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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 꿈꿔요”
카페 ‘히즈라네 고양이’ 운영자 원사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박희정
원사(39)는 나이 마흔을 앞두고 지난 10일 구로디지털단지 안에 카페를 열었다. 신선한 커피 향이 그윽한 ‘히즈라네 고양이’.

 
어떤 공간이든 만들어지기까지 저마다 이유와 사연이 있겠지만, ‘히즈라네 고양이’도 탄생되기까지 스토리와 역사가 있다. 원사는 최근까지 여성단체 실무자로 일했다. 그가 왜 ‘히즈라네 고양이’의 문을 열게 됐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얘기를 들어보았다.

 
히즈라처럼, 고양이처럼

 
“(카페는) 어릴 때부터의 꿈 같은 거였어요. 주변의 재능 있는 여성들이 자기 재능을 펼칠 공간, 전시도 하고 작품도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 공간에 그런 사람들이 모이고 새롭게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하겠죠.”

 
원사는 자신에 대해 “강박처럼 창조적이거나 새로운 것을 찾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똑 같은 얘기를 두 번 하는 것도 싫다”는 원사는, 세상을 바꾸는 운동도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 되길 바랬다. 고민 끝에 문화 공간을 통한 생활운동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카페 이름 “히즈라네 고양이” 속에도 그런 원사의 바람이 담겨 있다. 히즈라는 인도사회에서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제3의 성으로 살아가는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인도사람들은 히즈라가 양성성을 지닌 힌두신의 인격이라 믿고 신성시했다.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일 수 있지만, 히즈라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식의 삶을 선택한다. 때로는 사람들의 안녕과 평화를 빌어주는 사제로, 때로는 위로하며, 웃게 만드는 광대로. 그런 히즈라의 모습을 카페의 지향점으로 삼고, 신비로움과 편안함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히즈라네 고양이’라는 카페 이름을 지었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감수성이 깨어나면 여성문제에도 시선이 트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가 그런, 자신 안에 숨겨진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면 내 운동의 목표가 어느 정도는 이루어지는 게 되겠죠.”

 
세상에 대한 분노, 우울, 그리고

 
원사는 “사회복지 쪽에 발을 담그다” 우연한 기회에 여성학 강좌를 듣고 “아, 이거다!”라는 생각에 여성학과에 들어갔다. 세계관이 새롭게 정립되는 과정은 “내 몸에 붙어 있는 살을 떼어내는 느낌”처럼 힘들었다.

 
“1년 후 휴학하고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활동을 하면서 제 안의 고민이 많이 정리가 되었어요. 많은 여성학 공부하는 친구들이 그런 과정을 많이 겪겠지만, 그때는 젊었기 때문에 많이 부딪히고 싸웠어요. ‘자원활동처럼 여성운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용납할 수가 없었지요. 내가 생각하는 걸 강요하고. 내가 정말 ‘지랄’했는데 민우회 사람들이 많이 보듬어줬어요.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요.”

 
성폭력 상담을 하면서, 원사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가해자에 대한 분노는 불특정 다수의 남자들에 대한 증오로 번졌다.

 
“연륜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감정적인 거리조절을 할 수 있는데 저는 그게 안됐어요. 매일같이 가해자들에게 어떻게 해줄까 생각하게 되고. 인형을 만들어 찔러보기도 하고, 뭘 해도 분이 안 풀리는데 누굴 괴롭게 할 수 있지도 못하고, 나만 힘들었지요.”

 
당시 ‘인생에 대한 고민’도 겹치면서, 원사는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거치게 되었다. 지친 마음으로 단체활동을 쉬게 되었을 때 페미니스트 스윙댄스 동호회인 ‘스윙시스터즈’를 만났다.

 
“그 때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잡았어요. 1년 동안 푹 빠져서 놀았고 많이 치유가 되었지요. 거기서는 여성주의를 토론하진 않지만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공감대가 있었고, 그런 게 서로한테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스윙시스터즈 활동을 통해 ‘문화공간’을 만들겠다는 꿈도 구체적으로 변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들어가면서 다시 성폭력 관련 활동을 시작했고, 미술치료를 통해 우울증도 정리하게 되었다.

