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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마다 줄잇는 ‘파르동 축제’ 순례 행렬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종교 축제와 신앙심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 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가 연재됩니다. ▣ 일다 www.ildaro.com
용서와 속죄의 축제, 파르동 (pardon)
브르타뉴의 여름은 축제의 계절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켈트문화축제들이 열리고, 작은 마을이나 큰 도시 할 것 없이 밤마다 ‘페스트노츠’라는 ‘밤축제’가 7월에서 8월 사이에 열린다. 모두 브르타뉴의 과거 생활상을 반영한 민속축제들이다. 그러나 여름에 열리는 축제가 민속축제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 록호낭의 <파르동 축제> 기간에 설치된 간이 제단. 이런 설치물들이 길 곳곳에 놓여 있다. © 정인진
브르타뉴의 유명한 여름 축제 중에서 ‘파르동(pardon) 축제’를 빼놓을 수는 없다. 브르타뉴의 전 지역에서 늦은 봄부터 여름 사이에 각각 정해진 날짜에 맞춰 벌어지는 파르동 축제는 마치 들불 같다. 그것이 성모 승천일인 8월 15일 사이에 절정을 이루다 끝이 난다. 이 축제는 브르타뉴에만 존재하는 매우 특별한 종교 행사로, ‘파르동’은 용서나 속죄를 뜻하니 ‘속죄제’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이 속죄제에 참여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신의 은총을 보장하는 역할을 했다.
성당과 마을 단위로 축제복장을 차려 입고 일년마다 정해진 날짜에 열린 파르동 축제. 사람들은 미사에 참여하고, 부모님 댁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저녁 미사를 기다리며 사과주를 마시면서 공놀이를 했다. 또 몇몇 마을에서는 수십 리까지 행진을 하는 순례 풍습도 있었다. 성대한 미사가 끝난 뒤 긴 행렬을 만들어 행진하는 것으로, 평소 성당 안에 있던 성유물들을 어깨에 메고, ‘화려한 문장이나 문양이 수 놓인 종교적인 깃발’(banniere)들과 십자가, 동상을 들고 성가를 부르며 행진했다.
순례의 풍습을 가지고 있는 파르동 축제는 ‘생딴느 도래’(Saint-Anne d’Auray), ‘생딴느 라 팔뤼’(Saint-Anne la Palud), ‘르 폴고예뜨’(Le Folgoet), ‘뤼망골’(Rumengol), ‘록호낭’(Locronan) 등이 여러 곳 중에서도 유명하다. 옛날부터 이런 도시의 파르동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브르타뉴 사방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마차나 기차, 더 자주는 걸어서 왔다.
성당 근처는 여행객들의 짐수레들과 천막으로 새로운 마을이 형성된 듯했다. 성소 주변에는 종교 소품을 파는 장사들이 자리를 잡고, 사람들은 상인들에게 제단에 바칠 양초를 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파르동 축제는 종교와 무관한 춤, 음악, 전통 놀이를 하는 걸로 마무리된다고 한다.
여름이면 브르타뉴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순례자들
아직도 브르타뉴의 많은 도시와 교구에서 파르동 축제를 한다. 지난 여름, 브르타뉴 지역을 여행하면서 나는 이 축제를 홍보하는 전단지를 많이 받았고 직접 파르동 축제를 구경할 기회를 갖기도 했다. 록호낭이라는 작은 마을에 방문했을 때는 우연히도 파르동 축제 기간 중이었다.
▲ 8월 15일 성모 승천일에 베슈렐에서 열린 <파르동 축제> 행렬. © 정인진
2013년 당시에는 7월 14일 일요일부터 21일까지 일주일간 열린 이 마을의 파르동은 유명한 파르동 축제들 중에서도 명성이 높다. 이 기간 동안에는 매일 ‘작은 순례’(La petite Tromenie)라고 부르는, 줄지어 마을 어귀까지 행진하는 순례가 있다. 이틀은 ‘대순례’(La Grande Tromenie)라고 부르는 행진이 있는데, 6년에 한 번씩 12km를 행진한다고 한다. 지난해가 바로 대순례가 열리는 해였다. 마침 내가 록호낭에 간 날은 대순례 전날로, 성당 앞 광장에는 다음날 있을 대순례 미사를 위한 설치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도 록호낭의 유명한 대순례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캠핑장이 있을 뿐 호텔도 하나 없는 작은 마을에, 게다가 일요일에는 버스조차 다니지 않아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방문한 날 길에서 ‘작은 순례’객들을 만난 걸 큰 행운으로 여기며 즐거워했다.
