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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미술작가 방영경씨를 만나다
‘세상이 얼마나…아름다운지…즐기며 걷고 싶습니다.’
방영경씨의 명함에는 공공미술작업에 대한 설명이 이렇게 적혀있다. “주변공간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것”이 그의 직무다.
영경씨의 작업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면서도, 정작 나의 머리에서 공공미술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그린 벽화나 걸개그림 정도였다. 착한 얼굴의 영경씨는 배경지식 없는 기자를 탓하는 기색 전혀 없이 공공미술에 대해 설명해나갔다.
“작가는 만들고, 사람들은 보고. 이런 관계가 아니라, 작가가 기간을 두고 사람들을 찾아가거나 그 속에서 지내면서 같이 만들어가는 작업이에요. 참여하는 미술이죠.”
가까운 예로 든 것은 촛불집회 현장이다. “촛불시위방법이 다양하고 재미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저마다 기발한 아이디어 표현을 하더군요. 바닥에 분필로 그린 그림, 우산을 피켓으로 활용한 작품, 교보문고 맞은 편 건물 벽에 레이저 빔으로 쏘는 문자까지… 또 하나의 공공미술 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환호하는 사람들도 인상 깊었지요.”
공공미술의 세계에 발 들여놓다
미술고등학교를 다녔던 영경씨는 미술이 곧 자신의 길이 될 거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대학을 다닐 때에도 진로에 대한 고민을 별로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졸업을 하고 나서 보니 직업이 마땅치 않았다.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직했는데, 6개월 후에 그만두었어요. 그러던 중 2003년에 임옥상미술연구소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게 되었죠.”
애초 계획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유럽여행을 갈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영경씨는 아르바이트 이후 정식 채용이 되었고, 유럽여행은 못 가는 대신 진로가 정해졌다. 임옥상미술연구소를 통해 발 들여놓은 것이 바로 공공미술의 세계다.
그곳에서 많은 걸 배웠다. 2007년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따로 나와 ‘플래닝 미도’라는 이름으로 창업을 했는데, 방영경씨는 디자인2팀 팀장을 맡고 있다.
‘플래닝 미도’를 통해 2년간 그가 참여한 작업은 재래시장과 지역아동센터들 대상의 리모델링 프로젝트들이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도시, 농어촌지역을 두루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공동작업을 진행했다.
세상이라는 큰 캔버스에서
세상에는 어렵고 힘들고 막막해도 그만둘 수가 없는 종류의 일이 있다. 작업에피소드를 들어보니, 영경씨가 지난 2년여 간 해온 작업들도 그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동대문 동화시장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할 때의 일이다. “시장골목 공간을 개성 있는 공간으로 색깔을 부여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동네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 시장을 외부사람들도 올 수 있도록 끌어들이는 요소가 무엇인지 고민했어요.”
하지만 주위의 반응은 “너희 뭐 하는 거냐?” 하는 거였다. 공공미술은 당사자들과 함께 소통하는 것이 필수인데,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시장에서 영경씨 팀의 작업은 쉽사리 수용되지 못했다. 시장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천장구조물 씌우는 작업인 줄 아는 이들도 있고, 러브하우스처럼 before vs. after가 크게 비교되는 작업이 아니라 실망하는 이도 있었다.
“사실 우리가 하는 작업이 무엇인지 알리고 이해를 시키는 것은 어려워요. 기초작업이면서도 가장 힘든 일 같아요. 유대감이 중요한데, 관계를 맺을 만하면 끝나버리는 식이죠.”
동화시장에는 700개 점포가 있는데, 영경씨와 동료들은 모든 점포를 다 방문했다. “구운 달걀을 들고 간식으로 드리면서, 대신 점포에서 버리는 의류 부자재들이 있으면 달라고 했어요. 관심을 끌어보려고 인형 탈도 쓰고, 피켓도 들었어요.”