 
“1년 이상의 혼란기가 지나고 나 자신을 그대로 보기 시작하면서 1차적인 정리가 되었어요. 지금은 ‘30대의 안정기가 이런 거야?’라는 느낌이에요.”

 
문화공간을 열다

 
원사는 성폭력상담소 활동을 시작할 때 5년으로 예정했었으나, 그것보다 1년 앞서 그만두고 카페를 열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혼자의 힘으로 카페를 열 금액을 마련하는 건 벅찬 일이었다. 그는 현실의 벽을 만났지만, 창조적인 공간을 꿈꾸는 사람답게 ‘창조적인 상상력’을 발휘했다.

 
원사는 주변 사람들에게 기획서를 돌렸다. ‘창조력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 환경과 여성문제에 대해 일반 사람들이 조금씩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나한테 투자할 분 해주시라. 대신 이자를 주겠다.’ 투자한 사람들이 너무 많으면 관리가 벅찰 것 같아서 투자금액은 200만원 이상으로 한정했다. 많은 친구들이 이 제안에 응답을 했다.

 
“서로 넉넉하지 않은 사정을 잘 아는데 빚을 내서 준 친구도 있고, 없는 돈을 쪼개서 준 친구들이 많았어요. 투자는 못하더라도 ‘지지한다, 힘내라’는 문자도 많이 받았고요. 그런 게 정말 많은 힘이 되었어요.”

 
원사는 “무언가를 할 때 주변에 알리는 편”이다. 스스로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얘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카페 이름을 짓는 것도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설문을 받았다. 카페에 있는 가구들, 페인트 칠부터 대부분의 인테리어 작업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해냈다. 돈이 없어서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같이 하는 게 좋아서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주워 쓰는 걸 좋아했어요. 아껴 쓰는 게 몸에 배어 있죠. 수십만 원짜리 가구도 한 번 쓰면 몇만 원짜리가 되잖아요. 그런 것들 활용하는 게 환경운동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돈이 있었으면 이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죠. 새 거 사고 싶은 욕망도 있고. 하하.”

 
“응원의 힘으로 잘 해나갈 거에요”

 
함께 일할 매니저를 뽑을 때도 원사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사장으로서 매니저를 거느리는 식이기 보다 호흡이 맞는 동료가 될 수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봤다.

 
“내가 솔직한데 직설적이에요. 성향이 맞지 않으면 서로 힘들 것 같아서, 커피 동호회에 구인광고를 낼 때 그런 점들을 솔직하게 썼지요. ‘나는 여성운동을 하고 좁은 공간에서 서로 얼굴 맞대고 장시간 있는데 명박이 지지하는 사람은 같이 있기 힘들 것 같다. 이 공간을 문화 운동하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다. 이 안에서 이익이 생기면 장학금을 주고 싶고, 나랑 매니저가 자기 계발하는 데에도 쓸 것이다’라는 식으로요.”

 
그 구인광고를 보고 6명이 연락을 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지금의 매니저는 호흡이 잘 맞는 사람이다. 낡은 것을 주워 쓰는 취향도 잘 맞아 “같이 쓰레기통 뒤지는” 게 중요한 일과 중 하나라고.

 
많은 도움을 받았고 투자를 해준 친구들이 있는 만큼 카페 운영에 대한 부담도 느낀다. 하지만 조급하게 일을 할까봐서 부담감을 안 느끼려고 노력 중이라고 한다.

 
“잘 해나갈 거라고 생각해요. 응원의 힘, 기운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운동의 장, 그리고 생계공간으로서 이곳을 어떻게 잘 운영해가야 할 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친구들이 조언을 해 줄 거고, 나 스스로도 잘 다독여 나가야죠.” ⓒ www.ildaro.com


※ 히즈라네 고양이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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