하고 있는 여성들이 많았다. 1977년만 해도 비구덴의 여성들 중 15%에 해당하는 3천567명이 전통적인 머리 장식을 하고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던 것이 차츰 줄어, 2008년에도 약 스무 명이 이 머리 장식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비구덴 지역의 특색 있는 머리 장식은 오늘날 브르타뉴 여성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많은 관광 상품의 캐릭터로 변형되고 발전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세계인이 즐겨 입는 옷이 브르타뉴 뱃사람 의상?!

 

브르타뉴 사람들의 전통 의상은 더 이상 과거에 존재했던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유행하는 옷들 속에는 브르타뉴의 전통적인 민속 의상에 기원을 둔 디자인들이 많다는 사실에 다들 놀랄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남성들의 더블 단추가 달린 재킷이다. 이 더블단추 재킷이 바로 브르타뉴 남성들의 전통 의복에서 변형된 것이다. 또, 브르타뉴 어부들의 작업복으로 쓰였던 짙은 노란색 방수복은 세계 사람들이 즐겨 입는 노란 비옷이 되었다. 특히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파랑, 하양의 가로줄무늬 티셔츠는 옛날부터 브르타뉴 뱃사람들이 입었던 옷이다. 이 무늬는 브르타뉴의 ‘죠슬랭’이라는 도시에서 15~18세기에 생산된 마직물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어느 한 고장의 문화가 흘러, 이렇게 우리 속에도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며칠 전 비가 내렸던 날에는 브르타뉴에서 사온 노란 방수복을 입고 한껏 그곳 분위기를 내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을씬년스러운 가을비 속에서 노란 비옷은 아주 적당한 차림이었다. 떠나온 곳을 이런 식으로 추억하는 건 즐겁다. 다음 번에는 줄무늬 티셔츠도 하나 장만할까? 그러고 보니, 브르타뉴에는 지금쯤 비가 내리고 있겠다. ▣ 여기자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영문 번역기사 사이트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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