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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우리 동네 유기농 마켓 ‘비오콥’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 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가 연재됩니다. [일다] www.ildaro.com
▲ 렌의 끌뢰네 마을에 있는 비오콥(Biocoop) 마켓. 유기농 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있다. © 정인진
지난 5월, 렌 중심가 바쓸로(Vasselot) 거리에 유기농 협동조합인 비오콥(Biocoop) 마켓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쓸로 매장은 렌에서는 네 번째 비오콥 마켓이라고 한다. 이 매장 덕분에 시내 중심가에 사는 조합원들이 더 이상 장을 보러 가기 위해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기뻐했다.
나도 브르타뉴에서 살았을 때 비오콥의 조합원이었다. 약간의 가입비를 내면, 비오콥 마켓에서 판매하는 모든 상품을 조금 싼 가격에 살 수 있다. 운 좋게도, 렌에 있는 비오콥 매장 3개 중 하나가 바로 내가 살았던 끌뢰네 동네에 있었다. 나는 우리 동네에 비오콥 매장이 있었던 걸 큰 행운으로 여겼다.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건강한 식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비오콥 덕택이니까.
이 마켓 덕분에 프랑스에서 구하기 힘든 유기농 두부를 늘 사서 먹을 수 있었고, 맛있는 올리브 절임과 치즈들을 맛볼 수 있었다. 장을 보면서 한두 개 산, 무화과잼이 들어있는 쿠키나 소금이 너무 많이 들어 있지 않는 감자칩을 먹으면서 시장 가방을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건 특히 좋았다.
‘로컬푸드’ 중심, 이동거리가 표시된 상품들
1970년대 말, 소비자들과 생산자들 그리고 유기농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품질 높은 유기농산물 소비를 발전시키자는 목표로 협동조합 형태의 조직을 건설하였다. 그것이 비오콥의 출발이다.
비오콥은 25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꾸준한 성장을 보여왔다. 현재는 프랑스 전역에 340여개가 존재하는, 가장 큰 규모의 유기농 마켓이 되었다. 이곳에는 1천2백여 명의 생산자들과 연계되어 6천여 종의 품목들이 거래되고 있고, 각 지점에 약 2천5백명, 본점에 약 7백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2013년에는 총 매상액이 5억 8천만 유로에 달했는데, 전년과 비교해 8.2% 성장한 것이라고 한다.
비오콥은 지역농산물 보급에 집중함으로써 지역의 생산 체계를 발전시키는 것을 가장 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역의 생산자들과 긴밀한 연계를 맺으며 운영되고 있다. 매장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행정 구역이나 인접한 지역의 생산물이 주로 공급된다.
▲ 비오콥 끌뢰네 매장의 일부. 공급하는 물품은 브르타뉴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 주를 이룬다. © 정인진
우리 동네 끌뢰네 매장의 경우 브르타뉴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 주를 이루었으며, 낭트가 속해 있는 루아르-아틀랑티크 지역의 농산물들이 약간 첨가되었을 뿐이다. 비오콥에 생산물을 납품하는 공급자들은 한 지역에 70여명 정도로 한정 짓고, 그들로부터 여러 가지 품목들을 공급받고 있는데, 이것은 공급자들의 간청으로 결정된 사항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공급자들은 어느 정도 수준에서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또 비오콥은 농산물의 생산과 유통에 ‘화석연료를 최소한 사용’할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계절 사이클을 존중하는 제철 농산물을 주로 판매하고, 상품의 이동 거리를 최소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나 유럽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는 바나나와 파인애플의 경우는 외국에서 수입해오는데, 비행기 수송은 절대 거부한다.
비오콥에서는 융통성 있게 품목에 따라 지역농산물의 개념을 프랑스와 넓게는 유럽까지 확대하기도 하지만, 이런 품목들은 극히 일부분이고 대부분은 인근에서 생산되고 있는 농산품과 가공품들이 주를 이룬다.
비오콥은 지역의 생산 체제를 안정시키고 발전시켜, 주민들이 함께 더 건강하게 살길 바란다. 즉, 지역의 생산자들과 운송을 맡은 이들과 소비자들이 지속적으로 균형 있는 관계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비오콥의 진열대 앞 상품에 표시된 라벨에는 구체적인 상품의 생산지와 몇 km 떨어진 곳에서 생산되어서 이곳까지 왔는지가 모두 표시되어 있다.
유기농업, ‘농민의 건강’과 생태계를 지키는 실천
비오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실천들을 열심히 하고, 또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매장에서 야채나 곡식을 담는 봉지는 모두 종이로 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비닐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손님들은 모두 시장 가방을 들고 장을 보러 온다. 만약, 시장 가방을 챙겨오는 것을 잊었다면, 매장 입구에 쌓여있는 상품을 담았던 빈 종이박스를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상품을 담는 종이봉지조차 장을 보러 올 때, 잊지 않고 다시 챙겨와 반복해서 여러 번 쓰는 사람들이 많다. 주변에서 이렇게 쓰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나도 따라서 그렇게 했던 기억이 있다. 비오콥을 드나드는 시민들을 통해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작은 실천들을 배우고 그것을 따라 해보았던 건 큰 기쁨이었다.
▲ 비오콥 매장 한 켠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강연회 등 일정과 환경 의식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정보들이 소개되어 있다. © 정인진
또 우리 동네 끌뢰네 슈퍼마켓의 경우, 작년 여름에는 매장 안의 모든 냉장 진열대에 창문을 달았다. 넓게 펼쳐진 상품 진열대에 창문을 달면 소비자들이 제품을 꺼내기 위해 창문을 여닫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지만,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한 비오콥의 계획을 다들 반갑게 여겼다. 결국, 비오콥의 이런 노력들이 시민의식을 성숙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매달 발행되는 소식지에는 비오콥의 활동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유전자변이 농산물의 위험을 경고하거나 식품 첨가물의 유해성을 알리는 등 생태의식을 고양하는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프랑스가 핵에너지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그 심각한 상황을 내게 알려준 곳도 바로 비오콥 소식지이다.
시민들이 직접 참가하는 다양한 활동도 꾸준하게 열리고 있다. 건강한 식자재를 이용한 요리 강습과 천연염료를 이용한 머리염색, 환경 의식을 고양할 수 있는 특별 강연회 등이 열린다.
10여년 전에 비해, 프랑스도 유기농업에 관한 관심이 눈에 띄게 커졌다는 느낌이다. 대형 슈퍼마켓에서도 유기농 코너가 예전보다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일주일마다 열리는 장터에도 유기농 인증마크가 달린 점포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어느 도시에서나 유기농산물들만 취급하는 특별장이 열리고, 사람들은 더 많이 이런 곳으로 건강한 식자재를 사기 위해 몰려든다.
프랑스에서 유기농업은 소비자들에게 건강한 농산물을 보급하는 데만 목적이 있지 않다. 지난 1970년 대 이후, 급속히 확대된 화학농업으로 인해 농민들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게다가 토양과 지하수도 화학 비료와 농약으로 심하게 오염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유기농업은 농민들의 건강을 지키고 땅과 물의 오염을 막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항상 강조하고 있다. ▣ 정인진 www.ildaro.com
* 비오콥 사이트: http://biocoop.fr
<여성주의 저널 일다> http://www.ildaro.com <영문 사이트> http://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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