문전박대를 당한 곳도 없지 않았지만, 음료수를 주며 관심 가져주는 분들도 많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냐’며 격려해주는 주인도 있었다. 7백 개에 달하는 집을 다 돌고 나니 “뭔가 해낸 기분이 들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공간은 의류시장의 특색을 살린 실타래 그림으로 장식된 상가 벽(사진_오경석作 "동화, 색에 빠지다")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장식된 방화문들, 단추모양의 벤치가 있는 옥상 쉼터 등 유쾌한 상상력이 빛을 발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프로젝트 움직이는꽃_동화(動花)”라는 작품(이혜진作)이다. 상인들에게, 한번도 불려진 적 없었던 자신의 이름을 천이나 실로 꾸며보는 작품전을 공모했는데, 50여명이나 응모해준 것이다. 영경씨는 바쁜 중에도 짬을 내어 준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대신 전했다.
작은 종이와도 친해지고 싶어
보다 특별한 경험은 석관동 설계과정에서 진행되었던 이른바 ‘사모님 데이’다.
“모임을 하면 남자들만 나오고 여자들은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여자끼리 모이는 수다방을 생각해냈어요. 매주 수요일, 일이 끝나는 9시쯤 모이기로.”
모임 첫날 작은 공간에 조명을 밝히고, 야광봉을 준비해 입장 시 나눠드리며, DJ가 등장하는 가라오케 사모님 풍으로 놀았다. 효과는 만점! 인도음식과 와인을 가져다 이색적인 분위기를 내면서 나눠먹는 날도 만들고, ‘사모님 데이’(조수정作 "누들누들 수다방")는 전체 프로그램보다도 내부적으로 더 값진 성과로 꼽힌다.
이제 정책의 변덕으로 인해, 이러한 프로젝트 공모도 대폭 축소되었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공간인 지역아동센터 꾸미기와, 이주여성들이 많이 참여했던 수다방 등은 잠시만 진행하고 중단하기엔 “너무도 아깝다.” 영경씨는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 노하우를 축적해서 잘 짜인 커리큘럼을 만들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영경씨가 간절히 바라는 작업이 있다. 일러스트다. 어릴 적부터 일러스트 작업을 꿈꿔왔지만, 다른 작업으로 바빠 계속 미뤄왔다.
“일러스트는 작은 종이, 공공미술은 큰 캔버스가 주어지는 작업이에요.”
작은 종이에도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영경씨. 알고 보면 그는 <연탄길>의 작가 이철환씨의 추천으로, 이씨의 글에 일러스트를 넣어 1년 간 연재작업을 함께한 경험이 있다. 색연필로 그림을 그렸는데 “고마운 경험”이었다.
방영경씨는 올해 서른이 됐다. 비록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냈지만, 이십 대를 배우고 또 배우며 성장해왔기에 아쉬움이 남지 않는 듯했다. 공동작업을 해오며 기뻤던 일도, 괴로웠던 일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그에게선 “특별한 힘”이 느껴진다. 일다▣ 조이여울
‘세상이 얼마나…아름다운지…즐기며 걷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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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경씨의 작업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면서도, 정작 나의 머리에서 공공미술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그린 벽화나 걸개그림 정도였다. 착한 얼굴의 영경씨는 배경지식 없는 기자를 탓하는 기색 전혀 없이 공공미술에 대해 설명해나갔다.
“작가는 만들고, 사람들은 보고. 이런 관계가 아니라, 작가가 기간을 두고 사람들을 찾아가거나 그 속에서 지내면서 같이 만들어가는 작업이에요. 참여하는 미술이죠.”
가까운 예로 든 것은 촛불집회 현장이다. “촛불시위방법이 다양하고 재미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저마다 기발한 아이디어 표현을 하더군요. 바닥에 분필로 그린 그림, 우산을 피켓으로 활용한 작품, 교보문고 맞은 편 건물 벽에 레이저 빔으로 쏘는 문자까지… 또 하나의 공공미술 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환호하는 사람들도 인상 깊었지요.”
공공미술의 세계에 발 들여놓다
미술고등학교를 다녔던 영경씨는 미술이 곧 자신의 길이 될 거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대학을 다닐 때에도 진로에 대한 고민을 별로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졸업을 하고 나서 보니 직업이 마땅치 않았다.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직했는데, 6개월 후에 그만두었어요. 그러던 중 2003년에 임옥상미술연구소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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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많은 걸 배웠다. 2007년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따로 나와 ‘플래닝 미도’라는 이름으로 창업을 했는데, 방영경씨는 디자인2팀 팀장을 맡고 있다.
