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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이야기요? 그걸 어떻게 이야기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말로 다 못해요.”
그렇게 말하며 조순옥씨는 웃는다. 쉰넷, 그의 나이다.
 
“아직 좋은 나이야. 오십에서 육십 넘어가면 그때는 정말 달라.”
앞에 앉아있던 손님이 그의 얘기를 들으며 말한다. 머리를 만져주는 미용사 조순옥씨보다는 열 살쯤 손위 나이로 보였다. 오십이면 아직 충분히 젊은 나이라고 몇 번이고 말한다. 손님의 말처럼, 미용실을 운영하며 사람들의 머리를 해주는 그는 아직 곱다.
 
조순옥씨는 이제껏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다.
“나는 삼십대, 사십대를 어떻게 보냈는지 정말 기억이 안 나요.”
 
그러나 그는 지금 지나온 세월에 대해 말하고 있다. 긴 시간이었지만,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시간. 한 순간도 헛되게 보내지 않으려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아이가 죽지 않고 숨이 붙어있는 거예요”
 

조순옥(54)씨와 미희(27)씨 모녀

그 사이 힘든 일도, 시련도, 고통도 많았다. 27년, 둘째 아이를 키워왔던 시간이다. 자기가 한 살, 한 살 더 먹는 것을 생각하기보다 아이가 커가는 것을 보며 살았다. 올해 28살이 된 딸이 자기를 떠나지 않고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눈물겹도록 고맙다.
 
“저는 우리 미희를 ‘복덩어리’라고 그래요.”
 
둘째 딸 미희가 태어나면서부터 장애가 있었던 건 아니다. 27년 전 태어난 지 5일째 되는 날, 아이는 사경을 헤맸다. 시어머니 집에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아직 배꼽도 떨어지지 않은 아이를 목욕시키기 위해 배꼽을 떼고 물에 넣었는데, 순간 아이의 얼굴이 시커멓게 되었다. 파상풍균이 배꼽에서 시작되어 온몸으로 퍼진 것이다.
 
얘기를 하는 동안도 그는 27년 전 그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이가 위급했던 그 순간, 아이를 안고 바로 병원으로 뛰었지만 하나같이 가망 없다는 얘기만 듣고 나왔다.
 
“24시간 안에 죽는다고 마음 준비하라고 했는데, 아이 아빠가 애를 꼭 안고서 같이 밤을 지샜는데, 아이가 죽지 않고 숨이 붙어있는 거예요.”
 
병원은 사망선고만 내렸기 때문에 한의원에 찾아갔다. 한의원에서도 고개를 저었지만, 그래도 약을 지어주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그걸 먹이고는 아이가 조금씩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파상풍균은 아이의 머릿속까지 침투한 상태. 다시는 회복될 수 없었다.
 
어릴 적에는 팔다리와 몸은 자라지 않는데 머리만 커져갔다. 물이 찬 것이라고 했다. 아프긴 했지만 아이는 해가 거듭할수록 자랐다. 아이가 열아홉이 되던 때는 강원도에 다녀오다가 고속도로에서 아이가 발작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때 생각을 하면 그는 지금도 아찔하다. 점심으로 먹은 게 체했던 모양인데, 딸은 사지가 뻣뻣하게 굳은 채 온몸을 뒤틀며 발작을 하는데…
 
“순간적으로 제 손가락을 아이 목에 넣었어요. 입을 다물면 죽는 거예요.”

그 사이 남편이 아이의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그랬더니 발작은 멈춰지고 아이의 얼굴 색이 되돌아왔다.
 
그렇게 모진 시련이 있었지만, 지금 둘째 딸 미희는 건강하게 그의 곁을 지켜주고 있다. 조순옥씨와 남편의 눈에는, 시련을 함께하고 그때마다 꿋꿋하게 잘 이겨내 온 둘째 미희보다 이 세상에서 더 예쁜 존재는 없다. “딸한테 그래요. 우리 미희가 제일 예쁘다고.”
 
할머니 친구들이 많은 이유

 

동네머리방을 운영하는 조순옥씨

그 옛날 지독하게 가난했기 때문에 아이가 아프면 병원비조차 없어 돈을 빌리러 다녀야 했다. “한끼 먹을 때 거리도 없고, 병원비도 없어서” 아이가 세 살이 되던 해, “우유를 타두고는 큰 아이에게 미희가 배고프다고 울면 우유 줘~”라고 부탁하고, 미용기술을 배우기 위해 학원을 다녔다.
 
사고도 많았다. 아이를 재워놓고 미용학원에 간 사이, 아이가 일어나 기어 다니다가 선반 위에 있는 접시가 떨어지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집에 돌아오니까 아이가 피투성이가 되어 뒹굴고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아이를 안고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요.” 그렇게 6개월 과정을 마치고, 미용사가 되었다.
 
