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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고 건강한 에너지를 가진, 오디
  
곧 졸업을 앞두고 있는 오디는 다양한 경험과 시민단체 활동경력을 가지고 있다. 여기 저기 활동이 많은 사람들 중에는 ‘발 걸치기’ 식이거나, 그저 경력 과시용이 되고 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오디와 조금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가 꽤 역동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을 통한 성장의 계단을 꾸준히 밟아왔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한 동안은 처음 운동을 접했던 단체의 분위기와 잣대에 맞춰서 모든 걸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시민단체는 돈도 없어야 하고, 작아야 하고… ‘이래야 한다’는 식의 틀을 고집하는 게 있었죠.”
 
그러나 지금 오디는 세상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는 눈이 생겼다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자신의 좁은 틀을 깨달으면서 오디가 가장 크게 얻은 교훈은 “말 조심하자”는 것이라고 한다. 씩씩하게 좌충우돌하는 오디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대학을 관둘까 고민하던 때

 

2006년 12월, 6개월 간의 중국 어학연수를 마치고 오디는 한 시민단체의 시민운동 현장체험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현장체험 활동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정치적 성향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데 시민단체 활동 경력이 필요해서 온 법대생도 있었다.
 
또, 시민단체 회원모임에서 직장인이면서 회원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민운동의 다른 모습을 접하기도 했다. 직장인 회원들 중에는 시민단체 내에서 노래패를 결성해 활동하는 그룹들도 있었다. 오디는 대학에서 노래패 활동을 했다. 그런 공통점으로 이야기가 서로 잘 통하게 되었다. 학내 노래패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또 다른 세계의 사람들, 신기했다. 그래서 그 단체의 노래패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오디는 학교를 관두고 빨리 “본격적인 사회운동의 장”에 뛰어들고 싶다는 고민을 할 때였다. 회원모임에 나와 직장 상사 욕을 하는 선배들이 있었는데, 오디는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싫으면 나오면 되지.’ 그런데 그 회원들과 계속 만나면서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과연 운동단체에서 활동하는 것만이 운동인가, 직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든 일인가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 분들도 나로 인해 마음을 고쳐먹게 된 부분이 있다고 해요. 집회 같은 곳에서 노래를 부를 예정이 있었는데, 빠지는 회원들이 생기면 공연이 무산될 때가 있었어요. 나는 ‘한 두 명이라도 있으면 있는 대로 하면 되지, 꼭 노래를 잘 하는 게 중요하냐’고 했죠. 그런 적극성이 선배들에게는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줬다고 해요.”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생각도 고쳐 먹었다. 학교 안에서도 더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졸업시험 중에도 노래패 활동은 쉬지 않았다. 지금 취업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편하게 갈 수 있고 힘이 되어 주는 곳이라고 한다.
 
취업박람회에서 충격을 받다
 
오디는 얼마 전 ‘취업박람회’에 다녀왔다. 그간 기업으로의 진로를 고민한 적이 없던 오디에게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당시 가려고 했던 시민단체 월급과 비교하면 차원이 다른 금액들이 연봉으로 제시되었다. “돈에 연연하는 생각은 전혀 없었던” 오디가 현실의 벽을 느낀 순간이었다.

 
“취업박람회 후 친구들과 스타벅스에 갔어요. 당시 내 머리 속이 백지가 될 정도로 패닉 상태였죠. 자판기 커피와 맛의 차이도 잘 못 느끼는 내가 스타벅스를 간 일은 거의 한 손에 꼽을 정도인데, 당시 연봉 삼천 중반, 후반 그런 말들을 듣다 보니 5천원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더라고요.”
 
‘다른 애들은 쭉 그런 생각을 해 왔을 것 아닌가, 그러니 그렇게 기업에 목을 맸겠지’하는 생각에 허무하고 먹먹한 심정이 들었다. 돈을 꾸준히 아끼고 모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런 혼란으로 한동안은 돈 씀씀이가 헤퍼지기도 했단다.
 
그러면서 오디는 “직장인 회원들의 말이 새롭게 들리더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기업은 나쁜 곳이고 한 인간의 정체성을 죽이는 곳이라는 식의 생각만 있었어요.” 그래서 운동하다가 회사로 간 선배들을 “돈에 졌다”고 생각했고, 시민단체 활동가들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마당 잔치’ 같은 회원모임을 하는 것도 잘 이해가 안되었다. “회원들은 늘 활동가들에게 미안해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경험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과 “스스로 많이 열려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좁은 틀” 안에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됐다. 오디는 “이제는 말을 백 배, 천 배는 조심스럽게 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 번은 어떤 시민단체 활동가가 비싼 가방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분노한 적이 있는데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과 친구가 ‘시민단체 사람은 부자면 안돼?’라고 묻더라구요. 이제 그 차이를 알게 되었어요. 거대담론이 일상에 적용될 때는 좀 더 세심하고 신중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요. 그런 일들을 돌이켜보면 부끄럽고 안타까워요.” 라고 강조했다.
 