‘플래닝 미도’를 통해 2년간 그가 참여한 작업은 재래시장과 지역아동센터들 대상의 리모델링 프로젝트들이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도시, 농어촌지역을 두루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공동작업을 진행했다.
세상이라는 큰 캔버스에서
세상에는 어렵고 힘들고 막막해도 그만둘 수가 없는 종류의 일이 있다. 작업에피소드를 들어보니, 영경씨가 지난 2년여 간 해온 작업들도 그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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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주위의 반응은 “너희 뭐 하는 거냐?” 하는 거였다. 공공미술은 당사자들과 함께 소통하는 것이 필수인데,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시장에서 영경씨 팀의 작업은 쉽사리 수용되지 못했다. 시장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천장구조물 씌우는 작업인 줄 아는 이들도 있고, 러브하우스처럼 before vs. after가 크게 비교되는 작업이 아니라 실망하는 이도 있었다.
“사실 우리가 하는 작업이 무엇인지 알리고 이해를 시키는 것은 어려워요. 기초작업이면서도 가장 힘든 일 같아요. 유대감이 중요한데, 관계를 맺을 만하면 끝나버리는 식이죠.”
동화시장에는 700개 점포가 있는데, 영경씨와 동료들은 모든 점포를 다 방문했다. “구운 달걀을 들고 간식으로 드리면서, 대신 점포에서 버리는 의류 부자재들이 있으면 달라고 했어요. 관심을 끌어보려고 인형 탈도 쓰고, 피켓도 들었어요.”
문전박대를 당한 곳도 없지 않았지만, 음료수를 주며 관심 가져주는 분들도 많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냐’며 격려해주는 주인도 있었다. 7백 개에 달하는 집을 다 돌고 나니 “뭔가 해낸 기분이 들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공간은 의류시장의 특색을 살린 실타래 그림으로 장식된 상가 벽(사진_오경석作 "동화, 색에 빠지다")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장식된 방화문들, 단추모양의 벤치가 있는 옥상 쉼터 등 유쾌한 상상력이 빛을 발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프로젝트 움직이는꽃_동화(動花)”라는 작품(이혜진作)이다. 상인들에게, 한번도 불려진 적 없었던 자신의 이름을 천이나 실로 꾸며보는 작품전을 공모했는데, 50여명이나 응모해준 것이다. 영경씨는 바쁜 중에도 짬을 내어 준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대신 전했다.
작은 종이와도 친해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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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을 하면 남자들만 나오고 여자들은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여자끼리 모이는 수다방을 생각해냈어요. 매주 수요일, 일이 끝나는 9시쯤 모이기로.”
모임 첫날 작은 공간에 조명을 밝히고, 야광봉을 준비해 입장 시 나눠드리며, DJ가 등장하는 가라오케 사모님 풍으로 놀았다. 효과는 만점! 인도음식과 와인을 가져다 이색적인 분위기를 내면서 나눠먹는 날도 만들고, ‘사모님 데이’(조수정作 "누들누들 수다방")는 전체 프로그램보다도 내부적으로 더 값진 성과로 꼽힌다.
이제 정책의 변덕으로 인해, 이러한 프로젝트 공모도 대폭 축소되었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공간인 지역아동센터 꾸미기와, 이주여성들이 많이 참여했던 수다방 등은 잠시만 진행하고 중단하기엔 “너무도 아깝다.” 영경씨는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 노하우를 축적해서 잘 짜인 커리큘럼을 만들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영경씨가 간절히 바라는 작업이 있다. 일러스트다. 어릴 적부터 일러스트 작업을 꿈꿔왔지만, 다른 작업으로 바빠 계속 미뤄왔다.
“일러스트는 작은 종이, 공공미술은 큰 캔버스가 주어지는 작업이에요.”
작은 종이에도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영경씨. 알고 보면 그는 <연탄길>의 작가 이철환씨의 추천으로, 이씨의 글에 일러스트를 넣어 1년 간 연재작업을 함께한 경험이 있다. 색연필로 그림을 그렸는데 “고마운 경험”이었다.
방영경씨는 올해 서른이 됐다. 비록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냈지만, 이십 대를 배우고 또 배우며 성장해왔기에 아쉬움이 남지 않는 듯했다. 공동작업을 해오며 기뻤던 일도, 괴로웠던 일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그에게선 “특별한 힘”이 느껴진다. 일다▣ 조이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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