그러다가 렌느 근처, 베슈렐에서 열린 파르동 축제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베슈렐과 인근의 작은 마을의 교구들이 어울려 해마다 성모 승천일에 벌이는 파르동 축제는 성대하거나 유명하지 않지만, 브르타뉴의 파르동 축제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내 생각에 브르타뉴인들은 전통적으로 신앙심이 다른 어떤 지역보다 강했던 것 같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것 같다. 이런 신앙심으로부터 파르동 축제 같은 독특한 종교 행사를 창조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울타리가 쳐진 독특한 성당 영지 ‘앙클로 파루와씨오’
브르타뉴의 또 다른 독특한 종교 문화는 ‘앙클로 파루와씨오’(Enclos paroissiaux. 이하 ‘앙클로’)라고 부르는, 울타리가 둘러쳐진 성당을 들 수 있다. 이 전통은 브르타뉴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특히 피니스테르 북부 지역에 많이 존재한다. 울타리 안에는 예배당과 납골당, 예수의 수난이 조각된 십자가, 공동 묘지가 있다. 현재는 많은 앙클로에 묘지나 납골당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묘지가 있는 앙클로들을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 ‘레지프’(Les Iffs)의 ‘앙클로 파루와시알’(Enclos paroissial) 형태의 생-꾸엥(Saint-Quen) 성당. 성당과 십자가, 묘지들이 아직도 잘 갖추어져 있다. © 정인진
과거 묘지였던 곳에서 세월이 흘러 백골이 된 유골들은 납골당에 한 데 섞여 보관되었다. 그러나 16~17세기 앙클로의 무덤들은 방치되었는데, 사람들이 모두 교회 안에 매장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골을 쌓을 납골당이 더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옛날 유골이 쌓여있던 납골당은 시체 안치소가 되어갔다. 예배당의 파사드, 좁은 아카이드, 움푹 들어간 곳 등 어느 곳에나 성수반을 놓고 그 속에 유골을 담아 놓았다. 그러다가 1758년 10월에 공포된 법령에 따라 묘지에 시체를 묻는 것을 의무화하면서, 납골당의 초기 형태는 영구히 사라지게 되었다.
한편, 앙클로의 예배당은 화려한 조각으로 제단과 실내를 장식했다. 이때 주로 쓰인 조각들은 부조인데, 성모와 예수 가족, 예수의 제자, 세례 요한, 그 지역의 성인들이 주로 조각되었다. 이 부조들은 매우 화려하게 채색된 것이 특징이다.
또 앙클로 안에는 아주 높게 십자가(calvaire)가 세워져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교구에서는 십자가 역시 화려한 조각이 덧붙여졌는데, 거기에는 주로 예수의 수난을 표현하는 군상들이 조각되었다. 앙클로 안 예배당의 화려한 부조와 군상이 조각된 십자가들은 모두 옛날 브르타뉴의 아마 산업으로 부자가 된 상인들의 기부 덕분이었다. 앙클로의 화려함은 당시 그 도시가 얼마나 부유했는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성인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
브르타뉴 지역의 또 다른 종교적 특징은 도시나 마을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성인들이 꼭 존재한다는 것이다. 브르타뉴 사람들은 그들의 수호성인을 섬기고, 그에게 기도 드리고, 성인과 관련된 축제를 벌인다. 내가 볼 때, 성인들과 관련된 종교적 전통은 구복신앙적인 요소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바닷가 마을에는 물고기를 잘 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성인을 추앙하고, 농촌마을에서는 수확을 도와주는 성인을 추앙하는 식이다. 산골 깊숙이 있는 샘물들은 어김없이 병을 치유한다는 성인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성인들을 추앙하는 종교 관습은 브르타뉴의 민중 신앙에 근거하는데, 약 100여명의 성인들이 지금도 존경을 받고 있다. 예배당이나, 한 고장의 파르동 축제에는 대부분 헌정된 성인이 있다.
▲ ‘르 푸’(Le Faot)의 생-소베르(Saint-Sauveur) 성당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조각된 제단. © 정인진
브르타뉴인들은 가축이나 사람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성인에게 기도를 드렸다. 이곳 사람들은 배우자를 찾고, 아이를 얻고, 병을 치유하기 위해 성인들에게 기도했다. 프랑스 속담에 ‘성인들에게 기도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게 낫다’는 말이 있는데, 브르타뉴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우리들조차 브르타뉴 사람들처럼 성인들에게 기도를 드리곤 했다. 친구는 피부병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는 엘레 계곡에 있는 ‘피아크르 성인’(Saint Fiacre)의 샘물에서 햇빛 알러지를 치료해달라고 기도하며 손과 발을 씻었다. 나는 이빨이 뽑히는 고통을 당하고 화형 당한 치과 의사와, 치통환자를 보살피는 ‘아폴린느 성녀’(Sainte Apolline)에게 치통을 낫게 해달라고 빌었다.
여전히 존재하는 파르동 축제나 성인에게 기도하는 습관을 보면, 브르타뉴 사람들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 종교성이 깊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요즘은 신앙심 때문에 파르동 순례를 하기보다는 건강을 위해, 혹은 관광을 목적으로 순례를 한다고 하지만, 브르타뉴 전 지역에서 여름마다 광범위하게 전개되는 파르동 축제는 나 같은 이방인의 눈에는 여전히 깊은 신앙심의 표현으로 느껴진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록호낭’이나 ‘돌-드-브르타뉴’에서 진행되는 대순례에 참여해 보고 싶다. ▣ 정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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