그 ‘한 사람’이 정말 소중해
 
오디는 블로그를 통해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알리는 일에도 비중을 두고 있다. “너무 중요한 일들이라 한 명이라도 더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20일에는 기륭전자에서 농성중인 노동자들을 사측에서 용역과 경찰병력을 이용해 침탈하던 현장을 촬영해 블로그에 올렸다.

 
“기륭전자 문제 같은 경우 기존 매체에 내 글보다 더 잘 쓴 글들이 많겠지요. 하지만 내 블로그에 들어와 글을 읽는 사람들은 학교 친구들이나 후배, 다음 블로거들인데 그런 매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거든요.”
 
처음에는 ‘미니홈피’를 이용해 글을 올렸다고 한다. “그런 문제에 대해 모르는 친구들”이 많이 오기 때문이다. 꾸준히 글을 올리다 보니 관심을 갖는 친구들도 한 두 명씩 생겨났다. “조금씩 변화해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그런 활동을) 놓치기가 힘들죠.”
 
오디는 “설득해야 하는 대상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번은 과 친구가 “요즘 칼라프린트로 예쁘게 쓸 수 있는데 왜 맨날 대자보는 시커멓게 쓰냐?”고 하더란다. 그래서 “글을 좀 쉽게 쓰자”는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다른 매체들 글을 보면 좋은 글들이 많지만, 운동을 모르는 사람들은 용어도 잘 모르고 그렇거든요. 어떨 때는 일부러 선정적인 제목을 달기도 하고, 약간의 감상을 첨가할 때도 있죠. 이랜드 문제도 주변 친구들 대부분이 구매자나 알바생으로 많이 접했기 때문에 조금만 감상적인 느낌을 더해주면 지지가 엄청나요. 당시 싸이에 올린 제 글에 불매운동에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해준 친구들이 많았어요.”
 
오디가 처음부터 ‘비운동권’을 대상으로 한 블로그를 만들게 된 이유는 “운동권들의 끼리끼리 문화”를 경계해서라고 한다. “모르는 사람 설득하려는 건데 왜 늘 끼리끼리일까? 그러려면 과 친구들과도 놀아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일반 학생들을 우매하게 평가하고, 집회에 하이힐 신고 갔다고 뭐라고 그러고. 그런 소리를 들으면 저는 오히려 더 신고 나갔죠. 하이힐 신고 나갔는데 갑자기 집회가 잡히면 어떡해요? 그럼 가지 말아야 하나요?”
 
 처음에는 ‘친구들이 미팅 얘기하면 재미없어서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던 오디도 지금은 친구들과 서로 타협점을 찾았다. “내가 친구들 쇼핑 얘기를 들어주는 만큼 친구들도 저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
 
지난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오디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운동을 했다. 막상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고 보니 한 표 부탁한다는 말이 쉽게 안 나왔다. 그런데 친구들이 먼저 알아채고 “네가 지지하는 후보라고 하니 너에 대한 믿음으로 뽑겠다”고 했다. 활동의 보람을 정말 크게 느낀 순간이었다.
 
또 다른 세상을 앞에 두고
 
오디는 지금 또 다른 세상을 향해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졸업 후 시민단체 활동가를 준비해 왔는데 취업박람회 이후 ‘취업’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안정적인 연봉’에 대한 현실적인 끌림도 있었지만, 또 다른 사회경험을 쌓고 싶었다는 이유가 무엇보다 크다. 그 경험이 세상을 보는 오디의 눈을 더 크게 확장시켜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정 이후에도 쉽지 않은 과정이 남아 있다.

 
“대학생활 동안 나는 어떤 NGO에 들어갈지만 생각해 왔으니까요. 다른 애들은 4,5년 내내 입사 준비를 하잖아요.”
 
당장 토익시험부터가 걸림돌이다. 시민단체 활동에만 집중해 온 오디는 그 흔한 토익성적표 하나 없다.
 
“취업박람회에서 ‘당신의 열정을 높이 삽니다’라는 기업의 홍보문구를 보고, ‘어, 나 능력은 없어도 열정은 좀 있는데’ 하고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그 ‘열정’이라는 게 ‘열심히 상사 말에 복종하고 열심히 야근하는’ 그런 열정이더라구요.”
 
오디는 자신이 아직도 “순진하다”며 웃는다.
 
“경기도 불안정한데 취업시장에서 더 밀리겠죠. 이렇게 힘들게 들어가는데 한 5년은 다녀야 아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도 오디는 이렇게 말한다. “조급해하지 말고, 한발자국씩 나가자. 내가 가는 곳에 분명 길이 있겠지”라고.
www.ildaro.com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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