“나의 목적은 돈 벌어서 저 아이가 대우받고 살 수 있게 하는 거. 밥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한 것뿐이에요.”
 
미용사가 되고 나서부터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살았다. 미용실을 차린 적도 있었지만, 하루 아침에 길바닥에 나앉기도 했다. 단칸방 하나 얻어, 거기서 딸을 돌보며 동네 분들 머리를 해주면서 조금씩 일어섰다. 그때는 돈을 모으기 위해 밥을 굶고 일한 날이 숱하다. 되돌아보면 지독하게 살아냈던 시간이다. 그렇게 살아온 덕분에 이제는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지만, 또 하나 얻은 게 있다면 위궤양이다. 위가 안 좋아 지금도 고생한다.
 
너무 힘들게 살아서일까. 나이 마흔을 넘어 갱년기가 왔을 때 우울증을 겪었고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미용실 문을 일년 동안 닫고, 일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커튼을 치고 침대에 누워 ‘죽어야지’ 하며 마음의 어두운 골짜기를 헤맬 때, “미희가 밟혀서” 죽지 못했다.
 
갑자기 ‘미희는 앞으로 어떻게 되나?’라는 생각이 미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시 미용실 문을 열고 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순옥씨는 남편과 함께 입버릇처럼 “우리 미희가 복덩어리”라고 한단다. 살 수 있게 해줘서.
 
“아이 때문에 배운 점이 많아요. 아이로 인해 저의 까탈스러웠던 성격도 바뀌고, 어떻게 살면 잘사는 건지 배우게 됐다니까요. 배려심이 생겼어요. 남이 못 되는 것 못보고. 노인들에게 대우해주게 되고, 친구로 대하고. 그래서 저한테는 할머니 친구들이 많아요.”
 
그가 운영하는 작은 동네미용실 ‘물나라 머리방’엔 손님들이 모여 힘든 얘기, 고민들도 털어놓는다. 그는 언제나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한다. 미용학원 다닐 때부터 원장이 특히 그에게 “손재주가 좋다”고 칭찬할 정도로 일에 재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편하게 믿고 찾는다.
 
내가 터득한 행복
 

잘사는 법을 배운 세월이라고 말한다.

27년의 시간이 지나, 이제는 조순옥씨의 마음도 많이 편해졌다. 27년 전,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의 배꼽을 떼고 물에 넣어 인생 길을 바꾸어놓았던 그 아주머니를 최근 몇 년 전에야 비로소 마음으로 용서하게 됐다.
 
“악연이죠. 그 사람을 얼마나 미워하고, 원망했는지. 마음에서 용서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그 사람도 목욕을 시켜주려고 했는데 그렇게 된 것이겠죠.”
 
그리고 아이를 “집안의 원수”라고 하면서 추운 겨울날 옷도 안 입혀서 놀이터에 세워놓았던 시어머니에 대해서도 이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아이를 매일 데리고 다니며, “하늘에는 별, 달이 있고, 땅은 길이고, 식당은 밥 먹는 곳이고, 여기는 약국~”하며 수백 번 말해주는 걸 보고서 “미친년처럼 쳐다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신경 쓰지 않았다.
 
병원비를 벌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시간이 지나, 지금은 성인인 된 딸을 교육시킬 수 있는 곳을 사방으로 알아보고 있다. 십대시절 꾸준히 학교를 다녔지만 숫자 ‘1’을 적지 못하는 딸이다. 그러나 밝은 성격으로 선생님들에게 예쁨을 받았고, 주위사람들과의 관계나 필요에 즉각 반응하는 “눈치 9단”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는 장애가 있는 성인들을 위한 교육공간이나 일터를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래서 미희씨는 “엄마 심심해” 라고 말하면서, 엄마와 같이 있을 수밖에 없다. 조순옥씨는 손님이 없을 때면, 그 위에 딸린 방으로 들어가 딸에게 숫자, 한글을 반복적으로 가르친다. 일어나서 세면하는 방법을 수백, 수천 번 가르쳐 익히게 되었듯이, “한글을 터득하는 것”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될 것이라 믿는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모녀에 대해 동네사람들은 호의적이다. 미희씨에게 친근하게 “잘 대해준다.” 의사표현을 잘하지 못하고 혼자서는 집을 찾아오지 못하는 미희씨이기에, 어쩌다가 골목에서 미희씨가 낯선 사람 손을 잡고 가는 것을 보면 동네사람들이 “미용실 집 딸인데, 어떻게 같이 가냐?”고 안전을 확인해준다고 한다.
 
서울에서 한옥집이 그나마 많이 남아있는 북촌 길을 지나 원서동으로 걷다 보면 ‘물나라머리방’이 나온다. 거기에 조순옥씨와 딸 미희씨가 살고 있다.
[일다] 윤정은 일다의 다른 기사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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